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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열왕기하17장1~23절
제목 : 멸망의 이유
이스라엘이 앗수르에 의해 멸망당합니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이 외교적인 처세를 잘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했기 때문입니다.
1. 이스라엘의 멸망(1~6절)
1) 호세아가 사마리아에서 이스라엘 왕이 되어 9년간 다스렸습니다(1절).
“[1] 유다의 왕 아하스 제십이년에 엘라의 아들 호세아가 사마리아에서 이스라엘 왕이 되어 구 년간 다스리며 ”
본절에서 이스라엘의 호세아(Hoshea)는 유다의 아하스 왕 12년에 왕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15:30에서는 요담 20년에 호세아가 베가를 죽이고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다고 합니다.
여기서 요담과 그의 아들 아하스 사이에 4년간의 섭정(攝政)이 있었다고 본다면(15:30) 호세아가 왕이 된 것은 아하스 4년이어야 합니다.
따라서 여기에는 약 8년 정도의 간격이 생기게 됩니다.
그런데 이를 해결하기 위해 학자들은 여러 가지 제안을 합니다.
예를 들면
(1) 본절의 12년을 2년으로 수정해야 한다는 견해가 있다(Gray).
(2) 요담과 아하스의 섭정 기간을 요담 8년부터로 보아야 한다는 견해가 있다(Thiele).
(3) 호세아가 베가를 죽인 후(15:30)의 약 8년간은 무정부 상태로 보아야 한다는 견해가 있다(Keil).
그러나 위의 견해들이 연대기 문제를 해결하는 한 방법은 될 수 있으나 어디에서도 이에 대한 분명한 증거를 발견할 수는 없습니다.
한편 아하스가 왕이 된 것은 B.C. 723년경이 됩니다.
그런데 이때는 호세아의 통치(B.C. 732-722)말엽으로 사마리아 성이 앗수르의 사르곤 2세(B.C. 722-705)에 의해 함락되기 직전입니다.
그러므로 호세아는 적어도 아하스 3년 또는 4년인 B.C. 732년경에 왕위에 올랐어야 합니다.
따라서 위에 제시된 세 견해 가운데 (3)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15:30에 나와 있듯 요담 20년에 호세아가 왕위에 오른 것만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2)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지만 그전 이스라엘 여러 왕득과 같이는 하지 않았습니다(2절).
“[2]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으나 다만 그 전 이스라엘 여러 왕들과 같이 하지는 아니하였더라”
악을 행하였으나...같이 하지는 아니하였더라. - 호세아의 배교(背敎)가 어느 정도였는지는 분명히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본절에서 그가 '그전 이스라엘 여러 왕들과 같이 하지는 아니하였다'는 결코 그가 송아지 우상을 버렸다거나 이방의 우상들을 파괴했다는 말은 아닙니다.
아마도 본서 기자는 전장(前章)에 기록된 아하스 왕의 악행(16:1-4)과 비교하여 이러한 평가를 내렸던 것으로 보입니다(Hobbs).
혹자는 호세아가 이스라엘 백성들의 예루실렘 성전 방문을 허용했기 때문에 이러한 긍정적 평가를 받으리라고 추측하기도 합니다.
아무튼 이상과 같은 사실과는 관계없이 결국 이스라엘이 멸망하게 된 것은 이전 이스라엘 왕들과 백성들의 죄악이 축적된 결과라는 것이 곧 본서 기자의 견해입니다(7-18절).
3) 호세아는 앗수르의 왕 살만에셀에게 조공을 바치며 봉신국가의 예를 갖추었습니다(3절).
“[3] 앗수르의 왕 살만에셀이 올라오니 호세아가 그에게 종이 되어 조공을 드리더니 ”
여기에 나오는 살만에셀(Shalmaneser)은 디글랏 빌레셀 3세(15:29)의 아들인 살만에셀 5세(B.C. 727-722)입니다.
그의 왕명은 일명 '울룰라이'(Ululai)로 알려져 있습니다(Hobbs).
그런데 그는 무슨 연고인지 분명치 않으나 사마리아를 포위하고 있던 때에 죽었으며 그의 후계자로는 그의 형제는 사르곤 2세(Sargon II, B.C. 722-705)가 왕위에 올랐습니다.
그러므로 사마리아을 함락시킨 왕은 사르곤 2세임이 분명합니다(B.C. 722).
그러나 바벧론 열왕기에는 사마리아 전투에서의 종국적인 승리자가 살만에셀로 나와 있습니다(K. Gravson, H. Tadmor).
이것은 아마도 그가 가장 수훈자였기 때문에 그렇게 기록된 것입니다.
호세아가...조공을 드리더니 - 살만에셀 5세의 아버지인 디글랏 빌레셀 3세는 베가를 친 후 호세아의 반역을 도와(15:29, 30) 호세아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고 그에게 조공을 명했습니다(Bahr).
그러나 디글랏 빌레셀이 죽자 호세아는 더 이상 조공을 바치지 아니하였으니 이에 다시금 살만에셀이 호세아를 쳐 조공을 바치게 한 것입니다.
한편 여기서 '조공'이라는 단어에 해당되는 히브리어 '민하'는 본래 '봉헌하다', '바치다'라는 뜻으로서(3:4) 주로 소제물(素祭物)이나 '희생 제물'을 가리킵니다(창 4:3 ; 출 30:9 ; 레 6:20 ; 왕상 8:64 ; 암 5:25).
그러나 본절 및 삿 3:15, 17, 18 ; 삼하 8:2등에서 이 단어는 지배자에게 바치는 공물(貢物)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4) 호세아가 앗수르에 반기를 드니 앗수르 왕이 호세아를 옥에 감금합니다(4절).
