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렁이에 대하여
땡볕에 달구어진 콘크리트 바닥 위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는 벌건 알몸 끌고
뼈마디 마디 없이
온몸 촉각으로 짐수레 끌 듯 가는
내가 본 착각이었는지도 몰라
분명
유연한 몸짓으로 그 길을 가고 있었어
은밀한 곳, 또아리 틀고
밖으로 보여질, 순간
몸부림치는 안쓰러움
수레 끌 듯, 끌어야 하는 것에 대하여
핏 멍울진 알몸이
유연한 몸놀림 이었는지도 몰라
무던히 많은 연습에 떠난
것에게 묻는다
윤 상 덕-
척박한 이 땅 너는 뿌리 내릴 수 없다고 늘
어둠을 껴안고
경주 감포 바닷가 근처 간다는 유언 같은 한마디
뱉어놓고 가진 몸뚱이조차 버거워
벽제 화장터 연기로 날려 버리고
마음만 들고 가벼이 떠났다는 말 들었다
외톨박이 자식녀석 생니 뽑듯, 뽑아놓고
그래
질기디 질긴 실한 뿌리 그곳에 내려보렴
보리는 뿌리내릴 때
그 혹한 겨울을 견디듯이
텃새처럼 살아 보렴
피붙이 같은 동무가 없어서 심심할 때
낚싯대 드리우고 소주잔 기울이며
이승의 녀석들 안주 삼아
씹고
언젠가 세월의 끝 닿으면 실 한 뿌리내린
잡초처럼
그렇게 웃으며 마중해 주렴
가끔은 소식을 들을 수 있으려는지
모르겠다
우체부가 밤낮없이 가도
번지 수 틀렸다는 투정을 받을 수 없어서
일 게다
온통 봄날이 산화散花하는 지금
진달래 꽃잎 띄운 작별 주 아니지만
마시자 너 가듯
우리도 간다
벌거숭이 녀석들 안부 묻고
술잔 넘치게 쏟아도
가슴이 젖어들지 않을 것 같구나
무던히 많은 연습에 떠난 것에게 묻는다
정녕 편한 길이 되었는지
지난 흔적에 대해
장곡리 텃골에서
지난 물난리 떠밀려온 통나무
뿌리가 몽땅 뽑힌 채 널부러져 있고
하늘은 지난 기억조차 잠재우고
간간이 햇살과 빗방울 뿌리고 지나가지만
오월 숲들이
그들에 상처 푸르름의 덫으로 감싸주었다
수면 위 물풀은 일렁이지만
물밑으로 가라앉은 생채기 보듬어 안아줄
그런 손들이 있을까
다시 가보았던 물난리에 할퀴어진 논바닥엔
어느새 초록이 덮어주었고
겉면의 세상은 아문 듯 평온해 보였다
모든 것이 그러하듯
지난 것들에 흔적은 시간이 필요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