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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의 비밀
남진원
살면서 제일 좋은 건 ‘편함’이다. 혜가 스님이 달마에게 가 宗旨를 얻으려고 한 것도 마음이 편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후 달마로부터 법을 받은 게 마음이 편한 ‘안심’이다. 달마로부터 혜가로 이어지는 법맥은 ‘안심 법맥’이다.
편안한 마음에 관한 시 한 편을 며칠 전에 썼다. 그것을 강릉문학 시 원고로 제출하였다.
시,
공동의 비밀
남진원
좋아 뵈는 사람도
오래 만나고
속말 터눟다 보면
존중하던 마음이 스르르
사라져 간다
이뻐서 성질 안 더러울 것 같았는데
착한 말만 하고 교양있어서
예절 바르고 늘 보살인 줄 알았는데
아니구나 아니야.
그래, 그래!
우리 모두 감정 덩어리
암처럼 갖고 사는 인간인데
그렇지, 그렇지
나 자신도 그런 인간인 걸 몰랐지
네 모습에서
못돼먹은 나를 들여다본다
외로워도, 우리
편안하게 사는 게
좋은 거였어
그래
이제야 서로 간에 알게 된
공동의 비밀,
적당한
거리 두고 사는 사유
키 큰 코스모스를 묶어주다
남진원
몇 년 전에는 ‘삶’이란 시를 한 편 썼는데 요즘 고쳐서 다시 정리하였다. 뜻을 잘 전하는 시였다.
살아가는 데 의문을 품지 않고는 살 수가 없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은 의문은커녕 판타지적인 내용을 믿고 따른다. 그게 나로서는 이해하기가 힘들다. 판타지는 가공의 세계를 배경으로 하는 문학의 한 장르인데 동화가 대부분 판타지를 요소로 한다.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사유가 없는 신앙적인 판타지에 많은 사람들은 몰입한다. 이런 면에서 석가는 위대한 분이다. 몸소 의문을 품고 그 문제를 해결하였다.
나 역시 많은 의문이 들었지만 어느 정도 해결이 된 것 같았다. 그래서 쓴 시가 ‘삶’이다.
삶
즐거움도 고통도
모두 내 것이었지만
내 것이 아님을 알았다.
그러니 살고 죽음이 또한 어디 있으랴
時空이 비로자나요
處處강릉전통문화연구원가 불에 매달린 고드름이다.
지난 9월 28일, 추석을 전후하여 「강릉전통문화연구원」에서 시행하는 ‘경포 등 축제’에서 하는 시화전에 출품한 작품이다.
오후에는 집 아래 콘테이너 부근 정리를 열심히 하는 데 전화가 왔다. 스마트 폰을 둔 곳까지는 거리가 좀 있어서 부지런히 갔다. 가 보니 연희씨 전화인 줄 알았는 데 아니었다. 낯선 번호였다. 그러나 문협지회장을 맡은 후로는 모르는 전화도 받는다. 받으니 귀에 익은 목소리, 000의원이었다. 전에 보낸 시집을 이제야 보고 연락을 드린다고 하였다. 반가웠다. 대화 내용은 시집 내용에 관한 것이었다. 시집을 자세히 읽은 것 같아서 의외였다. 왕산에서 사는 게 외롭지 않냐고도 물었다. 오히려 바쁘고 즐겁다고 하였다. .
요 며칠 동안은 집안 청소하는 일에 신명이 나 있다. 키 큰 코스모스를 묶어주고 가지를 쳐내고 하니 한결 멋스러워졌다.
號에 관한 이야기
남진원
호를 여러 개 써 보았지만 모두 이름만 못한 것 같다. 그래서 쓰지 않는다.
1953년 10월 강원도 정선군 임계면 골지리 양지마을에서 아버지 남기혁 어머니 전영숙의 6남매 장남으로 태어났다. 벌써 태어난 햇수로 71년 째가 되었다. 그러니 71살이다.
골지리 문래 국민 학교를 졸업하였기에 호를 ‘물내’라고도 하고 ‘동우재’, ‘이당’, ‘삼전’ 등으로 썼지만 다른 분들이 내 호를 불러주지 않아서 거의 쓸모가 없었다. 그래서 없었던 일로 하기로 하였다.
아름다운 그리움
남진원
생각지 못한 반가운 여인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파란 하늘을 보려니 내 생각이 났다고 하였다. 나는 행복이 덧쌓였다. 살면서 이런 전화를 받는 것 만으로도 얼마나 가슴 뛰는 일인가. 서로 좋아하는 의중을 알고 있으니 다시 없이 기쁜 일이다.
