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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해랑길15구간 (군산,서천)(순)( 외당마을버스정류장 ~선도리갯벌체험장) : 54코스. 55코스.
56코스, 57코스
◈ 일 자/기상: 2026.9.27~28 /맑음 ( 16도~27도:서천)
◈ 위 치: 군산, 서천
◈ 누구와: 나홀로
◈ 경로: 외당마을버스정류장-월명호수-진포해양테마공원 - 금강하구뚝관광지-장항도선장입구
장안송림해수욕장-송석리노임회관- 다사항-선도리갯벌체험장 (56.6㎞ )
* 54코스: 외당마을버스정류장-월명호수-진포해양테마공원 (11.6㎞)4시간
* 55코스: 진포해양테마공원-금강하구뚝관광지-장항도선장입구 (14.9㎞ )5시간
* 56코스: 장항도선장입구-장안송림해수욕장-송석리노임회관 (14.2㎞)4시간30
* 57코스: 송석리노임회관-다사항-선도리갯벌체험장 (15.9㎞)5시간
◈ 거리: 55.01 ㎞ 총답사: 766.6㎞
◈ 시간: 16시간23분(3시간휴식)
◈ 교통
- 갈때 : 용산(13시43분출발)→군산역(16시56분 도착: 편의점에서 간단히 식사 )
* 군산역 → 외당마을 버스 정류장 ( (택시:13키로:16.000원 )
-군사시 옥산면 당북리432-16(외당마을버스 정류장)
- 올때: 서천역 (1221) → 용산역(1548)
선도리갯벌체험장 → 서천역 (택시16㎞,20.500 원/20분)
-비인면 갯벌체험로428-13(133)(갯벌 체험장)
군사역
16시56븐에 도착해 주위 식당을 찿아가서 보니 휴일 편의점에서 우유와 빵으로 대신하고
택시타고 외당마을 버스정류장에 도착
서해랑길54코스 안내간판(외당마을 버스 정류장)
53코스 종점. 54코스 시점, 이곳에서 간단히 준비후 17시49분에 출발한다
이번구간은 오래동안 마루었던 구간으로 오늘에야 답사한다
외당사거리
은파호수공원으로 넘어가는 ....
은파호수공원 안내도
***은파호수공원***
1. 개요
전라북도 군산시 은파순환길 9(나운동)에 위치한 공원. 가운데에 미제저수지가 위치해있다. 그리고 이 미제저수지 주변에 조성한 공원의 이름이 바로 은파호수공원이다.
2. 역사
해질녘 물결이 반짝이는 아름다운 모습 때문에 은파라 불리는 이곳은 조선조 이전에 축조된 것으로, 미제저수지는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에도 米堤로 표시되어 있는 역사 깊은 곳이다.
미제지는 오랜 역사만큼이나 많은 설화(세 바위 전설, 애기장수 서울터 만들기, 금도구통 금도구때 등)가 전해진다. 이름도 미제저수지, 미제방죽, 쌀뭍방죽, 절메방죽, 아흔아홉귀 방죽, 미룡저수지, 은파 뽀드장, 은파유원지, 은파관광지 등 다양하게 불렸다
1969년 이후 관광유원지로 개발되고, 1985년 국민관광지로 지정된다. 이어 전국 100대 관광명소로 선정되면서 '은파호수공원'이란 새 이름을 얻는다.
3. 볼만한 곳
근처에 군산대학교와 많은 아파트단지들이 있어 학생들과 근처 주민들이 이곳을 많이 찾는다. 호수를 가로지르는 다리가 있는데, 여기가 의외로 경치가 좋다.
밤이 되면 다리에 불이 들어오는데, 야경이 예뻐 군산 여행시 들려야 할 주요 관광지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규모가 꽤 큰 편이라 둘러보는데 시간이 걸린다.
입구를 제외하곤 시가지를 많이 벗어난 편이라 인적이 드문 곳도 있다. 그러나 늪지 등 볼것이 많아 한번쯤 둘러보기 괜찮다.
