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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희 시집, <마당 깊은 꽃집>, 푸른사상.
꽃의 시학
맹문재
1
이주희 시인의 시들에서 ‘꽃’은 핵심적인 제재이자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이상향이다. 그와 같은 면은 모란꽃, 금잔화, 맨드라미, 동백꽃, 자귀나무, 할미꽃, 벚꽃, 백일홍, 재스민, 해당화, 채송화, 나팔꽃, 벌개미취꽃, 카네이션, 함박꽃, 민들레, 냉이꽃, 남산제비꽃, 산딸기꽃, 애기메꽃, 글라디올러스, 아마릴리스, 달리아, 깨꽃, 봉숭아, 백일홍, 붓꽃, 분꽃, 한련, 홍초, 양귀비꽃, 바위취꽃, 줄장미, 여주꽃, 돌나물꽃, 꽃기린, 실란, 개상사화 등이 등장하는 데서 확인된다. 뿐만 아니라 꽃잎, 꽃봉오리, 노란 꽃, 붉은 꽃, 빨간 꽃, 하얀 꽃, 연분홍 꽃, 마른 꽃, 물꽃, 꽃대, 꽃밭, 꽃놀이, 꽃무늬, 꽃잠, 자랑꽃, 종이꽃, 꽃상여, 꽃비빔밥, 꽃바람 등 꽃과 관련된 대상이나 수식이 다양한 데서도 볼 수 있다.
그리하여 동대문시장의 휘황한 포목전을 “창경원의 밤벚꽃놀이”(「구슬지갑」)로, 쪽 찌고 은비녀를 꽂은 어머니 머리의 나비잠(簪)이 흔들리는 모습을 “할미꽃”(「떨잠」)으로 비유하고 있다. 또한 아흔다섯 살 된 감나무가 태풍에 꺾이자 아이들의 목걸이를 만들어줄 “꽃”(「감나무」)을 피울 수 없음을 안타까워하고, 시어머니가 수영복을 입고 즐거워하는 모습을 “나팔꽃처럼 웃”(「강진댁 식구들」)는 것으로 비유하고 있다. 이외에도 꽃에 대한 깊은 관찰과 지식으로 시의 세계를 심화시키고 있다.
꽃은 미술이나 문학 등의 예술 분야는 물론이고 문화, 생활, 역사의 영역에서 인류와 함께해 왔다. 결혼식이나 장례식 등에서 사용되는 실물적인 대상이기도 하지만 상징적인 차원에서 널리 변주되어 온 것이다. 그리스 신화에서 꽃의 여신을 플로라(Flora)라고 부른 것이나, 다양한 꽃말이 만들어져 사람들에게 회자되고 있는 것이 여실한 예이다. 그리하여 꽃은 신의 축복, 아름다움, 화려함, 부귀영화, 봄, 전성기, 연인, 사랑, 여성성, 생명력, 출산, 행복 등 다양한 상징성을 나타내고 있다.
이주희 시인이 추구하는 꽃의 세계 역시 다양한데,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데메테르(Demeter)가 그녀의 외동딸 페르세포네(Persephone)를 바라보는 시선이 연상된다. 지하 세계의 왕인 하데스(Hades)는 페르세포네를 데려가고 싶어 기회를 엿보다가 마침내 수선화를 이용한다. 수선화는 제우스(Zeus)가 자신의 동생인 하데스를 돕기 위해 만들었다. 페르세포네는 친구들과 함께 장미, 백합, 제비꽃, 히야신스 등이 피어 있는 목초지에서 꽃들을 따 모으다가 이전에 본 어떤 꽃보다 아름답고 향기가 감미로운 수선화를 발견했다. 그리하여 친구들과 떨어진 채 그 꽃을 따려고 손을 뻗었다. 그 순간 땅이 벌어지고 검은 말들이 끄는 전차가 튀어나와 그녀를 잡아 끌어당겼다.
놀란 페르세포네의 울음소리는 높은 언덕과 바다 속까지 메아리쳐 데메테르에게도 들렸다. 데메테르는 바다와 육지를 넘나들며 딸을 찾아다녔지만 발견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태양의 신에게 찾아가 물어보았는데, 페르세포네가 지하의 세계에 납치되어 있다는 말을 들었다. 데메테르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슬픔에 빠져 신들의 궁전인 올림포스를 떠나 지상으로 거처를 옮겼다. 그렇지만 대지와 농경과 곡물의 여신인 데메테르는 대지에 선물을 내리지 않았다. 푸르고 꽃이 만발하던 대지는 얼음으로 뒤덮이고 삭막한 사막으로 변해 자라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동물도 인간도 굶어죽을 상황에 놓였다.
