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요약정보]
| UCI | G002+AKS-KHF_13C548ACBDC6B4B1683X0 |
| 자(字) | 선여(善餘) |
| 호(號) | 감재(感齋) |
| 생년 | 1683(숙종 9) |
| 졸년 | 1749(영조 25) |
| 시대 | 조선중기 |
| 본관 | 순흥(順興) |
| 활동분야 | 문신 |
[관련정보]
| [문과] 영조(英祖) 1년(1725) 을사(乙巳) 정시2(庭試2) 병과(丙科) 10위(14/20) |
| [진사] 경종(景宗) 1년(1721) 신축(辛丑) 식년시(式年試) (進士) 2등(二等) 2위(7/100) |
[상세내용]
1683년(숙종 9)~1749년(영조 25). 조선 중기 문신. 자는 선여(善餘), 호는 감재(感齋)이다. 본관은 순흥(順興)이다.
부친 학생(學生) 안건(安鍵)과 모친 안동김씨(安東金氏[舊]) 김이기(金履基)의 딸 사이에서 태어났다. 동생은 안정운(安鼎運)이다.
1721년(경종 1) 식년시에서 진사에 합격하였고, 1725년(영조 1) 정시 문과에서 병과로 급제하였다.
1731년(영조 7)에는 함경도사(咸鏡都事)로 재직 중이었는데, 당시 갑산(甲山)‧경성(鏡城)‧경원(慶源)‧경흥(慶興)‧삼수(三水)‧온성(穩城) 등지에 기근과 재난이 발생하자, 백성들을 위해 세금을 감면해줄 것을 청원하기도 하였다. 1732년(영조 8) 장령(掌令)에 임명되었다. 1736년(영조 12)에는 조정(趙侹)의 상소가 경솔하다는 지적을 하였던 일과 이석표(李錫杓)의 죄목을 지적한 일이 화근이 되어, 관직에서 교체되기도 하였다. 이후 1739년(영조 15)에 재차 장령에 임명되었다.
[참고문헌]
CD-ROM 司馬榜目
國朝文科榜目
英祖實錄
[집필자]정병섭
.................................
謹齋先生集卷之二 補遺 / 詩 / 李起居注 仁復 榮親席上作五首 幷引
| 李仁復 | 1308 | 1374 | 星州 | 克禮 | 樵隱 | 文忠 | 興安府院君 |
金門射策。爭瞻天子之光。綺席稱觴。慶獻堂親之壽。經綸器局。錦繡肝腸。承兩家祖訓之明。專心講習。發千載聖經之奧。造道精微。早得行修之譽。因參貢擧之行。李程賦仲舒策。便成登級之龍。定國門司馬橋。果見還鄕之駟。喜氣溢於桑梓。美談及於芻蕘。昨看花走馬之春。處處皆思擇壻。今衣錦乘軺之日。人人愈重生男。大闢空堂。高張盛會。車蓋相望於道路。管絃齊奏於敎坊。
四時紅
地上仙村洛水濱。四時紅艶見來新。琴中調撫芳華曲。助獻高堂不世春。
小蠻
巾櫛當年侍樂天。情多解弄十二絃。夜深一曲須傾耳。曾學詩翁長短篇。
紅眞
恩榮宴上樂無窮。御史花搖桂殿風。一朶春光何處老。染來花彩是眞紅。
滿月
竊藥登仙竟不廻。廣漢宮裏築粧臺。折來丹桂非他物。是妾春風手自栽。
金花
遠聞仙邑闢瓊筵。巧翦黃金作寶鈿。曉起紗窓粧未了。半空仙樂下勻天。
.................................
