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조선 순조 7년(1819)때의 일이다.
경기도 고양군 신도면에 나이가 30 살이 넘도록
장가를 가지 못한 윤덕삼(尹德三) 이라는 노총각이 있었는데
70을 넘은 부모를 모시고
나무장사를 하며 근근히 살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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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매일 첫 닭이 울면 나무 짐을 짊어지고 나서는데
서울장안에 들어가 도시사람을 상대로 하여야만 팔기가 쉬웠다.
서울을 왕래하자면
구파발을 거쳐 서대문으로 들어가는 것이 편리하나
서대문 거리는 경쟁이 서로 심하여 발붙일 수가 없었다.
그러므로
그는 지금의 서대문 밖 무학재 너머에 있는
홍제동에서 왼편으로 개천을 끼고 세검정을 향하여
넘어가기가 어려운 자하문을 넘어 들어가야만
쉽게 팔고 돌아오게 된다.
따라서 그는
매일같이 이 길을 택하여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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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 한 마지기도 없이 춘하추동에
나무장사로 살아간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러하다가는 만년 총각으로 장가를 들지 못하고
늙을 일을 생각하면 괜히 마음이 슬퍼졌다.
더욱이 그는
3대 독자 외아들 이였다.
만일 정말로 장가를 못 가게 된다면
자손이 끊기게 되므로 부모님께 참으로 죄송한 일이었다.
윤덕삼은 이것이 항상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그는 안간힘을 쓰고 있었으나 별도리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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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나무 짐을 지고 세검정을 향하여 가는데
귀에 서투른 목소리가 들려 왔다.
다리도 아프고 하여 나무지게를 내려놓고 바라보니
옥천암이라는 절에서 들려오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절 아래 개천 옆에는
높이 수십 척이 되는 바위가 문도 없는 편각 속에 있는데
거기에는 크게 부처님의 형상을 조각한 것이 있었다.
그리고 그 부처님 앞에서 수십 명의 여자신도들이
스님들과 함께 향불을 피우고 제사지내듯 메를 올리고
절을 하고 있었다.
그 전에도 이를 보지 못한 것은 아니었으나
으레 스님들이 하는 것이거니 하며 무심히 지났으나
이날은 이상하게도 의심이 생겼다.
"저 사람들은 무엇 때문에 저런 것을 할까?
저렇게 하면 돌부처가 무슨 소원이라도 들어주는 것인가?
사방으로 돌아다니는 똑똑한 사람도 마음 데로 못하는 일을
한 걸음도 걷지 못하는 바윗돌이 무슨 재주가 있어 사람들을 도와준단 말인가?"
이렇게 생각과 회의에 잠겨있는 동안에
할머니들이 불공을 마치고 건너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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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삼은 한 노인을 향해 물었다
"저 바위에 새겨놓은 부처님은 누구며
할머니들은 무엇 때문에 거기에 대고 절을 하고 빕니까?"
"이 총각 나이는 많이 먹었어도 무식해서 아무 것도 모르는 구먼
저 바위에 새긴 것은 해수관음이라는 관세음보살이신데
이 어른은 동해, 서해, 남해할 것 없이
모든 바다 언덕 위에 계시다는 보살님일세
이곳은 바다는 아니지만 개천가인 까닭으로
멀리 바다에 가지 못하는 사람을 위해 인연을 맺으라고
해수관음불상을 새겨 놓았지
그런데 영험이 대단하여
저 보살님께 정성을 들이면 틀림없이 소망을 다 이룬다네".
☆☆☆
덕삼은 이 말을 듣고 다시 물었다.
"그렇지만 돌부처가 무슨 신통이 있어 사람의 소원을 이루어 주겠습니까?"
"그것은 모르는 말. 돌부처라도 그냥 바위가 아니고,
부처를 새겨 모신 바위이기 때문에
사람이 이름을 부르고, 지성으로 마음을 모아 빌면,
부처의 신령이 천리 만리라도 걸림없이 오셔서
정성을 받고는 소원을 이루어 주는 것일세.
