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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잔의 커피 : 남진원 시 전집 8 - 1
카레라이스
남진원
삼악산 등선폭포 아래에 모여앉아
맛난 음식 카레라이스 생전 처음 먹어 본 음식
아내를 처음 만나서 함께 했던 귀한 시간
( 제16시집 『쇠장수 강영감님』, 태원, 2021. 11. 22 )
- 시조작품집 좋은 작품상 수상 (시조문학사) -
카페를 지나다가
남진원
커피 한잔하고 갈까?
카페에 둘러앉은
우리들
나는 네게
너는 내게
서로, 서로에게
편안히
마음 나누는
소풍 같은
시간
(2024. 2. 11)
십분 전 커피 타임
남진원
교육문화관의 문예창작반 강의
1시간 끝내고 난 10분이
제일 즐거웠지
따끈한 커피 타임
한 잔의 커피를 마시며
나이는 들어도
모두 초롱초롱한 눈빛들로
나누는 정겨움
강의 시간보다
더 소중했지
환한 회원들의 모습
10년이 지난 내 가슴에
지금도 눈에 선한
아름다운 동영상으로 찍혀 있다.
( 2026. 2. 3 )
한 잔의 커피
남진원
한 잔의 커피를
마주하면
내 고독의 시간이 용해됩니다
한 잔의 커피를 마주 하면
무채색의 고요로움과
내밀을 꿈꾸는
평화가 찾아옵니다
맛난 삶이야 없어도
무상의 기쁨이 만드는
이 따뜻함
한 잔의 커피를
마주하면
쓸쓸한 향기가 좋아
수묵화 같은
사랑 하나 띄웁니다
커피를 마시다 …
남진원
병원 휴게실 사람들 옆에 끼이면 괜히 든든하다.
그리고 또 허전하다.
무엇을 견딘다는 것이 힘들다는 것을 이 사람들도 견디면서,
느끼는 걸까
병원에서 이따금 술 취한 보호자들이 소리도 지르고 싸움도 하였지.
링거대를 밀고 다니는 사람들 만큼
견딜 만한 사람은 없다
다들 아픔에 점점이 멍이 들어간다.
커피 자판기에 손이 간다.
커피가 빠져나온다.
커피는 뜨거움 속에서 오래 견디다가 내게로 온다.
나는 커피 보다 더 진한 뜨거움으로 견디며 커피를 마신다.
암세포를 녹이듯 커피를 마신다.
창밖으로 해가 하루를 견디다 저물어 가듯이.
나도 천천히 마신다. 커피를 마신다.
느지막하게 넘어가는 해처럼 자꾸 꾸물거리며
낯모르는 옆 사람 이야기도 듣는 척 해 보다가
다시 꾸물거리고, 또 헛 딴 곳을 보기도 하며 커피를 마신다.
커피를 마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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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약돌 11.01.05. 09:35 :쓰고 뜨거운 커피가 암세포를 먹어준다면, 녹여 없애준다면......
☘.하회탈 11.01.05. 10:12 : 지금 선생님과 커피한잔을 나누고 싶네요......
☘. 조약돌55. 11.01.07. 14:49 :커피에도 여러가지 뜻이 골고루 담겼네요. 근데 단순한 맹목적 희망보다 생의 고와 허무가 살어름으로 덮인듯해요. 참, 멋진 글 봅니다.
( 2010년 1월 23일 토요일 병원 휴게실에서 )
(「바다시낭송회 카페」2011. 1. 4. )
커피를 마시며
남진원
햇빛이
종일
방에 드니,
창 너머 숲 사이
드문드문 쌓인 눈
내 눈을 맑게 한다
지붕에서 떨어지는
낙숫물 소리에
한결 가벼워지는 몸
하얀 꿈의
겨울 동화 같은 곳이구나
이럴 땐
따슨 방에서
맛보는
커피 한 잔,
보배이지.
( 2024. 5. 11. 남진원 제18시집 『어머니 물동이길』, 동우재 )
커피를 마신다
남진원
아침 식사를 끝내고 커피를 탔다
즐겨 먹는 맥스웰하우스 CoffeeMix를 컵에 털어넣고 끓인 물을 붓는다 스푼으로 저으면 커피 향기가 방에 퍼졌다
“커피 냄새가 좋아!”
아내는 아파서 커피를 먹을 수 없지만 내가 커피를 타면 이런 말을 해주었다
그 말에 나는 용기가 나서 아침이 환해졌다
아내가 없는 오늘 아침에도 커피를 마신다 아내의 말에 담긴 커피 향기를 마신다 소박하게 동행해 온 아내의 향기를 마신다
( 2013. 9. 13. 오전 11시 )
(남진원 문학일생사 2-1 )
커피를 마신다
남진원
602 종양내과 병동 휴게실 사람들 옆에 끼이면 우연히 든든하다.
그리고 또 허전하다.
무엇을 견딘다는 것이 힘들다는 것을 이 사람들도 견디면서, 느끼는 걸까
병원에서 이따금 술 취한 보호자들이 소리도 지르고 싸움도 하였지.
링거대를 밀고 다니는 환자들처럼
다들 아픔에 점점이 멍이 들어간다.
커피 자판기에 손이 간다.
커피가 빠져나온다.
커피는 뜨거움 속에서 오래 견디다가 내게로 온다.
나는 커피보다 더 진한 뜨거움을 마신다.
암세포를 녹이듯 커피를 마신다.
창밖으로 해가 하루를 견디다 저물어 가듯이,
나도 천천히 마신다. 커피를 마신다.
느지막하게 넘어가는 해처럼 자꾸 꾸물거리며
낯모르는 옆 사람 이야기도 듣는 척 해 보다가
다시 꾸물거리고, 또 헛 딴 곳을 보기도 하며…
커피를 마신다.
( 한울림문학 11집. 2011 . 12월 )
(「남진원의 문학 일생사」, 2018. 1. 28. )
커피 한 잔
남진원
커피를 마신다
내 인생의
달콤한
쉼표
한 잔
( 제17시집 『조그마하게 살기』, 태원, 2023. 5 )
믹스 커피
남진원
외로울 때
생각나는 건
사람이 아니다
그리울 때에도
생각나는 건
사람이 아니다
글을 쓰고 싶을 때에도
생각나는 건
원고지가 아니다
내
힘의 원천
조용히 마시는
믹스 커피
한
잔이다.
( 2026. 1. 19. )
커피를 마신다
남진원
병원 휴게실 사람들 옆에 끼이면 괜히 든든하다.
그리고 또 허전함이 곳살을 쑤셔온다.
무엇을 견딘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다는 것을
이 사람들도 견디면서 느끼는 걸까
아, 병원에서 이따금 술 취한 보호자들이 소리도 지르고 싸움도 하였지.
링거대를 밀고 다니는 사람들 만큼
아픔을 견디어 이겨내야 할 사람은 드물다
그들 모두 깊이 멍이 들어 있다.
커피 자판기에 손이 간다.
커피가 빠져나온다.
커피는 뜨거움 속에서 견디다가 내게로 온다.
나는 한 모금의 뜨거움으로 암세포를 녹이듯
커피를 마신다.
천천히 마신다.
늦으막하게 해가 넘어갈 때처럼
꾸물거리며 자주 헛딴 짓을 하며
커피를 마신다.
( 2010년 1월 23일 토 병원 휴게실에서 )
커피잔을 앞에 두고
남진원
믹스 커피 한 잔을 앞에 놓고 나니
지난 일
그리워진다
2005년대 무렵 문예 창작 강의를 위해 남대천 강 줄기를 따라 오르내리던 일이며
강의실에서 만나던 사람들이며…
벌써 20년이 된 일이건만
어제 일 같이
낯설지 않다
10분여 휴식 시간에
서로 웃르며
커피 한 잔의 맛
지금 돌이켜보니
맛이 아니라
추억 속에 새겨졌던 멋이었다.
( 2024. 11. 15 )
아침의 커피 한 잔
남진원
흐린 날이면
더 좋다
아침의
커피 한 잔
한 모금
한 모금
천천히 마시면
살아갈 하루의 힘이
솟는다
Good Morning!
( 2025. 9. 19.)