謹齋先生集卷之二 補遺 / 詩 / 白文寶按部上謠 八首○幷序引
| 白文寶 | 1303 | 1374 | 大興 | 和父 | 淡庵, 動齋 | 忠簡 | 稷山府院君 |
按部之行東韓重臨境也。鄕先生。率生徒。述獻詩啓者尙矣。然閱前代之作。皆蹈襲陳言。而不能表出新意。故皆不足觀也。近者。起居注李公。自中朝登第而還。士夫賦詩贈行。各占三韓異迹爲題。語意不類。眞奇作也。
| 牧隱文藁卷之十五 / 碑銘 有元奉議大夫征東行中書省左右司郞中,高麗國端誠佐理功臣,三重大匡,興安府院君,藝文館大提學,知春秋館事。諡文忠公樵隱先生李公墓誌銘。幷序。 至正辛巳春。陞承奉郞監察糾正。五月。拜左正言,知製敎。俄陞通直郞典儀寺丞,知製敎。秋。中征東鄕試第二名。冬。移起居舍人。歲壬午。會試京師。中選。授將仕郞大寧路錦州判官。其在都也。遷右獻納。歲癸未。再遷起居郞起居注。歲甲申。明陵卽位。徵禮儒臣。且曰。李某擢第天朝今已三年。而不超擢。豈予崇文意哉。於是。三遷典理摠郞司僕正,左司議大夫。皆具館職知製敎,春秋館編修官。明年正月。王曰。予之待李某猶未至也。以本官授密直司右副代言。其冬。以奉翊大夫判書軍簿。又明年。移典理。冬十月。明陵曰。李某今可大用。進拜密直提學。且命先生進講書筵。先生貌嚴。詞氣簡重。明陵每謂左右日。吾見李公。不覺竦然。 |
| 일찍이 백이정(白頤正)에게서 수학해 성리학에 밝았다. 1326년(충숙왕 13) 문과에 급제해 복주사록(福州司錄)이 되었다가 춘추공봉(春秋供奉)에 발탁되었다. 1342년(충혜왕 복위 3) 기거사인(起居舍人)으로 원나라의 제과(制科)에 급제해, 대령로금주판관(大寧路錦州判官)의 벼슬을 받고 돌아와 기거주(起居注)에 올랐다. 1344년 충목왕이 즉위하자 우부대언(右副代言)이 되었고 밀직제학(密直提學)으로 승진한 뒤에는 서연(書筵)에서 진강하였다. 이어 삼사좌사(三司左使)가 되니 원나라에서 정동행성도사(征東行省都事)라는 벼슬을 주었다. 1346년(충목 2) 민지(閔漬)의 『편년강목(編年綱目)』을 제학(提學)으로서 이제현(李濟賢), 안축(安軸), 이곡(李穀) 등과 함께 증보(增補)하였으며, 충렬, 충선, 충숙 3대 실록의 편찬을 명받기도 하였다. |
僕等謹效其體。各賦東南八景一絶幷短引。拜呈行軒。
奉明綸開蓮幕。別承新主之恩。按沃轡駐桑田。先課蒼生之望。千載幸遭盛代。一方皆仰別天。奎璧英精。蓬瀛秀氣。學富曹公之八斗。便作詩仙。興酣張旭之三杯。遂通草聖。少捷禮圍之榜。直升孔子之堂。發軔名途。曳裾華秩。北門視草。有愈李翰林之飛榮。西省對花。不讓白舍人之演誥。暫投閒地。坐待良辰。適當披霧之期。遂被觀風之命。行色未過嶺外。歡情已溢民間。桑樞賤子。槐市寒生。春看洛水之淸波。預知慶會。曉得商郊之膏雨。果致高軒。顚倒而還。歌詠不足。詩曰。
| 연막(蓮幕) : 막부(幕府)를 뜻한다. 남제(南齊) 때 왕검(王儉)의 막부를 연화지(蓮花池)라고 일컬은 고사에서 비롯된 것이다. 《南史 卷49 庾杲之傳》 |
商山洛東江
雨餘江色染藍靑。十里奇巖水墨屛。刺史歡迎新按部。木蘭舟上構茅亭。
永嘉文華山
羅代金生筆法新。學書山室已千春。硯池餘滴今猶在。誰識賢侯是後身。
月城瞻星臺
前代興亡歲月經。石臺千尺聳靑冥。何人今日觀天象。一點文星作使星。
寧海觀魚臺
巖下游魚作隊行。避鉤逃網得全生。如今恩洽東溟水。圉圉洋洋尾不赬。
東萊積翠軒
碧玉千竿密作圍。滿空蒼翠積軒墀。雨天誰喚王逢手。官暇來饒一局棋。
金海七點山
海門千里水浮空。七點靑峯杳靄中。此是琴仙棲息處。乘舟且莫過悤悤。
珠浦月影臺
海上層臺景最奇。照波明月幾盈虧。不須更詠孤雲句。今古賢才各一時。
晉陽矗石樓
晉陽江水似潯陽。金碧樓高映水明。送客秋風知有日。倚舟須賦琵琶行。
諸生。示余以獻按部歌謠一軸。愛其新意。玩讀至三。然吾興州所有靈龜山宿水樓。其風致不居八景之後。而漏而不賦。余甚怪焉。使家贅鄭生。賦一絶書于卷末。以雪吾鄕山水之恥。
靈龜形勢縮山頭。下有臨溪百尺樓。須倚涼軒嚥朝日。釀成眞氣已千秋。
근재집 제2권 / 보유(補遺)○시(詩) / 안부 백문보께 올리는 노래 8수 병서인 〔白文寶按部上謠 八首 幷序引〕
안부(按部)의 행차를 우리나라에서 중시하여, 경내로 들어올 때 지방의 글 선생들이 생도들을 이끌고 와서 시를 지어 바친 일은 유래가 오래되었다. 그런데 이전의 작품을 살펴보니 모두 진부한 말을 도습(蹈襲)하여 새로운 뜻을 드러내지 못하였기 때문에 모두 볼 만하지 않았다. 근래에 기거주(起居注) 이인복(李仁復) 공이 중국의 과거에 급제하고 돌아온 이래로 사대부들이 시를 지어 전송할 때 각각 우리나라의 훌륭한 사적으로 제목을 삼았는데, 어의(語意)가 참신하였으니 참으로 훌륭한 작품이었다. 우리들이 삼가 그 체제를 본떠 각자 동남(東南 경상도) 지역의 팔경(八景)을 노래하고 짧은 인(引)을 덧붙여서 엎드려 안부께 올린다.