제우스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신들을 보내 데메테르가 화를 풀도록 했다. 그렇지만 데메테르는 딸을 만날 때까지는 절대로 대지에서 수확할 수 없다고 대답했다. 그리하여 제우스는 데메테르를 설득하는 대신 하데스에게 페르세포네를 돌려보내라고 했다. 하데스는 제우스의 명령을 거역할 수 없었지만, 페르세포네가 다시 돌아오도록 하기 위해 석류의 씨앗을 먹였다.
마침내 두 모녀는 기적적으로 만나 하루 종일 그동안 겪었던 일들을 이야기했다. 그러다가 딸이 석류의 씨앗을 먹었다는 사실에 데메테르는 또다시 딸을 잃을 것 같아 두려워하고 슬퍼했다. 그러자 제우스는 신들 중에서 가장 연장자이고 자신의 어머니인 레아(Rhea)를 데메테르에게 보냈다. 1년 중 4개월 동안 페르세포네는 지하 세계에 내려갔다가 겨울이 끝날 무렵 돌아와 인간들과 함께 지내게 될 것이라고 알려주고, 올림포스 신전으로 돌아와 딸을 소유하고 슬픔을 위안 받으라고 한 것이다. 그리고 대지에 생명을 줄 것을 권했다. 데메테르는 해마다 4개월을 딸과 헤어져야 했기에 만족할 수 없었지만 거절할 수도 없어 황폐화된 대지를 풍요롭게 만들어주었다. 세상 천지에 꽃과 푸른 잎과 풍성한 열매를 가져다주었고, 인간들에게는 곡식의 씨를 뿌리는 방법을 알려주었으며, 신성한 의식도 가르쳐주었다.
그 후 페르세포네가 메마르고 다갈색인 언덕을 넘어오면 온 대지는 활짝 피어났다. 그렇지만 페르세포네는 지상에서 성장하는 꽃들이며 과일들이 추위가 찾아오면 자신처럼 죽음의 세계에 끌려가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또한 지하 세계의 기억들도 가지고 와 페르세포네의 아름다운 얼굴에는 두려움과 슬픔이 들어 있었다. 딸의 모습을 다 보고 있는 데메테르의 마음 또한 그러했다. 그렇지만 데메테르는 페르세포네를 기꺼이 품었다. 또다시 헤어져야 하는 운명이지만 함께하는 동안 영원히 사랑한 것이다.
이주희 시인이 꽃을 바라보는 시선 역시 데메테르와 같다. 꽃을 바라보는 시인의 마음에는 기쁨과 즐거움과 풍요로움은 물론 슬픔과 안타까움이 들어 있다. 꽃 또한 페르세포네처럼 유한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데메테르가 페르세포네의 슬픔을 껴안고 사랑했듯이 시인도 긍정적인 세계 인식으로 꽃을 껴안는다. 꽃의 슬픔과 안타까움을 아름다움과 웃음과 풍요로움과 함께 기꺼이 품는 것이다.
2
활옷 같은 꽃상여를 타고
팔랑거리는 나비 따라 산등성이 오르며
주춤주춤 뒤돌아본다
하늘거리는 종이꽃 이파리만큼이나
가벼워진 몸피에 달라붙는 딸들의 울음이
휘휘 감겨 무거운 것일까?
삼 줄기 같은 세월 기다려온 남편의 옆자리
상전인 양 눈치 주던 형님이
이미 차지해버려서일까?
늙은 요령잡이의 상엿소리 뒤따르는
성씨 다른 손자들을 안쓰러워하는 것일까?
혼자 살림에 다섯 자식 키우느라 장터를 떠돌면서도
미나리꽝에서 종아리의 거머리를 떼어내면서도
웃음을 보약처럼 드셨던 어머니
꽃상여 속에서 다시 웃는다
―「모란꽃」 전문
“새색시 활옷 같은 꽃상여를 타고/팔랑거리는 나비 따라 산등성이 오르며/주춤주춤 뒤돌아”보는 “어머니”의 모습은 그지없이 슬프다. 그리하여 “어머니”를 바라보는 자식들은 “울음”을 내보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어머니”는 “꽃상여 속에”서 “웃는다”. “혼자 살림에 다섯 자식 키우느라 장터를 떠돌면서도/미나리꽝에서 종아리의 거머리를 떼어내면서도/웃음을 보약처럼 드셨”듯이 “꽃상여”를 타고서도 “웃는” 것이다.
