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 9월 26일(화) 시편 32:1-11 찬송 532장
(다윗의 마스길)
1. 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도다
2. 마음에 간사함이 없고 여호와께 정죄를 당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3. 내가 입을 열지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
4.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빠져서
여름 가뭄에 마름 같이 되었나이다 (셀라)
5. 내가 이르기를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 하고 주께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죄악을 사하셨나이다 (셀라)
6. 이로 말미암아 모든 경건한 자는 주를 만날 기회를 얻어서 주께 기도할지라
진실로 홍수가 범람할지라도 그에게 미치니 못하리이다
7. 주는 나의 은신처이오니 환난에서 나를 보호하시고
구원의 노래로 나를 두르시리이다 (셀라)
8. 내가 네 갈 길을 가르쳐 보이고 너를 주목하여 훈계하리로다
9. 너희는 무지한 말이나 노새 같이 되지 말지어다 그것들은 재갈과 굴레로
단속하지 아니하면 너희에게 가까이 가지 아니하리로다
10. 악인에게는 많은 슬픔이 있으나 여호와를 신뢰하는 자에게는 인자하심이 두르리로다
11. 너희 의인들아 여호와를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마음이 정직한
너희들아 다 즐거이 외칠지어다 (개역 개정)
- 죄악을 토설한 자의 사죄의 기쁨 -
본시는 다윗이 자신의 일생 일대의 실책인
밧세바 간음 사건에서(삼하11:2-12:25) 체험한 회개와
죄사함 받은 기쁨을 배경으로 지은 회고적 참회시로서
동일 사건에 대한 참회시인 51편과 한 짝을 이룬다.
그런데 본시는 비록 참회시이지만 회개 그 자체를 언급하기 보다
회개 후에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사죄의 기쁨을 간증적으로 고백함으로써
모든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다 죄인일 수밖에 없으며
그러한 인간은 하나님께 회개하고 죄를 용서받음으로써만
참된 행복을 누릴 수 있다는 지혜시적 성격이 강한 참회시이다.
본시에 붙은 표제어인 ‘다윗의 마스길’이란 ‘다윗의 교훈시’라는 뜻으로
바로 이러한 본시의 교훈적 성격을 반영하고 있다.
이러한 본시의 내용을 개요해 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1-2절은 시작하는 말로서 사죄를 얻은 자의
복됨을 직설적으로 선언하고 있다.
다음 3-6절에서 다윗은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범죄하고서 회개하지 않았을 때의 심령의 고통과
회개하고서 죄사함받은 때의 기쁨을 대조해 보임으로
하나님의 사죄의 은총을 받는 것이
얼마나 축복된 것인지를 실증적으로 증거하고 있다.
그리고 7절에서 사죄의 은총을 경험한 다윗은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을 확신하고 여호와 앞에 감사를 고백한다.
이어서 마지막 8-11절에서 다윗은 이제 자신이 체득한 교훈을
전백성을 향하여 권면하고 있다.
본시에서 시인은 단순히 교리적인 측면에서 모든 인간은 죄인이므로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고 사죄함을 얻을 것을 교훈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는 죄성을 가진 인간이 갖는 속성 중 하나로서
자신의 지은 죄를 토설치 않고 계속 숨기려 하는 속성,
심지어 그로 인해 극심한 양심의 가책을 받아 영·육이 다 쇠약해지는 가운데서도
자기 죄에 대한 수치심 때문에 양심을 억누르고 고백하기 싫어하는 속성을
자신의 경험을 통해 예리하게 감지하고 이에 대해 집중적으로 교훈하고 있다.
죄의 심각성은 범죄 그 자체보다
그 죄로 인하여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게 만드는 데 있다.
마치 아담이 범죄 후 여호와를 피하여 숨었던 것처럼(창3:8)
죄는 죄인으로 하여금 죄를 해결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 나아가게 하는 통로인 양심의 소리에 조차 귀를 기울이지 못하게 막는다.
또 그렇게 함으로써 또다른 범죄에 빠지게 한다.
이에 다윗은 자신의 죄를 숨기지 않고 토설했을 때
얻은 사죄의 기쁨을 진솔하게 전함으로써
다른 사람들도 자신과 같은 기쁨을 맛보도록 교훈하고 있다.
죄는 결코 숨김으로써 해결할 수 없다.
또 하나님과 자신의 양심 앞에서 자기 죄를 숨길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다.
그러므로 ‘오라 우리가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희게 되리라’(사1:18) 하신
주님의 부르심에 순응하여 다윗이 경험한 것과 같은
사죄의 기쁨을 맛보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5절) 「내가 이르기를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 하고
주께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죄악을 사하셨나이다 (셀라)」
다윗은 자신의 죄를 하나님 앞에 자복하고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죄사함을 받았다.
이 말씀을 읽으며 죄를 짓고 자복하지 아니하는 것이
얼마나 우매한 일인지 깨닫게 된다.
아마 다윗도 그러한 깨달음을 얻었을 것이다.
왜 진작 회개하지 않고 죄를 마음에 숨겨둠으로써 종일 신음하며
뼈가 쇠하는 고통을 당해야 했는지 많이 후회하였을 것이다.
하나님께 죄를 자복(自服)하였을 때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을 보면서 죄를 짓고 회개하지 않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절실하게 깨달았을 것이다.
신속한 회개의 중요성을 절실하게 깨달았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잊어서는 안되는 사실이 있다.
그것은 회개란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실 인간에게는 스스로 회개할 능력이 없다.
회개가 쉬워 보이지만 사실 인간은 스스로 회개할 수 없는 존재이다.
죄의 본성을 가지고 있어서 그 마음이 강퍅한 인간은
스스로는 도무지 회개할 수 없다.
다윗이 하나님 앞에서 어떤 사람이었는가?
그는 누구보다도 하나님 앞에 신실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러한 다윗조차도 쉽게 회개하지 못하였다.
그는 회개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으나 회개에 이르지는 못하였다.
그러다가 하나님의 손이 그를 누름으로 견딜 수 없는 상황이 되자
다윗은 겨우 죄를 자복하게 되었다.
오랜 시간이 경과한 후에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겨우 죄악을 토해 낼 수 있었다.
다윗 스스로는 자기 안에 있는 죄를 토해 낼 능력이 없다.
이렇게 인간은 스스로 회개할 수 없는 존재이다.
즉 회개할 수 있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이다.
하나님의 징계로 어쩔 수 없이 회개하든,
마음에 감동이 와서 회개하든 그것은 다 하나님의 은혜의 결과이다.
하나님이 회개하게 하시니 회개할 수 있는 것이다.
회개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귀한 하나님의 은혜인지는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눅15:7)고 하신
주님의 말씀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얼마나 회개하는 것이 어려우면 죄인 하나가 회개하는 것을
하늘에서 회개할 것 없는 아흔아홉으로 인한 기쁨보다
더 큰 기쁨이라고 표현하였겠는가?
이는 회개가 쉽지 않은 일인 동시에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강력하게 시사하여 준다.
그러므로 우리는 회개를 그 어떤 하나님의 은혜보다도 귀한 은혜로 여겨야 한다.
특별히 회개는 죄사함을 통한 구원과 직결된다는 점에서
사실 은혜 중의 은혜이다.
그러한 점에서 회개하고 하나님을 믿는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귀한 은혜를 체험한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회개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혜가 어디에 있느냐고 말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의 가장 귀한 은혜를 체험하고도
하나님의 은혜가 어디에 있느냐고 하며 찾는다면 그는 은혜를 모르는 사람이다.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호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