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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장 운명(運命)이여!
①
대혈륜궁(大血輪宮)이었다.
"......."
혈륜공자 백천강은 태사의에 앉아 있었다.
그의 앞에는 혈륜육신을 위시한 수십여 명의 인물들이 부복하고 있다. 그들은 바로 혈륜총호법인 혼세천마 위지경을 비롯하여 마도삼전의 영수들과, 마도오문의 문주들, 마지막으로 팔곡의 곡주들이 부복하고 있었다.
백천강의 입이 열렸다.
"크크ㅋ! 첫 번째 피의 수레바퀴는 잘 굴러갔소. 개방총단은 초토화되었으며 개봉부 인근 칠백 리의 팔십이개분타(八十二個分陀)는 철저히 궤멸되었소."
"......!"
부복하고 있던 마도인들의 신색이 밝아졌다. 그들의 얼굴에 역력히 의기양양한 표정이 떠올랐다.
"후후.... 이번의 공은 위지경 총호법에게 돌아갈 것이오."
백천강은 위지경을 향해 입을 열었다.
"아니옵니다. 모두가 궁주의 탁월하신 능력 덕분인 줄로 아오이다."
위지경은 겸손하게 자기를 낮추었다. 그러나 백천강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본좌는 허언(虛言)하지 않는 사람이오. 총호법에게 상을 내리겠오. 논공행상(論功行賞)을 철저히 하는 것이 본좌의 지침이오. 자, 이것을 받으시오."
말을 마친 백천강은 위지경을 향해 무엇인가를 휙 던졌다.
탁!
"......!"
위지경의 눈이 둥그레졌다. 그의 앞에 떨어진 것은 한 권의 백서(帛書)였다.
<환마십이교전(幻魔十二敎典)>
백서의 표지 부분에는 위와 같은 제목이 적혀 있었다.
"오오!"
그것을 본 순간 마도인들은 탄성을 금치 못했다.
환마십이교전. 그것은 바로 일천여 년 전에 실전(失傳)된 마교의 비급이었다. 그것을 남긴 자는 마교의 십이대교종 중의 하나인 환마(幻魔)였다.
"화... 환마교종의 비예가!"
위지경은 책자를 잡고 격동으로 전신을 떨었다. 그때였다.
"훗훗.... 이번 거사에 가담한 팔로혈륜대에게도 상을 주마!"
휙휙휙!
백천강의 손에서 다시 여덟 권의 책자가 날아갔다. 그것은 각각 삼전오문의 지로들 앞에 떨어졌다.
"오오!"
책자를 집어드는 순간 그들은 희열의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 책자들은 바로 그들 사문에서 오랫동안 실전되었던 각종 비예가 적힌 마공비급이었다.
"구... 궁주!"
그들은 책자를 움켜쥐며 주체할 수 없는 희열에 어쩔 줄 몰라했다.
그 순간 백천강의 차가운 음성이 떨어졌다.
"이제부터 대혈륜은 구르기 시작했다. 다음 목표는......."
마도인들은 모두 몸을 부르르 떨며 긴장했다. 백천강은 맞은편 벽을 향해 가볍게 일지를 날렸다.
그르르릉.......
석벽이 좌우로 갈라졌다.
그때였다. 거대한 지도 하나가 나타났다. 그것은 석벽 전체에 그려진 것이었다. 지도에는 중원은 물론이거니와 변방과 사해까지 상세히 수록되어 있었다. 뿐만 아니라 천하 각 문파의 소재지까지 상세하게 명기되어 있었다.
"아아!"
마도인들은 감탄했다. 그리고 그들은 그때서야 혈륜공자가 자신들을 부른 이유를 깨달았다.
마도인들은 모두 지도에 시선을 집중시켰다.
백천강은 그들이 충분히 지도를 살펴볼 시간을 준 다음 입을 열었다.
"지도에 표시되어 있는 각 문파가 모두 우리의 목표다. 그러나 제일 먼저 손보아야 할 곳이 있다. 그것은 바로 광명회의 주축을 이루고 있는 구파일방이다."
백천강은 서서히 손가락을 뻗었다.
파... 팟!
백천강의 지력에 의해 지도의 두 지점이 가루가 되었다. 그것을 본 마도인들은 안색이 변했다.
"화산(華山)!"
"공동파( 派)!"
마도인들은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백천강이 지력으로 지워버린 곳은 바로 화산파와 공동파였다. 다음 순간 마도인들의 눈에서 이글거리는 살광이 솟구쳤다.
