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낙심하지 말라
“예수께서 그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여”
(누가복음 18:1)
사람들은 처음에는 간절히 기도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하나님께서 침묵하시는 것처럼 느껴지면 쉽게 낙심한다.
낙심은 단순히 의욕이 떨어지는 감정이 아니다. 하나님을 향한 신뢰를 흔들고, 결국 기도를 포기하게 만드는 영적 공격이다. 마음속에 “기도해도 소용없다.”는 생각이 자리 잡으면 기도의 불은 점점 식어 간다.
그래서 예수님은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한다.”고 가르치셨다.
낙심하는 이유
첫째, 하나님이 내 기도를 듣고 계신가 하는 의심이 들 때 낙심한다.
기도를 오래 하다 보면 누구나 한 번쯤 이런 의심이 든다.
“정말 하나님께서 내 기도를 듣고 계실까?”
나 역시 그런 시간을 지나왔다.
개척한 후 날마다 교회 부흥을 위해 기도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도 눈에 보이는 변화는 없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아내에게 이렇게 하소연하곤 했다.
“우리는 날마다 성도를 보내 달라고 기도하는데, 하나님은 왜 기도만 하게 하시는지 모르겠어.”
이런 말을 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하나님은 침묵하시는 것 같았고, 의심은 점점 낙심으로 이어졌다. 내 마음은 깊은 절망에 빠져들었다.
이처럼 아무리 기도해도 응답이 없는 것처럼 느껴질 때 하나님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이렇게 기도만 한다고 해서 되는 건가?” “이게 정말 맞는 건가?” 하는 생각이 마음을 흔들기 시작한다. 사탄은 바로 그 의심을 통해 우리의 믿음을 무너뜨리고 기도의 자리를 떠나게 하려고 한다.
결국 낙심은 하나님의 신실하심까지 의심하게 만들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흔든다.
그러나 하나님의 침묵처럼 보이는 시간은 결코 하나님께서 우리를 외면하신 시간이 아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며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하고 계신다.
한나도 자녀를 얻기 위해 눈물로 기도했지만 하나님은 오랫동안 응답하지 않으셨다(삼상 1:10). 심지어 제사장 엘리는 그녀를 술 취한 여인으로 오해했다. 그러나 한나는 하나님을 의심하지 않았다.
엘리의 축복을 받은 한나는 아직 아들을 얻지 못했지만, “가서 먹고 얼굴에 다시는 근심 빛이 없었다”(삼상 1:18). 환경은 변하지 않았지만 하나님께서 들으셨다는 믿음이 먼저 그녀의 마음에서 낙심을 거두어 간 것이다.
마침내 하나님은 한나의 기도를 기억하시고 사무엘을 허락하셨다. 하나님은 침묵하신 것이 아니라 가장 선한 때를 준비하고 계셨던 것이다.
시편 기자도 낙심 가운데 이렇게 자신을 향해 선포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시 42:5).
낙심은 의심에서 시작되지만, 믿음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데서 시작된다. 그러므로 의심보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어야 한다.
둘째, 기다림이 길어질 때 낙심한다.
처음에는 간절히 기도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아무런 변화가 보이지 않으면 “언제까지 기도해야 하지?”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낙심은 바로 그 기다림에 지칠 때 찾아온다.
그래서 예수님은 불의한 재판장과 과부의 비유를 통해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한다.”고 가르치셨다.
한 과부가 억울한 일을 해결해 달라고 재판장을 찾아갔다. 재판장은 처음에는 들어주지 않았지만, 과부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 찾아갔다. 결국 재판장은 그녀의 간청을 들어주었다.
이 비유의 핵심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예수님은 응답이 더디더라도 기도를 멈추지 말라고 가르치셨다. 과부는 응답이 늦어진다고 발길을 돌리지 않았다. 끝까지 간구했고, 마침내 응답을 받았다.
