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르릉
‘영렬아! 나 덕길 이야.’
“응. 지금 나간다. 하하”
성남에 사는 친구 터미네이터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금세 나온다고 한다.
설레 이는 기분은 이미 산성 역 2번 출구를 가득 드리우고, 여느 때 보다 더 호탕한 웃음을 짓고있었다.
영렬이에게 주려고, 커피 한 개와 샌드를 샀다.
조금 기다리니, 영렬이가 근엄하게 빼 입고 착 나왔다.
‘너, 산행복장이 왜 그러냐? ‘
“웅, 오늘 시험감독 들어가야 해서 하하 산까지만 태워 다 주고 난 가 볼게 하하”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던 중에 구경꾼이 보였다.
‘우와……..오랜만이다. 잘 지냈냐 방가방가’
“덕길 아. 반갑다 임마. 영렬이 아이가? 복장이 모 그러누? 하하”
무척 반가운 마음 나누던 중. 지하철 계단을 오르는 세명의 사람이 있었으니.
내가 말했다.
‘영렬아! 저기 가운데 여자가 꼭 진실이 같아야…..안 그냐? ‘
“에이 …..저렇게 어릴라구.. 자 들은 학생같구만.”
‘그러게, 진실이라 하기엔 넘 어리다 그 치. 하하’
“잠만, 저기 자가 초로 아니냐? “
‘어디………..초………초…………초로야<<<<<<<<<<<’
우린, 마치 산삼이라도 발견한 양 목청껏 초로를 불렀다.
뒤 돌아 보는 등산복 입은 친구가 초로가 맞은 걸 확인하면서 옆에 위압감을 착 간직하고 무게 있게 올라오는 유니 콘을 볼 수 있었다.
다시 한번 일행은 까르르 웃고, 서둘러 차를 탔다.
남한산성 구비구비 길섶 돌고 돌아……우리는 달리고 또 달렸다.
붉은 단풍이 흠뻑 자지러져…….황홀한 듯 우리를 바라보았다.
우리 황홀할 이유는 없었는데, 단풍은 그 우아한 맵시 다 꺼내 보이며 숨가쁜 호흡을 산 아래로 펄펄 날리 우고 있었다.
소요산보다, 내 장산 보다도 더 아름답다는 감탄의 목소리들이 친구들 입에서 터져 나왔다.
신기…..아님 경이에 가까울 정도의 감탄의 표정들을 보면서 난 , 오늘 남한산성 산행을 너무 잘 선택했다고, 속으로 감사하고있었다.
차를 한대는 주차장에 세우고, 우리는 영렬이 차로 다시 남한산성 구비구비 내려가 이름도 낯선 시골 동네로 들어갔다.
상산곡리에서 벌봉으로 해서 남한산성을 오르는 길이 제일 좋다는 인터넷 게시판의 글을 인용하면서, 우리는 사뭇 기대와 설레임을 저기 광주 벌판 아스라이 깔아놓고있었다.
차는 리어카 한대 들어갈 만한 곳을 거슬러 올라가 꾸역꾸역 가을을 탔다.
몇 사람에게 물어도 이 길이 아니라는 데, 난 대장으로서 돌격 앞으로를 외치고있었다.
길이 끝나는 곳에 그리움이 있고, 길이 끝나는 곳에 한가로움이 있는 것인가.
처음 와 보는 이 시골길이 친구들에겐 더 없는 설레임의 길로 각인이 되어갔다.
영렬인 우리를 내려주고 떠나고, 우리는 떠나 보낸 차에 인사를 한 후 꾸역꾸역 산길을 올랐다.
이따금, 찰칵찰칵 하는 카메라 소리가싫지않았다.
큰 길이 사라진 곳에 개들이 멍멍 거렸다.
초로가 거들었다.
“얼큰이네 집이네………..아이 공 배고파”
저마다 우리는 산행 후에 있을 토종 닭 누릉지 백숙에 침을 삼키고 있었는지 모른다.
늦게 출발한 메딩은 아직도 산 아래에서 우릴 찾아 떠 도는 미아가 되어있었고, 우리는 마냥 기다릴 수 없어서 산을 넘었다.
조그만 길은 얼마 후 사라지고 없었다.
난감했다.
산은 높지 않아서 다행이었지만, 길이 없는 산을 탄다는 것은 모험이었다.
친구들과 상의를 하였다.
그냥 개척산행을 하자고 한다.
현역들만 다시 머리를 맞댔다.
“소근 소근, 속닥속닥, 주절주절”
상의가 끝난 우리는 선두에 초로가 수색대 출신? 답게 앞장섰고, 두 번째에 컨디션 제로인 유니 콘이 섰다.
입술까지 갈라져 힘이 들어 보이는 유니 콘은 말이 없었다.
이따금 툭 툭 던지는 말에 뼈가 들어있어,
그 의미가 너무 섬세해서 바로 기억이 되고 있었다.
터 벅 터 벅 앞만 보고 산길 걷는다.
상수리 나무 벌레 먹은 이파리 사이로 바람이 운다.
도토리 이파리 다 떨어져 산길 뒹근다.
낙엽은 사각사각 소리를 내며 발걸음을 다독거렸다.
나는 나인데, 내 발은 이미 내가 아닌 듯
저기 흐드러진 낙엽을 애무하고 또 애무하고. 그것도 모자라 꼬옥 안고 또 안고
발은 그렇게 가을 산 낙엽을 토닥거려 주고있었다.