근처에 리츠프라자 호텔이 위치해 있다. 또한 은파호수공원을 배경으로 여러 카페와 술집이 있으니 한번쯤 들려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
봄이되면 호수공원 일원에 벚꽃이 만개하면 정말 장관이다. 인근 도시에서도 원정 구경을 많이 온다.
4. 축제[편집매년 3월 말부터 4월 초까지 은파벚꽃축제 등 여러 축제를 한다.
실제로도 오후 정도에는 1만 명 이상도 몰린다.(다움자료)
고군산도 안내 간판
은파공원입구
은파호수공원옆 제과제빵 명인의 집
미제저수지 습지지역
미제저수지 데크모습
미제저수지 데크
미제저수지 모습
공원을 산책하시는 분들도 종종 만나내요
용처 안내 간판
물빛 다리(상하 사진).. 야간 조명이 멋지내요
**물빛 다리***
군산 은파호수공원의 물빛다리는 은파저수지의 중바우 전설을 형상화한 길이 370미터 보도 현수교로, 상시 개방되며 입장료와 주차는 무료입니다. 야간 조명과 수면 반사가 아름다워 산책과 야경 감상에 좋고, 주변에는 음악분수·수변 산책로·연꽃자생지 등이 있어요.
(대한민국 구석구석)
물빛다리의 의미와 특징
항목 내용
바탕이 된 이야기 애기바우·중바우·개바우 설화
디자인 요소 자연과 역사문화적 경관의 결합
감상 포인트 다리 위 호수 전망·수면에 비친 조명
공간 성격 도심 속 휴식과 야경 감상의 중심축
( 대한민국 구석구석)
*단순한 보행 통로를 넘어 지역 설화를 건축 형태에 담은 상징물이라는 점이 특징이에요. 낮에는 호수의 물빛을, 밤에는 조명이 만드는 대칭적인 야경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 대한민국 구석구석)
다리중간에 위치한 호수 정자(다리좌우)
여러가지 색으로 조명이 변경
저수지 반대편의 유원아파트
은파관광단지 야경
**은파관광단지**
*개요
은파관광단지는 전북 군산시 나운동에 있는 은파호수공원으로, 물빛다리·수변 산책로·음악분수·생태습지·벚꽃길 등을 즐길 수 있는 도심 속 휴양지입니다. 입장료는 무료이며 주차장과 자전거 도로를 이용할 수 있어 산책과 야경 관람에 좋아요.
*위치와 역사
도로명 주소는 전북특별자치도 군산시 은파순환길9이며, 지번은 나운동 1223-5입니다. 이곳은 원래 농업용수를 공급하던 저수지로 알려졌으며, 조선 시대 이전부터 형성된 것으로 전해져요. 1985년 국민관광지로 지정됐고, ‘은파’라는 이름은 유원지 사업을 추진한 사람이 자신의 아버지 호를 붙인 데서 비롯됐다는 기록이 있습니다.(전국 관광지 지도)
은파관광단지
뒤돌아본 물빛다리 야경
민속공연 준비중
행사출연 준비중인 예븐 아가야들...
뒤돌아본 미제저수지 야경
저수지 데크길을....
각종참전 기념탑
현충답등...
은파호수공원을 벗어나고...
산길로 접어들고...
운동기구들이....
부곡산 삼가점(번호및 설치연도 식별불가).. 부곡산 정상
부고산 정상표지
92.2고지
숲속 임도길 계속...
군산시야경
임도에서 도로로 내려 가는 데크
구불길 안내 간판
동물이동통로/ 월명공원과 은파공원연결 통로
우측은 군산명화학교
아주 예쁘 계단길이...
월명공원으로 가는 길...
월명공원 전망대
월명공원 표석
**군산 월명공원**
군산 월명공원은 전북특별자치도 군산시 해망동 일원에 있는 도심 숲공원으로, 벚꽃·동백꽃과 수시탑, 월명호수, 산책로를 즐기며 군산 시내와 서해를 조망하기 좋아요. 현재 월명산 전망대와 달빛마루가 조성 중이며, 전망대는 2026년 말 준공과 2027년 이용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네이버 플레이스)
월명공원 안내 간판
월명공원 ... 저수지 둘레의 데크길
이곳은 도로변에에 꽃무릎이....
