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홍산현 관아(동헌) 제금당 (순례지/성지) –충남홍산-
주소: 충남 부여군 홍산면 동헌로 38
한국 천주교의 초기 및 박해시대와 관련된 문헌들 속에서 찾아볼 수 있는 ‘홍산(鴻山)’은 오늘날의 ‘홍산면’만을 일컫는 것이 아니다.
조선시대 충남 서남부 지역 물산교역의 중심을 이루던 옛 홍산은 보부상들의 거점이었다. 조선시대의 ‘저산팔읍(苧山八邑)’에서 생산된 모시(苧布)가 보부상에 의해 홍산의 5일장에서 전국으로 팔려나갔고, 그 홍산장에서는 관청의 감독으로 누에고치를 수매하였다. 조선 말엽까지는 충청우도(忠淸右道) 홍주진(洪州鎭 혹 洪州牧)의 홍산현(鴻山縣)이었다가 고종 32년(1895년)에는 홍산군(鴻山郡)으로 승격되었다. 그러나 1914년 일제조선총독부에 의하여 부여군(扶餘郡)에 합병되었다. 그리고 홍산 관아 주변의 가까운 지역만을 ‘홍산면’으로 격하개편 되었다.
‘홍산’이라는 고을명칭이 한국 천주교 초기의 박해시대와 그 후대의 문헌들 가운데 빈번히 나타나고 있다. 박해를 받으며 전파되던 조선 천주교의 초기역사에 ‘홍산’에 대한 기록은 ‘내포(內浦)의 사도’라 일컬어지는 단원(端源) 이존창(李存昌 루도비코 공사가 · 1752-1801)의 이름과 더불어 나타난다. 이와 관련해서는 주로 달레의 ‘한국 천주교회사’를 근거로 한다. 이존창이 신해박해(1791)때 체포되어 충청감영(공주)에서 풀려나온 후 고향(예산지방·여사울)을 떠나 피신한 곳이 ‘홍산’이라고 기록되어있다. 그는 일시적으로 마음 약하여 순교하지 못한 것에 대한 회한으로 석방 후에 더 열렬하게 선교활동을 하려 했으나 고향(내포 지방)에서 벽에 부딪치게 된다. 우선 가족들로부터 배척을 당했다. 그래서 그는 홍산 땅으로 이주하여 선교활동을 하게 되었다.
홍산 지방에서 이존창이 전교하여 신자가 된 사람으로 황일광(시몬)의 이름이 잘 알려져 있다. 홍주에서 백정노릇을 하던 황일광은 청양의 이씨라는 사람과 함께 홍산에서 이존창을 만나 신자가 되었다. 그는 신유박해 때 체포되어 출신지 홍주로 끌려가서 1802년 순교하였다. 그러므로 2014년에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서울에서 시복(諡福)된 황일광은 홍산 지방의 첫 신자로서 영광스런 순교복자라 할 수 있다.
신유박해(1801년)로 홍산에서 김원석과 박천수가 체포되고 홍주로 이수되었는데, 그들은 홍산 인근에 사는 김복성이라는 사람에게서 천주교를 배웠다고 한다. 홍주에서 유배형을 받은 최맛재, 이취번, 김만기라는 세 사람도 홍산의 그 김복성에게서 천주교를 배운 죄목으로 체포되었다. 이러한 사실들로 미루어 보면, 1801년 신유박해(辛酉迫害)가 일어나기 이전에 이미 홍산 지방에 천주교 신자들이 많이 있었다고 추정할 수 있다. 洪州)의 내포 지방에서 신앙생활에 어려움을 겪던 천주교신자들이 홍산(鴻山) 지방의 산간지대로 이주하여 교우촌을 형성하게 되었음을 충분히 추정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