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문강공 안우(文康公 安祐)의 사후 기록
欽定古今 圖書集成/明倫彙編/氏族典, 第165卷 安姓部彙考 元/安祐 按 《河南通志》: 「祐, 磁州人. 弱冠上書. 世祖寄之 授以近侍官, 每有委用, 規模宏遠. 官至集賢殿大學士. 卒, 贈平章政事, 追封興國公, 諡文康」 「우, 자주인, 약관상서 세조기지 수이근시관. 매유위용 규모굉위, 관지집현전대학사. 졸, 증평장증사, 추봉 흥국공, 시문강」 (弱冠上書 약관의 나이에 추천 (급제가 아님). 寄 부칠 기, 붙일 기, 近侍官 임금을 가까이 모시는 벼슬아치, 委 맡길 위. 宏遠 매우 넓고 멀다. 追封 죽은 사람에게 내리다. 諡 시호 시)
번역: 「祐는 자주인(磁州人). 약관에 추천으로 세조가 붙이고 근시관에 앉혔다. 매번 역할을 주었는데 그 규모는 아주 폭넓었다. 최고 벼슬은 집현전대학사(종2품). 사후 평장정사(정2품)로 추증, 흥국공으로 추봉, 시호는 문강」
- 분석: 원나라 안우는 세조(쿠빌라이, 1260-1294) 시대에 문신으로 벼슬 시작
2. 형부상서 안우 (1287년)
元史 卷205, 列傳 第92: 姦臣 至元 二十四年 (1287) 十月 桑哥奏: 「外省欺盜必多. 乞以, 參政炘都, 戶部尙書王巨濟, 參議尙書含事阿散, 山東西道提刑按察使何榮祖, 札魯忽赤禿忽魯, 泉附司卿李佑, 奉禦吉, 監察御史戎益, 僉樞密院事崔彧, 尙書省斷事官燕真, 刑部尙書安祐, 監察御史佰顔 等 十二人, 理算 江淮, 江西, 福建, 四川, 甘肅, 安西 六省, 每省 各二人, 持給印章與之」 「외성사도필다, 걸이. 참정 흔도, , , , , , 형부상서 안우, 감찰어사 백안 등 12인, 리산 강회, , , , , 안서 6성. 매성 각2인, 지급인장여지」 (欺盜 속여 훔치다, 乞 구하다, 요청하다, 理 다스리다, 算 셀 산, 理算 셈을 다스리다)
번역: 「외성에 속여 훔침이 확실히 많아서, 참정 흔도, 호부상서 왕거제, 참의상서 함사아산, 산동서도제형 안찰사 하영조와 찰로홀적독홀로, 천부사경 리우와 봉어길, 감찰어사 융익, 첨추밀원사 최욱, 상서성단사관 연진, 형부상서 안우, 감찰어사 백안 등 12인에게 강회, 강서, 복건, 사천, 감숙, 안서 6성의 셈을 다스리게 요청하다. 각 2인씩 배당하고 (감찰) 인장을 지급하였다.」
- 분석: 형부상서는 정3품. 정3품(국장급)이면 40대 후반으로 추정하면 출생년은 1287-47=1240년 전후이다.