전에 쓴 시, ‘아름다운 그리움’이란 시가 떠올랐다.
시,
아름다운 그리움
그리워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 있다
그리워도
만날 수 없는 사람,
젊음이 가고 기억마저 바래지지만
추억의 항아리에 머무른 그대
고요히 나를 깨우는 사람아
한 생이
잊은 듯 흐르는 삶이지만
한 생이 잊혀진 듯
흐르는 삶이지만
너로 하여 환희로운 음악이 되는 거,
왜인가
너로 하여 행복의 일상이 되는 거,
왜인가
오늘은 그리운 사람이고
내일은,사랑이기 때문이리라 때문이리라
삶이 고달플 때마다
그대 천연의 향기가 되어
아픔을
가만히 어루만져주는,
그리워할 수밖에 없는사람이 있다그리워 할 수밖에 없는사람이 있다 그리워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 있다
그대,
아름다운 사람
아름다운 그리움
한 생이
잊은 듯 흐르는 삶이라지만
한 생이 잊혀진 듯
흐르는 삶이라지만……
그리워할 수밖에 없는사람이 있다그리워 할 수밖에 없는사람이 있다 그리워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 있다
그대
그대
그대
**출전: (남
물에 대한 작은 생각
남진원
2023년 10월 4일 수요일이다
사람들이 곁에 많을 때에는 혼자 사는 걸 잊는다. 쓸쓸함도 잊어버린다. 오늘처럼 갑자기 날이 추워진 날, 쌀쌀함이 아니라, 쓸쓸함이 가까이 왔다. 전에는 생각 못한 일이다.
사람들은 모두 혼자 살아가야 하는 걸 다시 확인했다.
집 주위 풀을 뽑고 예초기로 잘라내고 땀을 닦다가 옆의 개울에서 들리는 물소리에 귀를 쫑긋거렸다. 물이 아래로 내려가고 있다. 그러고 보니 물이 위로 올라가는 걸 보지 못했다.
물을 보면서 두 편의 시를 썼다.
물
늘 낮은 곳을 향해
길을 찾는다
내가
배워야 할
가장 큰 스승이다.
물
물을 보면 물길이 보인다
길을 잃었을 땐
물을 본다
조금 높은 곳의 물이든, 아주 높은 곳에 있는 물이든 모두 아래로 아래로 내려온다.
물 한 방울 한 방울들이 아래로 내려오면서
어느새 자신들도 가장 낮아진 모습으로
모여든 곳
거기, 스며들었다.
물을 보면 내 길도 보였다
이제,
다시는 물방울을 물방울이라 부르지 않았다.
'바다'라 불렀다.
대추 따던 날에 .....
남진원
건너편 대추나무에 달린 대추를 한 되 남짓 땄다.
이안 아파트에서 나와 용강동 셋집에 살 때였다. 용강동에 살 당시에는 부모님과 함께 살았다.
어머니는 잘 걷지를 못하여 방에서도 겨우 기어 다니셨다.
내 서재가 궁금하셨는지 조심히 기어서 건너 오시곤 하셨다. 아기처럼 궁금함도 많으셨나보다. 서랍도 가만히 열어보곤 하셨다. 그 모습이 천진한 보살의 모습이셨다. 내가 보니 빙그레 웃으셨다. 젊을 때 골지리 고향집에 살 때는 어머니가 30대셨다. 산처럼 큰 나물 보통이를 이고 몇 개의 산을 넘어 집에 들어오실 때에는 어둠이 마을에 짙게 깔리기 시작할 때였다. 나물 보퉁이를 풀어놓으면 동생들과 나는 거기에서 송구를 찾아 껍질을 벗겨 먹기 바빴다. 어머니의 고된 하루는 미처 생가지도 못하였던 것이다. 그렇게 건장하던 어머니가 70이 넘으시니 허리도 못 펴시고 겨우 움직이는 아기가 되신 것이었다. 어머니는 여든을 조금 넘기시고 돌아가셨다. 그리운 어머니.
어느새 나도 그때의 어머니 같은 나이가 되어 노인이 되었다. 걷는 걸음걸이가 힘이 들었다. 오늘은 나갈 때 가벼운 지지대 지팡이를 짚으며 버스를 타러 나갔다. 혹시 산돼지나 산짐승들이 나타나면 그 막대기가 있어서 든든하기도 하였다.
오후에는 표구사애 들러 시화 두 점을 계산 한 뒤에 콜밴에 싣고 올라왔다. 방에 두고 보니 멋스러웠다. 시를 보면서 자꾸 읽으면 외울 수도 있겠다. 그래, 내 시를 경전이라 여기고 자꾸 읽어야 겠다. 그러면 어느 날 감동 있게 사람들 앞에서 낭송도 잘 할 것이다. 깜짝 놀래주어야지.
