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원 태백시 삼수령에서 삼척시 미로면 댓재까지 걸었다 ...
제 27차 백두대간
(1) 언제 : 2017년 7월 30일(일) 흐리다 맑음
(2) 어디를 : 삼수령~건의령~구부시령~덕항산~환선봉(지각산)~큰재~황장산~댓재,..
25.21...(백두누계 535.32km)
(3) 누구와 : 나와 강쌤
(4) 산행이야기 : 이번 산행은 강쌤이 방학이여서 4일정도 시간적 여유가 있다기에 백두대간을 3구간
를 걷기로 하였다.또한 서울친구 한명이 더 동행하기로 하였다. 그런데 서울 친구는 급한일이 있어 다음 기회에 참석하기로 하고 평소처럼 강쌤과 둘이서 걸었다.우리는 걷다가 체력이 되면 하루를 더 걸을수도 있을것 같은 4일 일정으로 출발하였다.그리고 산행은 더위을 피해 첫날부터 일찍 출발하여 가능한 한 시원한 밤에 충분한 거리를 걸으려는 생각이였다.오늘의 산행은 시기적으로 33~34도를 오르내리는 폭염기간이고 매일 게릴라성 국지성 호우가 내리 붓기도 하여 일단 하늘이 도와 주어야 할 일이였다.그러나 우리는 고랭지 배추 마을로 유명한 귀네미 마을에서 알바를 하여 보너스로 2km쯤 더 걸었다.오늘 젖은 숲은 부담스러웠으나 때로 바람이 있어 시원했다. 수령이 오래된 황장목 소나무를 보는 재미도 있었으며 높은 산간 마을에 살면서 고랭지 배추를 재배하며 살아 가는 귀네미 마을과 안개가 피어 오르는 계곡을 내려다 보며 걷는 호사도 누렸다.그러나 말 없이 한발 한발 걸으며 지나온 나의 삶을 돌이켜 보며 때로는 반성과 회한의 시간이 됐었고 이제는 어떻게 살것인가에 대한 물음과 답이 반복되면서 정리가 되곤 했다.우리는 3~4일간의 산행을 계획하였으나 둘째날 우중산행에 지쳐 이기령에서 산행을 중단하게 되어 결국 2일간의 산행으로 마감하고 광주로 내려 갔다. 이번 산행은 많이 아쉬웠고 첫날부터 알바을 하면서 하루를 질리도록 걸었다.
오늘의 산행기를 쓴다.
(광주에서 태백으로 가는 일반고속을 탔다)
전날 미리 광주에서 강원도 태백으로 가는 버스표를 예매했다.
직행버스표을 예매 할 수 있는 웹(버스타고)도 다운 받아 오후 2시 태백행 버스을 탔다.
큰 배낭을 각각 메고 승차하는 우리를 본 버스기사님은 백두대간길 가는 걸 금방 알아 보신다.
자신도 금년 봄에 백두대간을 완주했다고 하시며 반가워 하신다. 반가웠다 그리고 나는
이번 구간에 가야 할 정보을 구할 겸 버스기사님 옆에 앉아 피재에서 댓재구간
그리고 두타산과 청옥산 이야기를 나누었다.
직업이 고속버스 기사이며 장거리 운전의 피곤함에 쉬는날이 아까웠을 것인데
짬짬이 백두대간을 걷기로 하여 5년에 걸쳐 단독종주 했다고 하신다.대단하다.
광주를 출발한 버스는 대전과 충주, 영월과 사북을 경유하여 밤 9시경 태백시에 도착한다.
나와 강쌤이 대중교통을 이용한것은 이번이 처음이며 이동할 때 불편함도 있지만
돌아올 때 운전의 부담이 없는 것이 좋았다.
이화령과 문경을 지날때는 아내의 차량을 여러번 이용하였고
이제 태백과 강릉 근처을 지날땐 고속버스를 타고 다녔다.
우리는 배낭을 메고 태백기차역 앞으로 나아갔다.
2013년 2월 눈꽃 산행후에 기차를 기다리며 언몸을 녹였던
태백역앞 2층 태백산다방이 있는지 궁금했다. 그런데 다방이 있었던 건물외관은
그대로여서 반가웠다.
태백시는 과거 탄광이 활황이였던 시절 인구 12만명의 도시였으나
지금은 인구 5만의 작은 소도시가 되어 버렸는데 그간 행정구역 개편을
감안하더라도 인구가 작은 도시이다.태백시가 석탄산업의 경쟁력 영향으로 인구 변화를
가져 왔듯이 인생사도 영원한것이 없을것 같았다.
살다보면 좋은시절과 불우한 시절은 순간의 차이이다.
그러나 그 격차는 크고 삶의 질은 많이 다르다. 그래서 변화를 감지하며 살아야 할 일이다.