커피 한 잔
남진원
커피를 마신다
내 인생에
달콤한
쉼표
한
잔
(2024 – 2025. 지하철 스크린 도어 게시 작품
* 3호선 - 연신내역. 대화역
* 4호선 – 쌍문역. 당고개역
* 5호선 - 마장역. 상일동역
* 8호선 - 신흥역. 모란역
커피 한 잔 들고
남진원
비가 내린다
커피 한 잔 들고 앉았다
비가 더 멋있어진다
( 2016. 4. 13. 남진원 제15시집. [무소유의 냄새]. 태원 )
11시의 믹스 커피
남진원
한 시간 끝난 강의 잠시 휴식 시간이다
저잣거리 이야기도 튀어나와 웃음 짓는
따뜻한 믹스 커피가 만들어 낸 정겨움
컨테이너 집
남진원
오래된 컨테이너 녹슨 폐가 같았는데
페인트로 칠을 하고 지붕 새로 올린 후에
눈 씻고 또 쳐다본다 네 평 짜리 내 궁궐
( 제16시집 『쇠장수 강영감님』, 태원, 2021. 11. 22 )
- 시조작품집 좋은 작품상 수상 (시조문학사) -
코가 먼저 말해요
남진원
우리 할머니
가스 불에 냄비 올려놓았어요.
몇 번을 까맣게 태우고 난 뒤,
안쓰러워진 코
한참 시간이 지나고
“할머니, 냄비 국 끓어!”
고추밭까지 와서 솔솔 고소한 냄새를 전하며
코가 먼저 알려줘요.
어이쿠, 내 정신 좀 봐라,
할머니가 정신없이 일어서 나가면
할머니 손에 끌려 호미까지 덩달아 달려가지.
(2019년 강원아동문학 44집 )
사계의 행복
-코끼리 걸음 같은 즐거움
남진원
조용한,
늦은 겨울의 아침은
고요한 가벼움을 데리고 와 비밀스럽다
꽃이 피어 노래하고 두근거리는 초록색의 바람을 상상하며
나는 봄을 꿈꿀 테지
또 여름을 생각하면
뜨거운 커피 향기처럼
나를 들뜨게 하지
숲을 움직이게 하고
잠자리 떼는
하늘처럼 높아가리니
밤이면 밤하늘의 별들이 코끼리 걸음 같은 느릿한 즐거움으로 유혹하여
행복하네
낙엽 흩날리는 가을이 오면
그대의 미소를 보다가
그대의 아름다움을 보다가
그대의 사랑을 믿기에
그대가 만약 오늘
괴로움을 호소한다 해도
나는 따뜻이 함께 할 수 있으니
사랑하기 때문이라네
가을 바다는 짙은 그리움으로 넘실거리고
그대의 모습은 산을 넘고 들을 지나
붉은 단풍이 되어 내 깊은 영혼을 흔들 것이라오
소곤거리는 풀벌레는
쓸쓸한 사랑의 연주처럼 들리지만
그 슬픈 멋이 좋아
달을 바라보며 한 잔의 고요를
찻물인 냥 마시겠네.
아 〜 눈 내리고
난로에서 장작불이 타오르면
삶의 비탈길에서 그대 손잡고 거닐던
웃고 기뻐하고 화내고 울던 삶의 낙관들
작은 모닥불의 불빛이 되어 겨울을 녹이지
그리고 겨울은
하얀 겨울은,
다시 봄을 부르고 여름을 맞으며
그렇게 또 우리들의 슬프고 시리고 빛나던 기억들은
가을 속에서 붉어지다가
은빛 사랑으로 다시 찾아오는
겨울은
눈 내리고 또 눈 내리고
눈 내리고…
봄은 또다시
연한 그리움 속에서 걸어나오면
내 사랑도 짙어질 것이리니.
푸르게 푸르게 짙어질 것이리니.
코로나 19
남진원
자가 격리 하던 여인 목숨을 잃었단다
코로나는 음성판정인데 어찌하여 그리됐나
젊음이 못내 안타까워라, 불안 속에 지내지
( 제16시집 『쇠장수 강영감님』, 태원, 2021. 11. 22 )
- 시조작품집 좋은 작품상 수상 (시조문학사) -
코로나 19
남진원
대면하고 활보하기 이 평범한 일상의 자유
누가 감히 구속하랴 당연시 하였지만
어떤가, 그 당연한 일상 멈춰버린 이 시간
버스에 올라보면 더 낯설어 보인다
입을 꾹 가리고는 세상 밖을 찾는 사람
모두들 이상한 나라로 외출 중인 사람들
최강을 자랑하는 미국의 항공모함
바이러스 코로나19 갑판 위로 오르자마자
뉘 알랴 저리 쉽게도 무장해제 될 줄을
너나 할 것 없이 감염 병 겁에 질려
거리두기 마스크쓰기 지구촌이 난리법석
인간의 탐욕이 만든 총성 없는 전쟁이네
무진장 햇볕과 공기 고마움을 물랐었지
문명을 앞세워서 저지른 환경오염
그 댓가 받고 있는 거야 인류 최후 통첩이야
먼 먼 날 예로부터 말씀이 있었으니
멀리도 가까이도 하지를 말렸다?
이제야 그 깊은 뜻을 헤아리게 되었네
코스모스
남진원
집 가에 몇 그루 과일나무 묘목 심듯
코스모스 모종을 하였다
나도 몰래
가을 초입,
하양 꽃잎을 피웠다
내게 보내는
함빡 웃음
웃음 …
저물녘
가벼운 바람 불어
이리저리 흔들리니
한결 싱그러워진 모습이다
문밖에 얼른 의자를 놓고
앉아서 오래도록
너희를 보며
행복한 저녁을 보낸다
( 2024. 9. 5 )
코스모스
남진원
황토 길
외진 길에
하얀 코스모스 …
한 잎, 한 잎,
한 잎의 …
맑음
( 2023. 6. 30. 바다시낭송 )
코스모스
남진원
외진 길옆
다소곳이
피어있는 코스모스
누구를
기다리나
누구를
기다리나
말할 듯
머금은
작은 미소만 ….
( 「태백문예」 제3호. 1979. 12. 1. ) (「어린이문예」. 1989. 7월호 )
( 남진원 동시집「선생님의 구멍난 양말」1992. 5. 6. )
(2023년 6월 26일 수정 보완)
코스모스
남진원
어느새 풀 틈에서 고개 든 코스모스
길 가던 이, 눈길마다 꽃잎 위에 머물렀다
하양 색 쏟아내는 웃음 내 마음을 흔든다.
코스모스
남진원
어느새 풀 틈에 핀 순백의 코스모스
길가던 내 눈길이 꽃잎 위에 머물렀다
해맑은 하양 웃음아 내 마음을 흔드나
코스모스
남진원
사람 불러 모으려고 밭마다 심은 꽃들
코스모스 만발하여 만평 뜰이 장관이다
하지만 소박한 美를 찾아볼 수 있던가.
(2019. 9. 14.)
코스모스
남진원
강둑에 코스모스 피었어요.
둘러선 친한 친구들은
우주에서 온 아이들이죠.
흰 건반을 두드려요.
붉은 건반을 두드려요.
모두 신나서 …
잠자던 도시가 깨어나
꽃잎에 둘러싸여
춤추어요.
클라리넷을 부는 아이가
자꾸 별을 뿌려요.
도시의 큰 길로 골목길로
별빛이 따라다녀요.
우주의 웃음이 떠다녀요.
코 스 모 스
남진원
초저녁
휘파람을 불며
냇둑에 앉으면
가슴에
홍건히 차오르는
외로움
꽃잎은 하나하나
그리운 얼굴이 되어
스며들고
멀찍이 서서 바라보는
코스모스
거기,
온통 내 마음처럼
외로운 것이
쓸쓸하게 날리고 있다.
( 1980. 11. 3. 어린이강원 )
(1989. 4. 15. 제5시집,동시집>, 『가을바람과 풀꽃, 그리움에게』)
( 2015. 4. 15. 남진원동시선집. 지식을 만드는 지식)
코스모스
남진원
가을엔 걷기만 해도
행복해지는 날
조용히
방죽을 걷는다
마음에
들어서는
가벼운 외로움
외로움 속에
떠오르는 얼굴
코스모스 꽃잎 같은 해맑은 모습이어라,
(2024. 3. 29)
코 스 모 스
남진원
가을로
피어
여기
코스모스
가을로
피어
쓸쓸함
맑음
몇 잎
꽃잎에 담고
저
혼자
흔들리고
있다.
(1979. 8. 20. 물레방아 제2호)
코 스 모 스
남진원
걸아가다
뒤돌아보고
걸어가다
뒤돌아보고
그래도
무엇인지
잃어버린 듯한
늦가을
아쉬움인 듯
아쉬움인 듯
코스모스가
지고 있다.