도원의 봄
남진원
내 여기 잠시 쉬며 물소리로 앉았으니
세상사 주름 많은 눈꺼풀도 엷어지고
메마른 가지의 새 움 눈물 아니 고이는가
푸른 이 돋는구나 산골 물 저 소리들
산색은 연둣빛 점점이 흩어지고
나무에 새소리 두엇 풋 내음이 나던 날
맑아라 하늘 빛은 멀어서 은은하고
복사꽃 지고나니 봄도 이리 풀려나네
물결에 떠가는 꽃잎 도원인 줄 알거나
윤사월 햇빛 자락 푸름을 더하는데
문 활짝 열린 뜰 앞 내 속 환히 보이겠다
참 좋다 일생에 몇 번 이런 날도 있구나
그대 혹여 꽃잎 보고 내 집을 찾아들면
큰 박주 항아리에 세속을 띄우리라
근심도 맛들이기 나름 종일 취해 보세나
개구리 우는 밤
남진원
파종을 끝내고 나니
어둑해졌다
시골에 살면서도
한 번도 실하게 듣지 못했던
개구리 울음소리
수목이 짙어지는
밤
문 다 열어놓고
허공처럼 앉았다
무슨 富貴를
더 구하랴
칭찬
남진원
저녁이다. 내일 김동명문학관에서 할 축사 내용을 간단히 정리하였다.
입고 갈 옷도 다려놓았다.
아내가 없으니 내가 할 일이 엄청 많아졌다. 밥해 먹는 일도 아직도 제일 어려운 일이다.
그래도 13년을 해 왔으니 얼마나 대견한 일인가.
내가 나를 창찬하기로 하였다.
*善함과 창조적 기쁨
남진원
1990년부터2010년의20년은 내 인생에 극한기였다.
이 중, 1995년은 가장 힘든 시기의 하나이면서도 열심히 산 한해이다. [문학동해안시대연구소]를 개설하고 첫 문집『마음에 핀 달맞이꽃』을 발간하였다.작고 하신 화천의 시인 조규영 형이 가장 뜨거운 박수를 보내어주셨다.춘천의 문학 모임에서 만나면 꼭[동해안시대 문학]에 대한 격려를 아끼지 않으셨다.돌아보면 참 따뜻하고 아름다운 잊지 못할 문학 선배님이다.
『마음에 핀 달맞이꽃』서문에는‘의미 붙이기’라는 제목으로 글을 썼다.
동식물들은 대 자연의 이치에 따라 성장과 발전,그리고 죽음의 과정을 거친다.그러나 인간은 살아 있음과 살아감 그리고 죽음에 대해 나름대로의 의미를 붙이며 살아간다.
악 보다는 선한 삶을, 더러움보다는 아름다움을 추구하면서 살아가려는 노력 때문에 살아 있음의 뚜렷한 자리 하나를 만들어 가고 있다.괴롭고 힘들고 병들고 가난에 시달리는 생활이라 할지라도 스스로 어려움을 극복하며 보람과 기쁨을 찾아 나서는 눈물겨운 몸짓이 결국 우리 사회를 바르게 세워 주기 때문이다.
발간의 의미도 이와 다를 바 없다.우리들 글을 쓰는 삶의 자리가 선함과 창조적 기쁨이 될 수 있기를 바라는 뜻에서 출발되었음을 밝힌다.
또한 편집과정에서 어린이들에게 자기 목소리를 찾아 주고자 나름대로 노력해 보았다.앞으로도 이런 방향은 지속되리라고 보여진다.
끝으로 이 책이 나오기까지 음으로 양으로 협력해 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를 드린다
서문의 쓴 글을 들여보니, ‘선함과 창조적 기쁨’이라는 멋진 말도 생각해냈구나 하며 웃음을 지었다. 목차를 보니 30년이 다 되어 가는 기간이라 그간 작고 하신 분들도 많았다.
수필가이신 최갑규,시인이신 김학근,시조작가이신 조규영,동시인인 김교현,시인이신 원영동,아동문학가인 김진광,시조시인이신 정태모,시인 구영주,시인이며 친구인 박광남,아동문학가 박유석,시조시인 성덕제,시조시인 김좌기 같은 분들이 세상을 나셨다.내가 아는 분들만 열두 분이다.무상한 생각이 든다.
그리고 엊그제는 ‘키르키에 지진’으로 금일, 16,000명이 사망했다고 하니,참 참담한 생각이 든다.이재민들은 또 얼마나 많을까??폐허 속에서 생명의 온기를 찾는 한국 구조대원들의 활약도 기대된다.