“[4] 그가 애굽의 왕 소에게 사자들을 보내고 해마다 하던 대로 앗수르 왕에게 조공을 드리지 아니하매 앗수르 왕이 호세아가 배반함을 보고 그를 옥에 감금하여 두고”
애굽 왕 소 – 일반적으로 애굽 왕 '소'(So)는 사르곤의 보고서에 나오는 '시베'(Sibe)왕인 '파라오 사바카'(Pharaho Shabake)와 동일 인물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기에 혹자들은 히브리어 성경에서도 '세워'로 발음되었으나 맛소라의 학자들에 의해서 '소'로 발음되었을 것으로 봅니다.
그러나 근래에 이르러 문헌학적 고찰에 의해 '사바카'의 재위 기간이 B.C. 710년에서 696년인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따라서 사바카는 호세아 당시의 애굽 왕이 아님이 분명해졌습니다(Hobbs).
그리고 이제 와서 대부분의 학자들은 '소'가 왕명이 아니라, 애굽 델타(Delth) 지역의 한 도시인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
그리고 '소'라는 도시는 '테프나크테'(Tefnakhte)와 일치한다고 합니다.
한편 던컨(Dunker)에 의하면 당시의 애굽 왕은 사바카의 아버지로서 B.C.726년에서 714년까지 통치했던 '사바콘'(Shadbakon)이었다고 합니다.
사자들을 보내고. - 호세아 선지자는 이와 같이 이스라엘이 이방과 동맹을 맺기 위하여 사자(使者)를 보내는 행위를 신랄하게 비판했습니다(호 5:13 ; 7:8-16 ; 8:9).
그리고 열왕기서에서는 선왕(善王)이 악한 왕들과 동맹을 맺는 것에 대해서조차 통렬히 비난하고 있습니다(8:27 ; 대하 19:2 ; 20:36).
실상 유다 왕 아하스 같은 이도 앗수르 왕에게 도움을 구하므로 도리어 유다를 이방의 신복(臣僕)으로 전락시켰습니다(16:7).
그런데도 호세아는 이제 또 다시 애굽과의 동맹을 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조공을 드리지 아니하매. - 호세아는 아마도 애굽 왕의 원조를 확신하고 해마다 앗수르에 바치던 조공을 중지하였던 것 같습니다(Wilson).
그러나 불행이도 당시 애굽은 국내적으로 분열 상태에 있어 이스라엘을 지원할 수 없는 형편이었습니다.
때문에 호세아는 대노(大怒)하여 쳐들어온 살만에셀 5세를 맞아 싸웠으나 결국 포로로 잡히고 말았습니다.
호세아의 배반함을 보고 - 여기서 '배반함'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케쉐르'는 '음모'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70인역(LXX)에서는 이를 '잘못'(wrong)이라는 뜻인 '아디키안'으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아무튼 다시 앗수르의 속국(屬國)과도 같던 이스라엘이 앗수르에 조공을 바치는 것을 중지하였다는 것은 곧 반란을 의미하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옥에 감금하여 두고. - 이처럼 호세아가 옥에 갇힌 것이 사마리아 성의 함락 전인지 아니면 그 후인지에 대하여 학자들의 견해는 다음과 같이 크게 두 가지로 나타납니다.
(1) 사마리아 성이 함락되기 이전에 호세아 왕은 이미 옥에 갇혔다는 견해가 있다(Ewald, Hobbs).
왜냐하면 18:11에 보면 앗수르의 포로 가운데 호세아 왕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을 뿐만 아니라 본문에서도 호세아 왕이 갇힌 것이 먼저이고 그 후에(5절)
앗수르의 최후의 공격이 닥쳤기 때문입니다.
(2) 호세아가 갇힌 것이 사마리아 성의 함락 이후 앗수르의 포로로 잡혀 가서의 일이라는 견해가 있다(Keil, Bahr, Rawlinson).
이와 관련 바르(Bahr)는 니드웨 기념비에 호세아 왕이 앗수르의 포로로 잡혀가는 그림이 나타나 있다고 말합니다.
또한 호세아의 재위 기간이 9년으로 명시된 것으로 보아 사마리아 성이 함락됨과 동시에 포로로 잡혀갔음이 분명하다고 주장합니다(18:10).
그리고 카일(Keil)은 호세아의 금고(禁錮)와 사마리아 성 함락의 기사가 서로 도치되어 기록된 것은 호세아가 살만에셀에 반역한 결과를 먼저 언급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위의 두 견해 가운데 비교적 타당한 것은 두번째 견해입니다.
왜냐하면 사마리아 성을 공격하지도 않았는데 호세아가 순순히 앗수르 왕에게 항복했을리는 만무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호세아가 만일 그렇게 항복할 거라면 애당초 조공을 금지하는 등의 배반
을 시도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또 18:9-12의 기록을 보면 분명히 호세아의 7년에 앗수르의 공격을 받고 3년 후인 호세아 9년에 사마리아 성이 함락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5) 왓수르 왕이 사마리아를 3년간 에워쌌습니다(5절)
“ [5] 앗수르 왕이 올라와 그 온 땅에 두루다니고 사마리아로 올라와 그 곳을 삼 년간 에워쌌더라 ”
사마리아로 올라와서. - 혹자는 주장하기를 앗수르인들은 본래 북이스라엘을 사마리아로 언급하지 않고 '오므리의 집'으로 일컫는 다고 합니다.