내가 모르는 사이에 변화되는 상황이 되면 이미 늦은것이 되기 때문이다.
어리석은 사람이 되는것 또한 순간적인 일이며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늘 자신에게 묻고 싶음이다.
(2013년 2월 1일 친구들과 눈꽃 산행후에 태백다방에서 기차를 기다리던 모습)
늦은 저녁식사을 하기 위해 태백역앞 식당에 들어갔다.제육볶음 요리를 주문하여
태백시 도착기념과 내일의 산행을 위한 소주잔을 부딧쳤다.
내일 일찍 산행을 출발하기 때문에 미리 든든한 식사가 필요했다.
그렇게 저녁 식사를 하고 근처에 있는 태백시 성지사우나 찜질방(24시)으로 가서
잠시 3시간 정도 잠을 자고 나와 12시30분 택시를 타고 삼수령으로 향한다.
광주에서 5시간 버스를 타고 와서 3시간 자고 밤 12시 30분에 산행을 하러 길을 나선다?
무슨 전투같은 일정이다.그러나 내가 좋아서 만든 일정이고 최선의 선택이였다.
(삼수령(피재)에 도착하여 산행준비를 마치고)
삼수령은 한강과 낙동강 그리고 삼척 오십천의 발원지이며 3강의 분수령이다.
저 돌탑 뒤쪽 숲으로 들어가며 택시기사님께 사진한장 부탁하고
1시 15분 새벽산행을 시작한다.
오늘은 25.21km 구간을 12시간정도에 주파하여 오후 2시 즈음에 끝내려 한다.
오늘의 산행은 해발 850m에서 1,100m를 반복적으로 오르 내리는
쉬운 산행코스로 보였으나 대략 지도에서 보이는 20여개의 산과
지도에서는 평지로 보이는 작은산까지 더하면
대략 30여개의 산을 넘어야 하는 결코 쉬운 산은 아니였다.
아직 안개을 품고 있는 숲은 풋풋하여 싱싱하고 젖은 낙옆은 걷기 편했다.
싸리나무와 잡목, 잡풀들이 무성하여 등산로를 덮어 버렸고
젖은 나뭇잎의 빗물이 시원하게 내몸을 적신다.
나는 준비한 바지 비옷를 입었고 강쌤은 스페츠를 차고 만반의 준비를 하고 걷는다.
비옷을 입어 걷기는 거북하지만 다행이 신발 방수가 잘 되서 새벽내내 발바닥은 뽀송했다.
등산로 옆에 정체 모른 버섯이 습한 날씨와 따뜻한 기온에 갑자기 크게 자란듯 했다.
가야 할 거리는 멀고 젖은 숲은 다소 걷기 불편하지만 산행 기분은 좋았다.
그렇게 3시간 가까이 걸었나 보다. 건의령이 눈앞이다.
백두대간 길을 걷는자들이 메어 달아 놓은 리본이 어두운 밤에 또렸하다.
지난 5월 어느날 삼척,동해,강릉지역에 실화에 의한 산불이 났다.
그 산불은 3일동안 축구장 450여개 크기의 면적이 불에 탔다.실로 안타까운 일이었다.
그 산불지역에 들어선다. 어둠속에 불탄 흔적을 자세하게 볼 수는 없으나
매퀘한 냄새가 아직 남아 있었다.자세히 들여다 보니 숯덩이 나무토막들이 보이며
안타까운 심정이며 내몸이 탄것 같은 아픔이다.
불에 탄 냄새가 있는 산불 지역을 벗어나는데 곧 건의령(巾衣嶺)이다.
"남한강 상류지역 상사미동 마을에서 삼척시 도계읍으로 가는 고갯길이다
고려 말 마지막 왕인 공양왕이 삼척 근덕 궁촌에서 살해되자
고려의 충신들이 이 고개를 넘으며 고갯마루에 관모와 관복을 걸어 놓고
다시는 벼슬길에 나서지 않겠다고 하며 태백산속에 숨었다" 라는 건의령에 도착했다.
(현판글 참조)
삼수령에서 6.3km를 걸어 건의령에 도착하는데 3시간쯤 걸은것 같다.
건의령은 역사적 사연을 간직한 고개이다.
태백산 두문동에 숨어 살던 이들과 비슷한 이야기 이다.
건의령을 넘어 푯대봉 삼거리에 이르는데 푯대봉은 패스한다.
이 지역 또한 수년전 화재 발생 구간이여서 제법 큰나무 몸통에
불에 그을린 흔적이 남아 안타깝다.그런데 그 옆에서 새로운 나무들이 자라고 있어
숲은 회생하고 있었지만 많은 시간이 필요 할 것이다 .
(한내령 안개)
이제 푯대봉 아래 한내령에 내려선다.
한내령에서 본 안개가 살아 움직이듯 솟아 오르고 안개는 깊은 계곡을 깨운다.
