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용의 문화를 이해하려면 무엇보다도 용의 형상을 어떻게 知覺해야 하는가 하는 점이 중요하다. 용의 문화는 대략 8,000여 년 동안 중국의 문명의 발전적 궤적을 함께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사상과 문화에서도 중요한 역사적 전통과 문화적인 의의를 지니고 있다. 기원전 6,000여년쯤으로 추정되는 신석기시대의 査海문화, 청동기시대의 紅山문화, 仰韶문화 등에서 石器, 骨器, 陶器 등에 있는 용의 형태나 문양이 발견되었다.* 특히 商代와 周代의 甲骨文에 나타난 ‘龍’ 글자의 형태나 개념은 다양한 지역문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중국의 문명은 黃河의 유역과 長江의 유역 사이에 6개의 문화권이 있다.** 이 문화권에서 12종의 원시적 형태의 용이 발견되었다. 이들은 몇 종류의 중복된 유형들을 제외하면 대체로 9종류로 나뉠 수 있다. 이 9종류의 용은 육지, 수중 및 공중의 동물들에 속한 9종류 형상으로 구성되어 있다. 즉 돼지(猪), 말(馬), 뱀(蛇), 호랑이(虎), 사슴(鹿), 물고기(魚), 도룡농(鯢), 악어(鰐), 매(鷹)이다. 이러한 9종류의 동물은 ‘龍’의 상형문자와 그 속에 함축된 지각적 방식과 관련된다. 특히 이들은 머리와 꼬리를 연결하는 彎月의 모양과 같은 구부러진 형태를 취하는 방식이 많다. 이러한 용의 具象的 형태에는 모종의 抽象的 관념, 즉 생명의 잉태와 그에 대한 의식과 경외감이 상징적으로 반영되어 있다.***
고대의 중국에서 수렵사회에 馬犬의 토템이 있었다면 농업사회에서 는 蛇龍의 토템이 있었다.**** 뱀은 生殖숭배의 대상이었고 女性의 생식기로 은유되고 상징화되었다. 그러므로 蛇龍의 토템은 모계사회의 산물로 이해된다. 또한 용의 토템은 부계사회의 씨족공동체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특히 黃帝의 신화를 살펴보면 그는 거의 신격화되어 씨족연맹체의 수장이었던 것 같다. 여기에서 용의 토템은 그의 권위를 뒷받침하고 그 공동체를 유지하는 정치적 혹은 사회적 기능을 담당하였다. 그러나 후대에 부족의 연맹체가 결성되고 초기의 국가가 발전하면서 용의 토템과 그 사회적 기능은 차츰 약화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의 토템과 그 구체적인 형상화는 초기의 국가를 세우는 중요한 초석이 되었다.*****
이러한 유래와 배경하에서 용의 형태는 역사적 과정을 거치면서 상징, 은유, 비유 등과 관련한 類比的 사유에 따라 독특한 모습을 띠게 되고 그에 맞게 특징적인 개념을 형성하게 되었다. 이들 대부분은 그 지역의 지형과 생활방식과 관련된 문화의 종합적 특색을 지닌다. 이는 이미 구체적인 형상으로부터 공통의 성질을 추출하고 공통의 성질을 거쳐 새로운 존재의 개념으로 탄생된 것이다. 이에 대한 고고학의 성과를 보면, 용의 성격과 특징은 어느 정도 추상적으로 개념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구체적으로 말해, 기원전 3,000여년쯤 炎黃의 시대에 원시적 용(原龍)의 형태가 싹트기 시작하여 기원전 1,000여년 쯤 商代와 周代에는 夔龍(기용)의 형태가 이미 갖추어졌고, 기원전 500여년쯤 春秋戰國시대부터 秦漢시대 사이에 하늘을 나는 용(飛龍)의 기본적인 형태가 갖추어 졌으며, 서기 1,000여년쯤 송대 이후부터 최근까지 黃龍******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이러한 내용을 구체적으로 서술하면 다음과 같다. 