만일 실제로 그렇다면 본절은 이스라엘 전체를 가리킨다기 보다는 수도인 사마리아 성을 지칭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한편 세겜에서 발견된 한 고고학적 증거에 의하면 세겜 성이 함락되어 파괴된 것은 B.C. 724년 경으로 나타나 있습니다(W.G.Dever).
따라서 앗수르는 먼저 이스라엘을 훼파하여 전국토를 거의 장악한 후 마지막으로 수도 사마리아 성읍을 함락 시키기 위해 총공세를 폈음이 분명합니다.
삼 년을 에워쌌더라 - 앗수르의 막강한 전력(戰力)과 뛰어난 전쟁 기술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사마리아 성을 함락하는 데 3년이란 기간이 걸렸다는 것은 그리 이상할 것이 못됩니다.
왜냐하면 멸망 지국(滅亡之國)의 위기에 몰린 이스라엘인들은 수도 사마리아 성읍만은 보존하기 위하여 다들 죽기를 각오하고 싸웠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여기서 말하는 3년이란 만 3년은 아닐 것입니다.
18:9, 10에 의하면 이는 단지 호세아 7년에서 9년을 가리킴을 알 수 있습니다.
6) 호세아 9년에 앗수르 왕이 사마리아를 점령하였습니다(6절).
“[6] 호세아 제구년에 앗수르 왕이 사마리아를 점령하고 이스라엘 사람을 사로잡아 앗수르로 끌어다가 고산 강 가에 있는 할라와 하볼과 메대 사람의 여러 고을에 두었더라”
호세아 제구년에 ... 앗수르로 끌어다가. - 사마리아 성이 함락된 연대는 공히 B. C. 722년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앗수르의 1, 2차 침입(15:29 ; 16:9)으로 인해 이미 많은 백성들이 앗수르로 포로되어 잡혀 갔었습니다.
그리고 사마리아를 포위하고 있는 동안에도 그들은 나머지 이스라엘 지역에서 백성들을 포로로 잡아가고 있었습니다.
세겜으로부터의 증거는 바로 이러한 것을 증명해 줍니다.
한편 사르곤(Sargon)의 비문에는 그 당시 사마리아에서만도 남자만 약 27,290명이 포로로 잡혀갔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당시 사마리아 전체 인구의 1/3 정도에 해당된다고 합니다(Rafia).
따라서 남자는 거의 모두 붙잡혀간 것이 안닌가 추측됩니다.
아무튼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서 4,600명 정도를 포로로 잡아간 것에 비교해 보면 그 규모를 가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렘 52:30).
할라와...여러 고을에 두었더라. -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주된 곳은 할라와 고산 하볼, 그리고 메대 사람들이 사는 여러 고을이었습니다.
그런데 할라(Halah)라는 지명은 앗수르 제국 안에서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레이(Gray)는 이 도시가 톨레미(Ptolemy)의 칼키티스(Chalchitis) 중의 하나일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다음으로 고산(Gozan)은 오늘날 '텔 할라프'(tel Halaf)로 추측됩니다.
그곳은 유프라테스 강의 지류인 하볼 강 유역입니다.
그렇지만 하볼(Habor)의 정확한 위치는 알려져 있지 않았습니다.
한편 메대(Media)는 지금의 이란 북서 지방에 위치했던 나라입니다.
그러나 B.C. 550년경 페르시아에 합병되었으니 곧 페르시아 왕 고레스 때의 일입니다.
2. 이스라엘이 멸망한 이유(7~23절)
1) 이스라엘의 배교 상황(7~12절)
(1) 이스라엘이 망한 이유를 설명합니다(7,8절)
첫째, 다른 신을 섬긴 것입니다(7절)
“[7] ○이 일은 이스라엘 자손이 자기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사 애굽의 왕 바로의 손에서 벗어나게 하신 그 하나님 여호와께 죄를 범하고 또 다른 신들을 경외하며 ”
본절에서 23절까지는 1-6절에 기록된 사건들에 대한 신학적 주석입니다.
즉 이 부분에선 이스라엘이 멸망할 수 밖에 없었던 원인을 바로 하나님 앞에서의 죄악 때문으로 규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본문은 그 어휘나 문체가 신명기적인 색채를 지니고 있다는 분명한 특징을 띱니다(M. Weinfeid).
이 일은 - 여기서 '이 일'이란 사마리아 성이 함락되고 백성들이 앗수르에 포로로 잡혀간 사건을 가리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여호와께 죄를 범하고. - 본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와 맺은 언약을 파기했음을 먼저 상기시킵니다.
특히 출애굽 사건은 후기 선지서에서 하나님의 언약적 사건으로 계속해서 언급되고 있습니다(호 11:1 ; 12:9, 13 ; 13:4).
즉 하나님께서는 과거 이스라엘 조상들과 맺었던 언약을 기억하사 이스라엘을 애굽의 바로 손에서 구원하여 주시고 다시금 저들에게 새로운 축복의 언약을 주셨습니다(출 2:23-25 ; 19:1-6).
그런데도 그들은 그 같은 언약을 저버리고 하나님께 불순종하였으니 이제 다
시 앗수르의 손으로 넘어가게 된 것입니다.
다른 신들을 경외하며. - 본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십계명 중에 제 1계명을 범했음을 가리킵니다(출 20:2,3 ; 신 5:6,7).
이처럼 이스라엘백성들이 여호와를 경외하지 않고 우상을 섬긴 것은 곧 저들을 애굽 왕 바로의 손에서 건져 주신 구원자에 대한 배은망덕의 죄악이었습니다.
한편 여기서 이방신들에 대해서도 '경외하며'라는 용어를 쓰고 있는 것은 특이하게 보입니다.