“어머니”의 그와 같은 모습은 삶과 죽음의 세계를 구분하지 않는 자세이다. 또한 삶과 죽음의 세계에 놓인 자신의 운명을 긍정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무덤으로 가는 길을 또 다른 집으로 가는 길로 여긴다. 자신이 태어나고 죽는 일을 우주의 순리로 여기고 의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어머니”의 그 모습은 결국 화자의 세계관 내지 운명관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화자는 자신의 운명에 대한 인식을 “모란꽃”으로 구체화하고 있다. “모란꽃”은 예로부터 부의 상징으로서 정원에 길러지거나 자수에 이용되었다. 따라서 “모란꽃”으로 비유된 “어머니”는 초라하거나 안쓰럽지 않고 의젓하고 품위가 있다. 이 세상에서뿐만 아니라 저 세상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이렇듯 화자는 세상을 떠난 “어머니”를 슬프고 안타까워하기보다는 “모란꽃”처럼 여긴다. 그리고 기꺼이 “어머니”의 뒤를 따른다.
양지 바른 산비탈에
단칸집 한 채 장만하고
신방을 꾸몄다
안노(雁奴) 삼아 배롱나무 한 그루 세워두었다
안심부름꾼으로 금잔화와 맨드라미도 데려왔다
두런두런 티격태격 안생(安生)을 누리며 해로하시라고
자귀나무를 심었다
동백 울타리도 만들었다
주소와 문패가 무슨 소용이냐며 아버지는 웃으셨다
돌아오다 보니
산 끝자락 하늘 가까운 곳에
울긋불긋 꽃대궐이 제법 멋들어지다
―「꽃대궐」 전문
자식들이 부모를 위해 “양지 바른 산비탈에/단칸집 한 채 장만하고/신방을 꾸”민 것은 잘한 일이다. 기러기가 무리지어 잘 때 경계하느라 자지 않는 한 마리의 기러기를 나타내는 “안노(雁奴)”로 삼고 “배롱나무 한 그루 세워”둔 일도 그러하다. “안심부름꾼으로 금잔화와 맨드라미도 데려”오고, “두런두런 티격태격 안생(安生)을 누리며 해로하시라고/자귀나무를 심”고, “동백 울타리”를 만든 일도 마찬가지이다. 부모님이 아무 탈 없이 안생(安生)할 수 있기에 마음이 놓인다. 그러기에 “아버지”는 “주소와 문패가 무슨 소용이냐”고 “웃으”시는 것이다.
“꽃대궐” 안에는 사실 큰 슬픔이 들어 있다. 부모님의 묘를 쓰는 데 슬퍼하지 않는 자식이 어디 있겠는가. 진정 그 슬픔은 목 놓아 울어도 다 풀리지 않는다. 그렇지만 화자는 슬픔에 함몰되지 않고 오히려 받아들인다. “돌아오다 보니/산 끝자락 하늘 가까운 곳에/울긋불긋 꽃대궐이 제법 멋들어지다”고 여기는 것이 그 모습이다.
이렇듯 화자는 부모님이 계신 추운 세상을 따듯하게, 어두운 세상을 밝게, 삭막한 세상을 온기 있게 껴안는다. 유한한 존재로서 회피할 수 없는 인간의 운명을 긍정하고 “꽃대궐”로 바꾼 것이다. 슬프고 안타까운 세계를 꽃의 세계로 승화시킨 것은 실로 위대한 인식이다. 운명에 복종한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써 극복한 것이다. 그리하여 화자는 꽃의 생명력을 노래한다.
3
집밖에서 하루 자고 들어온 사이
베란다에 동백꽃이 한 송이 피어 있었다
봉오리도 못 본 것 같은데
얼마나 볼록해졌나 언제쯤 꽃이 피려나
맏딸의 산달을 기다리는 친정엄마처럼 살필 새도 없이
불빛마저 없는 텅 빈 집에서 꽃을 피워낸 것이다
힘에 겨워 진땀을 흘렸을 텐데
입덧 때문에 때로는 몸이 으슬으슬하기도 했을 텐데
― 「동백 몸을 풀다」 전문
“꽃”은 본질적으로 생식기관이다. 꽃망울이 자라나 피어났다가 지면서 씨나 열매를 맺으면서 번식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꽃은 암술, 수술, 꽃잎, 꽃받침을 갖추고 화려한 색깔을 띠거나 향기를 낸다. 벌이나 나비나 새들을 유인해 꽃가루받이를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면으로 볼 때 “동백꽃”이 “몸을” 푸는 것은 수식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과학적으로도 타당한 사실이다. 따라서 화자에게 “동백꽃”은 단순히 식물의 한 종류가 아니라 생명체를 잉태하는 존재이다. 아름다움의 상징체를 넘어 생명체를 낳는 강한 여성인 것이다.
