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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감사를 지킵시다
2016년 7월 3일 / 맥추감사절 / 사사기 8:22-28
유대인들의 3대 절기가 있습니다. 유월절, 맥추절, 초막절이 있습니다. 유월절 다음으로 중요한 절기로 여기는 이 ‘맥추절’은 밀이나 보리를 수확한 후 하나님께 드리는 첫 열매의 감사절입니다.
유월절이 지나 칠주째 되는 날로 칠칠절이라고도 합니다. 그리고 신약시대에서 오순절이라는 말을 쓰게 되는데, 이것은 유월절 중 누룩 없는 떡을 먹는 둘째 날을 계산해서 50일 째 지켜 ‘오순절’이라고도 부릅니다.
특히 이 시기는 보리를 수확하는 시기로 기독교에서는 ‘맥추절’이라고 부릅니다. 특히 이 기간 동안에는 수고하여 밭에 뿌리는 것에 감사하는 절기로 첫 열매를 거두는 날로 여깁니다.
한 마디로 맥추절은 우리나라의 현재 환경과 여건의 달력을 본다면 한 해의 자신들의 하는 일들의 중간 점검이자 새롭게 다짐하는 절기이며 지금까지 지켜준 하나님께 감사하는 절기로 할 수 있을 것입니다.
4분기 중 2분기를 지나는 즈음에 자신을 점검해보고 또다시 새롭게 출발하는 계기로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 기간 동안 무사히 지낼 수 있도록 이끌어주신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하고 또 그에 걸맞은 감사헌금을 하나님 앞에 드리는 귀한 절기입니다. 이번 맥추절은 조용히 하나님께 자신을 돌아보는 중간점검의 계기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우리는 한걸음 더 나아가 이것으로 끝나지 말고 이 세상에서의 삶을 마치는 날까지 감사로 충만한 삶을 살도록 하십시다.
날마다 감사로 ...
내 하루의,
처음과 마지막 기도.
한 해의 처음과 마지막 기도,
그리고 내 한 생애의 처음과 마지막,
기도는,
"감사합니다"는
말이 되도록,
감사를,
하나의 숨결 같은,
노래로 부르고 싶다.
감사하면 아름다우리라,
감사하면 아름다우리라, - 이해인의 시⟪감사와 행복 ⟫중에서-
찬송가 384장
3절 나의 갈길 다가도록 예수 인도하시니 그의 사랑 어찌 큰지 말로 할 수 없도다 성령 감화 받은 영혼 하늘나라 갈 때에 영영 부를 나의 찬송 예수 인도하셨네 영영 부를 나의 찬송 예수 인도하셨네 아멘
날마다 감사로 시작해서 감사로 끝나는 오늘이 되고 싶습니다.
말과 생각으로 끝나지 말고 실제로 그렇게 기도하며 살아가고 싶습니다.
매일 매일 살아서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입니다.
우리의 삶속에는 감사해야 할 일들이 참으로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깨닫지 못할 뿐입니다.
우리가 숨을 쉬고 사는 산소를 어떻게 돈으로 환산할 수 있겠습니까?
햇빛도 마찬 가지입니다.
우리는 자연이 주는 엄청난 것에 대한 감사를 모르고 살고 있습니다.
“내가 행복했던 날은 엿새도 되지 않는다.”고 말한 나폴레옹보다는
“내 인생에서 행복하지 않은 날은 하루도 없었다.”고 말한 헬렌 켈러의 감사가 마음을 감동시킵니다.
우리는 누구에 더 가까운 삶을 살고 있습니까?
감사하지 않는 삶은 불행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우리에게 매일 주어지는 오늘도 날마다 감사로 행복을 만들어 가야합니다.
● 예수님께서 “공중의 새들을 보라. 새들은 씨를 뿌리거나 거두어들이거나 양식을 곳간에 모아들이지 않으나 먹을 것을 걱정하지 않는다.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기르시기 때문이다. 그런데 너희는 새들보다 훨씬 더 귀하지 않느냐? 너희가 걱정한다고 해서 그 걱정이 너희 목숨을 한 순간이라도 연장시킬 수 있겠느냐? 또 너희는 왜 의복 때문에 걱정하느냐? 들의 백합화를 보라! 백합화는 수고도 길쌈도 하지 않으나 입을 것을 걱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온갖 영화를 누린 솔로몬왕도 그 꽃만큼 아름답게 옷을 입지는 못하였다. 믿음이 적은 자들아! 오늘 피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질 꽃들도 하나님께서 이렇게 잘 돌보아주시는데 하물며 너희야 더 잘 돌보아주시지 않겠느냐?”(마 6:26-30)이라고 하셨듯이 새들도 들의 백합화도 하나님을 찬양하는데 하물며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는 우리들은 얼마나 많이 찬양을 해야 할지요?