이것은 '숭배하다'라는 뜻의 히브리어 '아바드'와 동의어로 보아야 합니다(R. Otto). 신 4:10에서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그의 말씀을 청종하는 것이라고 했고, 신 5:29에서는 그의 명령을 지키는 것이라고 했고,
신 6:24에서는 그의 모든 규례들을 지켜 행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또 '여호와를 경외하지 않는 결과'에 대해서는 신 28:58-68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같은 길에서 떠났으니 결국 예고된 심판을 당하고 만 것입니다.
둘째, 가나안 사람의 규례와 이스라엘 왕들의 규례를 행한 것입니다(8절)
“[8]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신 이방 사람의 규례와 이스라엘 여러 왕이 세운 율례를 행하였음이라 ”
이방 사람의 규례. - 우상 숭배 및 사악한 종교 의식(儀式)을 의무화 또는 조장시키는 이방인의 법령 및 제도를 가리킵니다. 레 18:3 주석 참조.
이스라엘 여러 왕이 세운 율례 - 본절은 이스라엘 열왕들의 악행을 동일한 척도에서 정죄할 수 있음을 암시합니다.
즉 모든 이스라엘 왕들은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세운 거짓 종교와 우상 숭배 죄악(왕상 12:25-33)에서 떠나지 않았던 것입니다(왕상 15:34 ; 16:19,26 ; 22:52).
(2) 이들이 저지른 죄를 구체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9~12절)
① 이스라엘 자손은 하나님께서 하지 말라는 것을 비밀히 행했습니다(9절).
“[9] 이스라엘의 자손이 점차로 불의를 행하여 그 하나님 여호와를 배역하여 모든 성읍에 망대로부터 견고한 성에 이르도록 산당을 세우고 ”
점차로 불의를 행하여 - 이것은 이스라엘 왕과 백성들이 '몰래 불의를 유포시킨 것'을 가리킵니다(Hobbs).
즉 그들은 지금까지 산당을 세우고 금송아지를 숭배하면서 마치 여호와를 섬기는 것처럼 가장했던 것입니다(Keil).
사실 이스라엘의 초대 왕 여로보암은 백성들 앞에 금송아지를 세워 두고 아론처럼 "이스라엘 아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산이로다"(출 32:4 ; 왕상 12:28)라고 공포하면서 그 배후에는 온갖 불의를 다 행했습니다(왕상 12:28-33).
그리고 지금까지 모든 이스라엘 왕들은 그러한 송아지 숭배를 묵인하면서 허용하거나 장려해 왔습니다.
그러나 이제 본절에서 본서 기자는 그같이 행하는 그들의 본심을 가리켜 '점차로 불의를 행한'것으로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산당을 세우고. - 왕상 3:4에서는 산당에 대하여 그다지 부정적으로 평가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이 산당이 우상 숭배와 깊은 연관이 있음을 지적하고 있습니다(10-12절).
사실 성전이 없던 시절에 불가피하게 인정되어 오던 산당(삼상 9:5-14)은 후에 모든 악을 산출해 내는 본거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따라서 이 또한 '점차로 불의를 행한'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② 모든 곳에 산당을 만들고 목상과 아세라 상을 세웠습니다(10절)
“[10] 모든 산 위에와 모든 푸른 나무 아래에 목상과 아세라 상을 세우고”
모든 산 위에와 모든 푸른 나무 아래에.- 가나안 족속들은 대개 높은 산, 푸른 나무 아래서 우상 및 우상을 섬기는 처소를 설치하였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높이 올라갈수록 저들의 신에게 보다 더 근접할 수 있다고 여겼으며 푸른 숲을 신령한 곳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본절에서 이스라엘 백성들 역시 그러한 곳에 목상과 아세라 상을 세웠다는 것은 그들이 가나안 종교에 영향 받았음을 시사해 줍니다(왕상 14:23).
목상과 아세라 상 - 여기서 '목상'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마체바'는 '기둥'이라는 뜻입니다.
그러기에 창 28:18,22 ; 35:14 ; 출 24:4 ; 사 19:19 등에서는 동일한 단어가 '기둥'으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본절에서 이것은 분명히 우상 숭배의 대상이었음이 지적되고 있습니다.
즉 본서 기자는 이 기둥들을 가나안 종교의 풍습들과 깊은 연관을 가진 것으로 정죄하고 있는 것입니다.
혹자는 이것이 고대의 야훼주의의 잔재(창 35:14)라고 주장 하지만 그런 것은 아닙니다.
본절에서 지적하고 있는 기둥들은 분명 바알 숭배와 관련된 것으로 보입니다.
한편'아세라'(Asherah)는 고대 근동의 제신(諸神)의 어머니로 숭배되던 여신입니다.
③ 혼합주의와 우상숭배로 변질된 것이 하나님을 진노하게 했습니다(11,12절).
“[11] 또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서 물리치신 이방 사람 같이 그 곳 모든 산당에서 분향하며 또 악을 행하여 여호와를 격노하게 하였으며 [12] 또 우상을 섬겼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행하지 말라고 말씀하신 일이라 ”
산당에서 분향하며. – 여기에서 '분향하며'는 이스라엘 제사장들의 율법적인 합당한 제사 행위를 가리킵니다(레 1:9,13,15,17 ; 2:2,9,16).
그러나 본절과 같이 피엘형으로 사용될 때는 주로 우상 숭배시의 제사 행위를 가리킵니다(16:4 ; 렘 7:9 ; 11:13,17).