(1979. 8. 20. 물레방아 제2호)
첫 시집 (동시집), 『싸리울』, 1982. 12. 10. 아동믄에사)
(1989. 4. 15. 제5시집,동시집>, 『가을바람과 풀꽃, 그리움에게』)
( 2015. 4. 15. 남진원동시선집. 지식을 만드는 지식)
[시작 노트]
- 아쉬움에서 나온 서정의 색깔
밭에 있는 풀이나 주위를 깨끗이 정돈하고 나면 집안이 갑자기 훤해진다. 마음도 환해서 즐겁다. 돌아서 오다가도 다시 정리한 곳을 찾아가 본다. 깨끗해진 즐거움 때문이다. 반복하여 보고 싶은 마음은 이렇게 즐거움 때문이다.
하지만 아쉬움 때문일 수도 있다. 맑은 코스모스가 피어있는 아름다운 들길을 걸을 때의 감정은 아름답다 못해 행복하다. 그런데 그 코스모스가 바람에 떨어질 때의 모습은 너무 애처러워서 자구 돌아보게 된다. 코스모스 잎이 떨어지는 가을 들녘, 그곳에서 온통 쓸쓸함으로 가득찬 내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코스모스
남진원
은은한 그리움으로
티 없이 맑게 피었다
가을 바람에
호젓이 지고 있다
네가 운다면
는믈은 얼마나 맑으랴
네가 사랑한다면
그 사랑은 얼마나 아름다우랴.
( 1984. 10. 1. 강원아동문학 9집 )
( 1988. 8. 30. 제4시집<동시집>, 『풀잎과 코스모스에게 』)
(1989. 4. 15. 제5시집,동시집>, 『가을바람과 풀꽃, 그리움에게』)
( 2015. 4. 15. 남진원동시선집. 지식을 만드는 지식)
( 2016. 4. 13. 남진원 제15시집. [무소유의 냄새]. 태원 )
코 스 모 스
남진원
인적 드문
외딴 길
가을이
쌓인
길목에
하늘하늘
손 흔드는
코스모스
아는 이
모르는 이
모두 반긴다.
(1982. 11. 20. 조약돌 10집 )
(1989. 4. 15. 제5시집,동시집>, 『가을바람과 풀꽃, 그리움에게』)
코 스 모 스
남진원
바람이 조금만
스쳐도
아파서
흔들리며
산다
(1989. 4. 15. 제5시집,동시집>, 『가을바람과 풀꽃, 그리움에게』)
코스모스
남진원
너무
맑아서
눈을
감으면
비워놓은 자리
들어앉는
하얀
가을 색
너
코스모스
( 1989년 7월호. 『어린이문예』)
( 1992. 5. 6. 제7시집, 동시집. 『선생님의 구멍난 양말』)
(2015. 남진원동시선집, 지식을 만드는 지식. ‘눈을 감으면’으로 제목.)
코스모스
남진원
네 안에
가득 고인
사랑의 밀물
말할 듯
머금은
작은 미소만
…….
( 1989년 7월호. 『어린이문예』)
( 1992. 5. 6. 동시집 『선생님의 구멍난 양말』 )
코스모스
남진원
가을 하늘이 맑은 건
너 때문이야
네 곁에 서면
자랑거리도 쑥스러워지고
누구도 미워할 수 없어
쓸쓸해지면
친구들은 하나 둘 떠나지만
쓸쓸할수록
넌 조용한 웃음으로
다가오는 걸
난 알지
밤에는
작은 별들이
너를 닮고 싶어
눈빛 한 개씩 꺼내
내려다보고 있는 것을
( 1992. 5. 6. 제7시집 . 동시집 『선생님의 구멍난 양말』 )
( 1992. 1. 14. 소년한국일보 )
코스모스
남진원
자랄 때 한가운데를
싹둑 싹둑 잘라주었다.
한동안
가지를 내느라 힘들었지만
어느 순간, 웃음과 탄성이 뒤덮인
코스모스 꽃 밀림
사람도 가을도 만발했다.
( 2015. 9. 17. 제14시집 『 산골에서 보내온 동시』, 좋은 꿈 ),
코스모스
남진원
코스모스 곱게 피어 유난히 맑은 가을날
그대와 꽃 보자고 휴대폰을 손에 든다
전화 걸 생각만 해도 들뜨는 이 마음
( 제16시집 『쇠장수 강영감님』, 태원, 2021. 11. 22 )
- 시조작품집 좋은 작품상 수상 (시조문학사) -
코스모스
남진원
풀 틈에 몰래 피는 순백의 코스모스
놀라서, 내 눈길이 꽃잎 위에 머물렀다
해맑은 하얀 웃음아 뉘 마음을 흔드나
( 제16시집 『쇠장수 강영감님』, 태원, 2021. 11. 22 )
- 시조작품집 좋은 작품상 수상 (시조문학사) -
코스모스
남진원
서리 맞아 더 청청한 화사한 코스모스
더불어 피어 있으니 가족 같은 정겨움
외따로 피어 있으면 孤節함의 白眉라오
( 제16시집 『쇠장수 강영감님』, 태원, 2021. 11. 22 )
- 시조작품집 좋은 작품상 수상 (시조문학사) -
코스모스
남진원
숨죽인 듯 서 있다가 활짝 핀 코스모스
해마다 보는 꽃이지만 볼수록 정겨운데
한차례 풀벌레 우니 산들바람 곁에 오네
( 제16시집 『쇠장수 강영감님』, 태원, 2021. 11. 22 )
- 시조작품집 좋은 작품상 수상 (시조문학사) -
코스모스
남진원
은은한 그리움에 티없이 피었구나
혹여 울면 네 눈물은 얼마나 맑으랴
네 앞에 서 있으려니 부끄럼만 더 한다
( 제16시집 『쇠장수 강영감님』, 태원, 2021. 11. 22 )
- 시조작품집 좋은 작품상 수상 (시조문학사) -
가을 길목에서 바라본 코스모스
남진원
살면서
눈물 없는 인생이 있었더냐
배고픔 배신 번뇌 탐욕 부끄러움 사랑과 증오에 매달려 온 길이
아니더냐
그러다 보니 어느새 백발을 날리는 석양 앞이네
삶은 꿈인냥 허망했지만
아니, 한갓 꿈이었지만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 있었더냐
고개 돌리니
고와라
서리 맞아 싱그러운 코스모스들
바람에 나부끼고
그래 그래
슬픔 없는 인생이 있었더냐
고통도 고뇌도
사랑이구나
코스모스, 네 맑은 웃음이
깨우쳐주는구나.
(2021. 6. 10. 새벽 2시에)
밭 가운데 코스모스들
남진원
밭 가운데 코스모스가 자라고 있었어요
“ 이 녀석들 너희는 여기 있으면 안 되지.”
“와, 우릴 차별 하네.”
코스모스들이 불평을 하기 시작했어요.
“너희들은 큰 일 할 일꾼들이야.”
나는 코스모스를 꽃삽으로 잘 떠서 들어오는 입구에 줄지어 심었습니다.
늦여름이 되었습니다.
코스모스들이 집 입구에 서서
마구 웃음을 보냅니다.
나보다 먼저 손님들을 환영하고 있습니다.
우리집 홍보대사가 되었지 뭐예요.
코스모스 핀 길
남진원
맑게 갠 가을 하늘 코스모스 핀 길
휘파람 불며 불며 걸어 가며는
누가 날 부르는가 소리가 들려
고개 돌려 돌아보면 아무도 없고
아무도 없고
하아얀 코스모스가 웃고 있어요
드높은 가을 하늘 코스모스 핀 길
콧노래 하며 하며 걸어 가며는
누가 날 부르는 가 소리가 들려
고개 돌려 돌아보면 아무도 없고
아무도 없고
해맑은 코스모스가 손짓 하여요
(2021. 5. 16. 강원문인협회 카페 동요방에 게시)
( 제17시집 『조그마하게 살기』, 태원, 2023. 5 )
어린 코스모스
남진원
풀을 매었다.