임금의 조령(詔令)을 받들고 막부(幕府)를 열어 / 奉明綸開蓮幕
새 군주의 은혜를 특별히 입었고 / 別承新主之恩
매끈한 말고삐를 당기고 논밭에 머무르며 / 按沃轡駐桑田
백성들의 바람을 이루는 데 우선 힘쓰네 / 先課蒼生之望
천년 만에 다행히 성대를 만나 / 千載幸遭盛代
한 고을이 모두 별천지를 우러르네 / 一方皆仰別天
규수(奎宿)와 벽수(璧宿)의 영화로운 정기와 / 奎璧英精
봉래(蓬萊)와 영주(瀛洲)의 빼어난 기운을 받았네 / 蓬瀛秀氣
학문은 조식(曹植)이 지닌 여덟 말 재능처럼 넉넉하여 / 學富曹公之八斗
곧 시선이 되었고 / 便作詩仙
흥취는 장욱이 석 잔 술을 마신 듯 무르익어 / 興酣張旭之三杯
마침내 초서의 대가가 되었네 / 遂通草聖
젊어서 과거 급제자의 명단에 들고 / 少捷禮圍之榜
곧장 공자의 당에 올랐네 / 直升孔子之堂
공명의 길에서 수레를 타고 / 發軔名途
높은 지위에서 옷을 끌었다네 / 曳裾華秩
북문에서 조서(詔書)를 기초하니 / 北門視草
한림 공봉(翰林供奉) 이백(李白)이 영예를 드날린 것보다 낫고 / 有愈李翰林之飛榮
서성에서 임금을 보위하니 / 西省對花
사인 백거이(白居易)가 제고(制誥)를 기초한 것 못지않구나 / 不讓白舍人之演誥
잠시 한가로운 지역에 들어가서 / 暫投閒地
가만히 좋은 날 기다리다가 / 坐待良辰
때마침 훌륭한 사람 만날 때를 맞아 / 適當披霧之期
마침내 관풍사(觀風使)의 명을 받았구나 / 遂被觀風之命
행차가 아직 죽령(竹嶺)을 넘지 않았는데도 / 行色未過嶺外
기뻐하는 마음은 이미 민간에 넘치네 / 歡情已溢民間
가난한 집의 천한 사람들과 / 桑樞賤子
공부하는 방의 한미한 서생들은 / 槐市寒生
봄에 낙동강의 맑은 물결을 보고 / 春看洛水之淸波
성세가 될 것을 미리 알았고 / 預知慶會
새벽에 상주 교외에 단비가 내리더니 / 曉得商郊之膏雨
높은 수레 과연 이르렀구나 / 果致高軒
급하게 돌아오느라 / 顚倒而還
노래를 다 하지 못하노라 / 歌詠不足
시는 다음과 같다.
