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시절 추억을 소환하며 3학년5반 이 희열
코로나라는 전염병으로 어려운 시기에 대전상고 졸업 50주년 기념 행사를 준비하는 집행부의 노고에 감사 드리며 학창시절 얘기를 글로 써 달라는 부탁을 받고 뜻대로 행하여도 도리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나이( 從心 : 70세 )가 된 졸업후 반세기가 지난 지금 새삼스럽게 고교시절 추억을 소환해 봅니다.
그 시절 흔히 있었던 일이지만 중학교를 졸업하니 고등학교는 보낼수 없다는 부모님의 말에 중학교 담임 선생님과 대전에 살던 누님의 권유로 후기 모집인 대전상고 야간반 원서를 일찍이 제출하고 입학직전 또 다른 지인의 도움으로 주간반으로 옮길 수 있었습니다.
상고 입학하여 처음 주산을 접하고 방과후 일반주산부에서 털고 놓기를 외치며 가.감.승.제와 전표산을 수없이 반복하고 자취방에 가서 밥상밑에 다리를 뻗고 또다시 연습하여 영어로 된 승급 자격증에 기뻐하던 추억. 상업부기, 공업부기 문제를 참 많이 연습했던 추억. 훗날 입행시험에 많은 도움이 되었지요.
1학년때 대전문화원에서 대전상고, 대전고, 보문고, 대전여고. 대전여상. 호수돈여고등 학생들의 봉사모임인 한마음 동지회라는 써클에 손수환,이수형,송종찬,임헌국, 이명우 친구들과 함께 가입하여 방학때 농촌 봉사활동을 다녔던 추억, 지금은 고등학생 농활이 없지만 당시는 유네스코와 문화원의 후원을 받아 고등학생도 농활을 할수 있었습니다. 장소는 주로 버스에서 내려 한시간 이상 걸어서 가야했던 청양군 정산면, 공주군 남면등 농촌마을에 가서 문맹 퇴치운동과 4H(智.德.勞.體)라는 농촌청소년 활동체 결성 및 후원을 하며 시골마을 주부 및 청소년들과 일주일 이상 함께 했었고 봉사활동이 끝나고 오면 시골 청소년들과의 많은 서신교환과 봉사자들끼리 서신교환이 있었는데 같이 활동했던 대전여고생이 나한테 보낸 편지를 타교 남학생이 가로채서 내용이 궁금했던 재미있는 추억도 있습니다.
또한 은행 취업이 확정되었는데 한전에서 보내준 입사원서 숫자만큼 의무적으로 시험보는 인원을 채우기 위하여 담임 선생님의 명으로 반 대표로 억지로 강릉으로 시험을 보러 6명(이석호,박대서등 )이 가는도중 기차 환승을 위해서 당시 유일하게 통행금지가 없던 충북 제천역에서 역대 경찰서장 2명을 살해 했다는 깡패들과 시비가 붙어 도망다니다 돌로 팔뒤끔치를 맞고 파출소에 피신해서 경찰의 도움으로 뜬 눈으로 밤을 새고 강릉가는 새벽열차를 타고 시험에 응시 했던 지금도 아찔했던 추억이 있습니다.
당시는 우리 상고가 취업이 잘되는 명문 실업계 고등학교로 훌륭한 은사님들과 또 좋은 친구들을 만나 필요한 학업과 사회성을 배워서 원하는 제1금융권에 취업하고 퇴직후 또다시 제2금융권에서 12년간 신협이사장을 하게 되어 48년을 금융권에 있었으니 오랜기간 동안 나의 백그라운드는 항상 주산, 부기로 상징되는 대전상고가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신앙생활 30여년 하는 동안 많은 책임있는 역할과 봉사 활동을 해 봤지만 이런 마음 가짐은 학창시절 봉사 활동 경험과 생각들이 바탕이 된것 같고 지금도 신앙공동체에서 장례예식을 담당하는 봉사를 하면서 화장장에 가서 대부분 사는 동안 무거웠던 삶의 무게를 털어버리고 가벼이 한줌의 재로 변하는 망인의 마지막 모습을 보며 남은 여생을 어떻게 살것인가에 대하여 많은 가르침을 얻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