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7월 2일(월) 광주일보

세상을 살아가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안타깝게도 자본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돈’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돈이 없으면 먹지도 입지도 즐겁지도 못한다. 돈의 논리가 곧 이 세상의 논리이고, 돈만 많다면 못할게 별로 없는 세상이다. 임상수 감독의 ‘돈의 맛’은 우리 사회 가장 상류층의 모습을 통해 돈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는 대한민국의 자화상을 보여준다.
누구든 로또복권 일등 당첨을 꿈꾸고, 벼락부자가 된 사람들을 부러워하며, 돈만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살지만, 영화에서 그리고 있는 돈의 맛은 그리 달콤하지만은 않은 것 같다. 돈의 늪에서 빠져나오고자 몸부림치는 윤회장(백윤식)의 영화속 모습은 언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 하지만 이 작품 속에서 유일하게 음악을 듣는 윤회장의 모습은 돈에 길들여진 그가 찾던 것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상상할 수 있게 한다.
번쩍이는 대리석이 깔린 대형 거실. 수천만원을 호가하는 맥킨토시 앰프들과 B&W스피커가 세팅되어 있다. 고개를 숙인 윤회장은 앰프를 틀고 음악을 듣는다. 어둠에 잠긴 그의 표정 위로 흐르던 그 음악은 바로 슈베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19번 2악장이다. 윤회장의 죽검 앞에서도 엄숙하게 연주되는 슈베르트의 소나타는 돈의 늪에서 빠져나오고자 했던 윤회장이 유일하게 기댈 수 있었던 희망이었던 것처럼 보인다.
슈베르트는 자신이 존경하는 베토벤과 비교해서, 자기의 작품들은 즉흥적이고 표피적이라고 평가했고, 베토벤의 대위법을 다시 공부하여, 복합적이고 심층적인 감동을 담은 작품을 쓰겠다고 스스로에게 약속한다. 그리하여 남긴 곡이 그의 가장 위대한 유산으로 평가되는 마지막 세 곡의 피아노 소나타들(제19번 C단조 D.958, 제20번 A장조 D.959, 제21번 B플랫장조 D.960)이다. 꺼져가는 생명의 심지 앞에서 인간으로서 그리고 예술가로서의 마지막 갈망을 담아 써낸 작품들로, 세 곡 모두 그가 죽은 해인 1828년에 쓰여졌다. 그 가운데서제19번은 그가 목표하던 베토벤적인 작품으로 완성되었다.
영화에 사용된 음원은 알프레드 브랜델의 연주다. 방대한 레파토리를 자랑하는 피아니스트지만 그 가운데서도 슈베르트는 브랜델이 장기로 하는 레파토리다.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는 중용적이면서 학구적인 연주로 교과서적인 연주의 최고봉이라 할 만하다.
독특한 연주로는 러시아의 거인 스비아토슬라브 리히터의 라이브 레코딩이다. 무대 위에서 오로지 한 줄기의 빛으로만 조명을 했던 리히터의 피아노 연주는 끝을 알 수 없는 깊은 심연으로 빠져드는 느낌을 준다. 특히 2악장 아다지오는 극도의 긴장과 이완이 공존하는 연주로 엄청난 매니아를 몰고 다녔던 리히터 연주의 모든 것을 보여준다.
최근 녹음으로는 노르웨이 피아니스트 레이프 오베 안즈네즈의 연주가 기억에 남는다. 탄탄한 기교를 바탕으로 그가 만들어내는 슈베르트의 세계는 아주 단단하다. 악곡의 구조를 명쾌하게 드러내는 연주로 한음 한음이 모두 살아서 움직이는 것처럼 느껴진다.
<독립영화감독/음악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