군산 청소년 수련원
군산시 야경
도로변에 꽃무릎이...
삼일운동 기념탑
삼불사 입구
산들학교
명산사거리 버스 정류장
군산먹거리 운 안내...
**군산먹거리타운***
군산먹거리타운은 전북 군산시 영화동·월명동 일대 군산 시간여행마을에 자리하며, 서진해물곱돌솥밥·궁전갈치찜·미도리 등 한식과 해산물 맛집을 근대 문화유산과 함께 둘러보기 좋아요. 2026년 10월 2일부터 5일까지 구 시청 광장과 시간여행마을 일원에서 군산시간여행축제가 열립니다(네이버 블로그)
군산 먹거리 타운지역
시간여행 꼬마열차... 열차 거리
서해랑길 55코스 안내 간판(진포해양공원)... 54코스 종점, 55코스 시점
군산내항(상하사진)
**군산 내항 [ 群山內港 ]
전라북도 군산시 장미동에 위치한 항구.
군산 내항, 또는 군산항은 지리적 특성으로 인해 고려 초기에는 전국 60개 포구에 설치된 조창 중 한 곳인 조종포가 있었다.
고려 후기에는 전국 12개 조창 가운에 한 곳인 진성창이 자리하고 있었다. 조선 시대에는 칠읍 해창이 운영되던 물류 중심지였다.
군산 내항은 개항기[대한 제국기]인 1899년(고종 36)에 부산[1876년], 원산[1880년], 목포[1897년], 진남포[1897년]에 이어 자주적으로 개항하였다.
러·일 전쟁 이후 일본은 미곡 수출을 위해 1907년 전군 도로(全群道路)의 개통을 포함하여 부두 설비와 해안매측을 통해 항만 기능을 강화하고 정비하였다.
군산 내항은 1899년 개항 이후 1905년 대한 제국 정부에 의해 근대적 항구로 건설되기 시작하였다.
일제 강점기인 1909~1915년에는 부잔교 3기를 축조했고, 화물 전용 철도를 금강 기슭까지 연장하였다.
또한 1918~1921년에는 부잔교 1기와 철도 인입선 연장, 강안매축 등을 추진하여 대형 부잔교 3기와 창고, 도로, 철도, 기타 해상 연락 시설 및 육상의 제반 시설을 완공하였고, 기선(汽船) 접안이 가능하게 되었다.
1979년 군산 외항 부두가 신축되자 군산 내항은 수입과 출입 항구로서의 기능을 잃게 되었다.
1974년부터 군산 외항이 신축되기 시작하여 1979년 군산 외항 1부두가 2만 톤급 1선석, 1만 톤급 2선석 규모로 완성됨에 따라 군산 내항은 수입과 출입 항구로서의 기능을 상실하였다.
연안 여객 터미널도 군산 내항[장미동]에 있었으나, 계속되는 토사 유입으로 여객선 운항에 어려움을 겪다가 2005년 4월 군산 외항 3부두 인근 군산시 임해로 378-8[소룡동 1668]으로 이전하였다.
2007년 해양 수산부의 전국 항만 개발 기본 계획안에 따라 항만 시설·주거 시설·숙박 시설·상업 시설·업무 시설 등 공유 수면 포함하여 군산 내항 중심 총 47만 4,300㎡에 대해 개발이 진행 중이다.
2010년 군산시의 근대 역사 경관 조성 사업에 따라 개발 중이기도 하다.
현재 군산 내항은 수심이 낮아 소형 선박이나 어선이 주로 이용하고 있으며,
친수(親水) 문화 공간인 진포 해양 테마 공원으로 조성되어 군산 시민의 휴식처로 이용되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군산 내항의 뜬다리
*부잔교 [ floating pier , 浮棧橋 ]
조수간만의 차가 큰 해안에서 배를 접안하기 위해 설치하는 특수한 부두 시설.