화산과 공동파는 특히 마도인들에게 원한이 깊은 곳이었다.
과거 대마성의 폭발은 자연적인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바로 만마지존(萬魔至尊) 백무웅(白武雄)의 세 제자인 천지인삼마(天地人三魔)중 두 제자의 배신에 의한 것이었다.
대마성을 배반한 두 제자. 그들은 바로 천마(天魔) 궁우(宮羽)와 만보총관(萬寶總官)이었다.
그들의 배신으로 인해 대마성이 폭발한 후, 화산과 공동 양파는 끝까지 흩어지는 대마성의 마인들을 추격하여 잔혹한 살수를 펼친 것이었다.
그 일로 인해 양파는 마도인들에게 깊은 원한을 사고 있었다.
"크크크.... 철저히 도륙내리라!"
"클클클!"
마도인들은 살기띈 괴소를 터뜨렸다. 그때였다.
백천강의 차가운 음성이 떨어졌다.
"이석타란. 바위로 달걀을 부수는 전법을 쓰겠다. 썩어빠진 정도인들의 기를 완전히 꺾는 것이 목적이다."
이석타란(以石打卵).
그것은 상대도 되지 않는 큰 힘으로 작은 것을 철저히 부수는 잔혹한 전법이었다.
"훗훗훗! 화산은 팔곡에게 맡긴다. 그대들의 역량을 보겠다. 공동은......."
그는 잠시 말을 끊었다가 이었다.
"본좌가 직접 가겠다."
"......?"
그 순간 마도인들의 얼굴에는 모두 의아한 표정이 떠올랐다. 그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대혈륜궁에는 충분한 전력이 있었다. 굳이 혈륜궁주까지 나서지 않아도 되는 일이었다.
그러나 한 번 내뱉은 혈륜궁주의 말은 거두어지는 법이 없었다. 마도인들은 백천강의 깊은 의중을 알지 못한 채 명령에 따라 행동을 개시했다.
②
태사의를 향해 다섯 쌍의 인영들이 서 있었다.
그들의 전신에서는 칙칙한 마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다섯 쌍의 남녀들. 그들은 바로 극락십령(極樂十靈)이었다.
극락십령은 지극히 무표정했다. 그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극락십령은 살아있는 인간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바로 혼을 잃어버린 자들이었다.
그들은 인간으로서의 희노애락을 느낄 수 없었다. 오로지 그들의 주인인 혈륜공자의 명령만을 따르는 꼭두각시에 불과했다.
잠시 후 백천강의 입에서 탄식과도 같은 음성이 터져나왔다.
"마음이 죽은 자들, 그대들처럼 나의 마음도 죽었다."
뒤이어 그는 극락십령을 바라보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러나 그대들은 최소한 나보다는 행복하다. 나는 마음이 죽었으되 혼이라는 것은 살아 있다. 혼, 그것이 얼마나 거추장스러운 것인지... 후후...! 혼이 일으키는 고뇌가 얼마나 큰지 너희들은 모르리라."
"......."
극락십령은 아무런 미동도 없었다. 그들의 눈빛은 한결같았다.
그들은 생기가 떠오르지 않는 눈으로 깊고 깊은 유부(幽府)를 바라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희노애락을 차라리 모른다면 행복할 수 있으리라. 그러나 칠정오욕을 가진 인간으로서 그것을 끊어야 하는 아픔이 얼마나 큰지... 너희들은 모르리라."
"......."
백천강은 처음으로 자신의 심중을 말하고 있었다.
그는 철이 든 이래 자신의 심중을 단 한 번도 털어놓아 본 적이 없었다. 그는 처음으로 극락십령에게 자신의 속내를 털어 놓고 있었다.
그러나 부질없는 짓이었다.
"ㅋㅋ! 부질없는 짓이지. 너희들이 어찌 나의 마음을 알겠느냐? 크크ㅋ!"
백천강은 자신을 향해 실소했다. 하지만 그 실소는 오래가지 않았다.
그는 문득 극락십령을 향해 눈을 돌렸다. 이어 싸늘한 음성으로 말했다.
"십령! 이제 너희들의 힘을 최초로 발휘할 때가 왔다. 크크크... 너희들만의 힘으로 공동을 무너뜨린다. 너희들이 천하를 깜짝 놀라게 만드는 것이다."