여호와를 격노하게 하였으며 - 여기서 '격노하다'에 해당하는 '카아스'는 '슬퍼하다'는 뜻도 지니고 있는 단어입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인간의 죄악에 대하여 격노하심은 곧 죄짓는 자의 영혼을 안타까이 여기며 슬퍼하심의 또 다른 감정표현인 것입니다(겔 18:23).
또 우상을 섬겼으니. - 여기서 '우상'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하길룸김'의 정확한 의미에 대해서는 아직 분명치 않습니다.
데이빗슨(Davidson)의 히브리어 사전에서는 이 단어가 '굴러가다'라는 뜻의 동사 '갈랄'에서 파생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겔 6:4,5,6에서와 같이 일반적으로 '우상들'이라고 번역되는 것이 보통이긴 하지만 23:24에서는 '가증한 것들'과 함께 언급되고 있고 겔 4:12에서는 '인분'(ball of dung)과 연결되고 있습니다.
아마도 우상을 이와 같은 단어로 표현한 것은 신 29:17이나 본문에 비추어 볼 때 둥근 우상이나 기둥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카일(Keil)은 이 단어의 의미를 '흙덩어리'또는 '돌' 등으로 보고 있는데 그렇다면 이 단어 속에는 분명히 어떤 경멸적인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것으로 추측됩니다(Bahr, Rawlinson).
2) 하나님의 경고와 이스라엘의 배교(13~18절)
(1) 많은 선지자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경고하시며 돌아오라고 말씀하셨지만 듣지 않았습니다(13~14절)
“[13] 여호와께서 각 선지자와 각 선견자를 통하여 이스라엘과 유다에게 지정하여 이르시기를 너희는 돌이켜 너희 악한 길에서 떠나 나의 명령과 율례를 지키되 내가 너희 조상들에게 명령하고 또 내 종 선지자들을 통하여 너희에게 전한 모든 율법대로 행하라 하셨으나 [14] 그들이 듣지 아니하고 그들의 목을 곧게 하기를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믿지 아니하던 그들 조상들의 목 같이 하여 ”
각 선지자와 각 선견자. - '선지자'와 '선견자'는 근본적으로 같은 말입니다. 삼상 9:9에는 "지금 선지자라고 하는 자를 옛적에는 선견자라 일컬었더라"고 언급되어 있습니다.
너희는 돌이켜 너희 악한 길에서 떠나. - 주로 이러한 어투로 예언자 선지자는 예레미야(렘 7:3, 5 ; 18:11)와 에스겔(겔 33:11)입니다.
그래서 혹자는 이 부분만큼은 적어도 위의 두 사람 중 한명이 기록한 것으로 생각합니다(Gray).
그러나 이 다음에 나오는 '명령', '율례', '율법' 등의 단어는 주로 신명기에서 사용하던 어휘이며 신18:18과 본절의 사상이 거의 일치합니다.
따라서 위의 주장은 진위(眞僞) 여부는 분명치 않습니다.
다만 우리는 이 부분에서 이스라엘을 돌이키기 위해 본서 기자가 얼마나 정성을 기울였는가를 여실히 느낄 수 있습니다.
그들의 목을 곧게 하기를. – 본절 이하에서는 출애굽 이후 여호와께 불순종하던 이스라엘의 완악한 역사가 지적되고 있습니다.
사실 애굽에서 구원해 주신 여호와께 대한 이스라엘의 완고한 외고집은 성경 전체에서 계속해서 지적되고 있는 사항입니다(출 33:3,5 ; 대하 36:13 ; 느 9:16,17,29 ; 렘 17:23).
이것은 하나님을 향하여 바로 서기를 거부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삼하 22:41 ; 렘 18:17).
그리고 '목을 굳게 하다'는 말도 하나님의 뜻에 대해 불순종 하거나 굽힐줄 모르는 인간의 외고집, 교만 등을 나타내는 성경의 관용적인 표현입니다(출 34:9 ; 신 9:6 ; 대하 30:8 ; 렘 7:26).
믿지 아니하던. - '믿는다'에 해당하는 '아만'은 '확신', '신뢰', '진실'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는 단어입니다.
따라서 본절은 당시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와를 확신하고 신뢰하지 않았음을 지적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2) 허무한 것을 뒤따라 허망하며 여호와께서 따르지 말라 하신 이방 사람을 따랐습니다(15절).
“[15] 여호와의 율례와 여호와께서 그들의 조상들과 더불어 세우신 언약과 경계하신 말씀을 버리고 허무한 것을 뒤따라 허망하며 또 여호와께서 명령하사 따르지 말라 하신 사방 이방 사람을 따라”
그들의 조상들과 더불어 세우신 언약. - 본서에서 언급되고 있는 언약은 크게 다음 세가지입니다.
① 11:4, 17에서 요아스에 의해 다시 체결된 다윗의 언약,
② 13:23에 언급된 아브라함의 언약,
③ 본절에 언급된 시내 산 언약이 그것입니다.
그런데 본절에서 언급된 언약을 시내 산 언약으로 볼 수 있는 까닭은 전후 문맥이 출애굽 및 광야에서의 사건들과 깊은 연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출 19:5-8 ; 24:3-8).
한편 이 시내 산 언약은 이스라엘 민족이 국가를 형성하기 시작할 때에 비로소 주어진 언약이었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근간(根幹)은 바로 이 시내 산 언약으로 이루어져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따라서 본서 기자는 여기에서 이스라엘 민족이 바로 이러한 하나님과의 근본적인 언약을 떠났음을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경계하신 말씀을 버리고. - 여기서 '말씀'에 해당되는 히브리어 '에두트'는 '증거'를 뜻하는 것으로 주로 율법이나 십계명 또는 그 밖의 성스러운 의식(儀式)들을 가리킵니다(신 4:26 ; 30:19 ; 31:18).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같은 규례나 법도를 저버렸다 하니 곧 저들의 타락의 첫 관문을 훨씬 넘어섰음을 의미합니다(시 119:1-11).