매미의 성장과정에서도 볼 수 있듯이 ① 암컷 매미는 나무껍질 같은 곳에 알을 낳습니다. 이 알은 나무속에서 약 1년간 있다가 다음해 여름에 부화합니다. ② 알에서 부화한 애벌레는 바로 땅속으로 들어가 나무뿌리의 즙을 빨아 먹으며 평균적으로 5년 정도 살아갑니다. ③ 애벌레는 땅 위로 올라와 나무에 매달려 약 2-6시간 정도 걸려 껍질을 벗습니다. ④ 껍질을 벗고 나온 매미는 몸을 말린 후 날아다니고, 울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성충이 된 매미는 약 한 달 정도 삽니다. 한 달 동안 살면서 짝짓기 등을 하고 알을 나무껍질 속에 낳고는 생을 마감합니다. 매미도 말년까지 자신들에게 주어진 삶을 아름답게 살다가 가거늘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심을 받은 인생들은 얼마나 하나님을 찬양하며 살아야 할지요?
바울이 순교를 앞두고 구금상태에서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권면한 “어떤 처지에 있든 감사하는 마음을 잊지 마십시오.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뜻입니다.”(살전 5:18)라는 말씀은 우리의 심금을 울립니다.
오늘 우리는 2016년 맥추감사절을 맞이하여 세상 끝날까지 하나님께 감사찬송을 하다가 가는 성도가 되고픈 마음으로 『1. 훌륭한 기드온의 모습 2. 마무리를 잘못한 영웅 기드온』 설교를 준비하여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훌륭한 기드온의 모습
우리가 지난 주일에 이미 살펴본 것처럼 기드온 단 300명의 소수의 병사를 거느리고 무려 135,000명이나 되는 엄청난 미디안 연합군을 박살내었습니다. 엄청난 대승을 거둔 것입니다. 그런데 전쟁이 끝나자마자 갑자기 에브라임 사람들이 찾아와서 불평하며 시비를 겁니다.
삿 8:1 / 그때 에브라임 지파 사람들이 기드온에게 `그대가 미디안과 싸우러 나갈 때 우리 지파 사람들은 부르지도 않다니 어찌 그럴 수 있소?' 우리를 그렇게 우습게 여길 수 있단 말이오?'하고 항의를 하자
7장 24절 이하를 보면 에브라임 지파는 미디안과의 전쟁 끝 무렵에 기드온으로부터 전쟁 참여 요청을 받고 그 요청에 따라 늦게 전쟁에 참여하여 미디안의 방백 오렙과 스엡을 죽이는 전과를 올렸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섭섭이’가 들어갔는지, 그들은 ‘왜 우리 지파를 처음부터 부르지 않았느냐’고 기드온에게 따지며 불평을 합니다.
그들은 처음부터 스스로 가나안 정복의 영웅인 여호수아를 배출한 뼈대가 있는 지파인데, 므낫세 지파 출신 그것도 지극히 작은 집안 출신(6:15)인 기드온이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전쟁이 처음 발발했을 때는 기드온에게 협조도 하지 않고, 남몰라하며 조용하게 앉아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전쟁이 막바지에 접어들어 승리를 눈앞에 두었을 때 슬쩍 참여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어느 모로 보나 에브라임 지파 사람들은 불평 불만할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오히려 기드온에게 전쟁에 늦게 참여한 것을 사과해야 하는데, 그들은 ‘왜 우리를 이같이 대접하느냐’, ‘왜 우리 지파를 처음부터 부르지 않고 늦게 불렀느냐’고 투덜거립니다.
그때 기드온이 어떠한 모습을 보여줍니까?
1. 자존심을 내세우지 않았다
기드온은 자존심을 내세우지 않았습니다. 에브라임 사람들은 핏대를 세우며 소리를 높여 고함을 치는데, 기드온은 어떻게 합니까? 그는 자존심을 내세워 에브라임자파에게 ‘너희들이 한 일이 뭐가 있다고 그래? 가만히 앉아 있다가 늦게 전쟁에 참여한 주제에 이제 와서 시비를 걸고 야단이야? 정말 해도 해도 너무 하는군. 나는 뭐 자존심이 없어서 가만히 있는 줄 알아!’라고 말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아마 모르긴 몰라도 동족끼리 치고받는 참극이 벌어졌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기드온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삿 8:2 / 기드온이 그들에게 대답하였다. `당신들이 거둔 승리가 어찌 우리가 거둔 것에 비교될 수 있겠소? 당신들은 `에브라임의 끝물 포도가 아비에셀의 맏물 포도보다 더 달지 않느냐'라는 격언도 들어 보지 못하였소?