상산 낙동강(商山洛東江)
비 그친 뒤 강물 빛 푸르게 물들었고 / 雨餘江色染藍靑
십 리의 기암 수묵병풍 같네 / 十里奇巖水墨屛
자사는 새 안렴사 환영하려고 / 刺史歡迎新按部
목란배 위에 모정을 지었구나 / 木蘭舟上構茅亭
영가 문화산(永嘉文華山)
신라 김생의 필법 새로운데 / 羅代金生筆法新
글씨 배우던 산실은 벌써 천년이나 되었네 / 學書山室已千春
벼루에 남은 먹물 지금도 남아 있으니 / 硯池餘滴今猶在
누가 알겠는가, 어진 안렴사께서 후신일지 / 誰識賢侯是後身
월성 첨성대(月城瞻星臺)
전 시대의 흥망 세월 겪고도 / 前代興亡歲月經
석대는 하늘에 천 자나 솟아 있네 / 石臺千尺聳靑冥
누가 오늘 천상을 보고 / 何人今日觀天象
한 점 문성이 사성이 됨을 알겠는가 / 一點文星作使星
영해 관어대(寧海觀魚臺)
바위 아래 물고기 열 지어 움직이며 / 巖下游魚作隊行
낚시와 그물 피해 달아나 목숨 보전 하는구나 / 避鉤逃網得全生
지금 은혜가 동해를 적신다면 / 如今恩洽東溟水
어릿하고 활발하게 움직이며 꼬리 붉어지지 않으리 / 圉圉洋洋尾不頳
동래 적취헌(東萊積翠軒)
천 개의 벽옥 장대 빽빽이 울을 지어 / 碧玉千竿密作圍
하늘에 가득한 푸르름 난간에 쌓였구나 / 滿空蒼翠積軒墀
비 오는 날 누가 왕봉 같은 고수를 불러 / 雨天誰喚王逢手
공무의 여가에 와서 바둑 한판 실컷 두게 할까 / 官暇來饒一局棋
김해 칠점산(金海七點山)
천리의 바닷물은 하늘에 떠 있고 / 海門千里水浮空
칠점산 푸른 봉우리 아득한 이내 속에 있네 / 七點靑峯杳靄中
여기는 금선이 살던 곳이니 / 此是琴仙棲息處
배 타고 급히 지나지는 말게나 / 乘舟且莫過悤悤
주포 월영대(珠浦月影臺)
바닷가 높은 층대 경치 매우 훌륭한데 / 海上層臺景最奇
물결 비추는 밝은 달 몇 번이나 차고 이지러졌나 / 照波明月幾盈虧
고운의 시구 다시 읊조릴 필요 있으랴 / 不須更詠孤雲句
예나 지금이나 어진 인재 시대마다 있으니 / 今古賢才各一時
진양 촉석루(晉陽矗石樓)
진양의 강물 심양과 같고 / 晉陽江水似潯陽
금벽루 높아 물에 밝게 비치네 / 金碧樓高映水明
가을바람 속에 객 보내는 날 있으리니 / 送客秋風知有日
배를 타고 〈비파행〉 읊조려야 하리 / 倚舟須賦琵琶行
여러 유생이 안렴사에게 바치는 노래 한 축을 나에게 보여 주었는데 그 새로운 뜻을 좋아하여 세 번이나 완미하며 읽었다. 그런데 우리 고장 흥주(興州 경북 순흥(順興))에 있는 영구산(靈龜山)과 숙수루(宿水樓) 등은 그 풍치가 여덟 곳의 풍경보다 못하지 않은데도 빠뜨리고 노래하지 않아 나는 매우 괴이하게 생각했다. 그리하여 사위 정양생(鄭良生)에게 절구 한 수를 짓도록 하여 권말에 써서 우리 고장 산수의 치욕을 씻게 하였다.