허무한 것을 뒤따라 허망하며. - 여기서 '허무한 것'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헤벧'은 '바람', '먼지', '무가치한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허망하다'는 말 역시 이와 동일한 어근(語根)을 지닙니다.
한편 본절과 같은 이러한 표현은 예레미야서와 같은 데서 자주 나타나는데(렘 2:5) 주로 이방의 우상 숭배를 지적하는 표현으로 쓰였습니다.
또 바울은 이방인들에 대해서도 아러한 어투로 표현했습니다(롬 1:21).
즉 이것은 헛된 우상을 숭배하는 자들은 모두가 무가치하며 무존재한 자들임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에서 더 나아가 신 32:21에서는 우상 숭배가 부패하고 사악한 것으로서 하나님의 진노를 격발하게 하는 것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방 사람을 따라. -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이스라엘인들에게 이방 사람들을 본받지 말라고 명령했었습니다(레 18:3 ; 신 12:30,31).
왜냐하면 이방 문화는 하나님을 떠난 문화로서 그 문화를 받아들일 경우 최소한 혼합주의가 일어나지 않으면 그 이방 문화에 삼켜지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예는 한국에 기독교가 전파되었을 때, 기독교가 토속 종교와 접합되어 여러 가지 이상한 형태의 혼합주의로 나타난 데서도 발견됩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세상 문화를 기독교 문화로 만드는 일에 적극적으로 임해야 합니다.
만일 그렇지 못하면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 자신이 세상 문화에 빠져 들게 될 것입니다.
(3) 이스라엘이 행한 우상숭배를 열거하는데, 우상숭배가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16~17절).
① 두 송아지 형상을 부어 만들고 아세라 목상을 만들고 일월 성신을 경배하며 바알을 섬깁니다(16절).
“[16]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의 모든 명령을 버리고 자기들을 위하여 두 송아지 형상을 부어 만들고 또 아세라 목상을 만들고 하늘의 일월 성신을 경배하며 또 바알을 섬기고 ”
두 송아지 형상을 부어 만들고. – 여기서 특별히 '두 송아지'가 언급된 것으로 보아 이는 아론의 금송아지 사건(출 32장)이 아닌 여로보암의 두 금송아지 사건(왕상 12:28-30)을 가리킴을 알 수 있습니다.
하늘의 일월 성신 - 이것은 소위 천체(天體) 숭배라고 하는 것으로서 바벨론이나 아라비아에서 널리 알려져 있는 우상 숭배입니다.
그런데 북왕국 이스라엘의 역사에는 이러한 천체숭배를 했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단지 유다의 므낫세가 일월 성신(日月星辰)을 숭배했다는 기록이 있을 뿐입니다(21:3).
한편 혹자는 므나헴(Menahem, B.C. 752-742) 시대에 바벨론의 성운(星雲) 숭배 사상이 이스라엘에 도입되지 않았는가 하고 추측하기도 합니다.
또 암 5:26에는 이미 B.C. 8세기 중반경에 성운 숭배가 있었다는 암시가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피조물인 천체를 숭배하는 일에 대하여 엄중히 경고하고 있습니다(신 4:19 ; 17:3).
이와 관련해서는 21:1-18 강해, '자연신론의 제형태'를 참조하라.
바알을 섬기고 - 바알(Baal) 숭배가 처음 언급된 때는 기드온 시대입니다(삿 6:25-32).
그러나 바알을 가장 널리 보급시킴으로써 온 이스라엘로 하여금 바알 숭배에 빠지게 한 왕은 바로 아합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왕상 16:31-33 주석을 참조.
② 자기 자녀를 불 가운데로 지나게 하며 복술과 사술을 행하고 스스로 팔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습니다(17절)
“[17] 또 자기 자녀를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며 복술과 사술을 행하고 스스로 팔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그를 격노하게 하였으므로 ”
자기 자녀를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며. - 몰렉(Molech) 종교의 인신 제사(人身祭祀) 행위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고대 가나안 족속들은 자식들 중 한 명을 택하여 몰렉에게 바치면 나머지 자식들에게 축복이 임한다고 믿었습니다.
이러한 몰렉(또는 몰록) 종교의 사악한 풍습에 대해서는 16:3 주석 및 레 18:21 주석을 각기 참조.
한편 일월성신 숭배와 마찬가지로 몰렉 종교의 인신 제사를 드렸다는 기록 역시 북왕국 이스라엘 역사 가운데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다만 16:3에서 유다 아하스가 이러한 인신 제사를 드렸다는 사실들을 볼 때 이스라엘에서도 이러한 행위들이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은 할 수 있습니다.
또 이스라엘의 선지자의 글에도 이러한 행위들이 이스라엘 가운데 있었음을 암시한 곳이 있습니다(호 4:2 ; 5:2 ; 6:8).
복술과 사술을 행하고 - 복술(卜術)은 무슨 표적을 보고 점을 치거나 미래에 일어날 일을 예언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사술(邪術)은 여러 가지 마술로써 사람을 현혹시키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신18:10에서는 몰렉 숭배와 함께 이러한 복술과 사술 행위가 엄히 금지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아합 시대에 이러한 행위들이 있었던 것으로 분명히 성경에 언급되어 있습니다(9:22).
그리고 에스겔서도 이러한 점술 또는 술수가 행해졌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겔 21:21).