무슨 말입니까? ‘당신들 에브라임 지파의 가장 나쁜 포도가 우리들의 가장 좋은 포도보다 낫다’는 것입니다. 기드온은 “우리는 아무 것도 아니고 당신들이 최고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기드온은 자존심을 내세우지 않았을 뿐 아니라, 오히려 상대방을 칭찬해 주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다른 사람과의 문제 중에 많은 부분은 자존심 싸움으로부터 출발합니다. 제삼자가 들어보면 아무 것도 아닌데, 서로 간에 자존심 때문에 서로 등을 돌리고 원수가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명심하십시오. 자존심 싸움은 사단이 좋아한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자존심을 내세우며 자존심 싸움을 하면 사단에게 넘어간 것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분명히 화평케 하려고 오신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우리로 하여금 다른 사람들과 화평케 하라고 말씀하신 줄로 믿습니다.
2. 온유한 대화를 하였다
기드온은 온유한 사람이었습니다. 에브라임 지파가 길길이 날뛰며 야단법석을 부리는데도 온유한 말로 대화를 했습니다. 결국 그의 온유한 말은 에브라임 지파의 분노를 누그러뜨리게 하였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은 터프한 사람이 아니라, 사실은 온유한 사람입니다. 온유한 사람이 승리합니다.
■ 노자가 그의 스승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찾아가서 “선생님. 제자들에게 남길 말씀이 없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스승은 “내 입을 보라.”고 하면서 입을 벌리면서 자신의 입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반문했습니다. “내 이가 있느냐?” “하나도 없습니다.” “혀는 있느냐?” “혀는 있습니다.” “그러면 제자들에게 가서 이것을 전하라.” 그리고 나서 죽었다고 합니다. 노자가 남긴 교훈은 부드러운 것만이 남고 결국 승리한다는 것입니다. 강한 것은 뽑히게 된다는 것입니다.
기드온은 부드러운 마음으로 싸움을 걸어오는 에브라임 사람들에게 오히려 유순한 말을 했습니다. 그래서 더 이상 큰 다툼으로 확대되지 않았습니다. 기드온처럼 부드러운 마음을 가지고 온유한 대화를 하시기 바랍니다. 성령의 9가지 열매 중에 ‘온유’와 ‘절제’의 열매를 구하시기 바랍니다.
3. 싸움의 대상을 바로 알았다
기드온은 싸움의 대상을 바로 알았습니다. 에브라임 지파가 기드온에게 시비를 걸어왔을 즈음, 미디안의 세바와 살문나는 열심히 도망을 치고 있었습니다. 지금 기드온은 에브라임 지파와 싸움을 하게 된다면 도망치는 그들을 추격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에브라임 지파의 시비에도 불구하고 그들과 싸움을 하지 않았습니다.
다시 말하면 그는 피해야 할 싸움은 피하고 싸워야 할 싸움을 택한 것입니다. 그는 싸움의 대상을 분명히 알았던 사람입니다. 우리가 여기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잘 싸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싸움의 대상이 누구인가를 아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싸움의 대상이 알지 못하고 싸워서 설사 싸움에서 이겼다 할지라도 그 승리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기드온에게 다른 건 몰라도 지금 싸워야 할 대적이 누구인지, 미디안인지, 에브라임인지 정확히 알았습니다. 지금 누구와 싸워야 합니까? 에브라임이 아니라, 미디안과 싸워야 합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사랑해야 할 사람끼리 싸우고 있지 않습니까? 혹시 힘을 합쳐도 생활하기가 쉽지 않은데, 아내와 남편이 서로 냉전 상태에 있지 않습니까? 혹시 서로 힘을 합쳐 동역을 해야 할 교회 안의 믿음의 식구들끼리 다투고 있지 않습니까? 싸워야 할 대상과 사랑해야 할 대상을 혼동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싸움의 대상은 교회안의 성도가 아니라 사단임을 기억하십시오. 우리의 싸움의 대상은 다른 교회가 아니라 마귀임을 기억하십시오. 사랑해야 할 사람과 싸우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고, 싸움의 대상인 악한 마귀를 대적하여 영적 싸움에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십시다.