그러기에 지성이면 감천이란 말이 있지 않은가?
정성이 부족하고 믿는 마음이 부족하면
그런 사람에겐 그저 돌 바위만 보이지만,
마음이 참되고 정성이 지극하면
모든 것이 모두 부처이고, 드는 것이 모두 불경소리인지라.
무정한 돌도
살아있는 부처님으로 변신해 나타나는 것일세.
그러므로 소원을 이루고 이루지 못하는 것은
그 돌부처께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믿는 사람의 정성과 신심
여하에 달려 있는 것일세"
"참으로 그럴까요?"
"그렇고 말고. 이 절에 다니는 신자가 수백 명인데
소원을 이루지 못하는 사람이 없다는 거야.
세상에 무슨 할 일이 없어서 갖은 고생을 해가며
이 험한 산골짜기에 올라와 정성을 드리겠는가 생각을 해 보게.
그러기에 여자들은
마음이 간절해서 철저히 믿기 때문에 소원을 이루기가 쉽지만
자네 같은 총각은 남자라 마음이 엇갈리어 진실하지 못하기 때문에
빌어도 건성으로 빌 것이니 어려울 것일세. 그럼 난 이만 가네"
노인은 이렇게 말하고는 어디론가 가버렸다.
온갖 고생을 거듭하고 쪼들릴 대로 쪼들린 윤 총각은
귀가 번쩍 트이는 것 같았다.
☆☆☆
그 다음날부터 그는
이 곳을 지날 때에는 반드시 길가에 나무 짐을 버티어 놓고
건너가서 해수관음에게 수십 번씩 절을 하고 마음속으로 축원하였다.
"대자대비하신 관세음보살님이시여!
어서 제가 장가를 들어 자손을 보고, 부자가 되어서
나무장사를 면하게 하여 주옵소서. 이것이 저의 소원입니다"
그러나 예배 만으론 시원치가 않아
점심밥으로 먹을 도시락을 나무 짐에서 꺼내어 가져다가 올리고
다시 절을 하였다.
도시락이라 하여도 보리밥 아니면 조밥이요
게다가 된장 덩어리가 끼어 있어 퀴퀴한 냄새가 나는 것이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도 가난뱅이가 이러는 것은
너그러이 용서하시고 받으실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
윤덕삼은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나무 짐을 지고 오갈 때마다 그와 같이 하였다.
이렇게 백일을 하고 나니, 비록 돌부처라고는 하지만
어머니 마냥 친해져, 보기만 해도 다정함을 느꼈다.
이제는 부끄럼 없이 쳐다보고 농담도하고
어리광을 부릴 수 있을 것 같았고,
그만하면 자기 소원도 들어 줄 만도 할 것 같았다.
하지만 생활에는 조금도 변화가 없었다.
모두가 허사인 듯 야속한 마음도 가끔 들었으나
자기의 정성이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언젠가는 자기의 소원을 들어주리라 믿었다.
☆☆☆
그럭저럭 겨울이 지나고
따스한 봄날이 되었다.
그 날도 나무를 성안에 팔고 돌아오는 길에
윤덕삼은 해수관음에게 들렸다.
그런데 마침 비가 쏟아져 나갈 수가 없었다.
덕삼은 문도 없는 관음각에 홀로 앉아 있다가 심심하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하여 '우물꼬누'를 커다랗게 그려놓고
관세음보살님께 꼬누를 두는 내기를 하자고 말했다.
"관세음보살님, 이제 저와 같이 내기 꼬누를 둡시다.
저는 이길 자신이 있으니, 만일 제가 이기면
관세음보살님이 그 대가로 저의 소원을 들어 주셔야 합니다"
덕삼은 꼬누를 두기 시작했다.
우물꼬누란 첫 수에 이기고 지는 것이 결정되는 것이다.
