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억수 또는 폭우.
최강 고속 샤워 물줄기보다 더 굵고 세다.
바람을 타고 두두둑 돌진해 오니
창문도 아파서 거친 신음을 한다.
경사진 도로는 냇물 되었다.
그저 차량들만 고속 와이퍼를 작동한 채 오고간다.
조신하게 집에서 비 보며 날궂이를 할까,
오랜 만에 빗속 차량 샤워를 시켜볼까?
추륵추륵~ 눈 귀호강에 온 몸 씻듯 시원하지만
올 해 마지막 한을 쏟아내는지도 몰라
온 몸으로 빗소리를 담고 싶다.
빗소리와 빗물은 연출없는 다큐
관종 딱지 걱정 없이도
나만의 방식으로 비를 즐기고 싶다.
빗속을 둘이서? 아니 비와 둘이서...
순간 저 쪽에 우산 없는 누군가가 나타난다.
검정, 빨강, 투명, 체크무늬의 우산들이
바람에 꺾일 듯 종종걸음치는데
얼핏 교통경찰관의 야광 점퍼 같은 상의,
야구 모자와 검정 반바지 차림의 건장한 남자다.
뛰지도 않고 뚜벅뚜벅 흰색 suv로 접근
뒤 트렁크를 열더니 수건(?)을 꺼낸다.
설마~~내꽈?
설마는 또 사람을 잡았다.
내게는 게이 친구가 있다.
예전엔 다들 숨겼으니
친구(애인) 만들기가 보통 어렵지 않았을 터,
내가 물어봤다.
너, 어떻게 친구(애인)만드니?
으음~~우린 다 알아봐.
(요즘은 게이바도 많으니 좀 다르겠지만..)
임자는 임자를 알아보는 법.
저 남자가 비오는 날 우산도 없이
뒤 트렁크에서 수건을 꺼낼 때....
나는 평생 나 말고 이런 미친 짓 하는 사람 첨 봤다.
저 남잔 더 대단하다.
이 비에 우비도 우산도 없이...
사실 우산을 받치면 제대로 하기 힘들다.
옆차 스칠까 조심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바로 오늘이야..
두 마리 토끼를 잡으러 가야지.
운전대를 잡기 전에
일회용 노랑 우비와 극세사 걸레를 챙겼다.
빨대 같은 빗줄기는 여전히 빼빽하다.
시동켜고 나무와 풀과 물만 보이는 곳으로 향했다.
차창은 폭포수 같은 빗물이 미끄러지고
고속 와이퍼도 무용지물이다.
앞 차의 미등만 따라갈 뿐이다.
넓은 공원 주차장에 들어서니 역시 아무도 없다.
가져온 우비를 입고 단추를 채우고
야구 모자를 쓴 위에 우비 모자를 덧 씌웠다.
차문을 열고 밖으로 나서 몇 발 짝 앞으로 옆으로...
백일홍과 메리골드가 물 만나 때 벗고 선명한 빨강 노랑을 뽐낸다.
강은 비 같은 거엔 관심 없이 그냥 흘러만 간다.
산에서 내려온 개울도 물이 불어 깊고 넓게 강물 흉내를 낸다.
트르륵 비닐 터지는 소리를 내며
우비를 뚫고 세포 속으로 침투하듯 묵직하게
빗방울들이 내 몸을 때려댄다.
공원을 한 바퀴 돌았다.
비는 날 희롱했고 난 빗물처럼 퍼지며 시야가 흐릿하다.
차로 돌아와
아까 그 남자가 하듯 나도 문질러 댔다.
묵은 먼지도 쓱쓱 떨어내고
때국물 흐른 자국도 문질렀다.
그 비를 맞으며..
5분 걸레질만으로도 나의 차는 개운하다.
과연 드라마나 영화 찍는 것도 아닌데
홀로 자발적으로 폭우를 맞을 수 있을까?
비가 불시에 오기 시작해도 신통방통하게도
금방 거리는 우산꽃이 핀다.
가방이나 신문지로 머리 덮고
처마 찾아 달리는 풍경은 아주 소수다.
일기 예보 확인은 현대인은 필수 루틴이고
조금만 꾸무리해도
삼단접이 우산 정도는 가방에 챙겨 넣는다.
경이적 비강박 유비무환..
비를 좋아하고 맞는 것도 로맨틱하게 여기지만
실상 열린 공간에서 감행하는 사람은 없다.
아주 느긋하게 빗속을 걷는 사람이 있다면,
우선 우산을 같이 쓰자며 의향을 물을 것이다.
일부러 맞는다고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비에 젖는 모습은 몹시 처량하고 처연하기에
비 맞는 행위는 참으로 감행하기 어렵다.
영화나 찍는다거나 또는
지독하게 타인의 시선을 즐기는 관종이라면 모를까.
그렇지만 이런 억수가 내리는 날이면
아무도 없는 곳에서 나만의 방식으로 비를 맞고
차의 묵은 먼지도 떨어 낸다.
비는 또 올테지만
오늘의 이 억수는 연 1회도 될까 말까.
나를 공원으로 달리게 마음을 흔든
아침의 그 남자도 비를 맞고 싶었을까,
아님 그저 차량 샤워를 한 것일까?
그 어떤 것이라도 상관없다.
그 덕에 난 비록 맨 몸은 아니었지만
제대로 비를 맞았다.
부끄러워 맞지 못하는 비를 홀로 제대로 누렸다.
게제에 차도 샤워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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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사진은 가져왔다.
말 그대로 억수라 처마 없는 곳에선 도저히 찍을 수가 없었다.
오늘 온 비의 모습과 흡사하다.
사진출처:
https://www.google.com/url?sa=i&url=https%3A%2F%2Fwww.youtube.com%2Fwatch%3Fv%3DOf3wJ8fWJQ0&psig=AOvVaw0y4hCc-d-sPNnZYw_2Z3P5&ust=1629627233049000&source=images&cd=vfe&ved=0CAsQjRxqFwoTCKjSgtfwwfICFQAAAAAdAAAAABA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