4.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렸다
기드온은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렸습니다. 기드온이 전쟁에서 승리하자, 이스라엘 백성들이 찾아와 이렇게 부탁을 합니다.
삿 8:22 / [왕위를 거절하는 기드온] 얼마 뒤, 이스라엘 사람들이 기드온에게 말하였다. `기드온님, 기드온님께서 미디안 사람들이 쳐들어왔을 때 우리를 건져내 주셨으니 우리를 다스려 주십시오. 기드온님뿐만 아니라 기드온님의 아들과 손자들까지도 내내 우리를 다스려 주셨으면 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기드온에게 자신들의 왕이 되어 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손대대로 기드온의 후손들이 왕이 되어 달라는 것입니다. 이제 미디안 전쟁의 영웅인 기드온은 이스라엘의 실세 중의 실세가 되었습니다. 어느 누구도 감히 넘볼 수 없는 엄청난 권력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기드온이 어떻게 반응을 합니까?
삿 8:23 / 이 말에 기드온이 대답하였다. `나와 내 아들이 그대들을 다스리다니요. 말이나 됩니까? 그대들을 다스릴 분은 오직 여호와 한 분뿐이십니다.'
미디안 연합군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것은 자기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도와주셨기 때문이라고 말하였습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만 돌렸습니다. 그리고 왕이 되어 달라는 부탁을 일언지하에 거절하며 ‘하나님께서 너희를 다스릴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얼마든지 그의 이름을 낼 수 있고, 얼마든지 높은 자리에 앉아 큰소리치며 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지 않고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만 돌렸습니다. 자신은 하나님의 도구가 되었다는 것으로도 은혜가 족하다고 여겼습니다.
■ 신약성경에 보면 하나님의 도구가 된 것으로 만족하며 자신의 일에 충실하였던 사람이 있습니다. 세례 요한입니다. 그는 스스로 ‘나는 길 닦는 사역을 할 뿐이다’, ‘나는 예수님의 길을 예비하는 자일 뿐이다’, ‘나는 광야애서 외치는 자의 소리일 뿐이다’, ‘나는 그의 신발 끈도 풀 수 없는 사람이다’라고 생각하고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요 3:30)고 고백하였습니다. 세례 요한은 들러리의 기쁨을 알았기 때문에 세상의 인기와 환호성에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따르고 자신에게 박수를 보내어도 그는 여전히 ‘나는 신랑이 아니다. 그러나 신랑을 위해 서 있는 들러리이다, 나에게는 들러리의 기쁨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그는 예수님으로부터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없도다.”라는 칭찬까지 받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모습이 우리에게도 필요합니다. 내가 들러리가 되는 한이 있어도 주님만이 드러나는 삶이 우리에게 필요한 줄로 믿습니다. 나의 이름보다 하나님의 이름만을 드러내는 삶을 살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어떻습니까? 혹시 하나님의 이름보다도 자신의 이름이 더 드러나기를 원하고 있지 않습니까? 자신의 헌신과 봉사를 다른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실망하고 있지 않습니까? 세례 요한과 기드온과 같이 하나님이 이름만을 드러내고 하나님께만 영광 돌리는 삶을 사십시다.
2. 마무리를 잘못한 영웅 기드온
기드온의 역사가 여기에서 끝났다면 그는 모름지기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로 남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의 이야기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기드온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약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어보면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서 그 모습이 그대로 나타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흰옷을 입은 천사들이 아님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모세를 보십시오, 다윗을 보세요, 히스기야를 보십시오, 그리고 본문의 기드온을 보십시오. 그들은 우리와 같이 빛과 어두움 사이에서 몸부림치며 죄와 이기심에 대항하여 싸우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기드온의 삶은 훌륭한 출발과 달리, 아쉬운 삶으로 끝났습니다. 이륙을 잘 한 비행기가 착륙을 잘못한 것처럼, 기드온은 시작은 잘했지만 마무리를 잘못하였습니다.
24절 이하를 보면 기드온이 이상한 일을 벌입니다.
삿 8:24 / 그는 이어서 `그대들에게 부탁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그대들이 전리품으로 빼앗은 귀고리를 나에게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기드온이 이렇게 부탁한 이유는 그들이 맞서 싸웠던 적군이 이스마엘 사람들이라 전리품으로 빼앗은 금고리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은 왕이 되지 않겠다고 한 기드온은 백성들에게 미디안 사람들에게서 탈취한 금귀고리를 달라고 합니다. 백성들은 자신들이 거두어들인 각종 패물을 가져다가 바쳤습니다. 기드온은 이것들을 가지고 에봇을 만들었습니다.
