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Blakey & The Jazz Messengers - Moanin'
[Au Club Saint-Germain, Vols. 1-3, 1958, RCA]
아트 블레키에 대한 평가는 언제나 과소 평가되어 있다는 것이 매니아들의 공통적인 생각이다. 1950년대를 이끌었던 드러머로서뿐만 아니라 음악인으로서 그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1940년대 중반부터 활동을 시작한 블레키는 막스 로치(Max Roach), 케니 클라크(Kenny Klark) 등과 함께 당대를 대표하는 드러머로 활동했을 뿐만 아니라 1980년대 말까지의 재즈의 역사가 경험했던 여러 단절의 계기들 속에 그가 비록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적지 않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친 인물이기도 하다. 대표적인 예로 1960년대 존 콜트레인(John Coltrane)과 오네트 콜맨(Ornette Coleman)이 이끌었던 프리 재즈의 흐름과 관련해서 밥 언어의 경계를 넘어서려 했던 이들 실험의 주요 근거가 바로 아트 블레키였으며 1980년대의 경우 마살리스 형제에 의해 주창된 네오 밥의 직접적인 원류 또한 블레키였음은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사실이기도 하다.
또한 1950년대 중반 80년대 말까지 블레키는 재즈 메신져스(Jazz Messengers)를 결성해 수많은 연주자들이 자신의 기량을 펼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해주기도 했는데, 그의 그룹을 거쳐간 연주자들이 이후에 재즈의 '칙사'로서의 역할을 누구부다도 충실히 수행했다는 점에서 그의 업적은 마일즈 데이비스(Miles Davis)와 비교되곤 한다. 마일즈의 경우 연주자들에게 연주 공간을 개방함으로써 개인 기량을 펼치도록 했다면 리듬 섹션의 역할을 강조했던 블레키는 오히려 공간을 협공(?)함으로써 연주자들의 기량을 쥐어짜내는 재능을 보이기도 했다. 그와 연주했던 경험을 지는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블레이키의 재능과 스타일이 자신들에게 부담이 되기도 했음을 밝히기도 했지만, 이와 같은 치열한 훈련을 통해 수많은 재즈의 칙사들이 탄생했기 때문에 재즈의 장은 보다 풍부한 내용들을 지닐 수 있었던 것으로 확신한다.
어렸을 때부터 피아노를 독학으로 공부하기 시작한 블레키는 1940년대 말까지 몇 개의 군소 빅밴드에서 활동을 쌓았는데 플리쳐 헨더슨(Fletcher Henderson)이나 모험적인 젊은 연주자들이 참여했던 빌리 엑스타인(Billy Eckstine)의 밴드가 대표적인 예이다. 이 기간 동안 그는 자신의 임시 빅밴드를 만들어 리드하기도 했으며 태드 다메론(Tadd Dameron) 팻츠 나바로(Fats Navarro)를 비롯해 셀로니우스 몽크(Thelonious Monk), 찰리 파커(Charlie Parker), 디지 길레스피(Dizzy Gillespie), 마일즈 데이비스 등과 같은 밥의 혁신자들과도 함께 연주를 벌이기도 한다.
그러던 중 1950년대 중반 클리포드 브라운(Clifford Brown), 호레스 실버(Horace Silver) 등과 함께했던 라이브 레코딩이 계기가 되어 실버를 비롯해 케니 도르햄(Kenny Dorham), 행크 모블리(Hank Mobley) 등과 힘을 함쳐 재즈 메신져스를 결성하기에 이른다. 이후에 메신져스는 지속적으로 많은 인물들이 교체되곤 했지만 블레키가 계속 자리를 하고 있는 한 그룹의 고유명사처럼 불려지게 되었다. 실제로 이 그룹을 거쳐간 연주자들 중에는 재키 맥런(Jackie McLean), 자니 그리핀(Johnny Griffin), 웨인 쇼터(Wayne Shorter), 존 길모어(John Gilmore), 빌리 하퍼(Billy Harper), 바비 왓슨(Bobby Watson), 리 모건(Lee Morgan), 프레디 허바드(Freddie Hubbard), 우디 쇼우(Woody Shaw), 윈튼 마살리스(Wynton Marsalis), 커티스 플러(Curtis Fuller), 슬라이드 햄튼(Slide Hampton), 시더 왈튼(Cedar Walton), 키스 자렛(Keith Jarrett), 칙 코리아(Chick Corea), 죠안 브레킨(Joanne Brackeen) 등과 같은 당대의 정상급 뮤지션들이 포진하기도 했으며 메신져스를 거쳐 스타로 급부상한 많은 예들을 찾아볼 수도 있다.
블레키의 재즈 메신져스는 중간에 몇 번 활동을 잠시 중단하기도 했지만 1980년대 말까지 지속적인 음악적 활동을 펼치기도 한다. 메신져스와의 활동과는 별개로 블레키는 소니 롤린스(Sonny Rollins), 밀트 젝슨(Milt Jackson), 행크 모블리 등의 레코딩 작업에도 참여하기도 했으며 별개의 그룹을 만들어 활동을 하기도 했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Giants Of Jazz가 될 것이다.그의 연주는 30여년의 활동 기간 동안 꾸준한 발전을 보여주기도 했는데, 스네어의 활용과 관련하여 그가 보여줬던 작업들은 스윙 기간을 통해 형성된 스타일임을 쉽게 직감할 수 있게 해주면서도 밥 언어에서 보여지는 리듬의 복합성에 기반하고 있었으며 대조적인 두 리듬을 동시에 진행시키는 폴리리듬 등을 선보이기도 한다.
이러한 그의 연주 스타일은 많은 비평가들로부터 언제나 호된 질책의 대상이 되었지만 1960년대 중반 이후 수 많은 드럼 연주자들에게는 직접적인 영향과 자극을 주기도 한다. 연주력이 풍부하지 못한 단원들에게 이러한 블레키의 연주스타일은 부담이 될 수밖에 없지만 자신의 역할을 분명히 인식하고 도전적인 의욕을 갖춘 연주자라면 그의 리듬 속에서 강한 투지를 불러일이키기도 한다. 언제나 연주 속에서 격양된 감정을 발산시키면서도 오랜 경험 속에서, 마치 스윙 시대의 드러머들이 그랬듯이 이를 보다 향상된 조화를 위해 이끌었던 것은 블레키만의 큰 장점이 아닐 수 없다. 결과적으로 블레키가 이끌었던 앙상블은, 비록 어느 특정한 순간에는 개인이었다 할지라도, 재즈의 전통에서 흔들릴 수 없는 큰 초석이 되었다.
Volume 1
A1. Politely 15:50
A2. Whisper Not 9:30
B1. Now's The Time 16:00
B2. The First Theme 8:30
Volume 2
C1. Moanin' With Hazel 14:00
C2. We Named It Justice 7:20
D1. Blue March For Europe N° 1 11:00
D2. Like Someone In Love 11:00
Volume 3
E1. Along Came Manon 10:20
E2. Out Of The Past 11:10
F1. A Night In Tunisia 18:20
F2. Ending With The The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