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三國志) (32) 여포와 적토마
좌중의 침묵을 깨고 말문을 연 사람은 형주 자사 정원(荊州 刺史 丁原)이었다.
"본관은 단호하게 반대하오! "
그는 큰소리로 외쳤다.
동탁은 그를 노기에 찬 시선으로 노려보다가,
"반대하는 이유를 말해 보라! "
하고 불쾌한 감정을 실어 말했다.
"금상께서는 선제(先帝)의 적자(嫡子)요, 아무런 잘못도 없는 황제를 신하의 신분으로 어찌 폐립(廢立)을 논할 수가 있단 말이오?"
"아가리 닥쳐라! 나를 따르는 자는 살고, 거역하는 자는 죽으리라! "
동탁은 그렇게 외치면서 허리에서 칼을 뽑아 들었다.
"칼을 뽑으면 누구를 어떻하겠다는 것이냐? "
정원은 조금도 겁내지 않고 마주 외친다.
그것도 무리가 아닌 것이 그의 등뒤에는 기골이 장대한 위장부가 동탁을 노려보며 빙그레 미소를 짓고 있었던 것이다.
불같이 타오르는 듯이 빛나는 눈을 가진 위세로 보아선 맹호(猛虎)같은 기골의 무장이었다.
동탁의 모사 이유는 좌중의 분위기를 재빨리 간파하고 황급히 동탁의 옷소매를 잡아 당겼다.
"여기는 술좌석이오니, 그런 정사는 내일 도당(都堂)에서 말씀하시도록 하십시오."
"음... 그럼 그 애기는 내일로 미루기로 할까? "
동탁은 마지못해 칼을 다시 꽂으면서도 내심으로는 그 위장부의 정체가 몹시 궁금하였다.
이윽고 동탁은 자리에 앉아 좌중을 돌아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제공들은 나의 제안에 이론이 없을 테지요? "
그러자 중랑장 노식 장군이 말한다.
"그 문제는 단념하시오. 천자의 폐립을 맘대로 떠들다가는 공이 오해를 사게 될 게요."
노식 장군의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동탁은 또다시 화를 버럭 내었다.
"닥쳐라! 너는 내 손에 목이 달아나고 싶으냐? "
그러자 이유가 얼른 앞을 가로막았다.
"안 됩니다. 노식 장군은 천하가 존경하는 대학자이신데, 이런 분을 해치시면 백성들의 여론이 매우 나빠집니다."
"그러면 저 자의 벼슬을 빼앗아 버려라! "
이리하여 노식은 즉석에서 벼슬을 빼앗기고 말았다.
이렇게 이날의 연회는 즐거움보다는 동탁으로 인한 공포의 도가니속에서 끝나고 말았다.
이날 밤, 동탁은 처소에 돌아와서도 아까 정원의 등뒤에 서 있던 위장부의 존재를 잊을 수가 없었다.
"여보게, 그 위장부가 대체 누군가? "
동탁은 사위 이유에게 물었다.
"그 사람은 정원의 양자인 여포(呂布)라는 자입니다. 자는 봉선(奉先)이라고 하는데, 활 잘 쏘고 말 잘 타는 천하에 용맹한 맹장입니다. 그 자에게 한번 걸려드면 그만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바로 그 이튼날 아침에 정원과 여포가 낙양까지 이끌고 온 군사들을 몰고 동탁의 진지를 공격해 왔다.
"역적질을 도모하는 동탁놈은 이리나와 나의 칼을 받아라! "
정원이 여포와 함께 싸움을 걸어 오니, 동탁도 응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날 싸움에서 동탁은 많은 군사를 거느리고 있었으나, 여포가 쏘아대는 화살에 자신의 장수들이 연이어 전사를 하는 바람에 변변히 싸워보지 못하고 크게 패하였다.
싸움은 어둠이 내리면서 끝이 났지만, 동탁은 장수들을 한자리에 불러 놓고 한숨을 쉬며 이렇게 탄식하였다.