▶ 이것을 가지고 남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값비싼 금을 보았을 때 그의 인격의 깊은 곳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갑자기 부자가 되고 안정되게 살고 싶은 강한 소유욕이 기드온을 사로잡았다. 예로부터 내려오는 말 중에 황금은 흑사심이라는 말이 있다. 기드온은 자기 부하들이 거둬들인 노략물을 보았다. 그것이 기드온의 시선을 끌어당겼다. 오브라의 가난한 농부 출신인 그가 그런 멋진 보물을 보기도 처음이었다. 미디안 군대에게서 탈취한 보물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눈부실 정도로 만든 금귀고리, 목걸이, 금으로 된 낙타 사슬, 여러 가지 이스라엘족속이 즐겨 쓰는 장신구, 왕이 입는 자색 옷, 금색 실로 수놓은 옷, 그밖에 여러 가지 장신구들이 많았다. 기드온이 이런 것들을 바라볼 때 욕심이 생겼다. 그는 많은 재물을 소유하고 싶었다. 그래서 그것을 사람들로 하여금 내놓게 하였다. 그의 눈에 보이는 것, 그의 손에 닿는 것은 다 자 기 것으로 만들고 싶었다. 놀랍게도 그의 소원이 성공리에 이루어졌다. 그렇게 사람들이 자기의 가지고 있던 소유를 내놓으면서 누구 하나 ‘무엇에 쓰려고 하느냐?’고 묻는 사람이 없었다. 기드온은 정말 순식간에 부자가 되었다. 먼지 구덩이 속에서 일하던 농부가 갑자기 거부가 된 것이다. 세상에 사는 동안 돈이 얼마나 필요한지 모른다. 돈 없이 살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거짓말이다. 그런데 금이란 것은 매우 값진 보석이긴 하지만 거기에 따르는 속박이 있다. 거기에서 얻은 자유도 크지만 그것을 소유한 사람을 오히려 소유라는 감방 속에 가두어 버리고 마는 경우가 허다하다. 재물은 그것을 추구하는 사람을 결국 타락시키고 만다.』
과연 그럴까요? 그렇다면 기드온은 에봇을 만들지 않고 오히려 자손들에게 그것을 다 나누어 주었을 것입니다.
1. 본의 아니게 실수를 하게 된 기드온
기드온은 본의 아니게 자신의 의지와는 달리 그가 만든 에봇이 백성들을 타락시키는 원인을 제공한다는 사실을 전혀 예측하지 못하였습니다. 물론 쉬지말고 기도하라는 바울의 말과 같이 하였더라면 좋았을 것을 하는 아쉬움은 남습니다.
구약성경에 의하면 에봇은 본래 제사장들의 의복으로서 앞으로는 가슴, 뒤로는 등을 덮었던 조끼 모양의 옷입니다. 특별히 어떤 일을 결정할 때에 제사장은 이 에봇을 입고 그 안에 두 개의 돌 즉 우림과 둠밈을 넣어 그것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물었습니다. 이러한 영적인 의미가 있는 에봇을 기드온이 만든 것 자체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또 기드온이 에봇을 만든 것은 참으로 순수한 신앙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사실 기드온이 자기 백성들의 관심을 여호와께 돌리려고 얼마나 애썼는지는 지금까지의 기록을 보아서도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 레위 지파의 제사장직은 몹시 타락했었으리라고 생각됩니다. 기드온이 오브라에 있는 자기 집에 금으로 된 에봇을 걸어두어 보이려고 했던 것은 아마도 이스라엘 사람들의 영적인 면에 새로운 자극과 활력을 부어 주려는 그의 간절한 소망에서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이유만으로는 그의 행동을 정당화시키기가 어렵습니다. 기드온은 바알과 아스다롯의 우상을 쳐부수긴 했지만 그 대신에 다른 새 우상을 만들어 놓은 셈이 되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기드온은 우상의 종류만을 바꾸어 놓은 셈입니다. 그는 하나의 우상을 치워 버리고 다른 새 우상을 가져다 놓는 오류 속에 빠지고 만 것입니다.
기드온이 만들어 놓은 에봇으로 인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숭배에 빠졌습니다.
삿 8:27 / 기드온은 거두어들인 금으로 에봇을 만들어 자기 고향 마을인 오브라에 모셔 두었다. 그러자 온 이스라엘 사람들이 오브라로 와서 그 에봇 섬기기를 우상 섬기듯 하였다. 이렇듯 그 에봇이 기드온과 그 집안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올가미가 되었다.
