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의 주 관심사는 진리의 말씀을 성도들에게 먹이는 것입니다. 하지만 말을
물가로 끌고 가도 물을 마시는 건 말의 몫입니다. 그리고 목이 마르지 않는 한
말은 물을 마시지 않을 것이고요. 결핍을 느껴야만, 아쉬운 게 있어야만, 뭔가
아프고 힘들어야만, 말씀이 들릴 것입니다. 작가는 이런 상황을 모르는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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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를 몰입시킵니다. 작가는 독자가 느끼는 감정적 변화를 이해했기 때문에
그게 가능합니다. 설교자가 자가를 다룬 책 몇 권만 읽어도 설교가 쉬워진다는
걸 느낄 겁니다. 작가는 목이 마르지 않은 독자에게 자신의 책을 끝까지 읽도록
만드는 사람입니다. 관심 있는 작가를 찾아 그 작가가 어떻게 이야기를 시작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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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이야기를 어떤 방식으로 이어가는지를 느껴봐야 합니다. 이것을 플롯을 가지고
설명해보면 행동 플롯에선 사건이 핵심이고 마음의 플롯에선 등장인물이 겪는
변화가 핵심입니다. 작가가 이야기를 행동 플롯을 따라 진행한다면 감정의 변화가
거의 없고, 마음의 플롯을 따라간다면 꽤 많을 것입니다. 순수문학은 대개 마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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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롯을 따라 진행해요. 세계문학 리스트에 이름이 올라가 있는 책은 거의 다 마음의
플롯을 따라 진행합니다. 순수문학은 마음의 플롯을 따라가기 때문입니다. 이런 책들
가운데 나의 성격에 가장 무난한 작가를 찾아 읽으면서 배우되 가능하면 천천히,
아주 천천히 읽으라. 빨리 읽으면 절대로 배울 수 없는 것을 천천히 읽을 때 배우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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됩니다. 그게 감정의 변화이죠. 김훈의 '자전거 여행'을 읽으면 이게 뭔지를 알게 돼요.
풍경은 절대 속살을 기차를 타고 가는 사람에게는 말하지 않아요. 천천히 아주 천천히
걸어가는 사람에게만 풍경은 그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는 이야기를 풀어냅니다.
그걸 들으려면 천천히 읽을 수 있는 작가를 만나서 가능하면 밑줄 치며 읽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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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이 뭔지 배우려면 한 책을 여러 번 읽는 게 중요해요. 연장이 많아도 우리 손에
익은 것만 쓰기 마련입니다. 책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영어를 배웠어도 ouch
(아우치)나 ta-da (타다) 같은 의성어가 나오지 않아요. ouch는 우리말로 '아야'이고
ta-da는 '짜잔' 같은 말입니다. 몸에 익지 않아서 그래요. 하지만 영어권에서 삶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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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면 이 말을 씁니다. 소설책 몇 권을 골라서 성경을 읽듯 읽어야 해요. 소설책을
몇 권만 제대로 읽으면 설교뿐 아니라 인간관계에서 변화를 느낍니다. 사람은 자신의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아요. 물론 설교자에게 일어나는 미세한 변화를 성도들은 금세
눈치챕니다. 새로 일어난 변화가 자신들에게 좋게 느껴지기 때문에 무엇이 설교자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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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꾸었는지 호기심을 갖기 마련입니다. 소설을 읽는다면 성도들이 관심을 보일 것
입니다. 성도들은 자신에 삶도 소설처럼 읽히길 기대하기 때문이다. 소설을 읽지
않으면 늘 성도들을 가르치려고만 하지요. 뭔가를 먹이고 싶은 어머니의 마음이지만
인간은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한답니다. 이게 이야기가 오랫동안 우리 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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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무는 이유이기도 해요. 우리는 저마다 자기 이야길 하고 싶어 합니다. 그것이 꼭
영화나 소설 같은 형태를 띠지 않아도 블로그, SNS에서 우리는 이미 자기 이야길
하고 있고, 또 자기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