백천강의 속내는 바로 그것이었다. 그는 극락십령으로 하여금 공동파를 궤멸시킬 뜻을 세운 것이다.
쏴아아... 쏴아.......
폭우는 연일 계속되었다.
황하와 장강의 물이 범람한 지는 이미 오래였다. 중원은 대홍수의 피해로 무법천지나 다름이 없었다.
수백만의 수재민이 생겨났음은 물론이거니와 곳곳에서 전염병이 창궐했다. 기아로 인해 비참하게 굶어 죽어가는 양민들의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났다.
명조(明朝)에서는 양곡을 풀었다.
그러나 탐관오리들의 수탈 또한 극심했다. 그들은 자기들의 세상을 만난 듯이 온갖 악랄한 방법으로 양곡을 빼돌렸다. 결국 수재민들에게 돌아가는 양은 전무하다시피 했다.
굶주림을 견디지 못한 사람들은 마침내 자기의 자식이나 노모를 잡아먹는 지경에까지 이르기 시작했다.
번쩍... 우르릉... 콰쾅!
중원 전역을 뒤덮는 섬전은 최후의 종말을 예고하는 듯했다.
쏴아아아아아.......
폭우는 여전히 줄기차게 쏟아져 내렸다. 그런 가운데서도 권세를 가진 자들은 여전히 희희낙락하고 있었다.
③
화산(華山).
섬서성(陝西省)의 화음현에 위치한 화산은 중원의 오악 중에서 서악(西嶽)이라고 불리워지는 명산이었다. 화산의 높이는 자그마치 오천 길이 넘었다. 이런 화산의 동쪽에 세 개의 봉우리가 하늘을 찌를 듯이 높이 솟아 있었다.
화산의 연화봉 정상에 커다란 장원이 하나 있었다. 그곳은 바로 화산파의 근원지이자 본거지였다.
화산파는 대대로 검법으로 이름을 날린 문파였다. 중원에는 모두 다섯 개의 검파가 있었다. 그들은 바로 무당(武當), 화산, 청성(靑城), 공동( ), 종남파(終南派) 등이었다.
중원인들은 이 다섯 개의 문파를 일컬어 중원오대검파(中原五大劍派)로 불러왔다.
중원오대검파의 하나인 화산파는 독하고 빠른 검법으로 전통을 이어왔다. 그중에서 가장 기본적인 것은 바로 매화검법(梅花劍法)과 난파풍검법(爛破風劍法)이었다.
쏴아아아.......
화산 연화봉에 자리잡은 화산파는 폭우에 갇혀 있었다.
폭우가 쏟아지는 하늘은 컴컴하기 그지 없었다. 그러나 뜻밖에도 그것은 먹구름 때문만이 아니었다.
끄... 아... 악! 끄... 악!
소름끼치는 울음소리가 연화봉 주위에서 메아리치듯이 들려오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비바람을 뚫고 하늘을 날아오는 괴조(怪鳥)들의 입에서 나오고 있었다.
괴조들은 폭우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수백 마리는 족히 넘는 숫자였다. 괴조들은 커다란 날개를 휘저으며 연화봉을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뜻밖에도 괴조의 등에는 살기 번뜩이는 눈빛을 가진 괴인들이 타고 있었다.
쏴아아아.......
세차게 쏟아지는 폭우의 위력은 대단했다. 화산 연화봉의 계곡들은 봇물터지듯 쏟아져내리는 물줄기의 위력에 무력했다.
우르르르... 콰쾅!
마침내 산사태가 나고 말았다.
무너져 내린 바위며 흙더미들은 세찬 물줄기를 타고 인가를 덮쳤다. 한순간에 마을 전체가 흙더미에 파묻히고 마는 순간이었다.
콰르르르.......
폭포를 이룬 계곡의 물줄기들은 노도처럼 황하를 향해 밀려들었다. 뿌리뽑힌 나무들과 온갖 익사체들은 흙탕물에 휩쓸리며 떠내려갔다.
정녕 하늘에 구멍이 난 것만 같은 폭우였다. 그러나 연화봉 정상에 우뚝 선 화산장원은 꺼떡도 하지 않았다.
쏴... 쏴아... 아아.......
개방의 멸망과 함께 시작된 폭우.
그것은 십오 주야를 계속했다. 그 보름 동안 중원에서 홍수의 피해를 입지 않은 곳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시작이 있으면 반드시 끝이 있는 법이 아니던가?
후두두... 둑.......