가늘고 어린 코스모스가 커다란 풀 옆에 바짝 기대어 간신히 숨만 쉴 정도로 자라고 있었다. 풀을 걷어내니 코스모스가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비명을 질렀다. “안 돼요, 풀 없으면 난 못 살아요. 흑흑흑 …” 나는 강력하게 말했다. “ 넌 그 풀 때문에 그 모양으로 살았어. 네 모습을 봐, 풀은 건강하고 튼튼한데 넌 풀에 기대어 항상 허약한 몸으로 겨우 생명을 지탱하고 있지 않니? 이제 내가 풀을 없애면 넌 처음엔 힘이 들지만 차츰 좋아질 거란다. 그때 가서 알게 될 거야. 풀이 얼마나 너를 힘들게 했는지를.”
풀이 뽑혀나가자, 어린 코스모스는 겁먹은 얼굴을 하였지만 이내 주위가 환해진 것을 알고 편안한 모습을 했다.
나는 믿었다. 앞으로 어린 코스모스는 스스로 희망을 품고 자신의 생활을 책임지며 살리라는 것을.
( 2020. 8. 서울문학 )
코스모스
남진원
동쪽 밭 둔덕에 잡초를 걷어내고
코스모스 모종을 심었다
물을 푹 주고 난
다음 날 아침
구부러졌던 고개를 든
모습들,
늠름하게 지켜 선 나의 벗들
질서와 조화의 위대한 세계가
곧,
꽃으로 활짝 펼쳐지겠구나.
그러면 아침 해 뜨기 전
내 먼저
동쪽을 바라보며
너희들과 평화의 美를
나누어야겠다.
( 2024. 5. 26 )
코스모스
남진원
아름다원라
사랑스러워라
너는
내 우주
( 2024. 11. 24 )
코풀기
남진원
코를 푼다
썩은 콧물을 풀어낸다
민란이 일어나던 그 시대의 다락에서
눈물보다 매운 코를 풀어 던진다
온몸의 힘을 콧구멍에다 쏟고
팍 숨통이 터지라고
풀어내는 코지만
아가리가 시커먼 그놈은
되려 눈만 번들거리고
은밀한 곳에서 썩어가면서도
썩는 줄 모르고
세도를 누리고 있다
이, 꽉 물어 쳐죽일
콧구멍 때야
이놈의 코
이놈의 코
(1985. 9. 10. 『물레문학』 4집)
(1985. 11. 7. 제2시집 『나비, 청산의 나비』)
심심산골
남진원
콩밭 매다 돌아보면 가뭇한 심심산골
흰 도라지 저 멀리서 산심으로 꽃 피우고
뻐꾸기, 왜 그렇게나 목청 높여 울었것소.
콩밭
남진원
深深 산 하얀 구름 하늘 바라 높아질 때
뻐꾸기, 늘인 목청 점점이 멀어지고
밭 매던 우리 엄니야, 땀 물 배던 삼베 적삼
콩 잎사귀 사이로
남진원
콩 잎사귀를 뒤적이면서
바람이 지나간다
그 뒤를 메뚜기가 콩닥콩닥
나도 콩닥콩닥
설레는 마음끼리 뛰어다녔다
한 움큼
손안에 쥐어지는 건
메뚜기와 잎사귀와 바람이 만들어내는
맑은 햇살이었다
고추잠자리 날개로
살금살금 내려앉는
파란 하늘 때문에
나는 동생과 저물도록 뛰어다녔다
( 2012. 10. 13. 제11시집 『톨스토이태교동시』,처음주니어,)
( 2015. 4. 15. 남진원동시선집. 지식을 만드는 지식)
큰 고모님
남진원
초가집 지붕 밑에 부들자리 방이던 때
노란 장판 도배한 방 보기에도 부러웠지
큰 길 옆 가게를 열고 바지런도 하시더니
친정어머니 생신 전날 분주하던 할머니 손
좋아하시는 음식들을 정성스레 해가지고
해마다 친정을 향해 종종걸음 치셨지
할머니를 그대로 닮은 큰고모님 성품이다
고샅길 뒷길로 나와 우리 집을 바라보며
“어머이, 식사하러 오세요!” 마을이 쩌렁 울리었지.
50대 외아들 먼저 저세상에 보내놓고
하소연 할 사람 없어 울음을 삼키셨지
아파트 노인정에서 하루하루 보낸 虛氣
2월 4일 입춘 날 영정 앞에 엎드리니
큰 고모님 말없이 깊은 정을 보내신다
이제는 마음 편안히 극락왕생 하소서
( 2월 4일 동인병원에서 장례를 치르셨다. 향년 89세.)
(남진원 문학 일생사 2-1)
큰고모님 댁
남진원
우리 집이야 부들로 엮어놓은 자리에다 흙벽에 신문자를 발라놓은 초가집이었지만 큰 고모님 사시는 집은 반듯반듯 알록달록한 도배지에 장판 방이었다.
그런 고모님 지벵 들어 앉으면 조곤조곤 잠이 들었다. 엄마가 잠든 나를 깨우는 게 뭣해서 집으로 돌아가고 나는 잠에서 깨어보면 우리 집이 아니어서 화들짝 놀랐다.
일어서서 문밖으로 나올라치면 "아침 먹고 가거라!" 부엌 문 틈을 타고 들리는 큰 고모님 밀씀이 된장찌개 끓이는 냄새만큼 고맙고 또 고마웠다.
( 2024. 5. 11. 남진원 제18시집 『어머니 물동이길』, 동우재 )
큰 돌과 작은 돌
남진원
큰 죄는 큰 돌덩이와 같아
있던 자리 찾아서 갖다 두려면
힘은 들지만 어려운 일은 아니지요
무거운 죄를 뉘우치기에
뉘우침도 크고
참회의 마음도 깊어지지요
가볍고 작은 죄는 작은 돌멩이들과 같아
있던 자리 찾아서 갖다 놓으려고 하면
어디가 어딘지 찾기 어려워요
작은 잘못은 너무 많아서
헤아리기도 어렵지요
우리 마음 그릇에 담기는 두 물건
어느 것인가요
큰 돌?
작은 돌?
( 2012. 10. 13. 제11시집 『톨스토이태교동시』,처음주니어,)
키다리 배불뚝이
남진원
배불뚝이
이웃집 아저씨들
집들도 아저씨 닮아
배불뚝이입니다.
키다리
이웃집 아저씨들
집들도 아저시 닮아
키다리입니다.
배불뚝이 아저씨 키다리 아저씨
집들 한가운데
우리 집은 꽁꽁 갇혔습니다.
전에는 눈 감고도 찾아오던 해님이
어떻게 찾아올까
걱정이 됩니다.
( 제8시집. 동시집. 『할아버지 이뽑기』, 1997. 2. 25. 대교출판 )
키다리 변씨
남진원
큰 키는 서발 장대 걸음이 묵직하던 분
여름밤 저녁이면 방죽을 가로질러
골지천 여울 속에서 한 더위를 씻으셨지
( 제16시집 『쇠장수 강영감님』, 태원, 2021. 11. 22 )
- 시조작품집 좋은 작품상 수상 (시조문학사) -
타인의 숲
남진원
일광욕을 즐기던 이브의 화장대에
어제는 구겨지고 백골이 허연 바다
버려진 저 심층의 계곡엔 달을 캐는 여인들
늘상 내 선 곳은 이방의 깊숙한 뿌리
예리한 도끼날에 바람의 손등이 잘려나가고
영혼은 무더기 무더기 당신 밖에서 익는다
( 1981. 미래시 동인 창간호 )
타즈마할
남진원
마음 이리 경사져서 백발이 벗 했구나
하룻밤 사이에 성성한 머리카락
죄업의 사랑만큼이나 크던 배반 얼룩지고
신비함의 절정에서 달빛 여는 열닷새 밤
호흡은 멈춰지고 사위는 마비된다
둥두렷 빚은 탑신은 혼령인가 허기졌다
이역의 하늘 아래 손금 절인 땀과 혼
아픔이 관절처럼 마디마디 삐걱이고
비명은 저당 잡힌 채 그림자로 누웠느니
( 2020 전자시조집 『꽃물 들어 아픈 날』,한국문학방송)
〓 축하시 - 강원도립대 신문
탄생, 이 축복의 붓을 높이 들고
남진원
고요히 잠들었던 天馬의 숲이
언어의 꽃으로 피어나고
뜨거운 예지의 바람이
새로운 세계를 향해 나아간다
우리들이 그려낼
목소리는 어디로든 열려
날아오름의 신호를 보낸다
붓을 그러쥔 손에는
더러
시리고 매운 시간이 있다해도
너는
새벽의 창문을 열고
진리의 불을 당기는
우리들 가슴이다
풋풋한 어둠을 벗겨내고
얼쑤 얼쑤
하늘과 땅이 보내는
母音을 들어보라
곧은 음성을 펴고
새 날들을 일구어갈
손끝은 푸르고
思惟의 뼈에서 우러난
생명의 광채는
正論의 筆鋒을 높이 세워
목숨처럼 자라리
무성하게 무성하게 자라리
(1999. 12. 6.)
