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식(사물)의 시-
<회수(回首)> 박목월
나의
손가락 사이로
모든 것은 부드럽게
흘러 내렸다.
어린 날의
모래톱이며, 앓는 밤의
출렁이는 검은 물결이며
첫사랑이며
쫒다가 놓친 사슴.
그것은
나의 손가락 사이로
부드럽게 흘러 내렸다.
하지만 그 흔적으로
달이 있다.
달빛에 비쳐보는 빈손.
그리고
산마루에서 발을 멈추고
뒤돌아보는
사슴이 있다.
좀생이 별 아래서
고개를 돌리고
영원히.
위 인용시는'손'을 대상으로 하여 작품
발상의 대상이 '관념'아닌'사물' 로 '사물의시, 인식의시'라 할 수있다.
'사랑. 죽음'등의 관념이 아니다
**난 - 박목월
이쯤에서 그만 하직하고 싶다.
좀 여유가 있는 지금, 양손을 들고
나머지 허락받은 것을 돌려보냈으면
여유 있는 하직은
얼마나 아름다우랴.
한 포기 난을 기르듯
애석하게 버린 것에서
조용히 살아가고,
가지를 뻗고,
그리고 섭섭한 뜻이
스스로 꽃망울을 이루어
아아
먼 곳에서 그윽히 향기를
머금고 싶다
**어머니의 향기 - 박목월
어머니에게서는
어린 날 코에 스민 아른한 비누 냄새가 난다.
보리대궁이로 비눗방울을 불어 올리던 저녁노을 냄새가 난다.
여름 아침 나절에
햇빛 끓는 향기가 풍긴다.
겨울밤 풍성하게 내리는
눈발 냄새가 난다.
그런 밤에
처마 끝에 조는 종이 초롱의
그 서러운 석유 냄새
구수하고도 찌릿한
백지白紙 냄새
그리고
그 향긋한 어린 날의 젖내가 풍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