오늘 산행의 표고차는 높지 않아 부드러운 코스이며 이제는 건강한 참나무 숲을 지나고
낮은산 오르 내리기을 계속 반복한다.
이름 모른 봉우리에 해밀 산악회원이 석희봉(1,062m)이라는 안내 팻말을 달아 놓아
봉우리를 알 수 있어 감사했다.
나는 어느새 비와 땀이 얼굴과 온몸을 적신다.
안경은 김이 서려 불편하여 벗어 안경집에 넣었고 오랜 걸음의 열기는 얼굴로 모여들어
이마에 땀방울이 맺혔는데 잠깐의 비를 만나 시원 범벅이다.
5시40분 무렵 숲은 이슬범벅인데 동해에서 아침해가 솟아 오른다.
걷는게 거추장하여 바지 비웃를 벗었더니 바지가 물에 젖어 들기 시작한다.
이슬비가 간간히 내린듯 만듯하여 애매한 우중산행이다.
불편하여 벗은 비옷 때문에 몸은 젖어도 춥지 않으니 그런대로 재미있고 참을만 했다.
여러개의 가지를 가진 웅장한 소나무 한그루가 이 산의 수호신처럼 떡하니 서 있다.
시골마을앞 당산나무처럼 큰 소나무였다.
그리고 세월의 무게을 이기지 못하고 쓰러진 나무들은 비 바람과 미생물에 분해되어
윤회되고 있음을 본다. 살아서 거목이였던 저 나무처럼 사람도 주워진 세월앞에
어쩔 수 없으니 즐겁게 살고 아낌없이 살아야 할 일이다.
오르고 내리기를 반복하여 이제는 산을 몇개나 오르고 내리는지
가늠이 안될 정도로 반복적으로 오르고 내렸다.
이번 봉우리는 부산 낙동 산악회원이 나무에 메어단 이정표에 1,055m봉이라 했다.
지도를 꺼내 보니 걷는 거리는 12km가 넘어 가고 있었고 이제는 곧 구부시령을 만날것이다.
구부시령(九夫侍嶺)은 태백시 하시미 외나무골에서
삼척시 도계읍으로 넘나 들던 고갯길이다.
옛날 한 여인이 살면서 서방만 얻으면 죽고 또 죽어 무려 아홉 서방을 모셨다고 한다.
기구한 여인의 전설이 서려 있는 고갯마루에 서니 돌 무덤이 있는데 이 무덤이
전설속의 무덤일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구부시령 설명 현황판에서 설명하는 글을 읽고 서둘러 덕항산(德項山1,072m)향한다.
덕항산(1,072m) 가는 길은 오른쪽이 급경사 낭떨어지이며 왼쪽은 깊은 숲이였다.
덕항산 아래 동쪽에는 환선동굴,바람굴,관음굴이 있는 대이동굴지대이다.
덕항산을 지나 다시 환선봉(幻仙峰.1,081m)에 오른다.
지도에는 지각산으로 표시 되어 있으며 나무숲에 둘러 쌓여 조망은 할 수 없는 봉우리이다.
이미 햇살은 달아 오르기 시작했고 그 햇살은 눈부셨다.
이제는 오랜 걸음으로 강쌤과 대화도 줄어 들고 오로지 걷는데 몰두한다.
덕항산에서 한시간쯤 걷다가 자암재 인근 헬기장을 만난다.
이 헬기장은 쑥부쟁이와 잡풀이 사람의 키를 넘었다.
그 무성한 풀밭 사이로 백두대간꾼들이 다니는 좁은 길이 있었고 그길을 헤치고 지나간다.
자암재에 내려 서는데 허벅지가 뻐근하다.
지도상 거리로 17km(9시간)쯤 걸었고 이제 8km(4.5시간)남았다.
(귀네미 마을 배추밭에 들어서며)
고랭지 배추를 재배하는 귀네미 마을에 이른다.
귀네미 마을은 TV로 보았던 마을이다.
배추는 시기적으로 아직 포기가 여물지 않았지만 오랜 가뭄에도 건강하고 실하게
자라고 있어 다행이고 농민의 땀과 농민의 허리 아픔을 아는 나로서는
한포기의 배추가 사랑스럽고 건강한 배추가 고마웠다.
귀내미 마을 고랭지 배추밭 초입에서 쉬어가기 위해 배낭을 내리고 배추밭 시멘트길
나무 그늘에 앉아 양말을 벗엇다.
비에 젖은 풀섶을 해치며 가랑비 맞아 등산화는 많이 젖어 무거웠고 양말도 습기 많았다.
우리는 시간이 넉넉하니 충분히 쉬어가기로 하고 부르튼 발도 말리고
신발도 햇살에 말리며 젖은 양말도 갈아 신고 한참을 쉬었다.