뜬다리 부두는 다른 말로 부잔교(浮棧橋)라고도 한다.
일반적으로 육지에 고정되어 설치되는 부두와는 달리 뜬다리 부두는 물 위에 떠있는 구조물의 형태로 만들어진다.
부두 자체가 수면 위에 떠 있기 때문에 바닷물의 높이가 변하더라도 문제없이 배가 접안할 수 있다.
물에 뜬 부두와 육지는 다리를 높아 연결시킨다. 이 때문에 ‘뜬다리’라는 이름이 붙었다.
뜬다리 부두는 서해안과 같이 조수간만의 차가 큰 해안에 주로 설치되는 해안 시설이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뜬다리 부두는 군산항에 있다.
군산항에는 3개의 뜬다리 부두가 남아 있는데 이는 모두 일제강점기에 설치된 시설이다. 인천항에 있는 갑문과 함께 서해안의 특징적인 해안 시설이기도 하다.
[네이버 지식백과]
동백대교
**동백대교***
1. 개요
충청남도 서천군 장항읍 원수리와 전북특별자치도 군산시 해신동을 잇는 3.19km의 교량이다. 장항읍내와 군산시내를 직통으로 연결해준다. 금강을 건너는 다리이지만 하굿둑 너머에 있기 때문에 서류상으로는 해상 교량이다.
2. 상세
처음에는 군산시와 장항읍의 앞글자를 따서 군장대교로 불리다가[1] 2015년 교량 명칭 공모를 통해 동백대교로 확정했다.[2] 다리 이름이 '동백'인 이유는 군산시와 서천군의 시화(市花)와 군화(郡花)가 나란히 동백꽃이기 때문이다.
동백대교하면 군산시, 서천군보다는 여수시나 부산광역시를 떠올린다는 의견도 있다. 부산광역시에는 조용필의 노래인 '돌아와요 부산항에'로 알려진 동백섬이 있고 여수시는 오동도 동백꽃 축제로 인지도를 쌓아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장군대교"나 "사랑대교"로 바뀌었으면 한다는 의견도 있다.[3]
4번 국도와 77번 국도로 지정돼 있다. 2008년경 착공에 들어가 2015년 개통 예정이었으나 군산쪽 각종 접속도로 공사와 접속부에 있는 송전탑을 이전하는 여러 문제로 인하여 연기에 연기를 거듭하였고, 마침내 2018년 12월 27일 개통하였다. 동백대교 27일 개통기념 식수식 이 교량이 개통됨에 따라 군산에서 서울 방면으로 서해안고속도로를 탈 때[4] 군산 나들목 대신 동백대교 - 4번 국도를 경유하여 서천 나들목을 이용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거리가 7km 이상 단축되고, 4번 국도 장항읍 - 서천읍 구간은 왕복 4차로 이상으로 잘 뚫려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이동 시간이 30분에서 5분으로 단축되었다.
'동백'은 고유명사가 아닌 일반명사이기 때문에 영어로 'Camellia Bridge'라고 쓴다. 다만 표지판에는 'Dongbaekdaegyo(Br)'(...)라고 되어 있다.
지역 이기주의로 인해 개통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다움)
군산내항
진포해양공원내 군장비 전시물(군항)
각종전차 전사장
조선시대 화포들
비행기들
여객선
군산항 여객터미널
군산이산일대 야경
도대체 뭘가요???
궁말일대 야경
서래 삶문화센터
고가 차도 야경
중동의 당집
**중동 당제 [ 中洞堂祭 ]
전라북도 군산시 중동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군산 지역은 역사 이래로 서해안의 물류 유통과 어로 중심의 생활을 하던 곳으로, 이러한 생활환경 때문에 수많은 토속 신앙이 이루어져 왔다.
조선 시대 군산 지역을 크게 나누면 군산진과 군산창을 중심으로 주변 마을들을 포함한 서부 지역[현재 영화동, 중앙로1가, 신흥동 지역]과 동부 지역[죽성리, 경포리, 경장리, 둔율리]으로 나눌 수 있다.
서부 지역의 중심 당산은 수시탑 인근 당산이었다.
