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0 수호지 - 수호지 30
무송이 3월 초에 사람을 죽인 죄로 두 달 이상을 옥에서 보내고 맹주로 귀양을 가게 되었다.
귀양길에 오른 무송은 호송하는 두 관리의 호의로 편하게 길을 재촉했다.
때는 날씨가 찌는 듯이 더운 유월이라 아침 저녁으로만 걷고 낮에는 서늘한 나무 밑이나 주막에서 쉬었다.
무송이 길을 떠난지 어느덧 10월이 되어 제법 날씨가 쌀쌀했다.
고개를 넘으면 험준한 산이 나오고 그 산을 넘으면 다시 고개가 앞을 가로 막았다.
무송은 산길을 걸어 20리를 가다가 주막집을 하나 발견했다.
앞에는 개울이 흐르고 뒤에는 우람한 바위산을 등지고 있는 시골 사람을 상대하는 초라한 주막이었다.
무송은 술집으로 들어가 술과 고기를 주문했다.
주막 주인은 미안해 하며,
"술이라야 시골 막걸리 뿐이고 그나마 고기는 떨어지고 없습니다."
하고 양해를 구했다.
"그럼 술이라도 주시오. 몸이라도 녹여야겠으니 ...,"
무송은 술을 먹다 말고 다시 주인에게 청해 보았다.
"혹시 주인 식구가 먹으려고 남겨 둔 고기가 있으면 좀 주시오."
그러자 술집 주인은 무송의 차림을 보고 은근히 비꼬았다.
"출가한 분이 고기는 왜 그리 찾으시오. 그러나 드리고 싶어도 정말 없습니다."
그때 거구의 한 사내가 여나무 명의 부하들을 데리고 들어왔다.
술집 주인은 그 사내를 보자 두 손을 비비며 몸을 굽신거렸다.
"도련님, 늦으셨습나다."
"닭고기랑 쇠고기 다 준비되어 있겠지?"
"그럼요. 오실 때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거구의 사내는 무송이 자리 잡은 맞은 편에 털썩 주저 앉았다.
조금 있으니 부엌에서 닭 요리와 삶은 쇠고기를 가져왔다. 무송은 그것을 보자 화가 치밀었다.
"여보시오. 주인! 고기가 없다더니 누굴 약 올리는 거요?"
주인은 달려와서 무송을 달랬다.
"스님, 제발 고정하십시오. 저 고기는 도련님이 가지고 온 것입니다. 저는 그저 요리를 해 드린 것뿐입니다."
화가 오를 대로 오른 무송의 귀에 그런 말이 들어올 리 없었다.
"뭐가 어쩌고 어째! 이런 못된 할망구 있나!"
술집 주인은 옆의 사람을 믿고서 그런지 무송에게 삿대질을 하며 덤벼들었다.
"이 돌중아, 술을 먹었으면 잠자코 꺼질 일이지 어디서 행패가 행패냐?"
무송은 차마 주인에게 손찌검은 하지 못하고 탁자를 엎어버렸다.
그러자 맞은편 자리에 앉아 있던 거구의 사나이가 무송 앞으로 다가왔다.
"이 땡중놈아! 행패를 부리려거든 어디 나한테 부려 보아라!"
말을 마치기도 전에 사내가 주먹을 날리며 덤벼들었다.
무송은 허리를 굽혀 살짝 피한 뒤 발길로 상대의 명치를 내리찼다.
그 사나이가 어이쿠 하며 비명을 지르자 부하들이 달려들었다.
그러나 무송은 순식간에 부하들을 한 놈씩 내동댕이쳐 버렸다.
쓰러졌다가 일어난 부하들은 덩치 큰 사내를 에워싸고 이내 달아나고 말았다.
그들이 혼비백산 도망가자 호송인과 무송은 남은 고기와 술로 배를 채운 다음 벽에 기대어 스르르
잠이 들고 말았다.
잠시 후 주막에서 달아났던 자들이 또 한 사람의 거구와 부하들을 데리고 와서 술에 잔뜩 취해 자고 있는
무송을 꽁꽁 묶어 버렸다. 그사이 호송인들은 꽁무니를 빼며 달아났다.
그리고 그들은 어느 집 안으로 끌고가 회초리로 사정없이 내리쳤다.
회초리가 몸에 찰싹찰싹 달라붙자 무송은 그제야 술에서 깨어났다.
그때 집 안에서 웬 사람이 걸어 나오더니 이쪽을 보고 물었다.
"대관절 어떤 자를 그렇게 혼을 내고 계시오?"
두 거구는 그 사람에게 공손히 절을 하고 나서 말했다.
"예, 버릇 없는 땡중에게 버릇 좀 가르치고 있는 중입니다."
"잠깐 기다려라. 보아하니 호걸풍인데 얼굴이나 한번 보자꾸나."
무송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던 그사람은 기절할 듯이 놀라며 소리를 질렀다.
"아니, 자네 무송이 아닌가!"
무송도 감고 있던 눈을 뜨고 상대를 보고서,
"형님이 아니십니까? 여긴 웬일이십니까?"
무송이 형님이라 부른 사람은 두 거구를 보고 명령했다.
"이 사람은 나의 아우다. 포승을 풀어라."
두 거한은 어이가 없다는 듯 멍한 표정이었다.
"이 자가 스승님의 아우라고요?"
"내가 몇 번인가 말하지 않았더냐. 경양재에서 맨손으로 호랑이를 때려 잡았다는 호걸 무송이다.
그런데 아우의 행색이 왜 이렇게 되었나?"
무송을 구한 사람은 다름 아닌 송강이었다. 두 사람은 안채로 들어가 지나온 이야기를 하였다.
"아우가 떠난 뒤에도 시진 어른 댁에서 한 달쯤 더 지내다가 아버님을 모시려고 동생 송청을 고향으로
보냈네. 그런데 이곳 공태공 나리께서 자꾸 사람을 보내 이리로 오라고 하기에 여기서 몸을 의지하고
있는 중이네. 이곳은 백호산이란 곳이며 이 집은 바로 공태공 나리의 별장이네.
아까 두 거한은 큰 아들 공명과 작은 아들 공량일세."
그날 밤 공태공은 두 사람을 후히 대접했다. 저녁 식사가 끝나자 송강이 물었다 .
"앞으로 아우는 어떻게 할 작정인가?"
"전 이룡산 보주사 노지심, 양지를 찾아갈까 합니다. 그런데 형님은 어찌하시렵니까?"
"난 청풍성의 부태수 화영이란 사람이 같이 있자고 여러 번 연락이 왔으니 그리로 가려고 하네."
송강과 무송은 공태공 집에서 10여 일간 지내다가 공태공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여행길에 올랐다.
공태공은 노자로 쓰라며 두 사람에게 각각 50냥씩을 주었다.
송강과 무송은 온종일 어깨를 나란히 하여 이야기를 하면서 길을 재촉하여 서룡진이라는 마을에
도착하였다. 여기서는 길이 세 갈래로 나 있었다.
송강은 마을 노인에게 물어 보았다.
"저희들은 이룡산과 청풍성으로 가는 사람입니다. 어느 길로 가야 합니까?"
"이룡산은 서쪽 길이고 청풍성은 동쪽 길입니다."
"여기서 헤어져야겠군. 몸조심하게나."
"형님도 몸조심하십시오."
송강과 헤어진 무송은 이틀 뒤에 이룡산으로 들어가 노지심등이 있는 도적떼 속에 몸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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