덕삼은 조약돌 두 개를 주어다가 하나는 제 것이라 하고,
하나는 관세음보살님 것이라 몫을 정해 놓고, 혼자 천진스럽게 두었다.
"그럼 제가 먼저 두겠습니다"
첫 수에 관세음보살님을 이겨 버렸다.
그리고 관세음보살님을 우러러보면서 기원 드렸다.
"관세음보살님! 분명히 보셨지요?
꼬누는 분명 제가 이겼습니다.
그러니 내일이라도 속히 저의 소원을 꼭 성취시켜 주셔야 합니다"
덕삼은 이렇게 말을 하고
비가 그치자 지게를 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
그런데 바로 그날 밤 꿈에 거룩하게 생긴
늙은 부인이 나타나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해수관음을 모시고 있는 옥천암에서 온 보살이다.
너의 정성이 하도 갸륵하여 너에게 도움이 될 말을 일러주러 왔다.
너는 내일 첫 새벽 닭이 울 때에 나무 짐을 지고 떠나서
밤이 새기 전에 자하문밖에 가서 기다리고 있거라.
그리하여 문이 열리면,
첫 번 째로 나오는 여자에게 이렇게 이야기하거라.
'남녀가 유별한데 먼저 말하기는 미안하지만,
어디로 가시는 누구이신 지는 모르지만
가시는 곳을 가르쳐 주시면, 제가 안내하여 줄 테니
저를 따라 오십시오'라고 이야기하고
그를 너의 집으로 인도하면
너의 소원을 이루게 될 것이다"
꿈속일망정 덕삼은 하도 좋아
"고맙습니다. 꼭 그렇게 하겠습니다." 라고
말하고 깨어 보니 분명한 꿈이었다.
☆☆☆
윤덕삼은 곧 이어 뒷집에서 첫 닭이 우는소리가 들리자
바쁘게 옷매무새를 고치고 밖으로 나갔다.
나무 짐을 지고 집을 나오려 하자 어머니가 물었다.
"애야, 오늘은 먼동도 트지 않았는데 벌써 나가느냐?"
"네, 오늘은 누구를 일찍 만나야 하기 때문에 일찍 나갑니다"
빈속에 나무 한 짐을 지고 바뿐 걸음으로 삼십리를 걸어
자하문 밖까지 올라가는 일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희망에 들뜬 몸이므로
배고픈 것도 무거운 것도 다 잊고 단숨에 자하문밖에 이르러
나무 짐을 괴어 놓고 보니 아직 문이 열리지 않았다.
다행으로 여기고 먼동이 터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문틈으로 하얀 버선을 신은 발이 왔다 갔다 하는 것이 보였다.
"관세음보살님이 거짓말은 하지 않으셨구나!"
이렇게 생각하며
울렁거리는 가슴을 진정하고 있는데 마침 문이 열렸다.
제일 먼저 보자기로 싼 것을
머리에 인 여자가 쏜살같이 세검정으로 내려갔다.
덕삼은 나무 짐과 지게를 버리고
종종걸음으로 쫓아 내려가 소매를 붙들고
꿈속에서 일러주신 대로하였다.
"놀라지 마십시오.
남녀가 유별한데 먼저 붙잡고 말하기는 실례인 줄 아오나
어디로 가는 낭자이신 지 제가 길 안내를 해 드리겠습니다."
새침하게 톡 쏘고 말대답도 하지 않을 줄 알았던
그 어여쁜 낭자는 뜻밖에도 부드러운 목소리로 대답하였다.
"저는 윤도령이란 총각을 만나려 갑니다"
윤덕삼은 너무나도 뜻밖이라 눈이 휘둥그래져서 물었다.
"제가 윤총각인데요?
"네? 그러세요. 저는 심낭자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알고 나오셨나요?"
"이리 오실 줄 알고 마중 나왔습니다.
