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년 2월 16일(월) 하박국 3:1-19(3rd 3:16-19) 찬송 242장
16. 내가 들었으므로 내 창자가 흔들렸고 그 목소리로 말미암아 내 입술이 떨렸도다
무리가 우리를 치러 올라오는 환난 날을 내가 기다리므로 썩이는 것이
내 뼈에 들어왔으며 내 몸은 내 처소에서 떨리는도다
17.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18.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19.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를 나의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시리로다 이 노래는 지휘하는 사람을 위하여
내 수금에 맞춘 것이니라 (개역 개정)
17-18절)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선지자의 이러한 고백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아마도 대부분의 우리들은 이러한 고백의 실천이 가능한가에 대해 의문을 품지 않을까?
무화과나무, 포도나무, 감람나무의 열매가 없고,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와 외양간에 양과 소가 없다는 것은
인간이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모든 양식이 끊어진 상태를 말한다.
곧 고통의 극한 상태를 말한다.
이러한 극한의 고통 속에서도 즐거워하고 기뻐한다는 것은
인간적으로 볼 때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데도 선지자는 비록 그러한 상황 가운데 처한다고 할지라도 기뻐하겠다고 한다.
이러한 표현을 현실적인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그가 과연 제정신인가’란 의문이 들 정도이다.
그러나 이것이 바로 참된 신앙을 가진 사람의 모습이다.
참된 신앙인은 자기에게 있는 모든 것을 다 잃을지라도,
즉 모든 것을 다 잃고 극한의 고통 가운데 처하게 된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으로 인하여 즐거워하며 기뻐하는 사람이다.
하나님께서는 의인 곧 참된 신앙인은 믿음으로 사는 사람이라고 말씀하셨다.(2:4)
문제는 믿음으로 사는 것이 무엇이냐 하는 것이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바로 ‘~할지라도’
하나님으로 인하여 즐거워하며 기뻐하며 사는 것이다.
즉 하나님께서 자신의 모든 것을 거두어 가실지라도,
현실적으로 큰 어려움을 당하며 극한의 고통에 처하게 하실지라도
하나님으로 인하여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을 말한다.
물론 아무런 근거도 없이 이와 같이 극한의 고통에 처하여서도
하나님으로 인하여 즐거워하고 기뻐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믿음으로 산다는 말에는 믿음의 근거가 있음을 말한다.
그 믿음의 근거는 바로 신실하신 하나님의 약속이다.
하박국은 하나님으로부터 바벨론을 통한 심판 후의 회복에 대한 약속을 받았다.
그리하여 그는 하나님께서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를 나의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시리로다’(19절)라는 믿음을 가졌고
바로 그 사실에 근거해 ‘~ 할지라도’
하나님으로 인하여 즐거워하며 기뻐하겠노라고 노래한 것이다.
성경이 우리에게 모범으로 보여주는 참된 신앙의 사람들이 바로 이와 같은 사람들이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죄에 찌들어 산다 할지라도
당세에 완전한 의인으로 살았던 노아가 그러하며,
불신과 인본주의가 판을 치는 세상에서도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믿음의 삶, 신본적인 삶을 살았던 아브라함이 그러하며,
형들의 시기로 애굽에 노예로 팔려가 처절한 고난을 감수하면서도
하나님과 동행한 요셉이 그러하며,
열 명의 정탐꾼과 다른 모든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불신하며
가나안 정복이 불가능하다고 절망하는 현장에서도
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고 하며 여호와의 도움을 인하여
가나안 정복이 가능하다는 소망을 고백한 여호수아와 갈렙이 그러하며,
아합 왕이 다스릴 당시 모든 사람들이 여호와를 배신하고 바알 앞에 무릎 꿇고
입 맞추는 와중에도 신앙의 정절을 지킨 칠천의 남은 자들이 그러하며,
풀무불에, 사자굴에 던져질 위기 상황에서도
신앙의 정절을 지킨 다니엘과 세 친구가 그러하였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대한 전적인 신뢰가 없이는 불가능하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고통조차 선한 것이라는 확신,
하나님께서 비록 자신을 환난 가운데 처하실지라도
궁극적으로 자신을 구원하시고 영화롭게 하실 것이라는 확신이 없이는
‘~할지라도’의 신앙을 갖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할지라도’의 신앙이 아니라면 이 악한 세상에서
온전한 신앙의 삶을 살 수도 없고 하나님께 인정받을 수조차 없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것이라면
극한 환난이라도 믿고 참아 기다리겠다고 결단하는 자만이
이 세상을 이길 수 있고 참으로 하나님께 인정받을 수 있다.
우리들은 ‘~할 지라도’ 하나님을 신뢰하여
하나님으로 인하여 기뻐하고 즐거워할 수 있는 자리에 서야 한다.
「이르되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아니하니라」 (욥1:2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