스스로 팔려.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팔다'라는 뜻의 동사 '마카르'의 재귀형으로서 구약에서는 단 14번 밖에 쓰이지 않았습니다.
그 중 신 28:68에서는 자신을 종으로 파는 것을 가리키고 있고,
왕상 21:20, 25에서는 아합이 그의 아내 이세벧의 충동에 의해 악행을 행하였음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이 단어 속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우매함이 비유적으로 잘 나타나 있습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악의 길에 빠져 든 것은 그들 스스로의 선택을 통해서였습니다.
다시 말해 그들은 어떤 다른 영향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들의 자유 의지에 의해서 악행을 한 것입니다(약 1:14).
따라서 그들은 자신의 죄에 대하여 변명할 수 없으며(롬 1:20),
어떠한 징벌을 받더라도 할 말이 없습니다(렘 11:11 ; 살전 5:3 등).
그런즉 우리들은 죄에 대한 책임이 인간 개개인에게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자(신 24:16). 그리하여 우리 몸을 병기로 드려(롬 6:12,13) 우리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과 싸워 이기기에 힘쓰며(롬 6:19 ; 7:22,23) 우리를 죄에서 건져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에 감사드리는 삶을 힘써야 할 것입니다(롬 7:25).
(4) 이스라엘이 망한 것은 우상숭배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 때문입니다(18절).
“[18]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심히 노하사 그들을 그의 앞에서 제거하시니 오직 유다 지파 외에는 남은 자가 없으니라”
본절은 7-17에 열거된 죄악들로 인하여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심판하셨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유다 지파 외에는 남은 자가 없으니라. - 다시 말하면 이것은, 이스라엘 열 지파의 멸망이 남음 유다의 두 지파(유다와 베냐민, 왕상 12:21)에게 경고가 됨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마가서 1장에서도 이와 같이 사마리아의 패망이 예루살렘에 경고가 됨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또 렘 2-3장과 겔 6장도 이와 같은 내용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같은 경고에도 불구하고 유다 지파 역시 계속 죄악 된 길을 걸어갔으니 그들 또한 결국 예루살렘 함락(B.C. 586년)이라는 파국을 맞고 말았습니다(19,20절 ; 25:1-17).
3) 이스라엘을 버리신 여호와(19~23절)
(1) 유다와 관련된 죄로 이스라엘의 죄를 유다까지 퍼트렸다는 것입니다(19절).
“[19] ○유다도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사람들이 만든 관습을 행하였으므로 ”
본절과 다음 절은 삽입절로서 유다도 마찬가지로 이스라엘이 행한 죄악을 따라 행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수 없었음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한편 유다 왕들 중에 이스라엘 열왕을 따라 행한 왕으로서는 여호람, 아하시야, 아달랴, 아하스, 므낫세, 아몬 등을 들 수 있습니다.
이들은 이스라엘 열왕들과 같이 바알을 숭배하며 이방인의 풍습을 따라 행한 왕들입니다(8:18 ; 16:3,4 ; 21:2-9, 20-22).
(2)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온 족속을 망하게 하였습니다(20절).
“[20]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온 족속을 버리사 괴롭게 하시며 노략꾼의 손에 넘기시고 마침내 그의 앞에서 쫓아내시니라 ”
여호와께서...그 앞에서 쫓아 내시니리. - 성경에서 이처럼 여호와라는 이름이 직접 주어로 등장한 문장은 흔치 않습니다.
한편 삼상 15:26에서는 여호와께서 사울을 버리셨고, 23:27에서는 예루살렘을, 렘 2:37,6:30에서는 그 백성들을 버리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여호와께서 당신 백성들에 대하여 이런 태도를 취하신 것은 그들의 여호와의 율법과 규례와 명령에 대하여 순종하지 않았던 때문입니다(Hobbs).
이스라엘의 온 족속. - 문맥에 비추어 볼 때 이는 이스라엘과 유다의 모든 백성을 가리킴이 분명합니다.
노략꾼의 손에 넘기시고. - 여기서 '노략군'이란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를 각기 차례로 점령한 앗수르(3-6절)와 바벧론(25:1-17)을 가리킵니다.
한편 '손에 붙이다'는 말은 의역(意譯)하면 '멸망도록 내버려 두다'는 뜻입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범죄 한 온 이스라엘이 적군에게 패배당하도록 그냥 내버려 두셨던 것입니다.(대하 28:5) .
(3) 이스라엘 역사를 신학적으로 요약합니다(21~23절)
① 이스라엘은 다윗 왕가의 죄 때문에 하나님께서 여로보암에게 나누어 주신 것인데, 여로보암이 이 사실을 잊고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여호와를 떠났고 이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내쫓으신 것입니다(21절).
“[21] 이스라엘을 다윗의 집에서 찢어 나누시매 그들이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을 왕으로 삼았더니 여로보암이 이스라엘을 몰아 여호와를 떠나고 큰 죄를 범하게 하매 ”
이스라엘을 다윗의 집에서 찢어 나누시매. - 이 구절은 과거 선지자 아히야가 여로보암에게 주었던 예언(왕상 11:31)과 일치합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의 죄악으로 인해 통일 이스라엘 왕국이 분열되리라고 경고 하셨는데 여로보암이 다윗 왕조에 등을 돌리고 북 이스라엘 왕국의 세움으로써 온전히 성취되었던 것입니다(왕상 12:16-20).