탄마을의 밤
남진원
땅 속 깊숙이
광차에 실려
어둠을 굴리고 나오는
까만 빛덩이들
저탄장 꼭대기에서
촤르르 철썩
촤르르 철썩
아빠 기다리는
엄마의 숨소리가
호수처럼 고인
마을로 달려오고
탄광의 기계소리가
새 떼처럼
새벽을 쪼아댄다.
(1975. 4)
탈 춤
남진원
허허로운 마당을 돈다
말뚝이 취발이가
바람에 옮겨 다닌 족보를 짊어진 채
황토빛 몸부림 한판 어깨춤에 얹어놓고
각시탈 서방 탈 가슴마다 고이는 울음
목울대 젖혀가며 북소리에 잦아들다
문반 집 기둥 밑에서 신명나게 떨고 있다
이즈러진 어둠이
타는 채 익는 밤
몸을
온몸을 떨어
오늘을 일궈내는
빈자(貧子)여 네 싯 푸른 혼
비린 상흔 달래나
물빛
서린 恨을
한 매듭씩 푸는 손짓
깊으디 깊은 잠을
시린 장단에 맞춰가며
묻어둔 천년 불씨를
등뼈마다 태운다
( 1985. 10. 15. 『노래하는 옥돌』, 한국시조시인협회 연간집)
탐정 놀이
남진원
병실에 들어서니 갑자기 눈이 동그래진 아내는 내게 비밀스런 이야기를 한다
가까이 다가가니 작은 소리로 경찰이 왔다고 한다 "왜 왔어?" 경찰이 도둑을 잡으러 왔다고 한다 학주(우리와 절친한 경찰관이었음)씨도 온 것 같다고 하였다 '아! 학주씨를 기다리고 있었구나!' 마음이 아팠다
"우리도 도둑잡으러 갈까?" 아내가 고개를 끄덕인다. 속이 갑갑한 아내를 휠체어에 태우고 병실 복도를 천천히 돌아다녔다. 아내는 이곳 저곳을 두리번거린다. 나도 아내처럼 두리번거렸다. 어느 쪽으로? 내가 물으면 대답대신 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나는 그쪽으로 휠체어를 밀었다. 긴 병실 복도를 돌아다녔다. 몇 바퀴를 돌았는지 모른다. 도둑은 발견하지 못했다. 아내와 내 마음 안에는 이미 도둑은 없었다. 이쪽 저쪽 자꾸 돌아다녔다. 휠체어에 탄 아내는 행복했다. 우리는 병실을 몇 바퀴나 돌았다.
평생 처음으로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내와 나는 병원에서 이상한 도둑을 찾아다니며 행복한 탐정놀이를 하고 있었다.
( 2013. 시집 <하늘에 기댄 아내>, 태원 )
탑
남진원
위로
위로
치솟는
눈부신 허공
탑
남진원
일하는 사람들 여기 모여
배움의 탑을 쌓는
청청한 손날
더러는 아프고 배고픈 노동이지만
돌의 중량 만큼이나
층층이 쌓이는 기쁨으로
탑을 쌓는다
두 발은 견고하게 땅을 딛고
하늘로 솟아오를
꿈을 꾸며
오늘도
시린 손끝에 온 힘을 모아
어둠의 한쪽을 깨뜨리는 이여
광활한 땅 위에
우리의 뼈로 쌓아가는
탑은 높아만 가고
어느 날
손바닥 부르튼 피멍으로
일어서는 탑을 보게 되리
날아오르는 탑을 보게 되리
그때
탑속에서 울려나오는
빛과 소리
그 푸른 눈물로 신나게 울자.
(1985. 『청포』제2집. 한국방송통신대학 학회지)
(1985. 11. 7. 제2시집 『나비, 청산의 나비』)
태극기
남진원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빛마저 휘감는 장엄한 소리 물결
가슴에 손을 얹으면 둥그렇게 뜨는 태양
그 옛날, 말 달리던 탁록의 벌을 지나
치우 천왕 호령하던 그 능선을 돌아나와
잠자던 하늘 깨우며 징이 되어 떠 있다
동강난 역사 앞에 비바람 삭인 세월
고난과 시련조차 충혼으로 타 올라라
통일의 깃발을 위해 새 역사를 새기리
( 2020, 전자책 시조집『꽃물 들어 아픈 날』, 한국문학방송)
태극기
남진원
오래된 국기 함을 꺼내놓고 바라본다
어둠의 공간에 갇혀 있는 녹슨 산소
상처의 아픈 벌레로 우화하고 있었구나
역사의 훈장처럼 태극기 꺼내들면
어둡던 아픔의 흔적 아직 젖어 있었지만
서사시, 빛나는 현은 고동치는 임의 노래
태극기 게양하니 새가 되어 날개 편다
바람에 넘실넘실 퍼지는 단군의 얼
큰 함성 일구는 물결 통일의 불 지펴라
신축년 새 태양 앞에
남진원
날마다 떠오른 아침의 밝은 해였지만
신축년 새아침 해 여느 날과 다른 같다
은은히 빛나는 저력, 우주의 저 큰 기상
마음에 깃드는 산과 바다 하늘의 정기
들이쉬고 내뿜는 큰 호흡과 하나 되어
가득한 청정의 기쁨, 온 누리가 밝았네.
비대면 거리두기 코로나가 준 선물
전화위복 기회 삼아 창작열을 불태우면
문학의 새 경지 일굴 다시없는 기회라오.
태풍 하이선
남진원
오전 10시 동해안을 따라 북상하는 태풍
태풍 경보 발령
- 경남 주요 도시, 경남 동부 앞바다, 강원북부 앞바다, 동해 중부 먼 바다, 태백시, 속초시, 고성군, 양양군, 강원남부 산지, 강원북부 산지…
방터골 우리집 주위는 온통 빗소리로 자욱하다
나는 따뜻한 방안에서 비를 내다보고 있으려니 왠지 죄스럽다 뭔가 큰 잘못을 저지른 아이처럼 불안하다.
( 2020. 9. 7)
터널
남진원
터널은
이쪽과 저쪽을 이어 준다.
나는
지나가는 길에
일부러 불을 끈다.
눈을 길들인다.
눈부신 빛이 찾아와도
들뜨지 않는다.
따가운 것이 마중 온다해도
섭섭하지 않다.
가다가 수고로우면
침 흘리는 잠도 수북히 먹고
깨어나면
적막을 벗하며
술이나 한 잔 할까.
터널 지나는 길
어둠이 있어서
우리는 서로 친구가 되네.
( 제9시집 『어초』, 2002. 8. 1 )
텔레비젼
남진원
교묘히 조작된 지능의 오염덩이
켜 놓으면 政爭 더미 골 아프게 뱉아내고
우리 네 일상보다도 못한 수다들을 떨어댄다
( 제16시집 『쇠장수 강영감님』, 태원, 2021. 11. 22 )
- 시조작품집 좋은 작품상 수상 (시조문학사) -
텔레비전
남진원
보면 별 내용 없고
시시껄렁한 일들만 내보내는
소음 덩이
끄고 나면
심심해서
다시 켜 놓는
애물단지다
( 2025. 6. 16. )
토 굴
남진원
새소리가 나무 사이로
날아다닌다, 혹 나뭇가지에
앉기도 한다
나는
엉덩이를 좀 들썩이며
앉는다
한참만에야,
새소리와
같이 조용하게 그냥 앉았다.
