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윳따 니까야(각묵스님 옮김), 제1권 게송을 포함한 가르침, 제1주제 천신 상윳따(S1),
제4장 사뚤라빠 무리 품 - 인색 경(S1:32)』
인색 경(S1:32)
Macchari-sutta
2. 그때 많은 사뚤라빠 무리의 천신들이 밤이 아주 깊었을 때 아주 멋진 모습을 하고 제따 숲을 환하게 밝히면서 세존께 다가갔다. 다가가서는 세존께 절을 올린 뒤 한 곁에 섰다. 한 곁에 선 어떤 천신은 세존의 면전에서 이 게송을 읊었다.
"인색하고 방일하여 보시를 베풀지 않습니다.141)
공덕을 바라고 아는 자는 보시를 해야 합니다."142) {85}
3. 그러자 다른 천신이 세존의 면전에서 이 게송들을 읊었다.
"인색한 자 두려워서 베풀지 않으니
그 두려움은 베풀지 않은 자의 것입니다.
인색한 자가 두려워하는 배고픔과 목마름은
어리석은 그를 이 세상과 저 세상에서 성가시게 합니다. {86}
그러므로 인색함을 길들이고
더러움을 극복하여 베풀어야 합니다.
공덕은 저 세상에 [가서도]
생명가진 자들의 지주가 됩니다." {87}
4. 그러자 다른 천신이 세존의 면전에서 이 게송을 읊었다.
"먼 길을 같이 떠난 동료들이 하는 것처럼
적은 것이라도 나누어 가지는 자들은
죽은 자들 가운데서도 죽지 않나니143)
이것은 오래된 법칙입니다. {88}
적게 가져도 어떤 자들은 나누어 가지고
많이 가져도 어떤 자들은 베풀려하지 않습니다.
적게 가져도 베푸는 보시는
그 가치가 천 배는 됩니다." {89}
5. 그러자 [19] 다른 천신이 세존의 면전에서 이 게송들을 읊었다.
"베풀기 어려운 것을 [참된 자는] 베풀고
행하기 어려운 것을 [참된 자는] 행하나니
참되지 않은 자들은 따라하지 못합니다.
참된 자들의 법은 실로 따르기가 어렵습니다. {90}
그러므로 참된 자들과 참되지 않은 자들의
태어날 그곳은 서로 각각 다릅니다.
참되지 않은 자들은 지옥에 태어나고
참된 자들은 바르게 천상을 향합니다." {91}
6. 그때 어떤 천신이 세존께 이렇게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누구의 말이 잘 말한 것입니까?"
7. "그대들 모두 방편적으로 좋은 말을 하였다. 그러나 나의 말도 들어보라."
[세존]
"이삭을 주워서 연명을 하더라도 항상 법을 실천하고144)
아내를 부양하며 가진 것이 적더라도 보시를 실천하면
천의 보시물로 베푸는 보시자의 백 천 배의 보시도
이 사람 [보시의] 오직 한 조각에도 미치지 못하도다."145) {92}
8. 그러자 다른 천신이 세존께 게송으로 여쭈었다.
"왜 이들의 충만하고 광대한 보시146)가
참된 사람 보시보다 가치 없는 것입니까?
천의 보시물 베푸는 자의 백 천 배의 보시도
참된 자의 한 조각에 왜 미치지 못합니까?" {93}
9. 그러자 세존께서 그 천신에게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어떤 자들은 바르지 못하게 살면서 보시를 행하니
자르고 죽이고 고통 주는 것으로 [보시를 하도다.]
그 보시는 눈물과 폭력으로 얼룩진 그러한 것이니
그러므로 참된 사람 베푼 것에 비하면 가치가 없도다.