(습기에 부르튼 발을 말리고)
한참을 쉬었다가 일어 서는데 배추밭에서 큰재로 가는 길을 모르겠다.
배추밭을 지나는데 이정표는 없었고 산 지형을 보고 대략 짐작으로 농로을 걸었다.
그렇게 배추밭을 관통하여 다시 산 들머리을 찾는데 전혀 보이지 않는다.망막한 낭패다.
한참을 해매이다가 저 아래 배추밭에서 허리숙여 무언가 일을 하시는 아주머니가 계셔서
물으니 자기는 전혀 모르겠다고 하신다.아이고야 방법이 없다.다시 되돌아 가서 처음부터 더듬어 올 생각으로 좀전에 쉬엇던 곳으로 가고 있는데 고랭지 배추밭으로 드라이브 나온
승용차 한대가 다가 온다.나는 마을분인줄 알고 대간길을 물으니 이 승용차을 운전하는 젊은
남성은 자기가 수년전에 이 코스를 걸었다며 큰재로 향하는 길을 재대로 알려 주신다.
다행이였다.그렇게 고랭지 배추밭 사이를 한참(1시간)동안 헤메이다가 뒤에서
오는 안동 산악회 일행을 따라 걸으며 큰재를 찾았다. 그러나 큰재 이정표는 잡풀에 가렸으며
잡풀과 잡목 사이 아주 작은 길이 보였고 우린 그길을 따라 어렵게 가고 있었다.
그러나 큰재에서는 이정표 옆으로 우회하는 임도(林道)가 있어 대부분 임도를
이용하여 나아가기에 정작 큰재 대간 길은 풀숲에 묻혀 버렸고
우린 그길을 따라 힘들에 풀섶을 헤치고 찾아가야 했다.
그러나 길을 아는 대부분 사람들은 이구간에서 임도를 따라 우회하여 가는것 같았지만
우리는 그렇게 큰재를 어렵게 넘었다.
이 구간 같이 걸었던 안동 산악회분들은 4명인데 36개 팀으로 나눈 코스를 백두대간
전체구간에서 안동산악회원들이 각기 다른 장소에서 한꺼번에 동시에 출발하여
오늘 하루에 백두대간 전구간을 완주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산행에 참여하는 사람이 한팀에 4명씩 걷는 다면 144명이 참여하게 된다.
오늘 안동 산악회는 거대한 행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골프에서 비슷하게 경기하는 방식이 있는데
샷건방식이라하여 18홀 전체에서 동시에 출발하여 경기를 하는것과 비슷하다.
생소한 산행 방법이지만 재미가 있는 산행방법이고
인원이 많은 단체 산악회나 자치단체에서 시도 해 볼만한 방법이다.
(큰재에서 찍은 안개와 잠자리)
서향으로 뒤돌아 보며 안개 머금은 계곡 사진 한장 찍는데
고추잠자리 한마리가 앵글에 잡혔다.
(큰재 이정표)
시간을 까먹었던 큰재 이정표 앞에서 안동산악회 여성분께 사진한장 부탁했다.
이제 오늘산행의 막바지 황장산(975m)을 넘는다.
댓재까지는 1.6km남았고 벌써 시간은 오후 2시를 지나고 있으며
배고프고 허리가 뻐근했다.
(백두대간 댓재 표시석 앞에서)
오후 3시 댓재에 내려선다.
원주에서 강릉으로 가기 위해 넘던 고개이고 가깝게는 삼척시 하장면에서
삼척시를 잇는 고개이다.
등산화를 바꾸어 온 강쌤은 자신의 발과 맞지 않아 걷는 동안 불편하여 자주 고쳐 신었다.
우리는 내일의 산행이 있어 체력 안배을 위하여 자주 쉬면서 걸었고 14시간을 걸어
오늘 27km를 걸었다.(알바거리 포함)
그동안 우리는 모텔이나 24시 사우나에서 자고 나오곤 했다.
이번에는 민박을 해보고 싶었다.그리하여 댓재 아래 댓재휴게소에서 숙박을 하려고 계획했었다.
그래서 댓재 휴게소 방향으로 걷고 있는데 삼척행 버스가 올라 오고 있었다.
순간 피곤한 몸이 사우나 온탕에 들어가고 싶어졌고
그래서 순간적인 판단과 반응으로 삼척행 버스에 무작정 올랐다.
삼척시로 나가 모텔에 들어 젖은 옷을 세탁하여 모텔 주인에게 탈수를 부탁하였더니
따끈하게 건조까지 해 주신다.고맙고 감사했다.그리고 온수를 받아 따뜻한 목욕을 하였다.
3일간의 산행계획중 내일의 두번째 산행을 위하여 일찍 잠자리에 들며
수고한 하루를 마친다.
2017년 7월 30일(일) 흐리고 맑은날 걷고, 8월 7일 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