( 2004. 6. 30. 제10시집, 『장자의 하늘』, 태원출판사 )
토 굴
남진원
산 밑에
오래된 민가
한 채
지네가 멋대로 돌아다니고
풀벌레 소리가
쉬다가 간다
콩새는 지붕 아래
둥지를 틀기도 하고
가끔 반딧불이가
귀한 손님처럼
찾아오기도 하는
밤은
양철 지붕 아래로
별을 쏟아붓는 집
내가 ‘헐거운 스님’ 이라고 부르는
스님이 기거하는
아름다운
토굴이다
( 제17시집 『조그마하게 살기』, 태원, 2023. 5 )
토 굴
남진원
머리만 안 깎고
중복만 안 입고
별도 보고
달도 보다가
바람이 되다가
꽃이 되다가
남루한 촌집에서
중 같이 살아간다
내게는
최상의
멋진 집
( 제17시집 『조그마하게 살기』, 태원, 2023. 5 )
톱질
남진원
산다는 거, 호흡을 이어가는 일처럼 밀고 당기는 일밖에 더 있는가
천연스러워질수록 톱밥은 부드러워지고
사는 게 가뭇한 날이 많을수록~
내겐 서로 어긋나게 세우는 날카로움이 있어 당당하다
무엇을 자른다고 말하지 마라
하나씩, 획을 긋는 일이니
( 2012. 강릉문학 제 12집 )
( 2016. 4. 13. 남진원 제15시집. [무소유의 냄새]. 태원 )
통증이 와요
남진원
사랑이 기쁨인 줄 알았는데
아니어요 아니어요
그대를 알고부터
사랑이 설렘인 줄 알았는데
아니어요 아니어요
그댈 만나고부터
통증이 와요 통증이 와요
그대가 있어
아름다운 통증
통증이 와요 통증이 와요
그대가 있어
또 다른 사랑이어요
아프고도 달다한 사랑이어요
통증이 와요 통증이 와요
그대가 있어
아름다운 통증
통증이 와요 통증이 와요
그대가 있어
또 다른 사랑이어요
아프고도 달다한 사랑이어요
아프고도 달다한 사랑이어요
( 제17시집 『조그마하게 살기』, 태원, 2023. 5 )
통화
남진원
삶이 무료하게 지나는 순간에
신호음이 이어지고,
이어 들려오는
그녀 목소리
푸른 숲을 지나는
휘파람 소리 같다
반가움이 띄엄띄엄
쉼표처럼 찍혀갈 때
나는 반쯤은 떨리고
반쯤은 들뜬 채
느낌표가 된 채 서 있었다.
퉁소
남진원
비어 있어도 차 있구나
몇 굽이 구렁을 돌아 달구어지고 차가워지고 나서야
살아난 비의(飛衣)
허공에
운율로 맛을 낸다
슬픔을, 욕망을, 아름다운 명예마저도
지우며 흘러가는 새야
서리 내린 들판을 지나고 화려한 꽃숲을 휘돌더니 그대 눈물 한 자락에 닿은 심심함
오늘
빼어난 혼돈으로 이루어지는
텅 -
빈 -
무음(無音)을 듣는다
( 문학관, 도서관에 문학작가 파견 사업 작품집, 2010년 2월 5일)
( 2016. 4. 13. 남진원 제15시집. [무소유의 냄새]. 태원 )
튀르키에 別曲
남진원
누가 이 수많은 평안을 앗아갔나
총탄도 포성도 들리지 않았건만
영겁이 갈라지면서 함몰하던 목숨의 城
전쟁보다 더 큰 참사 순간이 잿더미네
절절한 소문조차 막막한 채 길을 잃고
들리나, 은하계 멀리 토해내는 잿빛 울음
쓰러진 건물 더미 넝마인 냥 쌓여있고
지층은 조각난 채 멀미하는 굴절의 땅
매시간 닫히는 숨결 化石되고 마는가
그러나 다시 선 채 더운 손길 보는가
온 세계 지구촌은 뜨거운 피가 돌아
황막함 뒤덮은 어둠, 저 색상은 빛이 되리
( 2023. 제7회 운곡시조문학상 대상 응모 작품 탈락 작품)
티끌
남진원
위대하다고 하던 인물
막강한 권력자들
세계 최강의 부자 들
모두 거들먹거려 봐야 …
세월 앞에
한 줌 재 밖에
되지 못했구나
손 안에 쥐니
미세 먼지일 뿐
거대한 세상이란 게
손 안에 티끌이었구나
( 2023. 9. 28.)
TV야 고맙다
남진원
모처럼 공휴일 저녁
TV를 켠다
채널을 여기저기 들쑤셔봐도
재미없는 드라마
시시껄렁 일상사
뉴스는 맨날 정치판 싸움질
얼른 끄고
눕는다
고맙다,
TV야
일찍 자게 해 줘서
건강하게 해 줘서.
( 2023. 강릉문학 31집 )
Tv에게
남진원
요즘은 날마다
TV 혼자 떠들게 둔다
윗방에서
잠자리에 들때
소리가 작아서 무슨 말인지는 몰라도
떠들썩 하니
사람사는 것 같아 좋다
TV야
고맙구나
늘 바보상자라고 놀렸는데
네가 이리
큰 일을 내게 해 주다니 ….
( 2024. 9. 17 )
<2023. 현대시조 여름호 단시조>
파란 뼈
남진원
숲, 숲이 내보이는 여름은, 파란 뼈다
매미 소리 뒤엉켜서 더욱 날 선 이런 날엔
흙냄새 착 달라붙는 소낙비가 제격이다
파란 이
남진원
흙 위로
새싹이 돋았다
졸음처럼.....
제 속 다 허물고나서
흙의 잇몸에서
돋는
파란 이
( 「바다시낭송회 카페」 2010. 5. 5 )
파란 이
남진원
흙 위로
새싹이 돋았다
아기 눈빛처럼 …
속을 허물고 나서야
흙의 잇몸에서
돋는
파란 이
( 2016. 4. 13. 남진원 제15시집. [무소유의 냄새]. 태원 )
파 리
남진원
밥상 위에 올라앉아
밥알도 훔쳐 먹고
밥상 위에 올라 앉아
반찬도 냠냠 맛보더니
마음에 걸리는가 봐
내 손등을 간질러
( 1979. 10. 20. 물레방아 제4호 )
파리
남진원
舊屋에 살다보니 득실대는 파리떼
땀내를 돋궈가며 파리채를 휘두른다
내키지 않는 살육을 천연스레 하려 한다
이리저리 살피다가 파리채로 내리쳤다
이승과 저승이 찰나로 바뀌고
이래서 바리 목숨이라 했나 잡는 나도 어이없다
한치 앞 大自在天 보고도 보지 못 해
활달한 날갯짓, 내 지옥을 찾아와서
생과 사 허망한 이치 죽음으로 보였구나
( 2020 전자시조집 『꽃물 들어 아픈 날』,한국문학방송)
파적(破寂)
남진원
눈 녹은 자리,
햇볕을
풀어놓는다.
낙숫물
소리
봄 하루가
흐트러진다.
播種
남진원
파종 시기 늦었지만 밭을 잘 다듬었다
뿌린 씨 흙 덮은 후 허리 펴고 하늘 본다
오늘은 기쁜 날이다 별도 맘껏 보겠다
( 2024. 9. 18 )
팔베개
남진원
‘주무세요.’
가만히 나를 누이고
내 팔 위에 머리를 올려놓았지.
가장 가까이에서
함께 하던
그녀의 머리칼, 그녀의 숨결
짧은 몇 초,
영원처럼 멈췄다.
팔베개
남진원
팔베개에 그녀가 있다
윤기 나는 머리칼의 부드러움
삶의 고단한 부분 여기쯤에서
마주하는 경이로운 얼굴
볼에 닿는 그녀의 작은 미소는
가장 아름다운 말.
팔베개에
짙어지는 녹색의 숨결
내가 그대의 이름을 부르는 순간
그녀의 눈은
영혼의 음악이었다.
내 팔에 드리워진 하얀 목, 두근거리는 숨결…
이 모두가,
평화로운 천상의 향기였다.
팔베개
남진원
‘주무세요’
가만히 나를 누이고
내 팔 위에 머리를 올려놓았지
가장 가까이에서
함께 하던
그녀의 머리칼, 그녀의 숨결
짧은 몇 초,
영원처럼 멈췄다
( 2016. 4. 13. 남진원 제15시집. [무소유의 냄새]. 태원 )
팔베개하고 누우면
남진원
고향 생각을 하면 아름답기만 하랴
그러나,
팔베개하고 누우면
모여드는 생각들
예쁘고
소란스런
새들의 지저귐
돌돌거리며 달려드는
물소리
생각에 잠겨
강둑에 선
누렁이 소
장독대 옆
아련히 피어나는 봉숭아
,
진 외갓댁 할머니가
귀엽다고 애칭으로 부르던 갓난이 모습
팔베개 하고 누우니
모두
꽃밭에 숨은 아지랑이 같다.
( 2024. 5. 11. 남진원 제18시집 『어머니 물동이길』, 동우재 출판사.)