신령한 거북의 형세 산 정상에 응축되었고 / 靈龜形勢縮山頭
그 아래는 시내에 임한 백 자의 누대 있네 / 下有臨溪百尺樓
서늘한 난간에 기대 아침 해의 정기 마셔야 하리 / 須倚涼軒嚥朝日
진기 양성한 지 벌써 천년이니 / 釀成眞氣已千秋
[주-D001] 안부(按部) : 고려 때 지방장관인 안렴사(按廉使)로, 충렬왕(忠烈王) 2년(1276)에 안찰사(按察使)를 고친 이름이다. 고려 초기에 절도사(節度使)가 있었는데 현종(顯宗) 3년(1012)에 이를 폐지하고 안찰사를 두었으며, 문종(文宗) 18년(1064)에 도부서(都部署)로 개칭하였다가, 예종(睿宗) 8년(1113)에 안찰사로 환원한 것을 충렬왕 2년에 안렴사로 고친 것이다.[주-D002] 백문보(白文寶) : 1303~1374. 고려 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직산(稷山), 자는 화부(和夫), 호는 담암(淡庵), 시호는 충간(忠簡)이다. 충숙왕 때 문과에 급제, 춘추 검열(春秋檢閱)을 거쳐 우상시(右常侍)에 이르렀다. 공민왕 초에 전리 판서(典理判書)로 있으면서 과거에 10과를 둘 것을 주청하였다. 우왕(禑王)이 대군이 되어 취학하자 전녹생(田祿生)ㆍ정추(鄭樞)와 함께 그의 사부(師傅)가 되었고, 정당문학(政堂文學)에 이르러 직산군(稷山君)에 봉해졌다. 이제현(李齊賢)ㆍ이달충(李達衷)과 함께 고려의 국사를 찬할 때, 그는 예종과 인종의 양조(兩朝)를 초(草)하였다.[주-D003] 규수(奎宿)와 벽수(璧宿) : 이십팔수(二十八宿)에 속한 별자리로서 문운(文運)을 주관한다고 여겼다.[주-D004] 봉래(蓬萊)와 영주(瀛洲) : 신선이 산다는 전설상의 산 이름이다. 《抱樸子 對俗》[주-D005] 조식(曹植)이 …… 재능 : 조식(192~232)의 자는 자건(子建), 시호는 사(思)이다. 진사왕(陳思王)이라고도 불린다. 위(魏)나라 무제(武帝) 조조(曹操)의 아들이며, 문제(文帝) 조비(曹丕)의 아우이다. 이 세 사람은 건안문학(建安文學)의 중심적 존재로서 ‘문학사상의 주공(周公)ㆍ공자(孔子)’라 칭송되었다. 본문의 언급은 중국 남조의 사영운(謝靈運)이 “천하의 재주가 한 섬이라면 조자건이 여덟 말을 점유하고 있으며, 내가 한 말, 나머지 한 말을 세상이 함께 나누어 가지고 있다.〔天下才有一石 曹子建獨占八斗 我得一斗 天下共分一斗〕”라고 한 데서 나온 것이다. 《南史 卷19 謝靈運列傳》[주-D006] 장욱(張旭)이 …… 듯 : 장욱의 자는 백고(伯高)이고, 생몰년은 미상이다. 초서를 잘 썼다. 자신의 서풍(書風)을 세우게 된 유래를 적은 《자언첩(自言帖)》이 전해진다. 본문의 언급은 두보(杜甫)의 〈음중팔선가(飮中八仙歌)〉에 “장욱은 석 잔 술에 초성으로 전해지는데, 왕공의 앞에서도 모자 벗어 이마를 드러내고, 종이에 붓 대고 휘두르면 구름 연기 같았네.〔張旭三杯草聖傳 脫帽露頂王公前 揮毫落紙如雲煙〕”라고 한 데서 나온 것이다.[주-D007] 공자(孔子)의 당에 올랐네 : 학문에 조예가 매우 깊은 것을 의미한다. 공자가 자로(子路)를 칭찬하면서 “유는 당에 올랐고 실에만 들지 못했을 뿐이다.〔由也升堂矣 未入於室也〕”라고 하였다. 《論語 先進》[주-D008] 북문(北門)에서 조서(詔書)를 기초하니 : 원문의 시초(視草)는 임금의 조서를 대신 기초한다는 뜻인데, 당나라 시대에는 학사(學士)가 대궐의 북문에서 시초하였다.[주-D009] 관풍사(觀風使) : 천하의 풍속을 관찰하라고 중앙에서 보낸 관리로서 여기에서는 안렴사를 말한다.[주-D010] 봄에 …… 이르렀구나 : 임방(任昉)의 〈구일시연낙유원시(九日侍宴樂遊苑詩)〉에 “때가 오면 탁한 황하가 변하고, 서기가 일면 따뜻한 낙수가 맑아지리라.〔時來濁河變 瑞起溫洛淸〕”라는 구절이 있다. 낙수가 맑아진다는 말은 상서로운 조짐이다. 여기에서는 낙동강이 맑고 상주에 단비가 온 정경을 통해 백문보(白文寶)의 부임이 상서로운 일임을 언급하고 있다.