반면 어업을 생업으로 하는 어촌과 재래식 오일장이 서는 서래장이 있는 동부 지역의 중심 당산은 현재 중동 당제의 모태가 되는 경포리의 서래산[중동 돌산]에 있던 당산이었다.
중동 당산은 중동 서래산에 자리하고 있었는데
언제부터 당제가 있었는지 전해지지 않지만 군산에서 처음 고기잡이를 시작한 조상들을 모시는 당제로 시작되어 오늘에 이르렀다고 한다.
1945년 해방 후 계속되는 돌산 채석 작업으로 헐릴 위기에 처하자 1976년 주민들이 나서서 ‘당우(堂宇)’를 지금의 중동 노인 회관으로 옮겨 슬라브 단층 옥상에 슬레이트로 당집을 만들어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지금은 사라진 서래산의 동북쪽 7부 능선에 자리했던 당집은 정면 1칸 측면 1칸의 기와집이었고,
그 옆에 당지기 할머니가 살면서 당을 지켰다고 한다.
당제의 대상은 산신과, 당할아버지, 당할머니, 이공(李公), 오공(吳公), 조공(趙公) 등으로 정월 열나흘에 지냈으나,
요즘은 대보름날 지낸다. 현재 당에 모신 신령들 화상(畵像)은 현 위치로 옮기면서 새로 그려서 모셨고,
서래산의 당집 화상은 보존되고 있지 않다.
당산에서는 매년 음력 정월 대보름 첫 새벽에 당제를 지냈다고 한다.
당시 당제의 모습을 보면 먼저 서래산 당산에서 당산제를 지내고 이어 경포리[중동] 마을로 내려와 용왕제를 지내는 순서였는데 당제가 열리면 풍장을 앞세워 마을을 돌며 걸립을 하였다고 한다.
당제는 분향·강신·헌작·독축 순으로 진행된다. 옛날에는 책 한 권 분량의 축문을 다 읽었으나 지금은 앞부분만 읽는다.
제관이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며 소지를 올리고 제를 지내는 동안은 풍장[풍물]치는 사람들은 대기하고 있다가
제가 끝나면 주민들이 올라와 음복하고 풍물 가락에 맞춰 흥겹게 어울린다.
제관은 2명이며, 정월 대보름 며칠 전부터 동네 아주머니들이 목욕재계하고 술과 음식을 정성껏 준비했다고 한다.
제사가 끝나면 주민들은 풍물패를 앞세우고 거리제를 지냈으며, 만조가 되는 시간에 맞춰 금강의 지류인 경포천 변[깨꼬랑]에 돼지 머리와 음식을 차려놓고 풍어제[용왕제]를 지냈는데,
요즘도 비슷한 절차로 행해지고 있다.
중동 당산과 수덕산 당산에서는 각자 당산제를 지냈지만 1년에 한번 서부 지역과 동부 지역이 함께 대규모 제를 지냈다.
수륙제라고도 불리는 용왕굿이 그것이다.
용왕굿은 다행히 보존되어 지금도 일 년에 한 번씩 행해지고 있다.
군산의 용왕굿은 다른 지역과는 달리 물에 빠져 죽는 일이 없도록 기원하는 내륙의 특징과 풍어를 바라는 섬 지역의 특징이 섞여진 형태이다.
중동 당제는 2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군산의 유일한 동제(洞祭)로, 제(祭)의 목적은 주민의 안녕과 복(福)을 축원하고, 풍년과 풍어를 기원하였음을 제문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산업화 과정을 거치면서 농토는 대부분 주택 단지가 되었으나 어업은 지금도 이곳 주민들의 경제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군산시 중동 노인 회관 2층에 마련된 당집에서는 해마다 음력 정월 대보름날 오전에 당제를 지낸다.
[네이버 지식백과]
경포교
군산경찰서
군산경암동일대
로컬푸드복합센터
경암동 철길 마을
**경암동 철길마을
경암동 철길마을은 1944년 전라북도 군산시 경암동에 준공하여 페이퍼 코리아 공장과 군산역을 연결하는 총 연장 2.5km 철로 주변의 마을을 총괄하여 붙인 이름이다.