화자는 “집밖에서 하루 자고 들어온 사이/베란다에 동백꽃이 한 송이 피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 적지 않게 놀란다. 그리고 모성 인식으로 그 꽃을 바라본다. “맏딸의 산달을 기다리는 친정엄마처럼 살필 새도 없이/불빛마저 없는 텅 빈 집에서 꽃을 피워낸” “동백꽃”을 안쓰러워하면서도 대견해하는 것이다. 그리고 “힘에 겨워 진땀을 흘렸을 텐데/입덧 때문에 때로는 몸이 으슬으슬하기도 했을 텐데”라고 제대로 돌보아주지 못한 자신을 책망하면서 “동백꽃”에게 미안함을 전한다. 같은 운명을 타고난 여성으로서 함께하는 것이다.
잎이 성하면 꽃이 부실한 법이라기에 전정가위를 들었다
어느 틈에 임신한 걸까, 콩알만한 봉오리를 잔뜩 달고 있었다
입덧에 시달리며 열 달을 견뎌야 하는 얼굴
나는 열매도 달지 못하는 동백의 도장지마저 자를 수 없었다
―「얼굴」 전문
작품의 화자는 “잎이 성하면 꽃이 부실한 법이라기에 전정가위를 들었다”가 멈춘다. 다름 아니라 “동백”이 “어느 틈에 임신”했기 때문이다. 화자는 “동백”의 “임신”에 놀라움을 가지면서 동시에 기쁨을 갖는다. 그리하여 “입덧에 시달리며 열 달을 견뎌야 하는 얼굴”을 숭고하게 바라본다. 나아가 “열매도 달지 못하는 동백의 도장지마저 자”르지 않는다. “도장지”의 사전 개념은 숨은눈으로 있다가 나무가 잘 자라지 않을 때에 터서 뻗어 나가는 가지이다. 그 가지는 연약해 열매를 맺지 못한다. 그리하여 일반적으로 잘라 버리는데, 화자는 “도장지”가 열매를 맺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임신할 수 있는 몸이기에 소중하게 품는 것이다.
새로운 생명체를 낳는 “꽃”의 “임신”은 신성하고 위대하다. 그 과정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힘들지만, 화자는 같은 여성으로서 그 위대함에 전적으로 동참한다. 그리하여 종족 보존의 차원을 넘어 삶을 함께 영위하는 것이다.
도란거리는 소리에 잠을 깼더니
일곱 난쟁이들이
밤새 새 식구로 들어왔다
빨간 입술을 달싹이며
노란 목젖이 보이도록 낄낄대고
마냥 신바람이 났다
내가 물만밥을 깨작깨작하면
계란을 부치고 김치를 꺼내 잡수시라고
아양을 떤다
종종걸음 치다 숨을 돌리면
밤톨만한 손으로 부채질을 해주며
어깨를 주무른다
개키던 빨래를 밀어놓고 등걸잠을 자면
살그머니 무릎담요까지 덮어준다
―「동백꽃」 전문
“일곱 난쟁이들”은 세계적으로 알려진 동화 『백설공주』에서 인유한 인물들이다. 동화 속에서 난쟁이들은 새 어머니에게 구박받고 쫓겨난 백설공주를 구해준다. 백설공주는 아름답고 마음씨가 고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으며 자라나지만 허영심과 욕심이 많은 새 왕비에 의해 혹독한 시달림을 받는다. 새 왕비는 매일 아침 자신의 마술 거울을 보고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 누구냐고 물으면 여왕님이라는 답변을 듣는다. 그런데 어느 날 뜻밖에 백설공주라는 대답을 듣게 된다. 그리하여 질투심에 휩싸인 새 왕비는 백설공주를 죽이라고 사냥꾼에게 명령을 내린다. 사냥꾼은 백설공주의 순수한 마음에 감동해 차마 죽이지 못하고 숲에 풀어주는데, 일곱 난쟁이들의 도움으로 살아난다. 새 왕비는 그 뒤에도 여러 차례 백설공주를 죽이려고 시도해 마침내 독이 든 사과를 먹이지만, 일곱 난쟁이들에 의해 또다시 살아난다. 이처럼 백설공주의 생애에서 일곱 난쟁이들은 절대적인 수호신이다.