[주-D011] 상산(商山) : 경상북도 상주(尙州)의 옛 이름이다.[주-D012] 영가(永嘉) : 경상북도 안동(安東)의 옛 이름이다.[주-D013] 김생(金生) : 711~? 자는 지서(知瑞), 별명은 구(玖)이다. 어려서부터 글씨를 잘 썼는데 나이 팔십이 넘도록 몰두하여 예서ㆍ행서ㆍ초서가 모두 입신(入神)의 경지였다고 전한다. 유일한 서첩으로 《전유암산가서(田遊巖山家序)》가 있으며, 《해동명적(海東名蹟)》ㆍ《대동서법(大東書法)》에 몇 작품이 실려 있다.[주-D014] 문성(文星)이 …… 알겠는가 : 문재(文才)를 지닌 백문보(白文寶)가 왕의 사신이 되어 이르렀다는 의미이다. 문성은 문창성(文昌星) 혹은 문곡성(文曲星)으로 문재를 주관하는 별인데 이후에는 문재를 지닌 사람도 아울러 가리키게 되었다. 사성(使星)은 사신을 말한다. 후한(後漢) 때 촉(蜀)의 이합(李郃)이 천문을 잘 보았는데 “두 개의 사성이 익주(益州)의 분야(分野)로 향하고 있다.”라고 하여 행색을 갖춘 이들이 사신임을 알았다는 데서 유래하였다. 《後漢書 李郃列傳》[주-D015] 꼬리 붉어지지 않으리 : 백성들이 노역에 시달리지 않고 편안함을 뜻한다. 《시경》 〈여분(汝墳)〉에 “방어는 피곤하여 꼬리가 붉어져라, 왕실은 타는 듯이 모질도다.〔魴魚赬尾 王室如燬〕”라고 하였는데, 방어는 본디 피곤하면 꼬리가 붉어진다는 말이 있다. 이 시는 은(殷)나라 백성들이 폭군 주(紂)의 혹독한 사역에 괴롭게 시달림을 노래한 것이다.[주-D016] 왕봉(王逢) : 원문의 ‘逢’은 ‘逄’의 오기인 듯하다. 왕방(王逄)은 당(唐)나라 무종(武宗)ㆍ선종(宣宗) 때의 바둑 고수이다. 두목(杜牧)과 친밀하게 교유하였는데, 두목이 그를 위해 지은 〈송국기왕방시(送國棋王逄詩)〉에 “형세가 약세에 몰린 듯하면서도 봄 샘물처럼 유장하고, 기회가 포착되면 들불처럼 맹렬한 기세로 태운다.〔羸形暗去春泉長 拔勢橫來野火燒〕”라는 시구가 유명하다.[주-D017] 주포(珠浦) : 구슬이 생산되는 합포(合浦)라는 의미이다. 합포는 지금의 창원(昌原)을 가리킨다.[주-D018] 월영대(月影臺) : 《신증동국여지승람》 권32 창원도호부(昌原都護府)에 “회원현(會原縣) 즉 지금의 창원은 본래 신라 골포현(骨浦縣)인데, 경덕왕이 합포(合浦)라 고쳐서 의안군(義安郡)에 예속시켰다.”라는 기록이 보인다. 특히 이곳은 최치원(崔致遠)이 거처했던 곳으로 유명하다. 3구에서 최치원을 언급한 까닭은 이러한 사실 때문이다.[주-D019] 고운(孤雲) : 최치원(崔致遠, 857~?)으로, 고운은 그의 자이다. 또 다른 자는 해운(海雲)ㆍ해부(海夫)이다. 9세기 통일신라 말기의 학자로 중국 당(唐)나라에서 〈토황소격문(討黃巢檄文)〉으로 문장가로서 이름을 떨쳤으며, 신라로 돌아온 뒤에는 진성여왕에게 시무책을 올려 정치 개혁을 추진하였다. 유교(儒敎)ㆍ불교(佛敎)ㆍ도교(道敎)에 모두 이해가 깊었고, 유ㆍ불ㆍ선 통합 사상을 제시하였다. 수많은 시문(詩文)을 남겨 한문학의 발달에도 기여하였다. 저서로 《계원필경(桂苑筆耕)》이 있다.[주-D020] 진양(晉陽) : 경상남도 진주(晉州)의 옛 이름이다.[주-D021] 배를 …… 하리 : 백거이(白居易)가 구강군(九江郡)에 사마(司馬)로 좌천된 이듬해 가을, 분포(湓浦) 어귀에서 손님을 전송하였다. 이때 어떤 배 안에서 들려오는 비파 소리를 듣고 그가 누구인지 물어보았다. 그는 장안(長安)의 창녀(娼女)였으며 목씨(穆氏)와 조씨(趙氏)에게 비파를 배웠는데, 젊어서는 호화롭게 지냈지만 늙어서는 용모가 쇠퇴하여 장사꾼의 아내가 되었다고 말했다. 이 말을 듣고 백거이는 그녀에게 몇 곡조를 청하여 들은 다음 〈비파행(琵琶行)〉을 지었다. 〈비파행〉의 첫 두 구절은 “심양강 가에서 밤에 손님을 전송하노라니, 단풍잎 갈대꽃에 가을바람은 쓸쓸하네.〔潯陽江頭夜送客 楓葉荻花秋瑟瑟〕”로 시작된다. 위 시 첫 구절에서 진양의 강물이 심양과 유사하다고 한 말과 셋째 구절의 표현은 모두 이 〈비파행〉과 관련이 있다.
