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은 20억원을 들여 컨설팅을 받으면서 처벌 피하는 방법을 찾아보고 있지만
중소기업은 관련 법률 해석조차 못 하고 있어요.”
지난 20일 서울 노원구 서울과학기술대에서 만난 정진우(54) 안전공학과 교수는 시행을 앞둔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대재해법)을 이렇게 평가했다.
정 교수는 고용노동부 산재예방정책과장과 국제협력담당관을 지낸 산업안전 분야 전문가다.
2015년부터 서울과기대에서 산업안전보건법(이하 산안법) 등을 강의하고 있다.
중앙일보는 중대재해법이 국회를 통과한 지난해 1월 정 교수를 인터뷰했었다.
시행을 앞두고 다시 그를 찾았다. 법 제정 이후 변화와 시행을 앞두고 예상되는 문제점을 들어보기 위해서다.
다음은 일문일답.
Q중대재해법이 대형 로펌의 배만 불릴 수 있다고 보는 이유는.
A“산업안전은 대형 로펌이 관심을 가지지 않던 시장이었다.
하지만 중대재해법이 생기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코로나 사태 덕에 돈을 벌어 현금이 넘치는 대기업은 수십억 원을 들여 대형 로펌에 컨설팅을 맡겼다.
컨설팅은 사업장 안전 확보보다 책임 회피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렇다 보니 대형 로펌은 산업안전팀을 별도로 꾸려 관련 변호사를 대규모로 채용했다.
고용노동부를 거친 고위공무원이 로펌으로 이직해 컨설팅 수주에 나선 경우도 있다.
코로나로 번 현금이 사업장으로 가서 안전을 높이는 데 쓰여야 하는데 엉뚱하게 로펌으로 들어가고 있다.
정작 중대재해가 빈발하는 중소기업은 컨설팅조차 맡길 수도 없는 처지다.”
Q 컨설팅이 중대재해 예방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A “대형 로펌 컨설팅 보고서를 살펴보면 절반은 고용노동부의 법률 해설서를 그대로 붙여놓기 한 수준이다.
정작 현장에서 설비에 대한 구체적인 산업안전 예방책은 찾아보기 힘들다.
( 컨베이어,크레인 등 제조현장 설비에 대해 모르면서 예방은 요원하다)
현장에서 뛰는 안전보건공단 직원도 해설서에 답변이 없는데 저희가 어떻게 기업을 상대로
설명하느냐고 되묻는다.
현장에서 발로 뛰는 사람도 제대로 답변을 못 하는데 산업안전 실무 경험이 없는 대형 로펌이
기업 맞춤형 산재 예방 조언을 할 수 있을까.”
정 교수는 “중대 산업재해를 예방하기 위해선 중대재해법 시행보다 산안법 개정이 우선”이라고 주장했다.
1년 전 인터뷰와 같은 주장이다.
“산재는 예방이 핵심이고 예방은 기업이 법을 지킬 수 있도록 하는 실효성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Q 현장에서 느끼는 분위기는.
A “10대 기업 중 한 곳은 중대재해법과 관련해 로펌 컨설팅 비용으로 20억원을 지불했다고 한다.
반면 중소기업은 관련법 문구 해석도 못 하고 있는 곳이 대부분이다.
정작 산업안전에 취약한 건 중소기업이다.
사업장 사망사고 중 300인 이상 기업 비율은 5%에 불과하다. 95%는 300인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한다.
중대재해법이 산업안전 역량 강화가 아닌 경영책임자 처벌에 초점을 맞추고 있고, 그마저도 허술하게 만들어져 있어 정작 대기업 대표이사는 소송 통해 빠져나갈 수 있다.”
Q 산업현장에서 우려되는 문제점은.
A “대표이사와 안전책임자의 칸막이 현상이다.
대기업 계열사 중에서 사고에 대비해 검찰 출신 인사를 최고안전책임자(CSO)로 앉힌 경우도 있다.
산재가 발생해도 대표이사는 법적 책임에서 피해가려는 의도다.
대표이사가 안전 관련해서 보고를 회피하거나 일부러 보고를 받지 않는 경우가 빈번하게 일어날 거다.
중대재해법이 원맨(안전책임자)을 처벌하는 법이라서 그렇다.
안전 담당 임원과 사업부서 임원이 노후설비 교체를 놓고 충돌할 경우 대표이사가 먼 산 쳐다보듯 하면
사업장 안전 수준이 올라갈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