위의 작품의 화자 역시 “일곱 난쟁이들”의 도움을 받고 있다. 화자는 “일곱 난쟁이들”이 “빨간 입술을 달싹이며/노란 목젖이 보이도록 낄낄대고/마냥 신바람”을 내는 분위기 덕분에 즐겁게 지낸다. 뿐만 아니라 “일곱 난쟁이들”의 지극한 보살핌도 받는다. 화자가 “물만밥을 깨작깨작하면/계란을 부치고 김치를 꺼내 잡수시라고/아양을” 떨고, “종종걸음 치다 숨을 돌리면/밤톨만한 손으로 부채질을 해주며/어깨를 주”물러준다. 그리고 “개키던 빨래를 밀어놓고 등걸잠을 자면/살그머니 무릎담요까지 덮어준다”.
이와 같이 “동백꽃”은 화자와 함께 살아가는 가족이다. 백설공주를 지켜준 일곱 난쟁이들처럼 화자를 보살펴주면서 공동체의 삶을 영위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화자는 “동백꽃”을 생의 반려로 맞아들인다. 결국 ‘꽃’의 세계를 이상향으로 삼고 손을 잡고 함께하는 것이다.
4
이팝나무는 파란 대접에 쌀국수 사리사리 담고
함박꽃은 수제비로 구색을 맞춘다
조팝나무는 한소끔 끓여 몽글몽글한 순두부찌개를 올리고
산딸나무는 가래떡을 엽전처럼 납작납작 썰어 떡국을 내놓는다
아가위나무는 보풀보풀 버무려 백설기를 쪄내고
돌배나무는 화전 지지느라 땀 닦을 겨를이 없다
때죽나무는 이가 부실한 어르신들 끼니로 흰죽을 쑤고
백당나무는 손맛 자랑하느라 조물조물 나물을 무친다
토끼풀은 부지런히 아기 주먹밥을 만들고
아까시나무는 운조루 뒤주처럼 튀밥자루 끈을 풀어놓는다
하얀 민들레는 냉이꽃 남산제비꽃 산딸기꽃과 어우렁더우렁 꽃비빔밥을 만든다
마가목은 송이송이 뭉쳐 밑반찬거리 부각을 튀기고
층층나무는 산길 오르느라 헛헛해진 이들에게 주먹밥 한 덩이씩 인심을 쓴다
―「소만(小滿) 즈음」 전문
입하와 망종 사이에 들어 여름의 기분이 나기 시작하는 절기인 “소만(小滿)” 즈음의 꽃들은 이를 데 없이 풍부하다. “이팝나무는 파란 대접에 쌀국수 사리사리 담고/함박꽃은 수제비로 구색을 맞춘다”. “조팝나무는 한소끔 끓여 몽글몽글한 순두부찌개를 올리고/산딸나무는 가래떡을 엽전처럼 납작납작 썰어 떡국을 내놓는다”. 뿐만 아니라 “아가위나무는 보풀보풀 버무려 백설기를 쪄내고/돌배나무는 화전”을 지진다. “백당나무는 손맛 자랑하느라 조물조물 나물을 무”치고, “토끼풀은 부지런히 아기 주먹밥을 만들고/아까시나무는 운조루 뒤주처럼 튀밥자루 끈을 풀어놓는다”. 그리고 “하얀 민들레는 냉이꽃 남산제비꽃 산딸기꽃과 어우렁더우렁 꽃비빔밥을 만”들고, “마가목은 송이송이 뭉쳐 밑반찬거리 부각을 튀”긴다.
이와 같이 꽃들이 피어 있는 세계는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풍요롭다. 또한 “때죽나무”가 “이가 부실한 어르신들 끼니로 흰죽을 쑤고”, “층층나무”가 “산길 오르느라 헛헛해진 이들에게 주먹밥 한 덩이씩 인심을” 쓰는 데서 볼 수 있듯이 서로서로 나눈다. 공동체 사회를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화자는 풍요롭고 서로 간에 배려하고 나눔이 이루어지는 꽃들의 세계로 즐겁게 들어간다.