오늘 우리의 기도도 마찬가지다. 많은 사람은 문제가 생기면 작정기도나 금식기도를 시작한다. 그러나 정한 기간이 지나도 응답이 없으면 기도를 멈추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러나 성경은 “얼마 동안 기도하라.”가 아니라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라.”고 말씀한다.
사도 바울도 이렇게 권면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 6:9).
하나님의 때는 우리의 시간보다 늦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가장 선한 때이다. 그러므로 기다림이 길어질수록 더욱 기도의 자리를 지켜야 한다. 끝까지 기다리는 사람은 하나님의 때에 반드시 약속하신 응답을 경험하게 된다.
낙심하지 않는 방법
낙심을 이기려면 하나님께서 왜 응답을 기다리게 하시는지 알아야 한다. 하나님은 아무 이유 없이 응답을 늦추시는 분이 아니다. 기다림의 시간에도 하나님의 뜻이 있으며, 우리를 온전한 사람으로 빚어 가신다.
히브리서 10장 36절은 이렇게 말씀한다.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하신 것을 받기 위함이라.”
우리는 고난이 빨리 해결되기를 기도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문제를 해결하는 것보다 먼저 우리를 하나님의 뜻에 합한 사람, 곧 온전한 사람으로 빚어 가기를 원하신다.
예를 들어, 아내를 핍박하던 남편이 병상에 누워 회복을 위해 기도하지만 차도가 쉽게 나타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그 시간을 통해 자신의 죄를 깨닫고 진심으로 회개하게 된다. 또 목회자가 교회 부흥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지만 응답이 더딘 이유는 하나님께서 단순히 성도의 숫자가 늘어나는 것보다 먼저 목회자를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뜻에 합한 사람으로 빚으시기 때문이다.
야고보도 같은 진리를 이렇게 말씀한다.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약 1:4).
하나님은 환난과 기다림을 통해 우리에게 인내를 배우게 하시고, 온전한 사람으로 세워 가신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기다림을 허락하시는 뜻이다.
요셉이 오랜 시간 고난을 받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나님은 요셉을 통해 기근 속에서 많은 사람을 살리실 계획을 가지고 계셨다. 그 사명을 맡기시기 위해 하나님은 고난 가운데서 그의 믿음과 인격을 단련하셨다.
“그가 또 그 땅에 기근이 들게 하사 그들이 의지하고 있는 양식을 다 끊으셨도다. 그가 한 사람을 앞서 보내셨음이여 요셉이 종으로 팔렸도다. 그의 발은 차꼬를 차고 그의 몸은 쇠사슬에 매였으니 곧 여호와의 말씀이 응할 때까지라. 그의 말씀이 그를 단련하였도다”(시 105:16–19).
요셉은 13년 동안 고난의 시간을 보냈지만 낙심하지 않고 끝까지 인내했다. 그 과정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사람으로 준비되었고, 마침내 애굽의 총리가 되어 수많은 생명을 살리는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받았다.
욥도 마찬가지다. 그는 극심한 고난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떠나지 않았다. 끝까지 인내하며 하나님을 신뢰했고, 마침내 하나님은 그의 곤경을 돌이키시고 이전보다 갑절의 복을 허락하셨다.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이시니라”(약 5:11).
“여호와께서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고 이전 모든 소유보다 갑절이나 주신지라”(욥 42:10).
성경은 또 이렇게 말씀한다.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반드시 응하리라”(합 2:3).
하나님이 응답을 지체하신다고 해서 그 기도를 거절하신 것은 아니다. 기다림의 시간에도 하나님의 뜻이 있다.
그러므로 응답이 더디다고 낙심하거나 조급해하지 말아야 한다. 그 시간을 믿음으로 견디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 안에서 온전하게 빚어지고, 마침내 하나님의 때에 약속하신 응답을 경험하게 된다.
낙심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신뢰하며, 끝까지 기도하는 것, 이것이 응답받는 기도의 열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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