제37장 선근이 나타나는 모습의 진위 판별
선정 중에 각 선정의 선근이 나타나는 모습에는 참된 것도 있고 거짓인 것도 있다.
따라서 마땅히 잘 구별해야지 잘못 취하거나 버리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마魔의 선정을 보고 선근이라 여겨 마음에 취착이 생기면 이 삿된 치우침으로 인해 병이 생기거나 정신이상이 될 수도 있다.
또한 선근을 마의 선정이라고 의심하면 곧 좋은 이익을 잃어버리게 된다.
辨善根發相眞僞第三十七章
定中諸禪善根發相。有眞有僞。當善分
別。不可謬生取捨。若見魔定。謂是善
根。心生取著。則因此邪僻。得病發狂。
若以善根。疑謂魔定。則便失善利。爾
時當以相驗邪正。法試虛實。云何相驗。
이때 그 모습으로 삿됨과 바름을 검증하고, 법으로써 허와 실을 시험해야 한다.
모습으로 검증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간략하게 열 쌍의 삿된 모습을 제시하겠다.
첫째는 감촉의 지나침과 모자람,
둘째는 안정됨과 산란함,
셋째는 없음과 있음,
넷째는 밝고 어두움,
다섯째는 근심과 기쁨,
여섯째는 괴로움과 즐거움,
일곱째는 선과 악,
여덟째는 어리석음과 지혜로움,
아홉째는 묶임과 해탈,
열째는 강함과 연약함이다.
무릇 이러한 삿된 법은 지나친 것이거나 알맞음에 미치지 못한 것이니 잘 분별하라.
움직이는 감촉(動觸)이 생길 때, 몸과 손이 어지러이 움직이거나 혹은 잠에 빠진 듯 꼼짝도 하지 않거나, 혹은 각종 이상한 경계가 보이는 경우는
‘지나친 모습(增相)’이다.
혹은 감촉이 생겨도 몸에 두루 퍼지지 못한 채 곧 사라져 버리고, 이로 인해서 선정의 경계를 잃어버려 쓸쓸하고 무료하며 몸을 지탱하는 법(持身法)이 일어나지 않는 경우는
‘모자라는 모습(減相)’이다.
몸과 마음이 선정에 얽매여 자유롭지 못하고 혹은 이로 인해 선정에 들어가서 이레가 지나도 깨어나지 못하는 경우는
‘삿되게 안정된 모습(邪定相)’이다.
혹은 마음과 뜻이 어지러워 반연하는 대상에 머물지 못하는 것은
‘산란한 모습(亂相)’이다.
몸이 전혀 보이지 않는 것을 두고 공처정을 증득했다고 여기는 것은
‘없는 모습(空相)’이다.
혹 몸이 나무나 돌처럼 단단하게 느껴지면 이는
‘있는 모습(有相)’이다.
밖으로 갖가지 빛과 형상을 보거나 몸과 마음이 암실에 들어간 것처럼 어두운 것은
‘밝은 모습(明相)’과 ‘어두운 모습(闇相)’이다.
그 마음이 번뇌에 시달려 초췌하고 기쁘지 않거나, 혹은 마음이 너무 기뻐 마구 요동치면서 안정되지 않는 것은
‘근심의 모습(憂相)’과 ‘기쁨의 모습(喜相)’이다.
몸과 마음이 구석구석 아프거나 반대로 쾌락이 계속돼 이에 탐착하는 것은
‘괴로움의 모습(苦相)’과 ‘즐거움의 모습(樂相)’이다.
스스로 부끄러워함이 없고 남에게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는 등 여러 가지 나쁜 마음이 생기거나, 밖으로 산선散善45)을 생각하고 각과 관이 마음을 동요시켜 삼매를 파괴시키는 것은
‘선한 모습(善相)’과 ‘악한 모습(惡相)’이다.
45)산선散善 : 선정에 들지 않고 일상의 산란한 마음 상태에서 짓는 선. 제악막작諸惡莫作 중선봉행衆善奉行이 그 요지이다.
심식心識이 어리석고 미혹하여 혼미하게 전도되거나, 혹은 지견이 너무 예리해 마음에 삿된 깨달음이 생겨 삼매를 파괴하는 것은
‘지혜로운 모습(智相)’과 ‘어리석은 모습(愚相)’이다.