여로보암이 이스라엘을 몰아. - '몰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야다'가 잠
7:21에서는 '꾀다', '유혹하다'라는 뜻으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리고 신 13:6에서도 우상 숭배로 이끄는 것을 '꾀다'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본절 역시 바로 이와 같은 의미인데 곧 여로보암이 혼합 종교 정책을 펼치므로 결국에는 백성들을 우상 숭배의 죄악에 빠지게 한 것을 가리킵니다(왕상 12:26-33).
큰 죄 - 이것은 배교(背敎) 또는 우상 숭배에 대한 완곡한 표현입니다.
② 이스라엘 자손이 여로보암이 행한 모든 죄를 따라 행하여 거기서 떠나지 않았습니다(22절).
“[22] 이스라엘 자손이 여로보암이 행한 모든 죄를 따라 행하여 거기서 떠나지 아니하므로 ”
여로보암의 행한 모든 죄를 따라 행하여. – 이스라엘 백성들은 무력하게 여로보암의 죄에 빠져 들었습니다.
아마도 그 까닭은 외양적으로 매력적인 모습을 지닌 죄에 미혹되었기 때문일 것입니다(창 3:6 ; 잠 9:17 ; 딤전 2:14 등).
아무튼 여기서 밝히 드러나듯이 이스라엘 백성의 타락에는 여로보암의 잘못이 컸습니다.
그 이유는 그가 이스라엘에 우상을 도입했을 뿐만 아니라 장려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로보암은 이스라엘 열왕들의 죄를 대표하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일단 제도화되고 구조화된 악은 쉽게 사라지지 않게 마련입니다(왕상 15:26,34 ; 16:2,19,26,31 ;왕하 3:3 ; 10:29 ; 13:6,11 ; 14:24 ;15:9,18,28 등).
③ 하나님께 대한 불순종의 징벌이라는 것을 분영히 드러냅니다(23절).
“[23] 여호와께서 그의 종 모든 선지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대로 드디어 이스라엘을 그 앞에서 내쫓으신지라 이스라엘이 고향에서 앗수르에 사로잡혀 가서 오늘까지 이르렀더라”
모든 선지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대로. – 이스라엘의 멸망을 예언한 선지자로서는 실로 사람 아히야(왕상 14:15,16)와 아모스(암 7:17)가 있으며 표면적으로 나타나지는 않으나 이외에 호세아, 이사야 선지자 등이 있습니다(호 1:6 ; 9:16 ; 사 28).
더욱이 B.C. 1406년경에 행한 모세의 고별(告別) 설교에도 이러한 경고가 나오니 곧 "여호와께서...너와 네 열조가 알지 못하던 나라로 끌어가시리니"라는 구절입니다. 신 28:36 주석 참조.
그러므로 이스라엘이 앗수르에 패망하고 포로로 잡혀 간 것은 결국 하나님의 말씀이 정확히 성취된 사건이라 하겠습니다.
오늘까지 이르렀더라 - 여기서 '오늘까지'라는 것은 본서가 기록된 당시까지를 가리킵니다(B.C. 562-536).
여기서 우리는 본서 기자의 교훈적인 의도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즉 이스라엘의 멸망과 포로됨은 모든 하나님의 백성의 치욕이었습니다.
더군다나 신명기적 역사관에 투철한 본서 기자의 입장에서 볼 때 아직까지 계속되는 고난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경고와 교훈이라는 측면에서 되씹어야 할 아픔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러기에 본서기자는 '오늘까지 이르렀더라'는 말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1)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고, 언약을 맺으시고, 함께 살 거처를 선물하시고,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도록 계명을 주셨습니다(7~18절).
그러나 이스라엘은 언약을 저버렸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목전에서 우상을 섬기는 파렴치한 행위를 서슴없이 행했고, 여호와의 계명을 버리고 우상의 가증한 행실을 따랐습니다.
하나님은 오래 참으셨지만, 결국 돌이키지 않는 백성을 향해 심판을 집행하십니다.
사랑이 깊었던 만큼 진노는 맹렬했습니다.
2) 유다가 이스라엘의 멸망에서 교훈 얻기를 바라셨습니다(19~23절).
그러나 유다도 북이스라엘의 길을 답습했습니다.
하나님은 동일한 잣대로 유다까지 심판하십니다.
북이스라엘의 멸망이 유다를 위한 경고였다면, 유다의 멸망은 지금 우리를 위한 경고일 수 있습니다.
죄에 거하고 불순종하면서도 하나님 백성의 지위를 영원히 누릴 것이라 착각하지는 않습니까?
나(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1) 하나님이 배제된 정치적 처세의 한계는 분명합니다(1~6절).
호세아는 앗수르의 압박에 굴복하고 스스로 종이 되어 조공을 바칩니다. 그가 앗수르의 지배를 벗어나려고 애굽을 의지했지만, 결국 이 일로 북이스라엘이 앗수르에 의해 멸망당합니다.
앗수르와 애굽을 오가며 위험한 줄타기를 해보았지만, 둘 다 이스라엘의 편은 아니었습니다.
마침내 이스라엘은 추락하고 망합니다.
하나님을 저버린 삶은 이토록 고독하고 비참합니다.
정치적 수완으로 존립을 보장받으려고 하는 것은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포기하는 일이며, 반드시 실패할 것입니다.
2) 이스라엘 멸망의 이유는 국력이 약해서가 아니라 믿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7~18절).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겼고, 말씀을 떠나 가증한 행위를 따랐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든든히 서는 길은 정치적 역량을 키우거나, 많은 재물을 모으는 것이 아니라, 신실한 성도들이 믿음의 기초 위에 순종의 기둥을 세우는 것입니다.
기도 : 주님이 베푸신 은혜와 사랑을 마음에 새기고 늘 기억하며 살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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