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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는 대평원을 달리다가 드문드문 이름 모를 역마다 잠깐씩 머문다. 우리네 무궁화호 정도 되는 완행열차 같다. 그러나 완행열차의 답답함 같은 건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느긋한 유유자적 같은 여유로움을 만끽할 수 있었다. 대 평원을 가르고 실낱같이 뻗어나간 철길을 따라 느림보 경주를 하는 듯했다. 아니 실낱이라기보다는 어느 시인의 표현처럼 가르마 같은 철길을 헤쳐 나갔다.
우리의 목적지 <샌 루이스 오비스포> 역은 엘에이에서 250마일 남짓의 거리다. 키로 수로는 400이 넘는 거리인데 오비스포 까지는 여섯 시간이 넘게 걸렸다. 그러니까 완행이라 해도 시속 6~70키로의 속도로 달려온 셈이다.
오비스코에는 우리와는 따로 엘에이를 출발한 관광버스가 미리 도착해 있었다. 버스는 하이웨이를 달려 왔을 테니까 시간적으로 기차를 앞섰을 것이다. 이제 숙박예정지이자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인 허스트 캐슬이 있는 <샌 시메온>으로 향했다.
오비스코에서 샌 시메온으로 가는 길에는 유명한 온천장이 있다. 숲 속에 드문드문 가족단위 온천을 할 수 있는 로지가 있다는 말에 관광이고 뭐고 온천이나 하고 갔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했지만 사전 예약 없이는 온천을 할 수 없다니...아쉽지만 다음 기회를 기약할 수밖에 없었다.
온천 대신 중간에 잠시 <아빌라 비취>에 가서 바다 구경을 했다. 벌써 해는 서쪽 수평선을 붉게 물들일 시간이지만 비가 오는 흐린 날씨여서 아름다운 태평양의 일몰을 바라 볼 행운은 누릴 수 없었다.
이곳 바다에는 바다코끼리가 살고 펠리건들은 피어 난간까지 날아와 이국의 여행객을 맞이한다. 아빌라 비치는 캘리포니아 허리를 안쪽으로 휘감아 파고들어 깊숙한 만의 형태를 하고 있다. 그런 천혜의 자연 조건을 갖추고 있어서인지 해안에는 많은 크고 작은 요트들이 정박하고 있었다.
캘리포니아 연안에는 1600여개의 비치가 있다고 했다. 내가 우리 동해안의 해수욕장 이름을 아는 게 열 손가락에 꼽을 정도에 비하면 비치 숫자만으로도 새삼 이 나라가 얼마나 넓은 나라인 줄을 짐작 하고도 남을 듯하다.
바닷가에 자리한 호텔에서 하루를 묵고 아침 일찍 호텔을 나서 차로 3분 거리에 자리한 허스트 캐슬을 찾아 나섰다. 허스트 캐슬은 1990년대 초기의 신문 출판 왕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William Randolph Hearst)의 저택 으로 그가 죽은 뒤 유족들이 주정부에 기증하여 일반에게 공개하고 있다.
엘에이 윌셔거리를 갔을 때 공원 입구에 윌리엄 허스트의 동상을 본적이 있다.
그때, 동상 비문을 통해서 그가 선친이 구축한 많은 사업체 중에서 별로 시원치 않던 신문출판업을 자진해 맡아 가지고 불과 몇 년 만에 흑자를 내게 하고 드디어는 미국의 신문 왕으로 올랐으며 1904년에는 대통령에 출마했으나 그것만은 돈과 언론의 힘으로도 성취하지 못하고 실패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허스트의 아버지 조지 허스트는 은광을 발견하여 많은 재산을 축적할 수 있었다. 조지는 이 때 축적된 재산으로 마음속에 품고 있던 샌 시메온 만의 경치가 내려다보이는 수천 에이커에 달하는 피에블라 블랑카 목장을 구입했다.
조지는 40세에야 열아홉 살의 교사인 페베 애퍼슨을 아내로 맞이한다. 윌리엄은 이 두 사람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윌리엄이 열 살이 되었을 때 어머니와 함께 그랜드 투어라는 1년 반에 걸친 유럽여행이 그의 삶을 바꾸었으며 윌리엄이 미술과 건축물에 호감을 갖도록 하는데 많은 영향을 받았다.
윌리엄은 신문사업에서 성공한데 이어 출판계의 황제가 되어 영화 제작과 정치에서도 성공한 후 그가 50대에 이른 1919년에 이곳 언덕 위에 자신의 성을 건축하겠다는 꿈을 현실로 옮기기 시작했다. 당시 샌프란시스코에 거주하던 저명한 건축가 줄리아 모간이 설계와 시공을 맡아 창조적인 열정을 쏟아부었다.