대문을 열면 아담한 꽃밭에서 채송화 글라디올러스 아마릴리스 달리아 금잔화 깨꽃 봉숭아 백일홍 붓꽃 맨드라미 분꽃 한련 홍초 들이 제각각의 색으로 피고 진다 밖에서 보이지 않는 대문 앞 담장 바로 아래선 빨강 하양 양귀비꽃이 하늘하늘 춤판을 벌이기도 한다
마당 한복판까지 내리뻗은 바위에 잔돌을 쌓아 꾸민 장독대가 있는데 돌 틈은 꼬리 두 개를 가진 하얀 바위취 꽃차지다 장독대에서 집 윗길에 올라앉은 담장은 줄장미 붉은 꽃이 온통 뒤덮었다 저도 질세라 기세 좋게 덩굴을 뻗어나가는 남보라색 나팔꽃은 위풍당당 기상나팔을 불려고 새벽부터 부지런을 떤다 한켠엔 노란 여주 꽃이 수줍게 웃다가 살랑대는 바람에 오톨도톨한 주황색 열매를 대롱거리기도 한다 그 옆으로 기어가듯 퍼져 있는 돌나물 노란 꽃도 방긋거린다
마루 아래 봉당엔 화분이 크기대로 줄서 있다 밤송이선인장 손바닥선인장 공작선인장 손가락선인장이 인심 쓰듯 꽃을 보여주고 꽃기린 양아욱과 석류는 붉은 꽃을 뽐내고 조신하게 하얀 꽃을 피우는 실란은 쭈뼛거리며 연분홍 꽃을 내놓는 개상사화와 단짝처럼 다정하다
부엌 부뚜막은 조왕신 같은 움파가 늘 지키고 있다
―「마당 깊은 꽃집」 전문
“대문을 열면 아담한 꽃밭에서 채송화 글라디올러스 아마릴리스 달리아 금잔화 깨꽃 봉숭아 백일홍 붓꽃 맨드라미 분꽃 한련 홍초 들이 제각각의 색으로 피고” 지는 모습이 보인다. “밖에서 보이지 않는 대문 앞 담장 바로 아래선 빨강 하양 양귀비꽃이 하늘하늘 춤판을 벌이”고, “하얀 바위취 꽃”을 비롯해 “줄장미 붉은 꽃” “남보라색 나팔꽃” “노란 여주 꽃” “돌나물 노란 꽃”도 집안을 차지하고 있다. “밤송이선인장”을 위시한 선인장이며 “꽃기린” “양아욱” “석류” “실란” “개상사화”도 꽃을 마음껏 피우고 있다.
화자는 “마당 깊은 꽃집” 같은 세계를 이상향으로 삼고 있다. 그곳의 “꽃”들은 “제각각의 색”을 가질 정도로 독립성을 갖고 있다. 또한 제자리를 “차지”하고 “위풍당당”하고 “춤판을 벌이”고 길을 “온통 뒤덮”을 만큼 당당하다. 그러면서도 “수줍게 웃”고 “방긋거”릴 정도로 겸손하고, “인심 쓰”고 “다정하”듯이 서로 함께한다. 그리하여 화자는 아름답고 풍요로우면서도 독립적이고 당당하고 평화롭고 인정이 넘치는 꽃들을 끌어안는다.
화자의 이와 같은 모습은 데메테르가 자신의 외동딸인 페르세포네를 사랑하는 것과 같다. 데메테르는 지하 세계로부터 돌아왔지만 다시 돌아가야 하는 운명을 안고 있는 페르세포네이기에 더욱 사랑한다. 영원할 수 없는 딸이기에 그녀의 두려움과 슬픔마저 포옹하는 것이다. 화자가 “꽃”을 끌어안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꽃” 역시 영원할 수 없는 운명이기에 화자는 온몸으로 품는다. 자신 역시 영원할 수 없기에 “꽃”을 영원히 사랑하는 것이다. 화자의 이와 같은 사랑은 죽음을 모르는 데메테르의 사랑에 비해 인간적인 것이기에 아름답고도 위대하다.
孟文在(문학평론가․안양대 교수)
첫댓글
앗! 이주희 선생님의 시집이 나왔군요.
<마당 깊은 꽃집>의 대문을 열고 빨리 들어가고 싶어요...
이주희 선생님, 축하드려요..
그집, 마당 깊은 곳까지 환한 햇살이 들기를 바랄게요.
시집 출간을 축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