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문간에는
아주 오래된 살구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봄이면
마른 가지 끝에서 작은 꽃망울을 터뜨리고
어느새 하얀 꽃들이
낡은 초가집 처마를 밝히곤 했다.
바람이 불면
꽃잎 몇 장이 떨어져
돌계단에 내려앉았다.
나는 그 꽃잎을 밟으며
아무 생각 없이 집으로 들어갔다.
그때는 몰랐다.
그 꽃향기가
내 어린 날의 마지막 봄마다
조용히 배어 있었다는 것을.
여름이면 살구가 익었다.
푸르던 열매가 햇살을 받아 노랗게 익어가고,
잘 익은 살구 하나가
툭—
마당에 떨어지면 나는 맨발로 달려가
그 살구를 주워 들었다.
손바닥에 묻은 따뜻한 햇살,
살구 껍질의 부드러운 감촉,
한입 베어 물었을 때 번지던
새콤달콤한 맛.
그것이 그때 내가 알던
작은 행복이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그때의 살구보다 더 그리운 것은
살구나무 아래에서
살아 움직이던 사람들이네.
아버지의 굳은 손,
어머니의 지친 얼굴,
하루 종일 농사 일을 하고 돌아와
마당 한쪽에 앉아
잠시 숨을 고르시던 부모님.
나는 그때
부모님의 고단함 만 보았지,
그 고단한 속에 들어 있던
사랑은 보지 못했네.
이제야 돌아보니
어머니가 흘린 땀방울 하나가
살구꽃 한 송이였고,
아버지의 거친 손마디 하나가
내게 남겨준 사랑의 열매였네.
밤이 되면
마당에는 모깃불이 피어오르고
하얀 연기가
살구나무 가지 사이로
천천히 올라갔다.
달빛은 초가지붕 위에 내려앉고
가족들은 평상에 둘러앉았다.
모기가 달려들면
짝, 짝—
손바닥으로 모기를 쫓는 소리와
동네 사람들의 웃음소리,
아버지가 들려주시던
지난날 이야기가
어두운 밤을 채웠다.
나는 그 평상 한쪽에 앉아
그저 어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네.
그때는 그 밤이
다시 오지 않을 밤인 줄
꿈에도 몰랐네.
사람은 지나간 뒤에야
한때가 얼마나 귀했는지를 아는가 보네.
그 집도 떠났고
부모님도 떠나셨고
어린 시절의 사람들도
하나둘 기억 속으로 사라져갔네.
그러나 이상하게도
살구꽃 향기는
아직 내 마음에서 지워지지 않았네.
눈을 감으면
그때 그 문간이 보이고,
낡은 돌계단이 보이고,
바람에 흔들리는 살구나무가 보이고,
어머니가 부엌에서 나오시던 모습도
아버지가 마당에 앉아 계시던 모습도
아직 희미하게 남아있네.
그래서 나는
내가 살아온 세월을 돌아보며
그 집에 다시 이름을 붙여주고 싶었네.
杏 福 堂 (행복당)
살구나무 杏(행).
내 어린 날의 꽃이며
고향의 향기.
福(복)
그때는 몰랐던 행복.
가난했지만
가족이 함께 있었던 시간.
堂(당)
그 모든 기억을
한자리에서 품어주는 집.
그러니 행복 당은
새로 지은 이름이 아니라
내가 평생 마음속에 간직해 온
그 집의 이름을
다시 불러보는 것이네.
나는 이제 늙어
지나온 길을 돌아보네.
멀리 돌아왔지만, 마음의 끝에는 언제나
살구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네.
그 나무 아래에는
어린 내가 있고,
그 곁에는
부모님이 계시고,
마당에는 달빛이 내려앉아 있네.
아, 그때가 행복이었구나.
나는 이제야
그 말을 할 수 있네.
그때는 가난해서 행복을 몰랐고,
어려서 사랑을 몰랐으며,
떠나고 나서야
그곳이 얼마나 따뜻한 집이었는지 알았네.
그래서 내 마음속 행복당에는
오늘도 살구꽃이 핀다.
세월에 젖은 꽃잎 하나가
가슴에 내려앉으면
나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그 향기를 맡는다.
그리고 조용히
어린 날의 나에게 말을 건넨다.
“얘야,
그때 참 행복했단다.”
살구꽃 향기 속에서
어린 내가 웃고,
달빛 아래 평상에서는
아버지의 이야기가 들리고,
부엌에서는 어머니의 밥 냄새가 풍겨온다.
그곳이 나의 고향이고,
그곳이 나의 뿌리이며,
그곳이 내가 평생 찾아 헤맨
나의 첫 행복이었네.
杏福 堂
살구꽃 향기가 스며들고
부모님의 사랑이 머물며
한 사람의 평생이
조용히 돌아와 쉬는 집.
카페 게시글
인생길
杏 福 堂 (살구나무가 있는 행복한 집)
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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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8.27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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