간밤의 꿈에 어떤 점잖은 부인이 나타나 말씀하시길,'
너는 장안에 있는 낭자를 만나게 될 터이니 잘 보살펴 주라.'고 하시더군요.
그래서 첫 닭이 우는 새벽 마중을 나오게 된 것입니다."
제게도 그런 부인이 간밤의 꿈에 나타나 말씀하시길
"네가 자하문을 나가면 첫 번째로 어떤 사나이를 만날 터인데
그는 윤도령이라는 총각이다.
그는 심덕이 좋아 따라가도 해롭지 않을 것이니 따라 가거라"
하시길래 그 말씀을 기억하여 여기 나왔습니다.
그런데 어쩌면 그렇게 꿈이 같을 까요?"
"그게 다 천생연분인 까닭입니다"
"아이 망칙해라"
"망칙하기는 무엇이 망칙합니까?
세상 만물에는 다 임자가 있고, 짝이 있는 법인데..."
두 사람은 초면 같지 않게
이렇게 주거니 받거니 하며 나란히 내려왔다.
☆☆☆
어느덧 절 가까이 왔다.
"여기서 잠깐 쉬어 갑시다"
덕삼은 심낭자를 관세음보살상 앞으로 인도했다.
"자, 우리 오늘의 일을 감사하기 위해 부처님께 절을 먼저 합시다"
절을 하려고 관세음보살님 앞에 선 심낭자는 깜짝 놀랐다.
"어머나! 이분은 간밤의 꿈에 뵙던 분과 얼굴이 꼭 같습니다"
"그래서 절을 하자고 한 겁니다.
우리의 인연은 관세음보살께서 맺어주신 것입니다"
덕삼은 몇 번이고 절을 하며, 감격하여 어쩔 줄 몰랐다.
"감사하니다. 관세음보살님! 감사합니다. 관세음보살님!"
그런데 심낭자는 어찌된 사람인가?
그녀는 명문대가의 규수로 열 여덟 살에
어떤 양반의 집으로 출가하였다.
그러나 연분이 아니 였는지
신랑이 혼례 즉시 보기 싫다고 퇴박을 하였다.
그리하여 3년을 기다리다 견디다 못해 친정으로 돌아와
10년을 동안을 수절하며 남편의 개심을 기다렸으나
아무런 소식도, 희망도 없었다.
그러니 말만 시집갔지 처녀나 다름이 없었고
그렇다고 평생토록 수절하며 혼자 지낼 수도 없었다.
또 버젓이 개가할 수도 없는 처지라 어머니의 허락을 얻어
어디론가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길을 떠나기로 결심하였다.
딸이 불쌍하기만 했던 그의 어머니는
귀중한 금, 은, 보석, 산호, 비취 등을 한 보따리 싸주고 눈물을
흘리면서 인연에 따라 마음대로 집을 떠나라고 하였다.
☆☆☆
그리하여 심낭자는
스물 여덟 살 되던 해에 길을 떠나기로 하였다.
그런데 그날 밤 꿈에
관세음보살님이 나타나 말씀하시길
"너는 다른 문으로 나가지 말고 자하문으로 나가되,
문이 열린 후 첫 번 째로 만나게 되는 윤총각이라는
남자를 따라가면 행복하게 살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
이를 들은 윤덕삼은
그것이 꿈이 아닌 현실임을 실감하고
더 없는 고마움과 행복을 느꼈다.
윤총각은 날을 받아
일가친척을 모아 놓고 간단하게 혼례를 치렀다.
그리고 심낭자가 가지고 온 패물을 팔아
집과 논밭을 마련하고 또 산도 사서 아들 딸 낳고
평생부자로 큰살림을 벌리니
신도면 일대에서 제일 가는 부자가 되었다.
그의 후손들도 역시 독실한 믿음을 가지고 근래에도
그의 5대손이 이러한 인연으로 불공기도 다니며 선조의 이야기를 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