마침내 세차게 퍼붓던 폭우도 그 위력을 서서히 상실해가기 시작했다.
뒤이어 기분좋은 서풍이 불기 시작했다.
서풍은 비를 잔뜩 머금은 먹구름을 북쪽으로 몰아갔다. 드디어 지긋지긋하던 폭우가 멈추기 시작한 것이다.
멀리, 몰려가는 먹구름 사이로 언뜻언뜻 파란 하늘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폭우가 완전히 물러난 것은 아니었다.
후두두둑.......
한두 차례씩 성긴 빗줄기들이 또다시 기승을 부렸다. 무시무시한 폭우가 할퀴고 간 상처는 참혹했다.
연화봉에도 가는 비가 간간이 흩뿌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곳도 폭우로부터 온전하지는 않았다. 연화봉은 여기저기 산사태로 허물어져 있었다.
흉측스럽게 떨어져 내린 계곡이며 시뻘건 흙더미에 파묻힌 논과 밭은 볼수록 끔찍하기만 했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이란 말인가?
어느 순간에 흉하게 파헤쳐진 땅가죽이 꿈틀꿈틀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아니었다. 그건 땅가죽이 아니었다.
뱀(蛇).
그것은 바로 수만 마리의 뱀이 온통 바닥을 뒤덮으며 스물스물 기어가는 광경이었다.
쓰쓰쓰.......
치이익.......
시뻘건 혓바닥을 날름거리며 수만 마리의 뱀이 기어 오르는 곳은 바로 화산파가 있는 곳이었다. 놀랄 일은 그것 뿐만이 아니었다.
연화봉의 북쪽 지역.
껑충! 껑충!
수천 명은 족히 넘을 강시(彊屍)들이 연화봉 정상을 오르고 있었다. 강시들은 뻣뻣이 선 채 껑충껑충 뛰어오르고 있었다.
그들은 한 번 뛰어 오를 때마다 십 장을 건너 뛰었다. 강시들의 두 눈의 동공은 텅 비어 있었다. 눈동자가 썩어 구멍만 뻥 뚫린 공포스러운 광경이었다.
"크크크!"
강시들의 웃음은 흉측했다. 그들은 죽음의 냄새를 흩뿌리며 화산장원으로 향하고 있었다.
연화봉의 서쪽.
난장이들이 구르듯이 연화봉을 오르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의 키보다 더 큰 장검을 메고 있었다. 난장이들의 눈에서는 가공할 살기가 폭사되고 있었다.
거인들은 모두 구 척이 넘는 거구였다.
쿵! 쿵! 쿵!
그들이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바위건 땅이건 한 자씩 움푹움푹 패였다. 거인들의 걸음걸이는 마치 태산이 움직이는 것만 같았다.
"ㅋㅋㅋ! 사자의 거력을 발휘할 때다!"
누군가의 입에서 웅후한 음성이 흘러 나왔다. 그 음성은 마치 쇠종을 치는 것만 같았다.
모두 여덟 방향이었다. 마도군들은 팔방을 에워싼 채로 화산장원을 향해 짓쳐 들어가고 있었다.
쏴아아아.......
폭우가 또다시 세차게 쏟아지기 시작했다.
번쩍... 콰르르르!
섬전이 다시 하늘을 가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들은 마도군들의 행진에 아무런 장애가 되지 못했다.
마도군들 속에는 두 눈이 새파란 독인(毒人)들도 있었다. 선비차림의 유생은 물론이거니와 머리 끝에서 발끝까지 꽃으로 장식한 여인들도 있었다.
쏟아지는 폭우 속에서도 꺼지지 않는 화염에 둘러싸인 괴인들도 있었다.
쏴아아아.......
번쩍!
섬전이 연화봉을 밝혔다. 대화산파가 있는 장원이 푸르게 드러났다가 어둠 속에 파묻혔다.
바로 그때였다.
꽈르르릉... 콰콰쾅!
불현듯 만근뇌정(萬斤雷霆)의 폭음이 일었다. 그와 동시에 화산장원은 시뻘건 불길에 휩싸이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그것은 바로 화산장원의 폭발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끄... 악! 끄아악!
푸드드득......!
때마춰 하늘에서 수백 마리의 괴조가 내려 꽂히기 시작했다. 뿐만이 아니었다. 어느새 연화봉을 오른 수천의 강시들은 일제히 화산장원 안으로 뛰쳐 들어가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파츠츠츳.......