기드온이 만들어놓은 에봇이 백성들로 하여금 음란하게 하고 그들을 범죄하게 하는 올무가 되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음란이란 영적인 의미의 음란을 뜻합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제사 드리지 않고 에봇 앞에서 에봇을 섬기는 우상숭배에 빠져들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출 20:3-5 / 너는 나 이외에 다른 신들을 모시지 마라. 4) 너는 신상을 새기지 마라.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속에 있는 것이나 어떤 것이든 그 모양을 본떠서 우상을 만들지 마라. 5) 그 앞에 절하지도 말며 섬기지도 마라.
설령 그것이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더 잘 섬기기 위하여 어떤 신상을 만들어 놓는 일조차도 하지 말아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상징하는 그 어느 무엇이라도 사람들은 그것을 신격화하기 때문입니다.
제2계명은 하나님을 어떤 보이는 존재로 형상화시켜 섬기는 것을 금하였는데, 성경의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보이시지 않기에 참 하나님이십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보이지 않기 때문에 믿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볼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눈으로 볼 수 있는 하나님이사라면, 그분은 그만큼 제한된 것일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눈이 볼 수 있는 것이란 한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눈은 너무 가까이 있는 것도 볼 수 없고, 너무 멀리 있는 것도 볼 수 없고, 너무 멀리 있는 것도 볼 수 없습니다.
이같이 제한된 눈으로 우주와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을 보려고 한다면, 그 같은 욕구 자체가 모순일 수밖에 없습니다. 또 그런 제한된 눈에 보이는 하나님이란 제한된 하나님일 수밖에 없습니다.
역사속에서 사람들은 하나님을 기억나게 해주고, 생각나게 해주는 어떤 상징 혹은 형상들을 만들어 왔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같은 형상들이 처음에는 좋은 뜻으로 사용되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형상 자체를 섬기고 예배하는 일이 생겨나게 된 것입니다.
▶ 대표적인 예로 민수기 21장에 나타난 이야기를 들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생활을 할 때입니다. 식물도 물도 부족하게 되자 백성들은 모세와 하나님을 원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불뱀이 나아와 백성들을 물음으로 많은 백성들이 죽게 되었습니다. 모세가 하나님께 기도하자 하나님께서는 놋으로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헤 달라고 명하시면서 누구든지 놋뱀을 보는 사람들은 나음을 얻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모세가 명령하자 놋뱀을 보는 사람들은 뱀의 독으로부터 무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놋뱀에 대한 기사가 열왕기하 18장에 다시 나옵니다. 히스기야 왕이 여러 우상들을 깨뜨려 부술 때에 모세가 만들었던 이 놋뱀도 부셔버립니다. 왜냐하면 백성들이 이 놋뱀을 분향하며 섬겼기 때문입니다. 놋뱀을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놋뱀은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기억나게 해 주는 형상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상징물을 사람들이 절하며 섬기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한 왕인 히스기야는 이것들을 깨뜨려 부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어느 형상, 어떤 물건과도 동일 될 수는 없습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이는 어떤 형상과 동일시 할 때 성경은 그것이 우상숭배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2. 작은 문제에 실패했습니다.
기드온은 135,000명의 미디안 대군과의 싸움에서는 대승을 거두었지만, 사소하고 작은 일에 실패를 했습니다. 왕이 되는 일에는 거절했으면서도 기념품 하나 잘못 만들었기 때문에 실패했습니다. 여러분들이 만약 기드온이라면 얼마나 억울하겠습니까? 그러나 성공과 실패는 큰 문제가 아닌, 이렇게 조그마한 문제로부터 달라집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커다란 산에 걸려서 넘어지지는 않지만, 작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한순간의 방심이 결국 이렇게 큰 화를 자초한 셈입니다.
기드온은 전쟁의 소용돌이에서는 성공했지만, 전쟁을 마치고 평온할 때 실패했습니다. 힘들 때는 정신을 차리고 오직 하나님만 의지했지만, 승리를 거두고 나서 평화가 찾아오자 마음이 해이해져 결국은 실수를 한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똑같이 적용이 됩니다.