지천으로 피어있는 은행잎들은 주인이 없는 듯 나부꼈다.
몸서리 치게 그리움이 일렁이는 어느 날 …..홀로 올 수 있는 날이 다시 온다면 그때는
“저기 두고 온 은행잎 비 처럼 맞아도 좋으리………(여긴 내 시 인용한 것임 ㅋㅋ)”
칠부 능선쯤 오르고서야 우린 산 할아버지를 만났다.
손에 버섯 꾸러미를 드신 산 할아버지를 따라서 우린 산을 올랐다.
친구들의 지극 정성인 대접에 할아버지 감동하셨는지. 들고있던 버섯꾸러미를 진실이 에게 주어 버리고, 너무 고맙다면 글썽이는 눈으로 진실인 답례인사를 건넸다.
근데, 혼자 다 가지고 갔다. 진실아! 잘 먹고 잘 살아랑 ㅎㅎ
어린 아이처럼 진실인. 평길 보다는 고랑을 택했고, 다람쥐 처럼 깡총 깡총 산길을 내 달렸다.
우린 조금 춥다는 핑계로 산악구보를 하였다.
남한 산성 성곽사이 뚫린 구멍사이로 가을이 몸살 났다.
몸살 난 가을은 멀리 한강을 건드렸고, 한강은 못내 그리운 듯 하늘을 닮아 푸르러 있었다.
성곽을 따라 우린 가을의 절정을 탐하고있었다.
북문에서 바라다 본 서울은 예술이었다.
도시가 숲처럼 느껴졌다.
여기서는 아름답지만, 내려가 보면 답답하다는 구경꾼의 명언을 우리는 다시 한번 되뇌었다.
드디어, 메딩을 만났다.
오랫만에 보니 반가왔다.
‘그니깐 좀 일찍 나와서 같이 산행하면 얼마나 좋노?’
“에고 미안해라 호호. 꼭 산에 가려면 신랑 늦게 출근한다니 깐 호호호”
우리는 서둘러 점심을 차렸다.
가지고 온 진실이의 찰밥에, 유니 콘의 김치에 우리들의 김밥까지 식탁은 조촐했지만 진수성찬 이었다.
초로의 커피한모금에 세월을 타고, 친구들이 화기 애애한 웃음소리에 가을을 탔다.
모두들 싱그러운 가을을 천연덕스럽게 즐기는 것을 보며 나도 어린아이가 되어가고있었다.
성곽 따라서 돌고 돌아 약 네시간을 걸었을까? 드디어 목적지인 남문이 나왔고, 우린 너무 아쉬워서 한시간만 더 돌기로 하였다.
제 2옹성까지 다 돌았다. 남한산성을 이렇게 제대로 일주해 보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모두들 해 냈다는 만족감과, 이렇게 아름다운 자연을 즐기게 해 준 한국의 자연에 감사함을 표했다. 남은 오이 반개씩을 먹으며 우리는 하산을 하였다.
내려오는 길에 조그만 절에 들려 피곤을 날리고, 우리는 아름다운 오솔길을 따라서 꿈인 듯 생시인 듯 그렇게 은둔의 시간을 즐겼다.
주차장에 나와 차를 가지고, 내가 즐겨 가던 토종닭집 허름한 식당으로 들어갔다.
너무도 맛있게 잘 먹었다는 친구들의 말에 나도 좋았고, 새삼 고마움도 느꼈다.
한방백숙에, 감자전, 도토리 묵에, 동동주까지 목젖을 타고 꿀꺽 넘어가는 술은 폐부를 적시고 거기 알싸한 전율까지 만들어냈다.
나중에 합류한 피터팬과 뿌치에게는 조금 미안했지만, 우리는 서둘러 카페에 들어가 커피한잔씩 마셨다. 커피 한잔이 7000원이란다. 황당한 기분이 들었지만, 그래도 우리 사나이 피터팬이 한턱 착..내고, 덕분에 우리는 회비를 비축할 수 있었다. ㅎㅎ
친구들을 산성 역에 내려주고 나는 떠났다.
그 들은 또 지하철 내내 많은 언어들의 유희를 즐길 것이다.
만남은 이별을 목적으로 하진 않지만, 만남 뒤에는 분명히 다가 오는 게 이별이다.
사람과의 이별이건, 산과의 이별이건 뭐든 이별은 아쉽고 쓸쓸하다.
홀로 돌아오는 차 안 내내 공허가 밀려들었다.
다들 떠나 버리고 남은 자리에 공허란 놈이 타서 떠 날 줄 몰랐다.
비록 지금 공허하지만, 오늘 추억은 또 다른 내일의 활력이 되어줄 것이다.
첫댓글 덕길에 나 백숙집 다시 가고 싶다
중학교때인가요? 학교언니네 오빠 면회하러 거여동에 있는 특공 비호부대를 방문했다가 바로 뒤에있는 남한산성을 올랐었는데..끝가지 가보진 못했구요 (나중에 차를타고 올라갔지만) 중간쯤에서 먹던 도토리묵이 어찌나 맛있던지...지금도 도토리묵을 보면 그때 생각이 나더군요..친구분들과 함께한 즐거운 산행에 덩달아
해피도 행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