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 다윗 도성(시온산)과 올리브산
1. 예루살렘 성전과 다윗 도성
예루살렘은 다윗 왕이 여부스족으로부터 빼앗아(2사무 5,9) 정치ㆍ종교의 중심지인 새 왕국의 수도로 정하고 세운 도성이다. 지금의 예루살렘 성곽은 오스만 튀르크 제국 슐레이만 2세가 1532년부터 1539년까지 복원한 것이며 다윗 도성은 이 성곽 밖에 위치한다.
유다인들은 하느님의 지성소를 모셨던 성채를 '평화의 도시''평화의 근원'이란 뜻의 히브리말 '예루살라임'이라 부른다. 우리에게 라틴말 '예루살렘'으로 더 친숙하게 알려진 도시이다.
예루살렘은 이스라엘 중앙 산악지대 기혼 샘이 있는 키드론 골짜기 서쪽 해발 760m 고지에 자리잡고 있다. 동으로 유다 광야, 서로 쉐펠라 목초지, 남으로 베들레헴, 북으로 벤야민 산지가 있다.
3000여 년 전인 기원전 1000년께 다윗이 천혜의 요새인 이곳에 도성을 세워 유다 바알라에서 '하느님의 궤'를 모셔왔다(2사무 6장 참고). 다윗은 아브라함이 외아들 이사악을 번제물로 바치려 했던(창세 22, 1-22) 모리야 산에 집터를 정해 '시온'이라 했고, 솔로몬이 그곳에 주님의 집을 지어(2역대 3,1) '주님의 계약 궤'를 모셨으며(2역대 5,2-7.10),'주님의 영광'이 성전에 가득 찼다(1열왕 8,1-66).
토라(모세오경)에 따르면 모든 유다인 남자는 매년 초막절, 수확절, 추수절 때 예루살렘 성전을 순례해야 했다. 13세부터 이 의무가 적용됐지만 유다인들은 이 율법에 익숙해지기 위해 12세 때부터 대부분 순례를 떠났다. 루카 복음에 따르면 예수도 12세 때 부모와 함께 예루살렘 성전을 순례했다. 사진은 만 13세가 된 한 유다인 소년이 가족과 함께 토라 율법 규정을 지킬 의무를 서약하는 예식을 하고 있다.
예루살렘 성전은 유다인들에게 모든 시대를 통해 삶의 중심이 됐다. 토라(모세오경)에 따라 이스라엘 모든 남자는 해마다 과월절(파스카)과 수확절(오순절), 추수절(초막절)에 예루살렘 성전을 순례했다(탈출 23,14-17 참조). 또 예루살렘을 향해 무릎을 꿇고 하루 3번씩 기도하는(다니 6, 11) 풍습이 생겨났고, 회당도 예루살렘 성전을 향해 지어졌다. 예수의 부모도 해마다 파스카 축제 때 예루살렘으로 순례를 가곤 했고, 예수도 12세 되던 해 토라에 따라 예루살렘 축제에 참가했다(루카 2, 41-42).
베네딕토 16세 전임 교황은 "일 년에 세 번 성전에 감으로써 이스라엘은 순례 중에 있는 하느님 백성, 언제나 하느님을 향해 길을 가는 백성이 되며, 유일한 성전에서 하느님과 만남으로써 다시 한 번 자신의 정체성과 단일성을 받아들이는 백성으로 머물 수 있었다"(「나자렛 예수」 2권, 168쪽)고 설명한다.
다윗 도성과 예루살렘 성전은 기원전 586년 바빌론 군대에 의해 모두 파괴됐고, 유다인들은 포로로 끌려가 바빌론에서 70년간 종살이를 했다(2열왕 25장). 바빌론 유배에서 돌아온 이후 즈루빠벨과 예수아가 나서 기원전 515년에 성전을 재건했으나 가장 중요한 계약 궤를 안치하지 못했다(에즈 5,1-6,18). 왜냐하면, 예레미야 예언자가 성전이 파괴되기 전에 신탁을 받고 천막과 계약 궤를 들고 모세가 하느님의 상속 재산을 본 느보 산으로 올라가 어느 동굴에 숨기고 입구를 막아 버렸는데 그 길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2마카 2,4-8).
기원전 37년 로마에 의해 유다 왕이 된 헤로데는 즈루빠벨의 성전을 부수지 않고 새 성전을 짓기 시작해 46년의 긴 공사 끝에 완공됐다. 헤로데 성전은 다시 한번 이스라엘 민족의 중심지가 됐다. 하지만 이 성전은 겨우 6년 만에 폐허가 됐다. 66~70년에 일어난 제1차 유다 항쟁을 진압한 로마 티투스 황제에 의해 예수의 예언대로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남아 있지 않고"(루카 21,6) 완전히 파괴됐다.
다윗 도성과 예루살렘 성전은 예수의 예언대로 모두 파괴됐다. 이스라엘 전승에 의하면 이날은 유다력 '아브'(8월) 달의 9일째 되는 날로 바로 기원전 586년에 솔로몬의 성전이 바빌론군에 의해 불타 없어진 바로 그날이었다. 유다인들은 솔로몬 성전과 헤로데 성전이 똑같이 파괴된 이 운명의 날을 기억하기 위해 통곡의 벽에서 예레미야의 애가를 읽으며 성전 파괴를 슬퍼하며 메시아 도래를 기도하고 있다.
리길재 기자 teotokos@pbc.co.kr
2. 올리브 산
"아직도 자고 있느냐? 아직도 쉬고 있느냐?"
오늘날 아랍인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는 올리브 산은 예루살렘에서 동쪽으로 약 3.2km 떨어진 곳에 있으며 높이는 해발 820m 정도다. 예루살렘이 해발 720m이니 100m 정도 높은 셈이다.
올리브 나무가 많아 예수 시대부터 올리브 나무 숲이란 뜻의 `엘라이온`이란 불린 이 산은 갈릴래아에서 예루살렘으로 들어가는 관문이었다. 올리브 산은 구약성경에 단 2번 나온다. 다윗이 압살롬 소동으로 올리브 산으로 피신했다(2사무 15장)는 기록과 즈카르야 예언자가 `주님의 날`에 벌어질 일(즈카 14,4)을 가시적으로 표현한 대목이다.
올리브 산에는 겟세마니 성당을 비롯해 예수님 승천 경당, 주님의 기도 성당, 주님 눈물 성당 등이 산재해 있다. 올리브 산은 또 신약성경에서 예수님의 생애 마지막 한 주간과 관련돼 집중적으로 등장한다. 예수께서는 올리브 산에서 예루살렘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셨고(루카 19,41-44), 종말에 관해 설교(마르 13,3-13; 마태 24,3-14; 루카 21,7-19)를 하셨다. 예수께서는 낮엔 예루살렘 성전에서 가르치고 밤엔 올리브 산에 올라가 쉬셨다(루카 22,37-38). 또 예수께서는 최후의 만찬 후 제자들을 데리고 올리브 산으로 올라가 하느님께 기도를 드린 후 그 곳에서 체포되셨다(마르 14,26-50; 마태 26,31-56; 루카 22, 31-53; 요한 13,36-38; 요한 18,1-11). 그리고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 올리브 산에서 승천하셨다(사도 1,6-12).
이처럼 올리브 산에는 예수님과 관련한 성지가 여기저기 산재해 있다. 올리브 산에는 신앙의 자유을 얻은 후 4세기 중엽부터 성당이 지어졌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겟세마니 성당과 동굴 경당, 주님 눈물 성당(Dominus flebit), 예수님 승천 경당, 주님의 기도 성당(Pater Noster)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