동화에는 엄기원,김종영 작가.동시에는 최갑규,김교현,김학근,남진원,박성규,이호성,용호군,이정님,조규영,최복형 시인들이 참여하였다.모두들 빛나는 문인들이다.이호성 시인과 최복형,용호군 시인은 몸이 많이 불편하여서 활동을 거의 못하고 계신다.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시에는 원영동,정태모,구영주,김남구,김수정,김진광,김찬윤,김학주,박광남,박복자,박유석,박종화,배진흑,조영웅,피기춘,한재성 등이다.원영동 선생은 생전에 한 번 뵈었는데 마리카락이 하얗게 세어 있었다.그리고 아주 밝고 따뜻한 분이었다.시조에는 김양수,김좌기,성덕제,신대주,원수연 시인들이 작품을 실었다.수필에는 최갑규,최인숙 두 분이 원고를 내셨다.엄창섭 시인께서는[김찬윤 론]평론을 발표하셨다.
책의 표지 그림은 류제원 사진 작가의 사진을 실었다.
* 이 한 편의 시, 사람아
남진원
사람아
남진원
거리에 나서도 사람
산에 올라도 사람
바다에 가도 사람
직장에 출근을 해도 사람
가는 곳곳마다 사람이지만
어디
푸근히 마음 놓아두고 싶은
사람 하나
만나기가
그리 흔하던가.
어쩌면
천당에도 지옥에도 발 붙일 곳이 없어
한 세상 더부살이로 살고 있을
목숨일지라도 모를 우리네가
또 입은 왜 그리 많은지
사람이 많아서 기뻐해야 할 일이 건만
사람을 만나서 반가와 해야 할 일이건만
코가 비슷해 말을 건네 보면
귀가 비슷해 악수를 하고 보면
이것도 아니구나
허전해지는 세상
너
사람아
- 1987년 10월 남진원 세 번 째 시집 [넘치는 목숨으로 와서]
이 작품은 1987년에 쓴 작품이다. 그러니, 이 시를 쓴지 36년이나 되었다. 그 당시 내 나이 30대 중반이었는데 지금 읽으니 맛이 난다.
연일 사건과 사고가 눈만 뜨면 일어나는 것을 본다. 물질이 많아지고 풍요로워졌지만 인간의 욕심은 그에 비례하는 가 보다. 대부분 욕심 때문에 일어나는 사건과 사고들인 것 같다.
밭에는 지난 해 깨가 떨어져 난 돌깨들이 많아서 즐거운 마음으로 깨들을 꺾었다. 아직도 많이 남아있다. 밭가에 서 잇는 대추나무 대추들도 털었다. 실하고 좋은 대추들은 아니지만 무척 귀한 것 같다. 닭 삶을 때 함께 넣기도 하고 물에 끓여 차로 마시기도 하면 되니까 매우 유익한 식품이다.
사람들이 많은 세상이다. 당나라 시인 이태백 역시 그 많은 사람 숲에서 벗어나 산중 살이를 한 모양이다.
그렇다!
어디
푸근히 마음 놓아두고 싶은
사람 하나
만나기가
그리 흔하던가.
일 끝내고 돌아오니
남진원
건너편 산밑 밭에서 일하다 방터교를 지나 집으로 들어오는 길
길 아래서 미소 지으며 마중 나온 아내 모습이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피곤하던 몸에 기운이 펄펄 났을 것이다.
아내 대신 무리를 이룬 코스모스들이 바람에 흔들리며 반기고 있다. 어느새 코스모스들은 가장 가까운 식구 같아졌다. 저리도 맑고 밝게 웃다니, 나를 위해 기다리고 있었던 듯하다.
코스모스
남진원
은은한 그리움으로
티없이 맑게 피었다가
가을바람에
호젓이 지고 있다.
네가 운다면
눈물은 얼마나 맑으랴
네가 사랑한다면
그 사랑은 얼마나 아름다우랴.
우등상을 받다
남진원
내 나이 미운 열세살, 1965년 2월, 문래 국민 학교 제22회 졸업생이 되었다. 시골 촌 구석의 조그마한 학교에서 강릉의 대도시 중학교, 경포중학교에 입학하였다. 그 포상으로 나는 졸업식 때 앞에 나가 우등상 상장을 받았다. 1학년부터 5학년 까지는 한 번도 받지 못한 우등상이었다. 그러나 학교는 열심히 다녀서 1학년, 2학년 때를 제외하고는 매년 1년 개근상은 받았다. 1,2학년 때에는 잔 병 치레를 하느라 학교를 많이 빼 먹었다. 골머리를 앓는 적이 많아서 할머니는 나를 산으로 자주 데려갔다. 할머니는 산에 가서 산신께 빌었다. 애지중지 하는 손자를 건강하게 병 치레 하지 않고 자라게 해 달라고 빌었던 것이다. 할머니는 양밥이란 것도 하여 산제사를 지내기도 하였다.
