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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 게시판 스크랩 고모역(顧母驛). 고모령(顧母嶺)
이길영 추천 0 조회 43 11.11.22 10:38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비 내리는 고모령’으로 널리 알려진 대구 수성구 경부선 고모역(顧母驛). 동대구역에서 부산방향으로 5.1㎞ 떨어진 이 역이다.고모역은  2004년 7월에 여객업무가 중지됐고 2006년 9월초에는 화물영업도 끝났다. 2006년 11월 1일 역 업무를 인근 가천역에 이관한 후 문을 닫았다.  81년간의 수많은 사연을 간직한 채 추억 속에 묻혔다.

 

 

위의 사진 클릭하시면 원본 크기의 사진이 보입니다.

고모역에 가면

                                                        박해수

고모역에 가면
옛날 어머니의 눈물이
모여 산다

 


뒤돌아보면 옛 역은 스러지고
시래기 줄에 얽혀 살던
허기진 시절의
허기진 가족들


아, 바스라지고 부서진 옛 기억들
부엉새 소리만 녹슨다


논두렁 사라진
달빛, 화물열차는 몸 무거워
달빛까지 함께 싣고
쉬어 가던 역이다


고모역에 가면
어머니의 손재봉틀처럼
덜커덩. 덜커덩거리는 화물열차만
꽁지 빠진 새처럼
검은 물새 떼처럼
허기지게 날아가는


그 옛날, 고모역 선로 위에서
아, 이즈러진 저 달이
아, 이즈러진 저 달이


어머니의 눈물처럼 그렁그렁
옛 달처럼 덩그러니 걸려 있구나


옛 달처럼 덩그라니 걸려 있는
슬픔처럼 비껴 서 있는
그 옛날 고모역에서,...

 

 

 

고모역 앞의 도로 

 

 

 

비 내리는 고모령 노래비

 옛날 고모령에는 남편 없이 어린남매를 키우는 홀어머니가 있었는데 하루는 스님 한 분이 와서 이 집은 전생에 덕을 쌓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 가난하다고 하여 어머니와 어린 남매는 덕을 쌓기 위해 흙으로 산을 쌓게 되었는데 현재의 모봉, 형봉, 재봉 이라는 3개의 산봉우리가 되었는데 동생과 형이 서로 높이 쌓고자 시샘을 하여 싸우는 것을 보고 어머니는 크게 실망하여 자식들을 잘못 키웠다는 죄스러움으로 집을 나와 버렸다. 집을 나와 하염없이 걷던 길이 지금의 고모령, 그래서 정상에 와서 집을 향해 뒤돌아 봤는데 그 이름이 뒤돌아 볼 고(顧), 어미모(母)를 합쳐 고모라는 마을 이름도 이 곳에서 나왔다.

지금은 경부선 때문에 산은 잘리고 망우공원에서 인터불고호텔 팔현부락을 거쳐 고모역으로 이어지는 옛고갯길이 이어지고 있어 전설과 함께 애틋한 고향 어머니를 기리는 노래 '비내리는 고모령'이라는 대중가요가 광복 이듬해인 1946년 가수 현인 씨의 특유한 저음에 실려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다.(수성구청 자료)

 

또 다른 전설

고모령과 관련된 일본제국시대의 전설은 다음과 같다.

“옛날 왜정 시대에 경산에 있는 작은 마을에는 어떤 아주머니가 살고 있었다. 남편을 일찍 여의고 홀로 두 아들을 키우면서 살았는데, 독립운동을 하던 두 아들은 왜놈에게 잡혀서 모두 대구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남편없이 기른 두 아들이 모두 감옥에 가 있는 것이 어머니로서는 견디기 힘든 슬픔이었는지라 시간만 나면 감옥으로 면회를 가곤 했다. 그날도 대구 감옥에 있는 아들을 면회하고 돌아가는 길이었다.

고모령 고갯길에 이르렀는데 그날따라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아들에 대한 그리움과 서러움으로 고모령을 넘어오던 어머니는 자신도 모르게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되었다. 경산으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 고개를 넘어야 하고, 그 고개를 넘으면 대구가 더 이상 보이지 않기 때문에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되었던 것이다.

이렇게 하여 이 고개는 고개를 돌려서 본다는 고(顧)와 어머니 모(母)를 붙여서 고모령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위의 사진 클릭하시면 원본 크기의 사진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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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인과 함께 히트작을 많이 낸 유호와 박시춘 콤비의 작품이다. 유호의 필명인 호동아 작사, 박시춘 작곡의 〈비나리는 고모령〉이라는 제목으로 1948년에 발표되었다.

 

 비내리는 고모령

어머님의 손을 놓고 돌아설 때엔
부엉새도 울었다오 나도 울었오
가랑잎이 휘날리는 산마루 턱을
넘어오던 그날밤이 그리웁고나

맨드라미 피고지고 몇해이던가
물방앗간 뒷전에서 맺은 사랑아
어이해서 못잊느냐 망향초 신세
비내리는 고모령을 언제 넘느냐

위의 사진 클릭하시면 원본 크기의 사진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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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호 기자 불망비

1991년 9월27일에는 한국일보 사진부 김문호(당시 29세) 기자가 고모령을 취재하다 뒤쪽에서 달려오는 열차에 부딪혀  세상을 떠났습니다.

 

장사익 - 비내리는 고모령 | 음악을 들으려면 원본보기를 클릭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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