난장이들은 몸보다 긴 장검을 휘두르며 날아들었다. 거인들은 담장과 전장을 무러뜨리며 짓쳐 들었다.
"누... 누구냐? 아아악!"
화산파에는 상상하지도 못했던 대참변이 일어나고 있었다.
잠시 주춤거리던 폭우는 결국 재앙의 종말을 예고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더 큰 재앙을 위한 전주곡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것은 무림사에 일찌기 없었던 대살륙이었다. 화산파는 느닷없이 하늘과 땅을 비롯한 사면팔방으로부터 공격을 받았다. 그것을 막고 어쩌고 할 여유조차 없었다.
위이잉... 쐐애애액!
"저... 적이다. 크웩!"
혁혁한 명성과 전통을 자랑하던 대화산파의 종말(終末)은 순간적인 것이었다.
그들의 종말은 너무도 어이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참혹했다.
화산인들은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깨닫기도 전에 독사에게 발등을 물려야 했다.
아니었다. 그들은 검을 검집에서 빼기도 전에 머리통이 수박처럼 으깨어졌다. 괴조들의 강철같은 부리가 머리통을 부순 것이다.
쐐애애... 액!
"크윽!"
난장이들의 장검은 화산인들의 허리를 동강냈다. 거인들의 솥뚜껑같은 손바닥이 피골을 뭉개었다.
"키키키키......!"
강시들은 껑충껑충 뛰어 오르며 산 자건 죽은 자건 가리지 않고 짓밟았다.
화르르르릉... 화악!
괴인들은 불덩이를 날렸다. 무수한 암기를 꽃잎삼아 날리는 여인들도 있었다.
"다... 달아나라!"
"화... 화산의 멸망을... 광명회에 알려야 한다!"
휙... 휘익!
몇몇의 화산인들은 용케 죽음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들은 절박하게 외치며 장원을 벗어났다. 하지만 그들의 탈출은 무모하기 짝이 없는 행동이었다.
어느새 장원 밖에는 죽음의 절진(絶陣)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것은 마도의 유생들이 곳곳의 지형을 이용해 천라지망(天羅之網)을 쳐놓았기 때문이다.
"크... 아... 아... 악!"
처참한 단말마의 비명이 하늘을 찢었다.
"화... 화산은 끝이다! 으아악!"
종말의 끝을 예고하는 무지개 대신에 피보라가 하늘을 가리고 있었다. 대화산의 멸문은 지긋지긋한 폭우 속에서 그렇게 막을 내리고 있었다.
화산을 멸문시킨 여덟 방향의 괴인들.
그들은 전설 속에서나 나옴직한 마도팔곡의 인물들이었다. 하지만 화산인들은 죽어가면서도 그러한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마도팔곡은 수백 년 간 활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④
공동산( 山)의 공동도관( 道觀)이었다. 폭우는 줄기차게 내리고 있었다.
청우(靑雨)와 청송(靑松).
두 공동도사는 공동도관의 입구에 위치한 누각에서 연신 젓가락질을 멈추지 않았다. 그들은 지금 막 식사를 하고 있던 참이었다. 탁자 위에는 김이 무럭무럭 오르는 고기 한 접시와 모태주(茅台酒) 한 병이 놓여 있었다.
"제환공(齊桓公)이 상육(想肉)을 즐긴 이유를 알겠군. 별미 중에 이런 별미도 없을 거야. 아우, 그렇지 않은가?"
청우의 말이었다. 청송은 상육 한 점을 씹으며 그의 말을 받았다.
"형님의 요리 솜씨는 누구도 따를 자격이 없소이다. 크ㅋ... 서고를 정리하다가 뜻밖에도 계륵편(鷄肋編)을 발견할 줄이야 누가 알았겠소? 자! 한 잔 더 합시다."
"그러자구!"
그들은 태연히 잔을 주고 받으며 상육을 씹었다.
벌써 보름째 폭우는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었다. 이런 날씨에 공동도관을 방문하거나 찾아올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들은 오래된 경험으로 그 사실을 잘 알았다.
청우는 요리에 일가견을 이룬 자였다. 그는 어릴 적부터 요리에 남다른 재질을 가지고 있었다.
아무리 질긴 고기나 풀이라고 해도 그의 손에서 요리가 되면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그들 형제가 공동파에 들어오게 된 것도 따지고보면 청우의 요리솜씨 때문이었다.
그는 또한 식도락가이기도 했다. 청송도 미식가이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런 청우에게 요리의 비서(秘書)라고 할 수 있는 계륵편이 주어졌으니 오죽하겠는가?