마을이 위치한 행정 구역 명칭에 따라 철로 주변에 형성된 마을을 경암동 철길 마을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1944년 일제 강점기 개설된 철도 주변에 사람들이 모여 살기 시작하면서 동네를 이루었고 1970년대 들어 본젹적으로 마을이 형성되었다.
경암동 철길은 일제 강점기인 1944년에 신문 용지 재료를 실어 나르기 위해 최초로 개설되었으며,
1950년대 중반까지는 “북선 제지 철도”로 불렸으며 1970년대 초까지는 “고려 제지 철도”, 그 이후에는 “세대 제지선” 혹은 “세풍 철도”로 불리다 세풍 그룹이 부도나면서 새로 인수한 업체 이름을 따서 현재는 “페이퍼 코리아선”으로 불리고 있다.
경암동철길 마을 간판
잠둑 버스정류장
선교사 기념 탑
뒤돌아본 동백대교 야경
구암동(궁말) 일대 야경
뒤돌아본 동백대교 일대 야경
해변 도로상 야경(내흥동일대)
하늘에는 음력 8월17일 달이...구름이 조금 있어...
해변의 야경
금강시민공원내 진포대첩기비
**금강시민공원 [ 錦江市民公園 ]
충청남도 공주시 신관동 553번지에 있는 공원.
공주 지역주민들의 여가생활과 체육활동에 이바지하고자 1996년 11월 21일 착공하여 1998년 11월 20일에 준공하였다.
부지면적은 15만 7000㎡이며, 꿈나무야구장, 축구장·배구장·농구장 각각 2개소, 족구장 6면, 씨름장 1개소, 인라인스케이트장 1개소, 조깅 트랙 등을 갖추고 있다.
금강을 사이에 두고 사적 제12호로 지정된 공주 공산성(公州公山城)과 마주보고 있으며,
백제문화제·공주알밤축제·신상옥청년영화제·생화체육족구대회·금강전국 풋살대회·박찬호기 전국초등학교야구대회 등이 열린다.
[네이버 지식백과]
진포대첩기념탑
**진포대첩 ; [ 鎭浦大捷 ]
1380년 고려 수군이 군산 앞바다에서 왜구를 상대로 크게 승리한 해전.
우왕 6년인 1380년 진포에서 고려 수군이 처음으로 화약 무기를 사용해 왜구를 크게 무찌른 해전이다.
1350년부터 왜구는 고려를 본격적으로 침입하기 시작하여 해안 지역은 물론이고 내륙 깊숙이 침입하여 고려의 백성들을 약탈하고 수도인 개성까지 침입하여 왕조의 근간을 흔들었다.
1380년(우왕 6) 8월 진포에 왜구들이 500척에 이르는 대선단을 거느리고 곡식을 노략질 하기 위해 군산 방면으로 침입해 왔으며, 군사의 규모는 대체로 10,000명 이상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왜구는 약탈한 곡식들을 함선에 적재할 때 흔들리지 않도록 큰 밧줄로 배들을 서로 잡아매고, 일부 병력을 남겨둔 채 육지를 돌아다니며 곡식을 비롯한 재물을 약탈하기 시작하였다.
한편 왜구의 대함대가 침입했다는 급보를 받은 고려 정부는 심덕부, 나세, 최무선의 지휘 하에 화약 무기를 적재한 신형 함선 100척을 출동시켜 왜선을 소탕하도록 하였다.
고려 함선들은 진포에 이르러 밧줄로 서로 묶여있는 적함을 향해 일제히 화전과 화통, 화포를 사용해 집중 사격을 퍼부었다.
화공을 통해 고려 함대는 적선 500척을 모조리 파괴·소각시키고 왜구들에게 붙잡혀 있던 330명의 고려 백성을 구출하였다.
진포대첩은 1350년 왜구들이 고려에 본격적으로 침입하기 시작한 이래 30년 만에 고려 수군이 거둔 최초의 승리이며, 또 대왜구 투쟁에서 고려가 거둔 가장 빛나는 승리이기도 하였다.
