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창한 봄 날씨에 만나면 즐거운 님들이 향토에서 손꼽히는 문화유산인 만덕동 만덕사지를 찿았다,
만덕사지 설명부분을 저의 일기로 대신함을 용서하십시요,
그날 그날 나의 역사를 3년이상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일기는 오늘을 정리하고 반성하는 가운데 즐거움이 있고 더군다나 치매를 예방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 병원에서 소개합니다,
컴퓨터가 계신분은 ALOOLIM사이트에 들어가시면 평생 쓸수있는 일기장에서 일기를 쓰고 저장하면 뒷날에 저는 저의 인생여정을 이일기로 책을 만들가 합니다, 이하는 제 알기 그대로 입니다, 죄송합니다,오늘 모처럼 경주박물관 대학 실습과정으로 특강이 아닌 도요지에서 그릇만드는 과정을 배우는데 결석을 하고 부산대 실버아카데미 답사를 준비 만덕사지로 하고 교육대 앞 주차장에 모여 함께 가기로하고 나는 내차로 모이는 장소에서 여성분 이정란님, 권부향님, 이옥순님 류정선님, 양화자님을 태우고 먼저 만덕고개에서 기다려서 만덕사 당간지주를 보면서 이 幢竿持柱는 사찰의 경계지역을 나타내는 깃발로 사찰의 旗를 달아 알리는 역활을 하고있다, 당간지주는 2개의 큰 지주를 세우고 지주의 중간면에 竿臺를 만들어 기둥의 밑을 밭쳐주는 역활을 하는데 훼손되고 없다, 또 지주도 하나가 없어지고 한쪽만 외롭게 자리잡고 있다, 지주 윗면을 2중으로 선을 조각한 한겄 뽄을 내고있다, 지주에 구멍을 뚫어 당간을 고정시켜주는 기능을 하고있는 竿孔,과 竿溝가 있는데 이곳의 형식은 간구의 형식을 취하고있다, 사찰의 경계를 나타내는 신성한 당간지주가 있는곳이 우리나라 고대신앙인 당산나무와 당집이 함께 공존하고 있어 불교와 고대신앙이 융합하고있는 아주 좋은 장소다, 이런곳은 흔치 않아 내가 본겄중에는 처음이다, 이는 곧 역사적 의미가 깃든 곳이라 생각되어진다,
또한 솟대에서 왔다는 설도 존재합니다,
옛날 우리조상님들은 원시사회로 병마가 부락을 휩쓸고 흉년이 드는 인간으로서는 不可抗力로 돌림병(호열자등)을 막고
부락의 안녕을 구하고 풍년을 빌었던 인간본연의 "샤마니즘"으로 이러한 형태는 모든 인류가 가졌던 초기문명이다,
특히 제주를 뽑아 몸과 정신을 맑게 하여 이행사를 주관케하는 하는 제주는 부인과 상당기간 따로 방을 쓰고 매일 목욕재개로 몸과 마음을 닦아 정초에 祈福을 구하고 무병, 풍년을 구하는 제를 주관한다, 당나무와 당산, 마을입구등에 금줄을 친다, 이때 새끼는 왼손새끼로 꼬아 제주가 금줄을 친다,
정해진 날에 제주를 중심으로 제를 지내는데 남자들만 참가한다, 이때는 남자들이 왔다했는데 요즈음은 나를 비롯해 엄처시하에서 다들 고생하고있는 겄을 보면 격세지감이 든다,
잉이야기는 여기에서 줄이고 만덕사지에 도착 참가하신분들에게 이해를 돕기위해 萬德寺址 記錄 을 큰 글씨로 인쇄 이해에 도움을 주었다,
(高麗史) 髮"永陵"藤子 釋器 置 萬德寺
(高麗史節要) 髮 忠惠王 藤子 釋器 置 萬德寺
28.충혜왕-1330~1332,(庶子 釋器. 후궁에서 태어남)
29.충목왕-1344~1348(충혜왕의 왕자)
30.충정왕-1348~1351(충혜뢍의 왕자}
31.공민왕-1351~1374(元에 불모로 있다 왕위에 오름)
이 만덕사는 위기록에 나타난 충혜왕 서자 석기왕자가 머리를 갂고 스님이 되어 만덕사에 유폐되었다는 기록이 있어 석기가 있던 만덕사가 아닐까? 하는 의문이 있었는데 동아대, 부산박물관에서 몇번의 발굴조사끝에 祈毗寺라는 기와 편이나와 이곳이 기비사일 가능성이 높아젔다,
주위에 기비골과 기비마을이 있어 이를 뒷밭침하고있다,
고려시대 만덕사 이름을 가진 사찰이 5개나 있었답니다,
여기에서 수습된 석탑1기가 부산박물관 입구좌측에 3층석탑으로 신라의 탑형식을 이어오고 있다,
여기에 또 큰 8각 좌대가 발굴되어 금당터에 놓여있는데 이 돌좌대는 석불을 봉안했던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용마루 끝부분에 놓아지고있는 치미가 나와 부산박물관 전시실에서 볼수있는데 이런 치미는 신라 황룡사지에서 발굴되고
흔치않는 모양으로 절이 아주컷다는 증거라 할수있다,
廢寺가 된 내력전설은 큰절이어서 스님도 많고 신도들도 많아 공양밥 짖기위해쌀을 씯으면 흰 뜨물이 덕천강으로 흘러서 낙동강으로 향하는 겄이 장관이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렇게 많은 스님과 신도때문에 주지스님이 걱정하던 가운데 인원을 주리기위해 물었더니 뒷편 산에서 흐르는 물줄기를 돌리면 줄겄이란 말에 공사를 하고나니 차츰줄어 들더니 망하게 되었다는 설화가 이어오고 있다, 현재 절뒤편 구석에 웅덩이에 물이고여있고 물이 많이 나오는 겄을 볼수있다,
충혜왕의 서자 석기의 출생 이야기를 하면 어느날 왕이 미행을 하다가 시장의 유기그릇 가게에 다소곳이 않아있는 아름다운 처자의 모습에 반하여 궁중으로 데려와 후궁을 삼아 석기를 낳았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고대 국가에서 왕이 되지못한 왕자는 목숨이 위험해지거나 죽게마련인 이야기와 일맥상통하다,
공민 왕이 원나라에 불모생활을 하다가 왕이되어 개경으로 돌아온다, 왕은 排元派를 주도하는데 附元派는 석기를 왕으로 추대하려는 역모가 몇번 발생한다, 제주도까지 귀향을 가는 인생역경을 겪겨된다, 역모를 막기위해 머리를 깍아 스님을 만들어 개경에서 멀리 떨어진 만덕사로 귀향을 보내 죽이는 스토리라 할수있다, 왕정시대에서 많이 보던 사례다,
구렁이 담 넘어가듯 문화유산해설을 마치니 점심시간이다,
만덕사 옆 식당에 미리 예약한 식당으로 이동 즐거운 오찬회동이 시작되어 재미있는 이야기꽃을 피웠다,
늙그막에 만난 분들이기에 허물이 없고 서로를 이해하는 분들로 말에 막힘이없어 좋다,
오늘 일기는 만덕사지 답사만 올리는 간단하게 정리하고 마치면서 宋의 蘇東坡의 시를 소개하고 줄인다.
"守道而忘勢, 行義而忘利, 修德而忘名이라"
도리는 다하여야 하고 권세는 잊어야하며 의리는 지켜야하고 이익은 잊어야하며 덕행은 닦아야 하고 명성은 잊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