팔월 하순
남진원
선선한 바람 기세, 내려간 빨간 수은주
무섭던 너 폭염도 시간 앞에 별수 없구나
해맑은 풀벌레 소리에 스며드는 초가을
( 2025. 8. 27. )
팥죽
남진원
서남쪽은 눈이 펄펄
동해안은 추위에 언 햇덩이
휘-
늘어지고
이런 동지엔
펄펄 끓는 팥죽이
최고구나.
(2022. 12. 22.)
가속 페달
남진원
기상이변만
참변인가
몸이 사는 즐거움 때문에
생태교란
자연파괴
가속 페달을 밟았지
순식간에
전 지구적 재앙으로 가는
페달을
너도 나도
밟고 있는 줄을
알까
( 2024. 5. 11. 남진원 제18시집 『어머니 물동이길』, 동우재 출판사.)
편 지
남진원
무엇을 쓸까
턱을 고이면
지난 여름 동해 바닷가를 걷던
네 발자국 소리가
파도처럼 밀려온단다
무엇을 쓸까
창밖을 보면
이마를 마주하고 듣던 얘기들이
박꽃처럼 가슴에서 피어난단다
무엇을 쓸까
눈을 감으면
아 아
하나 가득
네 얼굴만 떠오른단다
무엇을 쓸까
턱을 고이면.
( 1988. 8. 30. 제4시집<동시집>, 『풀잎과 코스모스에게 』)
( 1989. 4. 15. 제5시집,동시집>, 『가을바람과 풀꽃, 그리움에게』)
( 2015. 4. 15. 남진원동시선집. 지식을 만드는 지식)
편지
남진원
천리 먼 고향집 부모님 계시는 곳
안부를 여쭈오며 괴로움을 말하려니
어버이 흰 머리카락 더 셀까 봐 그만 뒀소
그늘진 북변의 땅 천장 만장 눈 쌓이고
얼어터진 손과 발이 밤잠 또한 설쳤지만
이곳은 ‘봄날 같습니다’ 이런 글만 보냈다지.
( * 이안눌의 한시 ‘기가서’를 시조로 재창작한 작품임)
( 남진원 산문집,『달빛에 싼 청산 한 채』‘이안눌의 효심’ 중에서)
평범한 미소
남진원
삶이 무엇인가
그저 흐르는 물의 한 부분이었구나
흐르다가 氣化하고 머물다가 風化하는
요란하려고 발버둥쳤던 내 인생의
살과 뼈들의 무게를 바라본다
미련 때문에, 집착 때문에, 애증 때문에
버리지 못했던
허망과 탐욕
이 허접한 것들,
안쓰러워서, 애처러워서
그렇기에 이들이 진짜 사랑스러워서
고마움이여!
내 하루하루는
이제 이들을 껴안으며 살아가는
평범한 미소의 시간들이구나.
( 제17시집 『조그마하게 살기』, 태원, 2023. 5 )
평상에 나와 앉아
남진원
마을이 조용해졌다.
황금색이다.
매미 날개에 묻은
고요함도 황금색이다.
칠성산 밑의 소(沼)가
조금씩 검어질 무렵
평상에 나와 앉은
우리들
날마다 눈 맞추고 마음 맞대서
한 식구 같은,
별
솥에서 갓 찐 옥수수 먹으며
별이 뜨기를 기다렸다.
( 2015. 9. 17. 제14시집 『 산골에서 보내온 동시』, 좋은 꿈 ),
평 화
남진원
조용히 앉아서 고요히 숨을 쉰다
숨 쉬는 모습을 들여다 보노라니
이제야 지극한 삶이, 무엇인지 알겠다
( 제16시집 『쇠장수 강영감님』, 태원, 2021. 11. 22 )
- 시조작품집 좋은 작품상 수상 (시조문학사) -
포사
남진원
포사의 침
물의 화사한 동굴에
들어서다
한 방울, 한 방울 씩 밀어넣는 단약
독한 술에
취한 채
천년 동굴 속을 지나고 있다 …
햇빛이 만발하였다
(2018. 8. 15.)
포사의 미소
남진원
웃음은 없었기에 포사는 천하절색
유왕은 안달하여 웃기려 하였지만
모든 일 허사로구나 탄식만이 나왔네
그때 불현 듯 묘수가 생각났네
봉화를 올리니 천하제후 몰려왔네
달빛에 빛나는 장검 사방천지 진동했지
먼 길에 달려오느라 고초가 심했구려
유왕은 제후들에게 돌아가라 말을 한다
전쟁에 대비하여서 한번 올려 본 봉화였대.
유왕의 거짓봉화 사실임을 알게 되자
헐레벌떡 달려왔다가 어이없어 돌아서네.
그때야 포사의 입에 물려있는 저 미소.
소하의 미소는 나라의 버팀목이었지만
포사와 이임보는 망국의 미소였네
웃음은 하나인데도 어찌 이리 다른가
( 남진원 시 전집 수록)
布行
남진원
나를 기다리는 건
책속의 언어들 뿐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구나
방에서 뒹굴다가
문을 나서고
골짜기로 내려서면
느슨해지는
한 걸음 또 한 걸음
나지막한 풀벌레 소리들이
길을 열고
길 따라 낯설지 않게
도란거리는 물의 언어들
발걸음에
재미를 더하고 있다.
( 2022. 1. 15 )
( 제17시집 『조그마하게 살기』, 태원, 2023. 5 )
폭 염
남진원
냇가에 제방공사가
진척이 적어요
비오면 그만 두고
토, 일요일도 일 안하고
이젠 더 날짜가 없나 봐요
폭염에도 땀 흘리며 일을 하네요.
( 2011. 10. 31. 강원아동문학 제36집 )
폭 염
남진원
2024년
7월 26일, 한 낮
가장 맹렬한 폭염 속
우리 집 현관은 40도
웃통도 벗고
선풍기와 에어컨을 모두
켰다
갑자기
아프리카 열대지방에
사는 느낌이다
밖에 나서기가 무섭다
( 2024. 7. 27 )
폭염
남진원
구더기처럼
끈적거림이 구물거린다.
찐득함이 엿가락처럼 휘어졌다.
나팔꽃이 꼬옥 입을 오므리고
모두들 무중력 상태가 되고 있다.
둥-
둥-
폭 염
남진원
저녁 6시
활활 타는 듯, 무쇠라도 녹일 것 같더니
어쩔 수 없구나
맹렬한 기세는
어디로 가고
풀이 한껏 죽어 저물어가네
너를 통해 사는 이치를 알겠구나.
(2021. 7. 23.)
폭 염
남진원
무쇠라도 녹일 것 같더니 어쩔 수 없구나
저녁 6시 풀 죽어 저물어가네
우리네 사는 이치가 참으로 이 같구나
( 제16시집 『쇠장수 강영감님』, 태원, 2021. 11. 22 )
- 시조작품집 좋은 작품상 수상 (시조문학사) -
폭염경보
남진원
긴 폭우 끝나고 나니 발효되는 폭염경보
여름이 오긴 왔나 물소리가 쾌활하다
사람은 늙어만 계절만은 청청해가도
( 제16시집 『쇠장수 강영감님』, 태원, 2021. 11. 22 )
- 시조작품집 좋은 작품상 수상 (시조문학사) -
폭염날에
남진원
폭염
가운데로
선풍기 바람
달려오니
지긋이
감기는 눈
명시 한 편 쓴
즐거움 보다
낫다.
( 2025. 7. 25. )
폭염을 쏘다
남진원
작금에 볼 수 없는 최극의 기후 변화
폭염에 초열대야 잠 못 드는 여름밤
나는야 시어를 세워 폭염을 쓴다 폭염을 쏜다
( 2024. 7. 30 )
폭우, 그 후 남진원
벼포기가 하늘을 향해 빳빳이 자랄 무렵 곡 한번은 폭우가 내렸다. 삽시간에 골지천은 황토색으로 변하고 물이 둑방의 윗부분까지 찰랑거렸다. 대청소가 시작된 것이었다. 손 닿지 않은 거리에 있던 물건들은 물에 의해 씻겨 내려가고 이쪽 저쪽 자리 이동이 시작되었다.
비가 와서 젖어 있는 마을, 젓은 골목 사이로 메밀전을 부치는 고소한 내음이 퍼져다니다 오디 나무 숲 사이로 맴돌았다.