진포대첩으로 인해 해안에 정박하여 있다가 화포로 모든 배를 잃은 왜구들은 사실상 퇴로를 차단당하였다 이러한 까닭에 육지 깊숙한 곳으로 달아나면서 닥치는 대로 살인·약탈을 일삼았다.
왜적의 일부는 옥천과 영동 쪽으로 달아나 약탈 행위를 벌였는가 하면, 일부는 상주와 선산, 금산 쪽으로 달아났다.
특히 상주 쪽으로 달아난 왜군의 주력 부대는 다시 서남쪽으로 방향을 틀어 경산(星州)을 거쳐 함양의 동쪽에 있는 사구 내역에 주둔하였다.
정부는 원수 박수경, 배언 등을 파견하여 이들을 공격하게 하였으나 오히려 싸움에서 져 박수경과 배언을 비롯한 아군 5백 여 명이 전사하였다.
승전에 고무된 왜구들은 함양을 노략질하고 다음 달인 9월에는 남원산성을 공격하였으나 실패로 끝났다.
이들은 운봉현으로 물러나 인월역에서 주둔하면서 "장차 말을 금성[潭陽]에서 먹여 북상하겠다"고 기세를 부렸다.
이에 고려 정부는 이성계를 양광·전라·경상 삼도 순찰사(楊廣全羅慶尙三道巡察使)로 임명하고,
왜구 토벌 명령을 내려, 남원 운봉에서 왜구들을 소탕하였다. 이것 황산 대첩이다.
이 전투에서 왜구는 단지 70여 명 만이 살아남아 지리산으로 도망하였으나 곧 토벌되었다.
진포에 침입할 때 왜구의 수가 10,000명이 넘었는데, 진포대첩과 황산 대첩에 의해 전멸되었던 것이다.
이성계는 황산 대첩의 승리로 고려를 구한 영웅으로 추앙받아 새 왕조를 개창 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였다.
황산 대첩은 바로 진포대첩이 먼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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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길 아래 길로 ...
금강하구 하구둑 진입...
금강하구 둑
**금강하굿둑
전라북도 장수군 소백산맥 서사면에서 발원하여 충청북도 남서부를 거쳐 충청남도·전라북도의 도계를 이루면서 군산만(群山灣)으로 흘러드는 총길이 401㎞의 금강 하구를 막아 건설한 둑이다.
방조제의 총길이는 1,841m로 1990년에 완공했으며, 연간 3억 6천만 톤의 담수를 공급한다.
전라북도와 충청남도 일원에 농업용수와 공업용수를 공급하고, 금강 주변 지역의 홍수를 조절한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토양과 모래가 흘러내려 강하구에 쌓이는 것을 막아 군산항의 기능을 유지시키면서 바닷물의 역류를 막아 농경지의 염해 피해를 막을 수 있게 되었다.
또 금강하굿둑은 군산과 장항(長項)을 잇는 교통로로도 이용되어 관광지로서 큰 몫을 하고 있으며,
장항선의 일부인 신장항-군산 대야 철도가 놓여 있다. 금강하굿둑 주변은 철새도래지로 잘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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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하구둑 금강갑문(총20개 수문)
금강교
금강교와 갑문
하국둑에서본 군산족 해안 야경
갑문의 마지막 번호20번(갑문수20개)
금강갑문 모습(상하사진)
전라북도와 충청남도 경게선(충청남도로 진입) 서천군 장항읍
**서천군 장항읍
1914년 서천군의 서부면과 남부면을 통합하여 서남면이라 했으며 장항항이 완성되면서 1938년 장항읍으로 승격되었다.
현재 10개 법정리를 관할한다.
1936년 건설된 장항제련소가 지금도 운영되고 있으며 한솔제지 공장이 있다.
금강을 사이에 두고 남쪽에 전북 군산시를 마주하고 동백대교로 연결된다.