"형주 자사 정원은 문제 되지 않는 인물이지만, 여포란 자와 싸워서는 승산이 없을 것 같다. 나에게도 여포와 같은 부하가 한 사람이라도 있었다면 좋으련만..."
그러자 호분중랑장 이숙(虎賁中郞將 李肅)이 말한다.
"장군님! 염려하실 것 없습니다. 장군님의 적토마 한 필과 금은보화 한 자루만 주신다면 제가 여포를 우리편으로 끌어오도록 하겠습니다."
"아니 그게 무슨 소린가? "
"여포는 재물을 밝히는 사람입니다. 더구나 저와는 고향이 같은 관계로 어려서부터 함께 지낸바 있으니, 제가 그만한 선물을 가지고 찾아가 설득하면 그는 반드시 우리쪽으로 돌아설 것입니다."
"여포는 정원의 양자라든데, 과연 아들이 아비를 배반할 수 있을까?"
동탁은 고개를 기울이며 물었다.
"그것은 제게 맡겨 주십시오."
이숙은 자신있는 어조로 말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이유는 동탁을 돌아다보며,
"장군님! 천하를 얻기 위한 일에 말 한 필을 아껴서는 안 될 일입니다."
동탁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이숙을 바라보며 말한다.
"자네의 요구대로 적토마와 금은보화를 줄 테니, 그 일을 반드시 성공시키도록 하게."
그날 밤으로, 이숙은 적토마를 자신이 탄 말 뒤에 묶고, 많은 금은보화를 가지고 적의 진지를 찾았다.
그리하여 진지 외곽을 지키고 있던 경계병에게,
"여포 장군의 고향 친구인 이숙이 찾아왔다고 전해주시오."
하고 부탁을 한 뒤, 여포의 군막으로 찾아가니 여포는 문밖까지 나와서 반갑게 맞아준다.
"야아, 자네 이거 얼마 만인가? 그래, 그 동안 무얼 하고 지냈나?"
"자네가 염려해 준 덕택으로 호분중랑장의 벼슬을 지내고 있다네. 자네도 나라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있었네. 아무튼 반가우이! 내가 오늘 자네를 만나는 것이 하도 반가워서 선물을 하나 가지고 왔는데 받아주려나?"
"선물이라니, 무슨 선물을 가지고 왔어?"
"말 한 필을 가지고 왔어!"
이숙은 그렇게 말하며 여포를 바깥으로 데리고 나가 말을 보여주었다.
"이 말로 말할 것 같으면 하루에 천리를 달려도 지치지 않는 적토마라고 부르는 명마일세 , 온몸은 새빨갛고 바람을 향하여 달릴 때에는 갈기가 불꽃처럼 휘날리는 희대의 명마이지!"
이숙이 이렇게 말하자, 여포는 횃불을 들고 직접 말을 살펴 보았다.
과연, 햇불에 비춰 본 적토마는 온몸이 모두 새빨간 데다가 ,갈기가 우람하고 체격이 당당함은 물론, 온 몸은 윤기가 반지르했다.
"음... 이거야 말로 듣던 대로 천하의 명마로군! 내가, 이런 선물을 받아도 괜찮을까?"
"원 별소리를 다하네그려! 자네와 나 사이에 무슨 허물이 있겠나! 그런데 적토마를 자네에게 주긴 했지만 자네가 탈 수 있을지는 모르겠네."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적토마가 천하에 둘도 없는 명마라는 사실을 자네 양부가 잘 알고 있을 텐데, 이 말을 보는 순간, 자네에게 양보하라고 하시지 않겠나?"
"....."
순간 여포는 머뭇거리더니, 이내 이숙을 군막으로 데리고 들어와 융숭한 술대접을 한다.
술이 한 순배 돌아가자 이숙이 여포에게 말한다.
"사람은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 밑에서 일을 해야 하는 법인데, 자네는 비상한 재주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지금 너무도 천대를 받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슬쩍 여포의 마음을 떠 보았다.