ⓒ 한국고전번역원 | 서정화 안득용 안세현 (공역) | 2013
.................................
竹溪行錄一
按部之行東韓。重命。始臨境也。鄕先生率生徒。述獻詩啓者。尙矣。然閱前代之作。皆韜襲陳言。而不能表出新意。故皆不足觀也。近者。起注李公。自中朝登第而還。士夫賦詩贈行。各占三韓異迹爲題。語意不類。眞奇作也。僕等謹效其体。各賦東南八景一絶
商山洛東江
雨餘江色染藍靑。十里奇岩水墨屛。刺史歡迎新按部。木蘭舟上構茅亭。
永嘉文華山
羅代金生筆法新。學書山室已千春。硯池餘滴今猶在。誰識賢侯是後身。
月城瞻星臺
前代興亡歲月經。石臺千尺聳靑冥。何人今日觀天像。一點文星作使星。
寧海觀魚臺
岩下游魚作隊行。避鉤逃網得全生。如今恩洽東溟水。圉圉洋洋尾不赬。
東萊積翠軒
碧玉千竿密作圍。滿空蒼翠積軒墀。雨天誰喚王逢手。官暇來饒一局棋。
金海七點山
海門千里水浮空。七點靑峯杳靄中。此是琴仙栖息處。乘舟且莫過悤悤。
珠浦月影臺
海上層臺景最奇。照波明月幾盈虧。不須更詠孤雲句。今古賢才各一時。
晉陽矗石樓
晉陽江水似潯陽。金碧樓高映水明。送客秋風知有日。倚舟須賦琵琶行。
권1 안씨행록
안찰사가 동한(東韓) 지방에 온 것은 막중한 명이다. 처음 경계에 이르면 고을 선생이 생도를 이끌고 가서 헌시계(獻詩啓)를 지었는데, 이는 오래전부터 있어온 일이다. 그러나 전날에 지은 글을 보니 모두 진부한 말을 답습한 것이고 새로운 뜻을 표출하지 못하여 볼만한 것이 없었다. 근자에 기거주(起居注) 이공(李公)이 중국에서 급제하고 돌아옴에 사대부들이 시를 지어 주었는데, 각각 삼한의 기이한 유적으로 제목을 삼았다. 그 내용이 독특하여 실로 진기한 작품이었다. 우리도 삼가 그 체를 본받아 각각 동남팔경을 제목으로 하여 절구 한 수씩을 지었다 안축(安軸)
상산(商山) 낙동강(洛東江)
비 갠 뒤 강은 쪽빛처럼 푸르고 / 雨餘江色染藍靑
십리 기암은 수묵화 병풍 / 十里奇巖水墨屛
자사는 새 안렴사를 기쁘게 맞아 / 刺史歡迎新按部
목란배 위에 띠 정자를 엮었네 / 木蘭舟上構茅亭
영가(永嘉) 문화산(文華山)
신라 때 김생(金生)의 새로운 필법 / 羅代金生筆法新
산속 석실에 글씨 쓰던 때 이미 천년 / 學書山室已千春
그 당시 연지(硯池)의 물은 아직 남아 있는데 / 硯池餘滴今猶在
훌륭한 부사가 그 후신(後身)임을 누가 알꼬 / 誰識賢侯是後身
월성(月城) 첨성대(瞻星臺)
전대의 흥망 세월도 많이 지났는데 / 前代興亡歲月經
천 길 높은 석대 하늘 위에 솟았네 / 石臺千尺聳靑冥
누가 지금에 하늘의 형상을 살펴보고 / 何人今日觀天象
문성(文星) 하나가 사성(使星)임을 알꼬 / 一點文星作使星
영해(寧海) 관어대(觀魚臺)
바위 아래 떼를 지어 노는 물고기 / 巖下游魚作隊行
낚시 그물 피해 온전하게 살아가네 / 避鉤逃網得全生
지금에 나라 은혜 동해물처럼 흡족하여 / 如今恩洽東溟水
여유롭게 살면서 꼬리 붉지 않네 / 圉圉洋洋尾不赬
동래(東萊) 적취헌(積翠軒)
푸른 옥 천만 가지 빽빽이 둘러치고 / 碧玉千竿密作圍
하늘 가득한 푸른 빛 적취헌 앞에 쌓이네 / 滿空蒼翠積軒墀
비 올 때 누가 고수 왕방(王逄)을 불러 / 雨天誰喚王逢乎
관가 일 한가할 때 바둑 한번 즐길꼬 / 官暇來饒一局棋