3. 평장아리좌승 안우 (1303)
元史/卷021 校勘記 (교감기) 成宗四 大德 7年 (1303년) 二月 壬戌 「江浙行省 平章阿里 左丞高翥, 安祐, 僉省張祐等, 詭名 買鹽萬五千引, 增價 轉市於人. 乞還省 臺官按問. 從之」 「강절행성 평장아리좌승 고저, 안우, 첨성 장우 등, 궤명 매염만오천인, 증가 전시어인, 걸환성. 대관안문, 종지」 (江浙行省 강소성과 절강성을 합친 지방 행정기구, 원나라 중국의 10개 행성중의 하나. 平章阿里左丞 평장아리좌승은 평장정사 아래의 벼슬로 보임, 詭名 이름을 속이다, 買 살 매, 引 끌어당기다, 乞 요청하다, 按問 조사신문하다)
번역: 「강절행성의 평장아리좌승 고저와 안우, 첨성 장우 등이 이름을 속여 소금 일만 5천 정을 끌어 사서 값을 올려 시장에 내었다. 복구와 대관의 조사신문 요청이 있어 이를 따랐다」
- 분석: 1303년에는 향년 1303-1240=57세 전후
4. 손녀 안정동 (1360년)
元史/卷201 至正19年 (1360) 「王時妻安氏, 名正同, 磁州人, 平章政事佑孫女也. 至正十九年 時以參知政事, 分省太原, 安氏從之. 二十年 賊兵寇太原, 成陷, 衆皆逃. 安氏與其倿李氏 同越井死. 事聞, 贈梁國夫人, 贈莊潔」 「왕시처안씨, 명정동, 자주인, 평장정사우손녀야, 지정19년 시이참지정사 분성태원, 안씨종지. 20년 적병관태원 성함, 중개도. 안시여구첩이씨 동월정사. 사문, 증량국부인, 증장결」 (寇 침략 구, 陷 함락 함, 皆 모두 개, 與 베풀 여, 따를 여)
「왕시의 처는 안씨이고 이름은 정동. 자주인. 평장정사 우의 손녀. 지정19년 왕시가 참지정사일 때 태원성(省)이 새로 생겨 따라감. 지정20년 도적병들이 태원을 침략하였고 태원성(城)이 함략되어 모두 도망하였다. 왕시의 처 안씨와 왕시의 첩 이씨는 함께 우물에 뛰어들어 죽었다. 소문이 나서 양국부인으로 추증하고 시호는 장결이다.」
-분석 1360년 왕시는 참지정사(종2품). 50대 후반 정도로 추정. 1360년 고려의 오성군 안우도 참지정사(종2품). 원과 고려는 품계제도가 같다. 50대 후반으로 추정. 즉 왕시의 부인이고 문강공 안우의 손녀인 안정동과 고려 오성군 안우는 연배가 비슷할 것으로 보인다.
5. 묘지
원사(元史)에 나오는 문강공 안우(安祐)는 창덕부(彰德府) 자주 사람(磁州人)이다. 청(淸)나라 시대에 편찬한 백과사전으로 1726년에 완성된 흠정고금도서집성(欽定古今圖書集成)에 안우의 묘가 자주(磁州)의 남쪽 1리(一里)에 있고 비석도 있다. 이는 1362년 고려에서 피살된 안우 장군과는 다른 인물이라는 확실한 증거가 될 것같다.
원나라의 안우는 집현대학사(集賢大學士)를 지내고 사후에 문강(文康)이라는 시호를 받는 등 문신(文臣)으로 무장(武將)인 고려의 안우 장군과는 시대도 다르고 인물 성격도 다르다.
창덕부(彰德府) 자주(磁州)는 오늘날 하북성(河北省)과 하남성(河南省)의 경계 지역에 위치해 있다. 구글 지도에서 하북성 한단시(邯郸市)와 하남성 안양시(安阳市) 사이에 있는 자현(磁县) 일대이다. 자주(磁州)는 도자기 만드는 자주요(磁州窯)로 유명한 곳이다.
6. 생애 분석 - 위에서 평장정사는 사후 추증 품계임 (정2품). 문강공 안우는 창덕부(彰德府) 자주 사람(磁州人). - 1360년 손녀의 사위 왕시의 품계가 참지정사(종2품)이고 오성군 안우 품계도 참지정사(종2품)이므로 왕시와 오성군 안우가 비슷한 연배임 (5,60대). 즉, 문강공 안우의 손녀와 오성군 안우도 같은 연배이다. 다시 말하면, 문강공 안우는 오성군 안우보다 두 세대 위이다. 만약 1360년에 문강공이 살아 있다면 그 나이는 120세 전후로 추정된다. - 문강공 안우는 20대부터 추천으로 쿠빌라이 시대부터 관리로 활동을 시작하였으므로, 1240년 전후 출생으로 보이며, 오성군 안우(1300년 이후 출생)보다는 60년 (두 세대) 이상 앞선 인물이다. - 문강공 안우의 묘가 자주의 남쪽 1리에 있고 비석도 있다 하였다. 1362년 고려에서 피살된 안우 장군과는 다른 인물이라는 확실한 증거가 될 것같다. 1360년에 문강공이 살아 있다면 120세 정도일 것이다. - 문강공 안우는 집현전대학사를 지내고 사후에 문강(文康)이라는 시호를 받는 등 문신으로 무장인 오성군 안우 장군과는 시대도 다르고 인물 성격도 다르다.
-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