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간 이후 ‘호빌밭의 파수꾼’은 현대적인 의식을 키워가던 젊은 독자층에, 그리고 홀든 콜필드와 자신을 동일시한 무수한 아웃사이더들에게 경전처럼 읽혔다. 샐린저는 화려한 사교계 파티에 불려 다니는 것에 신물을 냈고, 빨간 사냥 모자를 쓴 홀든 콜필드를 흉내 낸 열성 팬들이 지나치게 가까이 접근해 오자 신변의 위협을 느꼈다.
극중 샐린저가 자주 내뱉는 단어 중 하나가 'Phony'(위선의, 가짜의)다. 작가로서의 성공 이후, 그가 그토록 경멸한 세계가 오히려 성큼 다가온 것이다. 샐린저는 곧바로 은둔자의 삶을 택했다. 뉴햄프셔주 교외로 이사해, 말 그대로 세상에 높은 담을 치고 살았다. 2010년 사망하기까지 자택에 칩거하면서 요가와 불교 명상, 채식을 즐겼고 과격한 신비주의 사상에 심취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샐린저가 절대로 용납하지 않는 것 중 하나가 소설의 영화화였다. <워터프론트>(1954) <에덴의 동쪽>(1955)을 만든 엘리아 카잔 감독, <이중 배상>(1944) <선셋 대로>(1950)의 빌리 와일더 감독은 ‘호빌밭의 파수꾼’을 영화화하기 위해 판권에 탐을 냈지만, 샐린저에게 번번이 거절당했다. 엘리아 카잔 감독에게 거절 이유로 "홀든이 좋아하지 않을 것 같은데요"라고 밝힌 일화는 꽤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그 대답이 지니는 무성의함 혹은 완고함이 문학 애호가들에게 묘한 쾌감을 준 것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