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예천 도장리 정사 묘(조선8대 명당인가? 3국을 다 보아야 된다)
1. 동래정씨 정사(鄭賜, 1400 정종2년~1453 단종1년)
정사는 동래정씨 13세손으로 과거에 급제하고 예문관직제학을 거쳐 진주목사를 역임했다. 후손이 번성하여 동래정씨의 핵심적 계파인 직제학공파의 파시조가 되었다. 동래정씨는 정승17명을 배출했는데 정사의 후손이 그 중 13명을 차지했다.
2. 묘에 관한 설화
* 정사가 진주목사 재임 중 졸(卒)하자 유족들은 배편으로 낙동강을 거슬러 고향인 예천 용궁으로 운구하던 중이었다. 배가 도장리에 이르러자 동행하던 지관이 혈 맺힌 곳을 예감하고 배를 멈추게 하고 찾아 갔더니 한무리 사람들이 이미 천광을 파놓고 웅성거리고 있었다. 내막인 즉, 구덩이에 물이 나서 매장을 포기하려 한다는 것이었다. 지관이 포기하는 곳을 양보받고 인근 도마마을 논두렁 밑에 세 곳을 파자 우물 3개가 생기면서 묘자리의 물이 말라서 묘를 쓸 수 있었다. 그러나 정문익공의 유고에는 고향에서 졸하고 아들이 구산하였다고 쓰여있다.
* 묘지에 관한 설화는 허위 또는 과장이 많다. 정문익공의 유고가 정확하리라 본다. 아마 모친이 위독하여 관직을 사임하고 고향에 있던 중 졸하였다고 추측된다. 그리고 도마마을까지는 산등을 넘어서 직선거리로 1.2키로 거리에 있고 해발도 높아서 이 곳 물이 도마마을로 흘러갈 리 만무하다. 자신이 있으면 묘 앞 낮은 곳에 샘을 파고 색소를 풀어 도마마을 샘물에 반응하는가를 검증하면 된다. 생극 권근 3代 정승 묘도 광중에 물이 나는 것을 상당히 떨어진 거리에 있는 산 정상에 샘을 파서 물을 막았다는 설화가 있다. 이야깃거리(스토리텔링)를 만드는 것도 좋지만 황당한 설화를 사실인 양 강조하는 것은 풍수를 미신으로 치부하는 빌미가 될 우려가 있다.
3. 답사
* 흔히 이 곳을 조선8대 명당의 하나로 친다. 그러나 청룡 백호가 혈처를 감싸주지 않고 넓게 열려있어서(이런 탓으로 옥녀가 다리를 벌리고 누워있는 玉女開脚形이라 한다) 생기가 새어나갈 형상이고, 안산이 뚜렷하지 않고, 전면 백호쪽에 우뚝 솟은 비봉산이 압권인데 옥녀와 마주보지 않고 강건너에 있어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결점을 지적하는 풍수도 있다. 그러나 정승13명 배출이라는 발복에 눌려서 혈이 아니라고 말하는 이는 없는 것 같다.
* 필자는 세 번 가보았는데 생기가 약한 느낌이 있었으나 명혈임에 틀림이 없다. 이 혈을 파악하려면 소국(小局, 현무나 주산이 안산과 합쳐 혈처를 싸안고 있는 구역) 중국(中局, 소조나 중조가 조산과 합쳐 혈처를 싸안고 있는 지역) 대국(大局, 태조산이 혈처를 안고 있는 지방, 혈처와 거리가 멀어서 혈처까지의 행룡을 파악하는데 의의가 있을 뿐이다)을 전부 살펴야 된다. 산들이 어떤 지역을 담장 처럼 빙둘러 쌓은 모양을 원국(垣局)이라 하는데 원국안에 혈처가 없는 경우도 있다.
* 소국---백호는 직선으로 열려 있는 등 소수설이 지적하는 약점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예전 갔을 때 트럭을 동원하여 백호등을 높이고 길이를 연장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봉분 양옆에 작은 흙무덤은 옥녀 유방이라 했다. 유방성형 수술을 하고 의족을 붙인다고 흉보고 왔다.
* 중국---물을 돌렸다는 도마마을은 직선거리 1.2키로이다. 주산까지 흘러 오는 용맥이 아름답다. 여근은 개방적이나 外청백이 치마로 감싸서 숨겼다.
* 中大局---비봉산이 수구역할을 하여 낙동강을 만궁으로 만들었다. 아울러 권세발복을 주는 사격으로 정승발복에 영향력이 있었다고 본다. 소국은 순둥이인데 비봉산이 웅장하게 솟아 음양의 조화를 맞추었다. 정면으로 대립하게 되면 조화롭지 않다. 비봉산을 어느 곳으로 배치한다면 좋을가? 지금의 배치보다 더 나은 구도를 생각하기 어렵다.
* 정사 묘---
4. 조선8대 명당인가?
* 사람들은 정승 13명 배출의 발복에 방점을 두어 8대 명당이라 하는 것이다. 동래정씨들은 크고 작은 명당을 많이 썼다.
13세손 정사 후손 중에서 정난종 묘역(14세손, 군포 속달동 산3-1) 정유길 묘역(18세손, 서울 사당동 산32-83 동래정씨임당공파 묘역, 후손 9정승)이 백대명당으로 꼽힌다. 정사의 아들 정난종(1433~1489)은 호조판서 전라관찰사 등을 역임하였고 서예가이었다. 정난종은 아들 넷을 두었는데 둘째 정광필(중종반정공신, 영의정) 계열이 가장 번성하였다. 5대손 정유길은 좌의정, 정지연은 좌의정을 지냈다.
* 양택으로 정난종의 종택이 명당이고 정광필의 집터(서울 중구 소공로 51, 우리은행 마당)가 12정승을 배출한 대명당이라 한다
* 정승을 많이 배출한 성씨는 전주이씨 22명(인구260만, 3위), 신안동김씨 19명(인구 4만8천), 동래정씨 17명(47만명,16위)의 순이다. 전주이씨는 왕족이라는 배경으로 정승이 많았고 신안동김씨는 세도정치를 한 탓으로 비난을 받았는데 동래정씨는 무난하고 사화에도 피해가 적었으나 황희, 맹사성 같은 명재상이 없는 것은 아쉽다.
* 결론을 말하자면, 정사의 묘는 발복과 명당 구조가 좋아서 상등중급에 가까운 대명당이다. 그러나 부산 화지산 정문도의 묘에 미치지 못하므로 8대 명당에 올리기는 어렵다. 20대 명당 안에 들겠다. 그리고 정사 후손의 발복은 오로지 정사 묘에 기인한다고 볼 수 없고 정난종과 정유길의 음택, 정광필의 양택이 상당한 역할을 하였다고 본다.(2024.6)
첫댓글 성형모독? K-뷰티
성형미인도 미인입니다.
예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표 안나게 해야 아름다움이 배가 되지요 !!
시대는 변해도 이렇게 가꾸는 이유가 있겠죠.부작용이 생길까 우려됩니다.좋은 의사를 만나야 할텐데요.
생수방출법, 백호등 보강, 이 모두가 비보풍수로서
옛날 현장에서 직접 체험,연구 한적이 있었지요..
잘 보았읍니다..감사합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