略示十雙邪相。一者觸軆增減。二者定
亂。三者空有。四者明闇。五者憂喜。六
者苦樂。七者善惡。八者愚智。九者縛
脫。十者强輭。凡此邪法。若過若不及
中。善爲分別焉。
如動觸發時。身手亂動。或兀兀如睡
或見諸異境者。此爲增相。或觸發而未
及徧身。便即壞滅。因此却失境界。蕭
索無聊。無法持身者。此爲減相也。
或身心爲定所縛。不得自在。或因此入
定。至七日不得出者。此爲邪定相。或
心意撩亂。攀緣不住者。此爲亂相也。
或都不見身。謂證空定者。此爲空相。
或覺身軆。堅如木石者。此爲有相也。
或見外種種光明色象。或身心闇暝。如
入暗室者。此爲明闇相也。
或其心熱惱。憔悴不悅。或心大慶悅。
勇動不安者。此爲憂喜相也。
或身心處處痛惱。或快樂綿綿貪著
者。此爲苦樂相也。
或無慚無愧。諸惡心生。或念外散善。覺
觀動心。破壞三昧者。此爲善惡相也。
或心識愚惑。惛迷顚倒。或知見爽利。
心生邪覺。破壞三昧者。此爲智愚相也。
오개五蓋 등 온갖 번뇌가 심식을 덮어 자유스럽지 못한 것은
‘묶인 모습(縛相)’이다.
혹 스스로 공무상정空無相定을 증득하고 이미 도과를 얻어 번뇌를 끊고 해탈했다고 여기며 증상만增上慢을 일으키는 것은
‘해탈한 모습(脫相)’이다.
그 마음이 기와나 돌처럼 강해 들고 나는 것이 자유자재하지 못하고, 돌이키고 변화시키기 어려워 좋은 도를 따르지 못하는 것은
‘강한 모습(强相)’이다.
또 심지가 진흙처럼 연약해 쉽게 파괴되는 것은
‘연약한 모습(輭相)’이다.
이와 같은 스무 가지 나쁜 감촉이 마음을 어지럽혀서 선정을 파괴하고 마음을 편벽되게 만드니, 이것이 삿된 선정이 발생하는 모습이다.
만일 삿되고 거짓된 것을 변별하지 못하고 마음에 애착을 일으키면
대부분 마음을 잃고 미쳐서 울고 웃으며 뛰어다니게 되고,
심지어는 죽기까지 한다.
따라서 만일 이런 감촉이 생기는 것을 지각했다면 곧 방편으로 제거해야 한다.
또 이 스무 가지의 삿된 감촉이 생길 때에 외도의 96종 귀신법鬼神法 가운데 서로 감응하는 것이 있으면 귀신이 생각을 따라 붙어 버리고,
이로 인해 귀신법문鬼神法門을 증득하게 된다.
이 귀신의 힘으로 깊은 선정을 얻기도 하고 지혜와 말솜씨를 얻기도 하며 길흉을 알고 신통한 이적도 많게 된다.
그래서 삿된 교화를 널리 행하여 중생들을 감동시키는데 설령 선이 있다 해도 그 행위는 거짓되고 잡스럽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지혜가 없어 그런 기적을 보면 성현聖賢이라 칭송하며 그가 하는 짓을 믿고 복종한다.
바른 계와 바른 견해를 파괴하는 경우가 많고,
심지어는 삼존三尊을 공경하지 않고
삼보三寶를 훼손하는 데까지 이른다.
혹 평등법을 설하면서 이를 인도 없고 과도 없는 것이라 하기도 하고, 삿된 인과 삿된 과를 설하기도 한다.
그래도 귀신의 힘 때문에 들었다 하면 믿고 받아들이지 않는 자가 없고, 보았다 하면 모두들 사랑하고 공경하는 마음을 일으킨다.
그가 설사 몸에 승복을 걸치고 입으로 불법을 말한다 해도 그의 마음이 이미 삿되고 그의 행위가 거짓되고 편벽하니,
이는 마귀의 권속이지 부처님의 정법은 아니다.
수행자가 모름지기 이를 잘 살펴 취하거나 집착하지 않으면 이런 법은 곧 스스로 물러갈 것이다.