천의 보시물 베푸는 이런 자의 백 천 배의 보시도
참된 자의 한 조각에 미치지 못하도다." {94}
141) "자신의 번영을 숨기려는(atta-sampatti-nigūhana) 특징을 가진 '인색함(macchera)'과 마음챙김이 없는(sati-vippavāsa) 특징을 가진 '방일함(pamāda)' 때문에 명예를 가져다주고, 영광을 가져다주고, 번영을 가져다주고, 행복을 가져다주는 '보시(dāna)'를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SA.i.58)
142) "'공덕을 바라는(puññaṁ ākaṅkhamāna)'이란 것은 이전의 의도(pubba-cetana) 등으로 분류되는 공덕을 바라는 것을 말하고, '앎(vijānatā)'은 보시에는 반드시 결실이 있다고 아는 것을 말한다."(SA.i.58)
여기서 '공덕(puñña)'이란 위의 「휩쓸려감 경」 (S1:3) {3}d의 주해에서 보듯이 禪(jhāna)을 뜻한다. 그곳의 주석서에 의하면 이러한 공덕은 세 가지 의도(cetanā)로 분류되는데 그것은 이전의 의도(pubba-cetanā), 나중의 의도(apara-cetanā), 해방의 의도(muñca-cetanā)이다.(SA.i.23) 그곳의 복주서는 이 셋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이 가운데서 '이전의 의도'란 근접삼매(upacāra-jjhāna)의 의도를 말하고, '나중의 의도'란 자유자재가 된 상태(vasībhāv-āpādana)와 나중에 禪에 들어서(samāpajjana) 생겨난 [삼매의] 증득[等至, samāpatti]이라는 의도를 말하고, '해방의 의도'란 오염원들을 억압한 뒤 일어난 첫 번째 본삼매(paṭham-appanā)의 의도를 말한다."(SAT.i.65)
143) "여기서 '죽은 자들 가운데(matesu)'라는 것은 베풀지 않는 습성(adāna-sīlatā)이라는 죽음(maraṇa)에 의해서 죽은 자들 가운데라는 뜻이다. 베풀지 않는 습성을 가진 자들의 재물(bhogā)은 죽은 자들의 재물과 같다. 그러므로 보시하는 습성을 가진 자(dāna-sīla)들은 이러한 죽은 자들 가운데서도 죽지 않은 것과 같다는 말이다."(SA.i.58)
144) "여기서 '법을 실천하고(dhammaṁ care)'라는 것은 열 가지 유익한 업의 길[十善業道, dasa-kusala-kamma-patha]의 법을 실천하는 것이다."(SA.i.59)
145) "'백천 배(sataṁ sahassāna)'라는 것은 천의 천 배에 다시 백을 곱한 것이다. '천의 보시물로 보시하는 자(sahassa-yāgi)'란 것은 천명의 비구(bhi-kkhu-sahassa)에게 보시하거나 천 냥의 돈(kahāpaṇa-sahassa)으로 구입한(nibbattita) 보시물(yāga)로 보시를 하는 자를 말한다. 백 천 배라는 것은 이러한 보시로 10꼬띠(koṭi) 의 비구들이나 10꼬띠의 돈으로 음식을 공양하는 것이다. 이러한 보시는 앞의 가난한 사람의 보시의 한 조각(kāla)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말한다.
'한 조각(kāla)'이라는 것은 16분의 1도 되고 백 분의 1도 되고 천 분의 1도 된다. 여기서는 백분의 1을 말한다. 이렇게 계산하면 이 보시는 가난한 사람의 보시의 10000꼬띠 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말이다."(SA.i.59)
꼬띠(kāla)는 중국에서 구지(俱胝)로 음역을 했는데 1꼬띠는 천만을 뜻한다.
146) '보시'로 옮긴 원어는 yañña(제사)인데 문맥에 따라 보시의 뜻으로도 쓰인다. 인도에서 전통적으로 신들에게 행하는 제사는 보시의 개념으로도 쓰인다. 제사 자체가 신들에게 공물을 보시하는 것이며 제사에 동참하는 사제나 여러 사람들에게도 보시를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