치적대던 비가 멈추고 하늘이 구름을 걷어내기에 바쁜 날, 강에 나가니 청때 씻어낸 물이 그제서야 속을 훤히 내보였다. 우유빛과 곰 가죽 같은 색깔로 어우러진 조약돌들이 '갈갈갈갈,,,,' 그들 본래의 낮은 음표를 자유롭게 드러내놓고 그즈음 바람도 스스로 껍질을 깨고 나와 햇빛에 섞여마을을 바삭바삭 말리기 시작했다.
며칠 새 더욱 실하고 굵은 벼 포기 사이에서는 개구리 울음이 뭉클뭉클 터져나왔지.
( 2024. 5. 11. 남진원 제18시집 『어머니 물동이길』, 동우재 출판사.)
폭우 지나고
남진원
그리 쏟아지더니
나무와 풀
깨끗이
아주 깨끗이
씻으려고 그랬구나
폭우 지나고
아침 눈부신 해 떠오르니
저 풀과 나무들이 뿜어내는
초록 산소들
세 옷 입고 함빡 웃고 선
아이들보다 예쁘다
( 2024. 9. 24 )
폭 포
남진원
물빛 산빛 어우러진
하늘 한 끝이 터져
골을 메우는 자욱한 음성
천지가 진동하는 하강
흰구름 수만 덩이가
꽃가루로 쏟아진다
파리똥 같은 데서
하루 쯤 여기 몸 담그면
기다렸듯이 네 이놈
산을 가르고 달려와
내 몸에 세상 맛나는
푸른 칼질을 하는구나.
( 1986. 7. 30. 『강원시조문학』 제2집 )
( 1991. 9. 1. 제6시집 , 시조집. 『내 인생 밭을 매면』 )
폭포
남진원
산은 한 채의 거문고였다
벼랑 아래
흰 물 타래 여섯 줄
걸어놓고
환한 울음이런가,
가뭇하게 튕겨내면
휘도는
물 잎, 산 잎, 하늘 잎…
가득 채웠다가
비워내고
비웠다가 가득 채우는
우주의 소나기
그래,
떠돌아라
( 2016. 4. 13. 남진원 제15시집. [무소유의 냄새]. 태원 )
폭포
남진원
물 빛 산 빛 어우러진 하늘 한 끝이 터져
골을 메우는 자욱한 음성 천지가 진동하는 하강
흰 구름 수만 송이가 꽃가루로 쏟아진다.
파리똥 같은 데서 하루 쯤 여기 몸 담그면
기다렸다는 듯이 네 이놈 산을 가르고 달려와
내 몸에 세상 맛나는 푸른 칼질을 하는구나.
( 시조집 『내 인생 밭을 매면』, 삼환인쇄사. 1991.)
푸른 숲에 들어서면
남진원
푸른 숲에 들어서면
놀랍다
푸른 나무들
잎, 잎에 매달리는
애 띤 새소리의 꽃망울들
귀가
맑아진다
( 2025. 6. 3 )
푸른 자유
남진원
숲이 움직이는 내면에
음악이 있는 걸 알았다
숲은 물의 몸놀림으로
소리를 켜고 있었다
골짜기는 맑고 하얀 음색이 섞여 흘러내렸다.
자유,
푸른 자유였다
꽃이 사는 것도
숲의 美化가 아니었다
숲은 꽃잎을 어루만지면서
즐거운 냄새가 살게 만들었다
나무가 어깨를 기대는 숲
풀이 어우러지고
곤충과 동물의 체온이 따뜻해지는
서로의 소유를 지운 채
향기가 떠도는 배려의 거대한 섬이었다
바쁜 흐름에서 잠시 벗어나서
고단한 노동의 아픔도 삭여 내리고
이곳에서는 모두 바람을 닮은 자유인이었다
구름, 이슬, 반딧불이 같은 것들도
잠시 별이 되기도 한다
이, 소박한 아름다움이라니 …
숲에서 지내다 보니,
부귀를 멀리 해서가 아니라
부귀가 절로 초라해져서
멀어져 있는 것 같았다
( 2022. 7. 19.)
푸른 지붕의 우리 집
남진원
방터교 건너고 돌 반석 지나고 나면
산 밑에 아담한 파란 지붕 나를 본다
풀벌레 소리와 걷는 발걸음이 좋아라
( 2020. 6. 19. )
풀
남진원
누가
밟아도
가만히 있는다.
바람이 불면
쓰러질 듯
흔들린다.
비가 오면
자꾸 목이 움츠러든다.
그러면서
풀은 뿌리를 뻗는다.
그러면서
풀은 더 싱싱한 산소를 보태준다.
누가 보아 주지 않아도
풀은
의젓하게 자란다.
( 제8시집 . 동시집 『할아버지 이뽑기』, 1997. 2. 25. 대교출판.
( 2015. 4. 15. 남진원동시선집. 지식을 만드는 지식)
풀
남진원
비 오면 비오는 대로
비에 젖는 법을 배우고
바람 불면 바람 부는 대로
흔들리는 법을 배우고
忍冬의 이 시간도
흐르고 있는 것을
빗방울은 풀잎의 속살마저
젖게 할 수는 없다.
바람은 뿌리까지
흔들지 못한다.
슬픔의 끝이 어딘 줄 몰라도
침묵으로
빛나는 貧者여
오늘
궁핍의 땅에 서서
세상을 그러쥔 채
초연함으로 맞서고 있다.
( 남진원 시집, 『어초(語草), 붓다가야, 2002. 8. 1. )
풀
남진원
‘풀풀!’
사전에서 찾아보니
‘날쌔고 기운차게 뛰거나 나는 모양’이라고 나왔다.
모진 환경에 얼마나 날쌔고 기운차게 살아왔으면
이름을 ‘풀’ ‘풀’ 이라 지었을까.
초여름은 진짜, 풀과의 전쟁이었다.
밤새 비오고 나니
풀풀
풀풀
마구 자랐네.
가문 날에 곡식은 말라죽어도
풀은 마른 흙을 더 꽉 그러쥐고 살아냈다.
골치 아픈 녀석들이지만
모질게
살아내는 법
배울만하다.
어려운 때가 와도 ‘풀 풀’
풀만 생각하면
풀풀 용기가 났다.
[월간문학 2018년 6월 10일]
풀
남진원
풀을 매면 안다
풀 같은
인생이
꼿꼿이
고개 쳐들고 사는 것
얼마나 힘든 삶인 줄….
( 「바다시낭송회 카페」, 2015. 10. 22. )
풀
남진원
누구나 한두 번 쯤은, 무언가를 누군가를
머리채 휘휘 휘어잡아 뽑고 싶을 때 안 있었것나
그랄 땐 내게 오소 마, 억수로 키워 놓았지
( 제16시집 『쇠장수 강영감님』, 태원, 2021. 11. 22 )
- 시조작품집 좋은 작품상 수상 (시조문학사) -
풀
남진원
연일 저리 비가 오니 밭일이 걱정이다
농작물은 크지 않은데 풀은 한질 자랐으니
이 일을 어찌하리오 천태만상 저 모습
( 제16시집 『쇠장수 강영감님』, 태원, 2021. 11. 22 )
- 시조작품집 좋은 작품상 수상 (시조문학사) -
풀
남진원
언제 이리 또 자랐나
뽑아도 뽑아도
언제 솟았는지
푸르르다 푸르르다 푸르르다
이 강인한
생존력
그래, 내가 배워야 할 스승이다
( 2024. 7. 29 )
풀과 흙
남진원
흙이 움켜잡았던 뿌리
뿌리가 움켜쥐고 있던 흙
아름다운
하나 된 길이었다.
내가 네게로 닿는
네가 내게로 스미는
풀과 흙의
사랑
(2016.5.30.)
풀 그림자
남진원
풀 그림자
길게 휘어지는 게
부드럽다
읽다 만
壇經
한 줄
( 제17시집 『조그마하게 살기』, 태원, 2023. 5 )
풀꽃
남진원
들판을 걸어가면 이름 모르는 풀꽃이 반깁니다
들길을 걸어가면 나도 한 송이 이름 모르는 풀꽃이 됩니다
서로 이름을 모른 채 눈빛을 교환하는 따뜻함으로 만나고 있습니다
다른 이들이 눈여겨 봐주지 않아도
하늘과 물과 바람과 별, 이들의 이름을 기억하지 않아도
감사하며 삽니다
기도하며 삽니다
( 2012. 10. 13. 제11시집 『톨스토이태교동시』,처음주니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