或五蓋及煩惱。覆蔽心識。不得自由者。
此爲縛相。或自謂證得空無相定。已得
道果。斷結解脫。生憎上慢者。此爲脫
相也。
或其心剛强。出入不得自在。猶如瓦石。
難可廻變。不順善道者。此爲强相。或
心志輭弱如泥。易可破壞者。此爲輭相
也。
凡此二十種惡觸。擾亂坐心。破壞禪定。
令心邪僻者。是爲邪定發相。若不能辨
別邪僞。而心生愛著。則多至失心狂逸。
啼笑奔走。枉死傷命。若覺觸發。即以
方便除之。
復次二十種邪觸發時。若與九十六種
外道鬼神法中。有相感應。則鬼神隨念
來著。因證鬼神法門。以鬼神勢力。或
得深定。或得智慧辯才。知吉凶。多神
異。廣行邪化。感動衆生。雖或有善。而
所行僞雜。世人無智。見其奇異。謂是
賢聖。信服其事。多有破正戒壞正見。
至於不敬三尊。毁壞三寶。或說平等法。
以爲無因無果。或說邪因邪果。而以鬼
力故。聞者無不信受。見者咸生愛敬。
彼雖身被僧衣。口說佛法。其心已邪
감촉이 일어날 때 또한 열 가지 바른 모습이 있다.
첫째는 감촉하는 모습이 법과 같음,
둘째는 선정의 모습이 법과 같음,
셋째는 없는 모습이 법과 같음,
넷째는 밝은 모습이 법과 같음,
다섯째는 기뻐하는 모습이 법과 같음,
여섯째는 즐거운 모습이 법과 같음,
일곱째는 선한 모습이 법과 같음,
여덟째는 지혜의 모습이 법과 같음,
아홉째는 해탈이 법과 같음,
열째는 마음의 조화로운 모습이 법과 같음이다.
‘법과 같음(如法)’이란 무엇인가?
앞의 저 열 쌍의 나쁜 모습과는 반대로 몸과 마음이 안온하고 청정하여 알맞게 조화되는 것을 ‘법과 같다’고 한다.
이러한 선법을 만나면 그 모든 것을 취하거나 집착하지 않고 법에 따라 정진하게 되니,
이것이 바로 좋은 경계이다.
법으로 시험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간혹 삿된 선정의 모습이 바른 선정의 모습과 비슷하여 구별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
이럴 때는 세 가지 법으로 시험해 보아야만 한다.
예를 들어 진짜 금인지 알아보고자 할 때는 그것을 태워 보고, 두드려 보고, 갈아 보는 세 가지 법으로 시험해 보면 판별되지 않는 것이 없다. 진짜 금이라면 태울수록 더욱 정련되고, 두드릴수록 더욱 단단해지며, 갈수록 더욱 빛이 난다. 그러나 가짜 금은 불에 닿으면 검게 변하고, 두드리면 부서지며, 갈더라도 빛이 나지 않는다.
지금 이와 같이 지혜의 불로 비추어 보고,
본래의 법으로 잘 다스리고,
선정의 마음으로 연마하면
진위가 저절로 드러날 것이다.
선정의 마음으로 연마한다는 것은 다음과 같다.
예를 들어 움직이는 감촉이 일어났지만 삿됨과 바름이 아직 분명하지 않다면
곧 깊이 선정의 마음으로 들어가 그 경계 가운데에서 취하거나 버리지 말고 다만 평등한 마음으로 선정에 머물러야 한다.
만일 이것이 선근善根이라면 선정의 힘이 더욱 깊어지고 선근이 더욱 분명하게 나타날 것이다.
그러나 만일 이것이 마귀의 짓이라면 오래지 않아 스스로 파괴될 것이다.
본래의 법으로 잘 다스린다는 것은 다음과 같다.
예를 들어 나타난 것이 더러움을 관하는 선이라면
곧 부정관不淨觀을 닦아서 시험해 본다.
그 닦음을 따라 경계가 더욱 분명해진다면 이것은 숙세에 지은 선근의 모습이지 거짓이 아니다.
그러나 만약 닦을수록 점점 소멸한다면 이것은 삿된 것으로서 참된 것이 아니다.