가장 무서운 함정이 있다면 <자기만족>이라는 함정입니다. ‘이제 이만하면 됐지, 이제는 여유를 누려야지, 이 정도면 충분하다’는 생각이 무서운 함정입니다. 여유가 생기면 노력을 하지 않습니다. 어려울 때는 열심히 기도하고 엎드리다가 어느 정도 안정이 되고 성장이 되면 기도 시간이 줄어듭니다. 말씀을 읽는 시간도 점점 줄어듭니다. 사실 이 때만큼 위기의 순간도 없습니다. 다윗을 보십시오. 사울의 추적이 끝나고 왕위에 오른 후 평온이 찾아왔을 때, 그는 간음죄와 살인죄를 저질렀습니다. 고난 가운데에서 뿐 아니라 평온할 때도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 때에 주님을 의지할 뿐 아니라, 평탄한 시온의 대로가 뚫려 있을 때에도 하나님을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고통의 먹구름이 드리워져 있을 때에 하나님을 바라볼 뿐 아니라, 밝은 태양이 내려 쬐일 때에도 하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에서 열심히 달리고 있던 토끼는 잠시 나무 밑에 쉬어 가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토끼는 잠이 들고 말았습니다. 그러는 사이, 거북이는 열심히 엉금엉금 기어서 결국 토끼가 자고 있는 나무 밑을 지나치게 되었습니다.
토끼 : 흥! 내가 1등이야. 잠시 쉬었다가도 거북이는 따라오지 못할 거야? 1시간만 낮잠 좀 자야겠다.
거북이 : 하하하하! 토끼 녀석, 나를 느림보 거북이라고 놀렸겠다. 내가 이제 1등이란다. 토끼야!
토끼 : 아니!! 잠시 쉬어간다는 게 1시간이나 지나다니 … . 어라? 거북이가 이겼잖아?
토끼가 낮잠을 자는 사이 거북이는 도착선에 도착하고 말았습니다. 거북이는 쉬지 않고 열심히 경주를 마쳤습니다. 그리하여 토끼보다 빨리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토끼는 열심히 달렸지만 중간에 조금만 쉬어가자는 것이 결국 깊은 잠에 빠져 결국 거북이에게 지고 말았습니다.
3. 마무리를 잘못한 사람들
성경에는 용머리처럼 멋지게 시작은 했지만 뱀 꼬리처럼 시시하게 인생을 끝낸 사람들이 많습니다.
1. 삼손이 대표적인 사람입니다.
삼손은 출생부터 특이한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부모는 아이를 출산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하나님의 사자가 나타나서 마노아의 아내에게 아이를 임신하게 해주겠다고 말하면서 당부했습니다.
삿 13:4-5 / 그러니 이제부터는 포도주나 독주는 마시지도 말고 부정한 음식은 입에 대지도 마라. 5) 또한 네가 아이를 가져 그 아이를 낳은 뒤에도 그 아이의 머리카락을 잘라 주려고 머리에 칼을 대어서는 안 된다. 태어날 아이는 뱃속에서 나올 때부터 이미 하나님께서 특별히 가려 뽑으신 나실인이기 때문이다. 이 아이가 곧 이스라엘을 블레셋의 압제 아래에서 건져내리라.
삼손은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나실인이었습니다. 나실인이란 하나님께 바쳐진 사람으로서, 다른 사람들과 구별된 삶을 살아야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어릴 때부터 나실인으로서 자랐습니다. 그리고 커서는 블레셋과의 싸움과 전쟁에서 연전연승을 거두어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사사로서 많은 공헌을 했습니다. 하지만 블레셋 여인 들릴라의 꾀임에 빠져 자기 힘의 비밀을 알려주는 바람에 머리카락을 깎이고 블레셋에 붙잡혔습니다. 그리고 눈이 뽑힌 채 쇠사슬에 매여 맷돌을 돌리는 처량한 신세가 되었다가 마지막에는 다곤 신전에서 비참하게 죽고 말았습니다. 삼손은 처음에는 그럴 듯 했지만 마지막에는 용두사미와 같은 인생을 살다가 사라졌습니다.
2. 유다의 열 번째 왕인 웃시야도 훌륭한 왕으로 많은 사람의 존경을 받다가 마지막 커다란 실수를 저질러 안타깝게 인생을 끝내버린 사람 중에 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대하 26:4-5 / 그는 아버지 아마샤의 초기 행적을 본받아 주님의 마음에 맞는 행동을 하였다. 5) 예언자 스가랴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웃시야왕이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옳은 일들만 하였다. 또 그가 스가랴의 교훈을 받아 하나님께 순종하며 사는 동안에는 하나님께서도 그에게 모든 일이 다 잘 이루어지게 해주셨다.