우선, 炎黃시대에 原龍은 두 가지 동물의 특징을 종합한 것이다. 그 다음에 夏代에는 4가지 문화가 종합되었다. 북방의 紅山문화에서 돼지의 형태를 지닌 용에서 머리가 돼지이고 몸이 뱀이다. 그 중에서 1935년에 내몽고에서 출토된 玉器의 용은 말의 형태를 특징으로 하여 머리는 말의 모습이고 몸은 뱀의 모습이다. 동남의 良渚문화에서 호랑이의 형태의 용은 머리는 호랑이이고 뿔은 소이다. 중원의 陶寺문화에서 뱀의 형태의 용은 머리는 악어이고 몸은 뱀이고 등에는 물고기의 지느러미를 지닌다. 중남의 大溪문화나 屈家岭문화에서는 황하의 유역과 그 부근의 평원의 지형을 반영하여 머리가 사슴이고 몸이 뱀이고 손톱은 호랑이이고 꼬리는 물고기이다. 이들의 용의 형태는 모두 여러 동물들을 조합한 것으로서, 인간의 의식 속에서 직관과 연역에 기초한 比喩的 사유의 결과라고 말 할 수 있다. 이러한 추상적 개념의 과정을 따라가면, 殷周시대에 夔龍은 두 세 종류의 동물들의 특징을 종합한 것이다. 춘추전국시대에 飛龍은 대여섯 가지의 동물들의 특징을 종합한 것이다. 송대에 黃龍은 아홉 가지 이상의 동물들의 특징을 종합한 것이다. 더욱이 명청시대에 황용은 황제의 상징으로 여겨서 최고의 皇權을 대변하게 되었다. 심지어 천자의 권위를 지닌 황제도 세속적으로 眞龍天子라고까지 부르게 되었다.******** 이와 같이 용의 개념, 명칭 및 범주는 유비적 사유의 산물로서 역사적으로, 시대적으로, 사회적으로, 문화적으로 포용되고 수용되었다. 용은 자연계와 인간사회의 관계에 따라 특정의 동물의 원형과 그 의미의 연관을 지닌다. 그것은 토템의 대상으로서의 동물들을 知覺的 방식을 통해 특정의 형상으로 관념화한 결과이다. 이 관념화의 과정에서 용의 실질적 개념이 생겨나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許欽彬, 易與古文明 (北京: 社會科學文獻, 2012), 125-150쪽
**이는 東北문화권, 西北문화권, 中原문화권, 山東문화권, 東南문화권, 中南문화권이다. 또한 서북쪽에 仰韶문화, 동북쪽에 紅山문화, 中原에 仰韶문화와 陶寺문화, 山東에 大汶口문화와 龍山문화가 있다. 王東, 龍是什麼- 中國符號新解密 (北京: 中央編譯, 2012), 163-172쪽
***馬昀/徐則平, 「龍圖騰: 基於多元一體語境的中華民族認同」, 敎育文化論壇 第2期(貴州大學, 2014)
****聞一多는 머리는 사람이고 몸은 뱀인 용의 형상의 모습을 토대로 하여 용과 토템사상의 관계를 설정하고 이를 상세히 논하고 있다. 聞一多, 伏羲考 (上海: 上海世紀出版集團, 2011), 10-37쪽.
*****謝穡, 「從“蛇”圖騰到國家的産生」, 湖南師範大學社會科學學報 제41권 제5기(2012), 118-122쪽.
******황용은 원래 삼국시대에 吳나라 孫權이 黃武8년(229년)에 黃龍이 나타나고 상서로운 일이 발생하자 이를 기념하기 위해 그 해를 黃龍元年으로 삼았다고 전해진다. 또한 漢代에 宣帝(기원전 49년)인 劉詢이 황용을 年號로 삼기도 하였다.
*******王東, 龍是什麼 - 中國符號新解密 (北京: 中央編譯, 2012), 192쪽
********이 외에도 용의 글자가 들어간 말에는 황제의 신체인 龍體, 황제의 얼굴인 龍顔, 황제의 궁전인 龍殿, 황제의 정원인 龍庭, 황제의 자리인 龍倚, 황제의 책상인 龍床, 환재의 자손인 龍孫, 황제가 서거한 것인 龍馭歸天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