김해(金海) 칠점산(七點山)
해변 천리 바닷물 허공에 뜨고 / 海門千里水浮空
칠점산 푸른 봉우리 아스라이 솟아 있네 / 七點靑峯杳靄中
이곳은 거문고 타는 신선이 살던 곳이니, / 此是琴仙棲息處
배 타고 훌쩍 지나가지 말게나 / 乘舟且莫過悤悤
주포(珠浦) 월영대(月詠臺)
바닷가 층대는 경치 가장 기이한 곳 / 海上層臺景最奇
물결에 비치는 달은 몇 번이나 차고 이지러졌을까 / 照波明月幾盈虧
꼭 최고운의 시 다시 읊을 것이 없으니 / 不須更詠孤雲句
고금 훌륭한 인재 각기 한 때인 것을 / 今古賢才各一時
진양(晉陽) 촉석루(矗石樓)
진양 남강은 심양강(潯陽江)을 닮았고 / 晉陽江水似潯陽
푸른 누각 우뚝 서서 물속에 비쳐 환하네 / 金碧樓高映水明
가을바람 속에 길손 보낼 날이 있으니 / 送客秋風知有日
배에 기대어 〈비파행(琵琶行)〉을 지으리라 / 倚船須賦琵琶行
[주-D001] 헌시계(獻詩啓) : 시를 지어 올리면서 인사할 때 쓰는 문체.[주-D002] 문화산(文華山) : 일명 문필산(文筆山), 또는 갈야산(葛耶山)이다. 안동 고을 남쪽 20리에 있으며 신라 김생이 이 산에서 글씨를 써서 ‘문필산’이라 하였다고 한다.[주-D003] 꼬리 붉지 않네 : 《시경(詩經)》 주남(周南) 여분(汝墳)에서 “방어 꼬리 붉고 왕실은 불타는 듯.[魴魚赬尾。王室如燬。]” 하였는데, 그 주(註)에 “힘을 많이 쓰면서 고생을 하면 물고기 꼬리가 붉어진다.” 하였다. 고생하는 백성에게 비유하는 말이다.[주-D004] 적취헌(積翠軒) : 동래(東萊) 객관 뒤에 있었던 정자.[주-D005] 왕방(王逄) : 당나라 바둑의 명수. 두목(杜牧)의 〈송국기왕방(送國棋王逄)〉 시에 “형세가 약세에 몰린 듯하면서도 봄 샘물처럼 유장한 진(陣)을 구축하고 기회가 포착되면 들불처럼 맹렬한 기세로 공격한다.” 하였다. 원문의 ‘逢’은 ‘逄’의 오기인 듯함.[주-D006] 칠점산(七點山) : 부산 강서구 대저동에 있는 산. 일곱 봉우리가 점을 찍을 것과 같아 칠점산이라 한다. 가락국 때 신선이 거문고를 안고 와서 놀았다고 한다.[주-D007] 월영대(月影臺) : 경상남도 마산시 해운동에 있는 대. 신라 문창후(文昌候) 최치원(崔致遠)이 대를 쌓고 제자를 가르치던 곳. 주포는 지금의 마산. 1993년 1월 8일 경상남도기념물 제125호로 지정되었다.[주-D008] 심양강(潯陽江) : 중국 강서성에 있는 구강(九江)의 별칭.[주-D009] 〈비파행(琵琶行)〉 : 당나라 백낙천(白樂天)이 지은 칠언고시. 사람의 영고성쇠의 무상함을 읊었다. 백낙천이 구강군(九江軍)에 좌천되어 불우한 시절을 보낼 때 심양강 분포구(汾浦口)에 배를 타고 가는 친구를 전송하였다. 그 때 우연히 배 안에서 비파소리가 들려왔는데, 이는 비파의 명수인 장안의 명기가 탄 것으로 그 또한 불우하게 살았으므로 백낙천이 그의 비파를 들으며 술자리를 베풀었고, 자신과 기생의 운명이 같음에 감회를 느끼면서 〈비파행〉을 지었다.
ⓒ 소수박물관 | 안정 (역) |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