금강이 서해로 유입되는 하구에는 장항항이 있어 수산물이 풍부한 곳이며
해양생물을 연구하는 국립해양생물자원관과 해변에 울창한 송림이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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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진 서천IC,죄회전 장항 이정표
장항선 철로(금강하구둑 다리)
21번 국도아래로...
금강하구둑 관광지
**금강하구둑 관광지
충남 서천군 마서면 당선리에 위치한 금강하구둑 관광지는 해마다 금강하구둑을 찾아오는 철새들을 볼 수 있는 명소다.
금강하구둑은 장엄하게 흐르는 금강이 바다를 만나 품을 넓히는 곳에 만들어진 대규모 수리시설로, 충남 서천과 전북 군산을 잇는 교량 역할도 하고 있다.
드넓은 갈대밭과 농경지를 품고 있는 금강 하구에는 가창오리, 청둥오리를 비롯해 검은머리물떼새 등 희귀 조류와 수만 마리 철새들이 날아와 장관을 이룬다.
이른 아침 안개가 피어오르는 풍경도 좋고, 해질 무렵 낙조와 함께 바라보는 풍광도 일품이다.
철새가 찾지 않는 계절이라도 금강 하구의 넉넉하고 여유로운 풍경을 감상하려는 여행자들이 끊이지 않는다.
사계절 썰매장과 바이킹, 회전목마 등 놀이시설이 있는 드림랜드와 게임월드, 자동차극장으로 이루어진 금강하구둑 관광지는 식당과 주차장 등 편의시설을 잘 갖추어 금강하구둑을 돌아보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 좋다.
특히, 뒤편 산책로를 따라 전망대까지 걸어 올라가면 금강 하구와 건너편 군산이 한눈에 들어와 일대를 조망하기에 그만이다.
금강하구둑 관광지 앞 강변 산책로에는 아기자기한 카페들과 김인전공원이 있어 데이트를 즐기려는 연인들에게 인기 있다.
나란히 이어지는 자전거길을 따라 하이킹을 즐기는 여행자도 많다.
금강 하구를 따라 조성된 긴 산책로를 천천히 걸으며 햇살에 반짝이는 강변 풍경을 감상하고 조금 더 걸어 조류생태전시관까지 함께 둘러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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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전 공원
**김인전 [ 金仁全 ]
일제강점기 임시의정원 전원위원장, 제4대 의정원의장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충청남도 서천 출생. 1920년 2월 상해로 망명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 임시의정원에 피선되었으며,
특히 재무예산위원으로 재정문제 타결에 솜씨를 보였다.
그 해 4월에는 임시의정원 정무조사특별위원(군사)으로도 활약하였고, 동시에 임시의정원의 부의장을 지내다가 1921년 5월에 사퇴하였다.
1921년 8월에는 임시정부 국무원(國務院) 학무차장과 이어 학무총장대리로 활약하였다.
그 뒤 다시 임시의정원 전원위원장(全院委員長)으로 선임되었고, 1922년 5월에는 제4대의정원의장에 선임되어 입법활동과 함께 독립운동의 방략을 계획, 실천하였다.
그 해 10월 김구(金九)·여운형(呂運亨) 등 16명과 함께 군인양성과 독립전쟁의 비용조달을 목적으로 한 한국노병회(韓國勞兵會)를 결성하였다.
이들은 향후 10년 동안 1만여 명의 노병(勞兵)을 양성하여 독립전쟁 요원으로 활용할 계획을 세웠으며,
100만원 이상의 군자금을 적립하여 역시 전쟁수행에 충당할 목표하에 동지들을 규합, 독려하여 이 운동을 대대적으로 펴나갔다.
또한, 인재를 육성할 계획하에 중국 각지의 군사강습소·병공국(兵工局)·학생단(學生團) 등에 파견하여 전문적인 훈련과 강습을 받게 하였다.
그 뒤 대한적십자회의 상의원으로 김구·이유필·김규식(金奎植)·이규홍(李圭洪)·안창호(安昌浩) 등과 함께 임시정부를 지원하였다.
1980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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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구둑 관광단지 버스 정류장
바다건너 군산 해안 야경
평화공원
원수교
2부에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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