"좀... 그런 면도 없지는 않지!... 그런데 자네는 요즘 세상에서 누가 가장 훌륭한 영웅이라고 생각하나?"
"그야 물론 동탁 장군이지!"
"동탁 장군?"
여포가 의외란 듯이 놀라며 반문했다.
그러자 이숙이,
"동탁 장군으로 말하면 막강한 실력자이면서도 부하들을 애정으로 돌보기 때문에 수하의 병사들 모두가 흠모하고 있지."
"하지만 나와는 인연이 없는 사람이야, 동탁은 양부와도 사이가 좋지 않고, 또 동탁군을 치는 데 내가 선봉에 서기도 하였으니..."
"그러나 동탁 장군은 자네에게 전혀 원한이 없다네. 자네는 자네의 역활을 다했다고 보는 것이지. 바로이런 것이 동탁 장군의 그릇이 크다는 것이지. 그리고 사실, 오늘 자네에게 가져온 예물은 동탁 장군이 보내온 것일세. 나는 그저 심부름을 했을 뿐이지."
"뭐야? 동탁 장군이? 내가 장군의 목숨을 위협했는 데도 내게 선물을 보냈단 말인가?"
"응! 적토마만 하더라도 장군이 아들보다도 아끼던 말인데, 자네 인물에 반해서 아낌없이 선물한 것이라네. 뿐만 아니라 자네에게 선사하라고 금은보화도 많이 가지고 왔네!"
이숙은 다시 금은보화가 가득 담긴 자루를 여포에게 내주었다.
그러면서,
"동탁 장군 밑에서 나 같은 졸자도 중랑장이라는 벼슬을 누리고 있을 형편이니, 만일 자네가 동탁 장군의 휘하로 오게 된다면, 최고의 대접을 받게 될 걸세..... 어떤가? 나와 함께 동탁 장군을 모셔 볼 생각은 없는가?"
"음....."
여포는 입을 굳게 다문 채 한동안 생각에 잠겨 있다가 말한다.
"자네는 그동안 공이 많았으니까 후한 대접을 받고 있겠지만, 내가 지금 동탁 장군에게로 가게 되면 아무런 공을 세운 것도 없는데, 무슨 이유로 후한 대접을 받게 될 것인가?"
"천만에! 동탁 장군은 공로보다도 인물을 더욱 소중하게 생각하는 분이니 자네는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걸세. 그런데 자네가 동탁 장군 휘하로 오는데 당장, 이렇다하게 세울 공이라도 있는가?"
이숙은 짐짓, 여포의 의중을 끌어내기 위해 물었다.
그러자 잠시 침묵에 잠겨있던 여포가 무슨 결심이라도 한 듯이 입맛을 <쩍> 다시더니 말한다.
"오늘만 하더라도 동탁 장군의 진지를 정원 장군이 기습하지 않았는가? 그러니 지금, 동탁 장군은 정원 장군이 죽이도록 미울 것이야, 그렇다면 양부 정원을 죽이고 함께 온 군사들을 몰고 투항하면 공로를 인정해 주겠지?"
마침내 여포의 입에서 이런 말까지 나왔다.
이숙은 내심 쾌재를 불렀다.
"이르다뿐인가! 자네가 그래 주기만 한다면 그 이상의 공로가 어디있겠나? 사실 정원의 밑에서 썩어 버리기엔는 자네가 너무도 뛰어난 인물이야!"
"음....."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하지 않던가? 이왕 자네의 생각이 거기에 이르렀다면 오늘밤으로 그 일을 단행해 주게! 그러면 나는 먼저 가서 동탁 장군에게 자네의 뜻을 전하고, 내일 아침에 자네가 군사들을 이끌고 동탁 장군의 휘하로 와 주기를 기다리겠네! "
이숙은 여포의 두손을 붙잡고 흔들면서 의미심장하게 말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