경포중학교에 들어가서는 고향의 재미있었던 친구들과 고향 산천이 그리워서 공부도 하지 않았다. 방학이 되면 고향 친구들이 그리워서 자전거를 타고 여름 방학에 130리 고향 마을을 찾아가기도 하였다.
고향산천의 아름다움
남진원
국민학교 시절 봄이면 뒷동산을 돌아다니며 바위 틈에 솟아나는 달래를 캐러 다녔다. 한동안 헤매다가 뽀송한 황토 흙과 돌 사이로 실하게 자란 달래를 만나면 기쁨이 말할 수 없었다.
여름이면 어슴프레한 새벽을 여는 것은 싱싱한 매미 울음소리다. 한낮 더위를 식히기 위해 산제골 소로 찾아가면 누가 먼저 와서 텀벙거렸다. 그 소리를 들으면 괜히 기분이 좋았다. 잰 걸음으로 달려가 옷을 벗어 제치고 물속에 텀벙 텀벙 뛰어들었다. 한참을 그렇게 놀다보면 하나 둘 몰려드는 아이들로 산제골 소는 북새통을 이루었다.
제일 먼저 산제골 소에 가는 날이면 좀 무서웠다. 시퍼런 물굽이를 헤치며 물속에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았던 것이다. 아이들이 나타나면 구원병을 만난 것처럼 기뻤다.
가을이 되면 앞 논벌은 황금벌판이 되었다. 콩잎을 젖히며 논길로 지나가면 메뚜기들이 후두둑 후두둑 놀라 달아났다. 알밤이 익을 무렵엔 석둔 계곡으로 놀러갔다. 알밤이 물 속에 툭툭 떨어져 있기도 하고 잎새 뒤에 숨기도 하였다. 주머니가 볼록하도록 밤을 주워왔다.
노는 게 유일한 즐거움
남진원
*강릉시 경포중학교에 입학하여 1968년 2월 경포중학교를 힘들게 졸업하였다. 학교 공부는 늘 꼴찌를 맴돌았다. 매월 월말고사에서 성적이 좋지 않아 3년 동안 담임을 한 신윤호 선생님으로부터 물푸레나무오 회초리로 엉덩이를 맞곤 했다.
* 여름방학이 되면 고향에 가서 놀았다. 방학에 고향에 가서 노는 게 유일한 즐거움이었다.
1968년 3월에 강릉고등학교에 입학하였다. 밴드부에 들어가 심벌즈와 드럼을 쳤다.
지금의 김중철 교장이 나와 같이 드럼을 쳤다. 중철이가 드럼을 신명나게 치는 모습을 보니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정말 음악을 즐기는 사람이었다. 대림약국 이석명은 색소폰을 불었다. 이석명이가 무척이나 부러웠다.
** 상복도 타고난 건가??
남진원
*1971년 2월 강릉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고등학교를 다닐 때 한시에 매력을 느꼈다. 강릉고등학교를 졸업할 때 밴드부에 있었던 일로 공로상을 받았다.
*1971년 3월 강릉교육대학에 입학하였다.
공부는 하지 않고 도서관을 들락거리며 책을 읽는 체 하였다.
⍟20세 강릉교육대학 학생회에서 주는 다독상을 받았다. 매일 머리를 깎고 긴 외투를 입고 도서관에서 책을 읽었는데 그게 학생들 눈에 띄어 다독상을 받았다. 원효의 대승기신론을 읽었던 게 기억난다. 원효의 무명론을 읽고 많은 생각을 하였다.
( 학교에 다닐 때 머리를 빡빡 깎고 다녔다.)
인류의 기원
빙하기가 끝나가고 간빙기에 접어들었다. 그때 빙하기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있었다.
사람들은 여자를 두고 서로 격투를 벌이기도 하고 좋아진 두 남녀는 외딴 곳으로 이주를 해 가기도 하였다.
시간은 흘러 지금의 산동성 바닷가에는 수렵으로 살아가는 부류의 사람들이 있었다.
인류의 시작은 기원전 3000년. 이곳에서 유난히 돋보이는 두 남녀가 있었으니 남자는 포희(庖犧)라고 했고 여자는 여와라 불렀다. 이 둘은 서로 남매간이었다. 그들은 서로 함께 살아가며 종족을 퍼뜨렸다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