其行僞僻。是魔眷屬。非佛正法。行者。
須善照了。不取不著。其法即自謝退矣。
觸發時。亦有十種正相。一觸相如法。
二定相如法。三空相如法。四明相如法。
五喜相如法。六樂相如法。七善相如法。
八智相如法。九解脫如法。十心調相如
法。何謂如法。與彼十雙惡相相反。而
身心安隱淸淨。調和適中。是名如法。
遇此善法。悉不取着。而如法精進。即
是好境界也。
云何法試。或有邪禪相。與正禪相。相似
難別者。當以三法試驗。欲知眞金者。
以燒打磨三法試之。即無不判。眞金則。
燒之愈煉。打之愈堅。磨之愈光。僞金
則。見火而黑。受打而壞。雖磨而闇。今
以智慧火照之。以本法修治之。以定心
硏磨之。眞僞自顯矣。
以定心硏磨者。如發一動觸。邪正未分
即。應深入定心。於其境中。不取不捨。
而但平心定住。若是善根。則定力愈深。
善根愈發。若魔所爲。則不久自壞也。
以本法修治者。如所發是不淨觀禪。即
修不淨觀而試之。隨其修而境界增明
者。是宿善根相而非僞。若隨漸滅者。
지혜로 관찰한다는 것은 다음과 같다.
일어난 법을 관찰하여 그 근원을 헤아려 보면 그것이 생겨나는 곳을 찾아볼 수 없다.
따라서 공적함을 깊이 알아 마음이 머물거나 집착하지 않으면 삿됨은 저절로 없어지고 바름이 저절로 드러나게 된다.
또 시험하는 방법이 있다. 일어나는 법과 더불어 함께하면서 그 삿됨과 바름을 관찰하는 것이다.
일어나는 법과 함께하면서도 그 삿됨과 바름을 알지 못한다면 그것과 오랫동안 함께하고, 오랫동안 함께해도 알지 못할 때에는
지혜로써 관찰한다.
그러면 알지 못할 것이 없다.
또 수행자가 여러 선정을 일으킬 때 마귀가 그것을 저지하고 희롱하고자 하여 그 선 가운데 들어오는 경우가 있다.
이때 만일 마음에 탐욕과 집착이 있거나 근심과 두려움이 있으면 마귀가 그 틈을 노려 마귀에게 속게 된다.
그러나 만일 법대로 마음을 써서 비추어 타파하면 구름이 걷히고 해가 드러나듯 마귀가 사라지고 선정의 마음이 다시 맑아지게 된다.
마귀의 유혹으로 삿된 선정을 얻었더라도 수행자가 이를 깨달아 알아차리고 법으로써 다스린다면 마귀가 물러난 뒤에 다시는 한 터럭만큼의 삿된 선법도 없게 된다.
만약 선정이 마귀의 짓인 것 같아 법으로 이를 다스렸는데도 끝내 제거되지 않는다면,
이것은 죄업의 장애이지 마귀의 짓은 아니다.
이럴 때는 부지런히 참회하여 죄를 멸하고 장애를 제거해야 한다.
그러면 선정이 자연히 분명해질 것이다.
혹 선정에 들었을 때 방편이 교묘하지 못하여 법답지 못한 경계에 이르게 되는 경우가 있다.
이 경우 방편을 잘 쓰면 밝고 깨끗함을 증득하게 되는데,
이 또한 마귀의 짓은 아니다.
是邪而非眞也。
以智慧觀察者。觀所發之法。推其根源。
不見生處。深知空寂。心不住著。則邪
當自滅。正當自顯也。
又有試法。與之共事。而察其邪正。共
事而不知。則與之久處。久處而不知。
以智慧觀察。則無不得矣。
復次行者。發諸禪定。魔欲沮戱。人其
禪中。若心貪著。若心憂懼。則魔得其
便。而爲魔所惑。若能如法。用心照破。
則如雲除日顯。魔滅而定心還淨也。
若因魔惑得邪定。而行者覺知。用法治
之。則魔退之後。無復一毫禪法也。
若禪如魔作。而用法治之。終不去者。
是罪障而非魔。當勤修懺悔。罪滅障除。
則禪定自然分明矣。或入定時。方便不
巧。致令境界不如法。善作方便。而所
證明淨者。亦非魔作也。
『선학입문』 禪學入門下卷(ABC, H0254 v10, p.921a01-922b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