그는 16세에 왕위에 오른 후 왕으로서는 보기 드문 아름다운 출발을 했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했고 항상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유다 나라를 형통케 해주셨습니다. 웃시야는 계속해서 가축들을 보호하기 위해 성을 정비하고, 군대를 정비하고 최신식 무기로 무장하게 하고, 농업 기반을 조성하여 나라를 경제적으로 부강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명성이 애굽에까지 전해질 정도로 탁월한 리더십을 갖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말년에는 그렇지 못했으니 교만하여져 제사장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전에 들어가 분향하려다가 하나님의 노여움을 받아 문둥병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대하 26:16-23 / [웃시야의 교만과 몰락] 그러나 웃시야는 날로 세력이 강해지고 하는 일마다 성공을 거두자 교만에 빠져 자기의 하나님 여호와께 죄를 저지르기에 이르렀다. 그는 제사장이나 들어갈 수 있는 여호와의 성전에 직접 들어가 분향하려고까지 함으로써 하나님 말씀의 권위를 왕권에 예속시키려는 교만의 죄를 저질렀다. 17) 그러자 대제사장 아사랴가 다른 제사장 80명을 거느리고 왕을 뒤쫓아 갔다. 그들은 모두 용사들이었다. 18) 그들이 웃시야왕을 가로막으며 이렇게 항의하였다. `임금님, 여호와께 분향하는 것은 왕이 할 일이 아닙니다! 그 일은 제단을 맡아 섬기도록 성별된 아론의 후손 제사장들만이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어서 성전에서 나가시오! 하나님을 거역하는 죄를 저지른 임금께서는 이제 하나님의 복을 받지 못할 것입니다.' 19) 이미 향로를 손에 들고 있던 웃시야가 버럭 화를 내었다. 그러나 그가 제사장들에게 호통을 치려고 하는 바로 그 순간에 그의 이마에서 문둥병이 돋아퍼졌다. 이 일은 성전의 분향 제단 곁에서 모든 제사장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일어났다. 20) 대제사장 아사랴와 모든 제사장들은 그의 이마에 돋아난 문둥병을 보자 곧 그를 성전에서 쫓아내었다. 웃시야왕도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벌을 내리신 줄 깨닫고는 급히 성전 밖으로 달려 나왔다. 21) 이리하여 웃시야왕은 죽는 날까지 문둥병자가 되었다. 그는 별궁에서 격리생활을 하며, 다시는 성전에 들어가지 못하였다. 왕이 이렇게 약 8년 동안 격리생활을 하는 동안에 그의 아들 요담이 왕궁의 책임자가 되어 왕을 대신하여 정사를 돌보았다. … 23) 웃시야가 죽자 문둥병 때문에 왕들의 묘실 곁에 있는 뜰에 매장되었다. …
3. 이스라엘의 초대왕 사울도 시작은 참 잘했지만, 왕이 된 후부터는 잘못한 사람입니다.
그는 아름답고 준수하고 거기에 겸손함까지 겸비했고, 하나님을 경외하던 청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왕위에 오른 후 얼마 안 되어 변질되었습니다. 그는 제사장이 아니면서 교만하게도 번제를 드렸습니다. 또한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얻은 모든 것을 진멸하라고 말씀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가치 없고 하찮은 것들은 진멸하되 값지고 좋은 것들은 빼돌리는 불순종의 죄를 범했습니다.
나중에는 여호와 하나님만을 따르며 백성들의 모범이 되어야 할 왕으로서 신접한 여인을 찾아갔습니다. 결국 그로 인해 그의 말년은 처참했습니다. “사울이 자기 칼을 취하고 그 위에 엎드러지매 … 사울과 그 세 아들과 병기든 자와 그의 모든 사람이 다 그 날에 함께 죽었더라.”(삼상 31:4-6). 사울의 인생은 자살로 끝났습니다. 이처럼 삼손이나 웃시야 왕이나 사울 왕은 멋지게 시작은 했지만 비참하게 인생을 끝낸 안타까운 인생을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 살전 5:14-19로 결론을 삼고자 합니다.
살전 5:14-19 /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게으른 자들을 나무라고 소심한 자들을 격려하며 허약한 자들이 있거든 돌보아주십시오. 그리고 모든 사람에게 인내로 대하십시오. 15) 아무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마십시오. 그보다는 언제나 서로 선을 베풀도록 힘쓰십시오. 또 모든 사람에게 선을 베푸십시오. 16) 항상 기뻐하십시오. 17) 언제나 기도에 힘쓰십시오. 18) 어떤 처지에 있든 감사하는 마음을 잊지 마십시오.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뜻입니다. 19) 성령의 불을 끄지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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