청우는 즉시 사람의 고기를 구해왔다. 그것도 갓 태어난 여아의 고기를.
그는 폭우로 인한 기아에 시달리고 있는 한 양가에 들어가 갓태어난 여아를 은자 한 냥에 사온 것이다.
그런 청우를 향해 아기의 부모들은 오히려 감지덕지했다. 자신들이 먹을 끼니거리도 없는 판국에 갓난아이를 어떻게 키운단 말인가?
어쨌거나 청우는 그 여아를 가지고 계륵편에 적힌 대로 요리했다. 그것은 참으로 별미였다. 어느새 모태주 한 병이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들은 도관을 쓴 도인의 신분으로 저지를 수 없는 짓을 저지른 것이다. 그러나 도(道)란 무(無)이니 그들은 사람 고기를 또한 사람 고기로 보지 아니한다는 말도 안 되는 도리(道理)로 스스로를 미화시키며 진귀한 요리(?)를 맛본 것이다.
쏴아아아.......
누각 밖으로 세찬 빗줄기가 여전히 퍼붓고 있었다. 바로 그때였다.
"이게 무슨 소리지?"
돌연 청우가 귀를 쫑긋 세우며 물었다. 이어 그는 창 밖을 바라보았다.
"무슨 일일까요?"
청송이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그 순간 두 사람의 눈에 공포심이 어렸다.
"헉! 누... 누구요? 당신들은......?"
모두 십일 인의 괴인들이었다.
그들은 한결같이 죽립을 깊숙이 눌러쓰고 있었다. 그들은 폭우 속에서 꼼짝도 않고 두 형제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것이 언제부터였는지는 도무지 알 길이 없었다.
죽립괴인들로부터 가공할 사기(邪氣)가 질식할 듯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청우도인은 자신도 모르게 머리털이 곤두서는 것을 느꼈다. 그는 탁자를 박차고 일어났다. 이어 뒤로 주춤주춤 물러섰다.
그때였다.
앞장 서 있는 혈의죽립인 뒤에서 두 명의 흑의죽립인이 앞으로 나서는 것이었다. 옷차림새로 보아 그들은 남녀였다.
먼저 입을 연 것은 청송이었다. 그는 청우보다는 대가 센 편이었다.
"시주들은 무슨 볼일로 본 도관을... 크윽!"
청송은 말을 끝맺지 못했다. 뒤이어 청우의 입에서도 비명이 터져나왔다.
"큭!"
두 사람은 단지 눈 앞에 두 쌍의 손바닥이 어른거리는 것만을 보았을 뿐이다. 그러나 그 손바닥이 내쏟은 진기의 위력은 대단했다.
그들은 횟빛 안색이 되어 쓰러졌다. 하지만 쓰러진 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었다.
츠츠츠.......
어느 순간 쓰러진 그들의 칠공에서 연기가 치솟았다. 동시에 그들의 몸은 쭈글쭈글 오그라들기 시작했다.
"......."
그것을 지켜보는 열한 쌍의 눈동자는 냉혹하기 짝이 없었다.
잠시 후 그들은 두 구의 백골로 화하고 말았다. 그것은 전설로 내려오는 전율스런 마공의 현상이었다.
한 쌍의 남녀가 시전한 것은 바로 백골회회마공(白骨灰灰魔功)이었다. 그때였다.
"들어가자. 오늘은 너희들이 신나게 춤을 추어도 좋다. 천오백 년의 긴 잠에서 깬 기분으로 마음껏 춤을 추어 보아라."
혈의죽립인의 입으로부터 차디찬 음성이 흘러 나왔다.
냉혹무비한 음성의 소유자. 그는 바로 혈륜공자 백천강이었다. 백천강의 뒤를 따르는 다섯 쌍의 흑영들은 바로 극락십령이었다.
"저... 저주의 마귀들이다!"
"이... 인간이 아니다. 크아악!"
공동인들은 한 식경이 지나지 않아 모두 백골로 화하고 말았다. 그것은 오로지 한 명의 사람과 열 명의 실혼인에 의해서 였다.
휘이이... 이이잉.......
혈우를 동반한 대사풍(大死風)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번쩍... 꽈르르... 콰... 쾅!
중원대륙이 섬전에 갈라지는 순간 대혈륜의 수레바퀴는 무섭게 굴렀다.
첫댓글 굿,,,
잘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