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두 의학박사의 요양병원 이야기 (28)
어떤 결혼식
“선생님, 이번 주 일요일 제 아들이 결혼합니다.”
하반신마비로 휠체어에 몸을 의지하고 다니는 60대 초반의 박 씨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아이쿠, 축하합니다. 그러면 하루 외출하셔야겠군요.”
“그런데 예식장 측에서 제가 오는 것을 꺼려 합니다.”
“아니, 왜 그렇지요? 예식장에 장애인 엘리베이터가 없는가요?”
“시설은 다 되어 있는 모양입니다. 헌데 신랑 아버지인 제가 휠체어로 다니면 신랑신부에게 조명이 가야 하는데 저 때문에 집중력이 흐트러지고, 그리고 장애인 아버지를 공공연히 드러내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아서…. 대신 제 동생이 혼주 자리에 앉기로 했습니다.”
요즘도 양가 측에서 좋은 면만 보여주려고 하고 장애인이 결혼식에 참석하는 것도 꺼려 하는 세상이라 안타까웠다.
기억에 뚜렷이 남아있는 결혼식이 생각났다. 고향 후배 딸의 결혼식이었다.
“형님, 다음 주 일요일 우리 수영이가 결혼을 합니다.”
“수영이가 벌써 그렇게 되었나. 자네 몸은 좀 어때?”
후배는 몇 년 전에 뇌출혈이 와서 고생한 적이 있었다.
“요즘 많이 좋아졌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수영이 결혼 때문에 신경을 많이 써서 그런지 가끔 머리가 아프고 어지러워요.”
시골에서 고향 사람들이 많이 올 것 같아서 나는 2시간 전에 예식장에 나갔다. 후배는 몇 달 사이에 몸이 좀 수척해졌고 약간 지쳐보였다. 11시쯤 되니 시골에서 고향 사람들이 많이 올라왔다. 후배가 갑자기 식은땀을 흘리더니 휘청거리며 자리에 앉았다. 상태가 심상치 않아서 다가가 보았다. 후배는 힘없이 앞으로 꼬꾸라져 의식을 잃고 바닥에 쓰러져 버렸다. 이, 이런~하객들은 모여들고 있는데 신부 아버지는 쓰러져 버렸으니…. 119에 급히 신고를 한 후 환자의 넥타이를 풀어주고 조용한 곳으로 옮겼다. 의식을 잃고 얼굴이 하얗게 변해버린 후배. 잠시 후 후배는 의식이 돌아와 사람을 알아보았다. 의식의 끈을 꼭 잡고 있음을 느낄 정도로 용을 쓰고 있었다.
“자네 지금 병원 응급실로 가야겠네.”
“형님, 제가 일 때문에 바빠 수영이와 같이 지낸 시간이 거의 없었는데 결혼식만이라도 같이 있어주어야 해요.”
“결혼식은 자네 없이도 할 수 있으니 나와 병원에 빨리 가세.”
“형님, 제발…. 결혼식이 끝날 때까지만은 죽더라도 이곳에 있어야 해요. 내가 수영이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이것 말고 뭐 있겠어요?”
“이 사람아. 병원에 빨리 가지 않으면 결혼식이 끝나기도 전에 죽을 수 있어.”
황갈색 제복을 입은 119 구급대원 세 사람이 금세 도착했다. 접이식 환자운반대를 가지고 왔다. 후배는 기어코 일어나 앉으며 한사코 병원으로 가기를 거부했다.
“수고하십니다. 전 의사입니다. 제가 책임질 테니 일단 그냥 돌아가시겠습니까?” 사
회자가 뛰어왔다.
“어떻게 할까요?”
“신부 아버지는 내가 책임질 테니 예정대로 식을 거행하게. 단 주례에게 신부 아버지가 쓰러져 병원에 가야 한다고 최대한 빨리 진행해 달라고 하고, (신부 아버지가 걸을 수 없으니) 신부와 신랑을 동시에 입장시키게.”
이윽고 사회자가 식을 진행한다는 방송이 들렸다.
“자네, 한 30분 정도 앉아 있을 수 있겠나?”
후배의 한쪽 입이 조금 처진 것이 보였다.
“할 수 있어요. 이것만은 꼭… 해야 돼요.”
갑자기 환호성이 울렸다. 신랑과 신부가 손을 맞잡고 경쾌하게 걸으며 동시에 입장을 하는 것이었다. 그 장면은 아주 인상적이었다. 사람들은 말했다. 저렇게 해도 보기 좋네…. 이런 위급한 상황에 주례사를 왜 그렇게 길게 하는가? ‘다 치우고 성혼선서만 하란 말이오!’하고 외치고 싶었다. 다행히도 가족사진까지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후배는 다시 눈을 떴다.
“형님, 어찌 되었습니까? 잘 끝났습니까?”
“잘 끝났네, 오늘처럼 환상적인 결혼식은 처음 보네. 가족사진도 잘 찍혔고…. 친척들도 걱정이 되어 입을 굳게 닫고 있는데 자네 혼자만 활짝 웃고 있더군”
후배는 안면마비가 와서 입을 다물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 사람아, 제발 그만 울게. 오늘 같이 좋은 날 왜 그렇게 자꾸 우는가?”
앰뷸런스는 사이렌을 울리며 거리를 달렸다. 부모의 마음이란 이렇듯 내가 어떻게 되든 자녀의 결혼식을 무사히 마치는 것이다. 건강한 아버지의 손을 잡고 식장을 걸어가고 싶겠지만, 돌아가셨거나 아프거나 장애가 있어 같이 함께 할 수 없을 때가 종종 있다.
세상의 모든 아들, 딸들이여! 부모에게는 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것이 자녀이다. 그 마음 조금만 헤아려주는 자식이 되어보자. 5월은 가정의 달이다. 자식의 말 한마디에 울고 웃고 하는 것이 부모이다. 돈을 들여 효도하려고 하지 말고 전화라도 자주 하여 부모에게 감사하고 사랑한다는 따뜻한 말을 전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