137에이커에 달하는 택지에 146개의 방을 가진 중세기 스페인 양식의 가대한 이 건축물은 유럽 각자에서 수집해 온 골동품과 미술품을 소장하고 이 예술품들과 조화를 이루는 주거시설을 만들기 위해 오랜 세월에 걸쳐 건축이 계속되었다.
28년 후인 1947년 경 건물자체는 대강 현재의 모양으로 완성을 보았으나 부분적인 부속건물과 내부 장식은 허스트가 88세를 일기로 사망한 1951년까지도 그가 머릿속에 그렸던 완성품은 보지 못하고, 그의 뜻을 성취 하지 못한 채 중단되고 말았다.
허스트 캐슬의 중심은 Casa Grande라고 불리는 거대한 집이다. 저택이라기보다는 유럽의 오래된 성당을 연상시키는 건물에는 Refectory라고 불리는 대식당과 회의실, 서재, 응접실, 주방, 50개의 좌석을 갖춘 극장, 당구장, 기타 거실과 침실이 있으며 옆으로 설계실까지 달려있다.
카사그란데 전면의 약간 경사진 곳에 각종 조각품과 계단으로 연결된 세 채의 게스트하우스가 있으며 북쪽으로 야외연회장이 서쪽 측면에는 Neptune Pool이라고 부르는 고대 로마식 수영장이 화려한 모습을 자랑한다. 수영장의 테라스에 서면 멀리 태평양의 바다가 햇빛에 찬란하게 반짝인다.
식당으로 사용하는 리펙터리 천장에는 400년 전의 이탈리아 궁전에서 분해하여 미국까지 운반해 온 뒤 다시 조립한 나무 구조물로 장식하고 있는데 마치 우리 한옥의 기둥과 대들보와 서까래 그리고 부연과 흡사한 모습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측면 벽에 높다랗게 이중으로 걸려있는 비단깃발들은 중세기 시에나공국의 것들로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중세의 성곽 속에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느끼게 한다. 기다란 식탁과 의자들도 유럽의 수도원에서 가지고 온 것이고 이탈리아와 프랑스 스페인 등지에서 수집해온 각종 은제기구와 장식물들이 식당 전체를 고풍스럽게 한다.
허스트 캐슬이 소장하고 있는 그림만 해도 수백점이 넘는데 대부분이 초상화류이며 성모의 초상만 해도 30점이 넘는다. 허스트가 사용하던 방에는 그의 초상화가 걸려 있는데 이를 비춰주는 등은 17세기의 골동품이며 실내 수영장에 사용한 타일은 베니스에서 직접 수입한 것으로 이 공사를 위해 베니스의 전문 직공들이 와서 직접 시공했다.
영국의 희곡작가 버나드 쇼가 허스트캐슬에 들렀을 때 그는 '하느님이 돈을 가졌다면 아마 이와 같은 저택을 지었을 것'이라고 그의 소감을 피력했다고 한다. 석유 왕 게티가 남긴 게티 센터나 게티빌라에서도 느낀 바지만 역사가 일천한 이 나라의 재벌가가 세계적 문화유산을 수집해서 후세에 남긴 것은 우리도 눈여겨 볼 일이 아닌가 한다.
1958년, 허스트 캐슬을 둘러싼 언덕 주변은 물론 샌 시메온 해안 일대의 거의 전부라 할 수 있는 16만 에이커에 달하는 광대한 땅을 유족들이 캘리포니아 주정부에 기증했는데 아직도 기증되지 않은 많은 땅이 허스트가 소유로 남아있다고 한다.
캐슬 투어는 허스트가 살아 있을 당시 비행기 활주로로 사용되었던 곳에 방문객 센터를 만들어 입장표 판매소와 기념품점 그리고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고 여기서부터 관광객을 태우고 허스트 캐슬까지 약 5마일의 굽이굽이 굽은 언덕길을 태우고 위태롭게 올라가는 안내 버스의 시발점으로 되어있다.
매표소와 버스 운행시간은 여름철에는 아침 8시부터 저녁 5시까지, 겨울철에는 8시 20분부터 오후 3시 20분까지이며 1월 1일, 추수감사절 그리고 크리스마스에만 문을 닫는다. 투어코스는 모두 안내직원이 인솔하며 요소요소에서 자세한 설명과 질문에 대답을 해준다. 투어에 소요되는 시간은 1시간 45분 내지 2시간정도이다.
사진은 특별히 금하는 곳이 아니면 촬영할 수 있으나 라이트 사용은 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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