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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은 이미 오셨다 /사도행전 2:14-21
(행2:14) "베드로가 열 한 사도와 같이 서서 소리를 높여 가로되 유인들과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들아 이 일을 너희로 알게 할 것이니 내 말에 귀를 기울이라 (행2:15)때가 제 삼시니 너희 생각과 같이 이 사람들이 취한 것이 아니라 (행2:16)이는 곧 선지자 요엘로 말씀하신 것이니 일렀으되 (행2:17)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행2:18)그 때에 내가 내 영으로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저희가 예언할 것이요 (행2:19) 또 내가 위로 하늘에서는 기사와 아래로 땅에서는 징조를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로다 (행2:20)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리라 (행2:21)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하였느니라"(행2:14-21)
사도행전 2장 1절을 보면 성령이 이 땅을 방문하는 이야기가 나와 있습니다. 오순절 성령을 많이 들었을 겁니다. 오순절날 성령이 이 세상을 찾아 왔다, 여기에 대해서 많은 주장들이 있습니다. 오순절 성령이 왔을 때 첫 번째 표시는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오순절파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데 그런 쪽에서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첫 성령이 와서 방언을 했다.
그러니까 방언이 없는 사람은 아직 성령이 못 왔다,성령이 왔기 때문에 방언을 했다, 따라서 방언을 보고 그 사람이 성령이 있는 사람인지 없는 사람인지 판가름할 수 있다 이렇게 이야기하면서 성령을 받기 위해서 성령을 우리가 받아야 되고 그 성령을 받은 사람의 공통점이 있는데 그것은 방언을 하고 있다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 근거를 대면서 사도행전 2:1에 나오는 오순절날 성령이 바람같이 불같이 갈라질 때에, 4절에 보니까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했다 라고 되어 있으니까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일획도 보태거나 빼서는 안되니까 확실한 이야기다 하고 하는 그러한 오순절 파의 계통의 주장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은 사도행전 2장에 나오는 오순절날 성령이 온 것은 성령 방언이 곧 성령을 받은 증거가 아니라 앞으로 성령께서 어떤 일을 하신다는 라는 그 내용이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그7장 54절에 보니까 스데반이 성령에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7장 55절에 분명히 스데반도 성령이 충만했는데 그때 방언 했다는 이야기 없습니다.
스데반이 순교할 때 성령이 충만한 것은 스데반이 순교하는 그 모습이 바로 예수의 증인의 모습이기 때문에 그때는 성령이 충만해서 예수의 순교의 모습으로서 예수의 증인이라고 하는 것이고 사도행전 2장에서의 제자들이 방언을 한 것은 그때는 오순절 명절이 되가지고 각처에 있는 외국에 나가 있는 모든 유대인들이 모여 들었습니다.그런데 그들은 유대인 말 다 잊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같은 유대인으로서 명절 날에 고향을 찾아서 순례하러 온 각종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그들의 말로 한 것입니다. 또한 그들로 하여금 또 땅끝까지 예수의 증인을 하기 위해서 전도하기 위해서 임시방편으로 외국 말을 한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오순절 파에서 주장하는 것은 아주 잘못된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여기서 사도행전 오순절 성령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남을 비판한 걸로 핵심을 삼을 수 없습니다. 사도행전 2장을 통해서 우리가 알아야 될 것은 도대체 성령께서 왜 오셨는가 성령께서 왜 오셨는가 하는 그 문제와 성령께서 오셔서 뭘 하실 거냐, 성령께서 왜 불같이 오셨느냐 그리고 본문에 보면 모든 육체에게 성령을 주리니 너희 자녀는 예언할 것이요 너희 젊은 환상을 보고 너희는 꿈을 꾸리니 하는데 여기서 말하는 예언과 환상과 꿈이라는 것은 뭐냐. 오늘 이 시간 이걸 알도록 합시다.
첫번째 문제,왜 오셨느냐 그것부터 생각해 봅시다. 성령께서 이렇게 오시게 된 이유가 뭐냐하면은 저와 여러분은 다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믿는다는 말은 좀더 자세히 풀어서 이야기 해보라고 어떤 안 믿는 사람들이 여러분보고 이야기한다면 여러분 뭐라고 이야기하실 겁니까?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그냥 하나님은 이 땅에서 아무것도 못하는 무능한 그런 불구자를 믿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원칙과 법칙을 가지고 이 세상을 다스린다는 것을 나는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다스릴 때 막무가내로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어떤 확실한 원칙이 있습니다. 그러면 원칙대로 안하면 저주를 받고 원칙대로 하면 복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나는 그걸 믿습니다. 어떤 단체도 법이 있듯이 어떤 질서가 있는 거예요. 내가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어떤 원칙대로 이 세상을 다스리며 어떤 질서와 어떤 법칙을 가지고 이 세상을 다스리는데 나는 그 법칙에 순종하며 따른다는 것을 가지고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것입니다.
신명기 28장에 보면은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2절에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미치리니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 복을 받고 네 몸의 소생과 토지의 소산에서 복을 받고 짐승의 새끼에 복을 받고 광주리에 떡반죽에 복을 받고 들어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고 네가 머리가 되지 꼬리가 안된다"그랬어요. 네가 내 말에 순종하면 복을 받고 만약에 순종하지 아니하면 어떻게 되느냐 네가 성읍에서 저주받고 들에서 저주받고 광주리에 저주받고 몸과 소생에 저주받고 우양의 새끼에 저주받고 네가 나가도 저주받고 나가도 저주받는다.
우리는 신명기 28장에서 축복 이야기를 많이 들었지만 저주 이야기는 우리는 안들을려는 그런 잘못된 편견인데 그것은 잘못된 겁니다. 신명기 28장에는 저주가 더 많은데 축복 이야기하나 했다면 저주 이야기는 세 개 했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좋아하는 축복보다도 하나님이 세번씩이나 강조하는 것은 네가 내 말에 순종 안하면 저주받는다는 이야기를 세번 강조하고 있습니다. 나는 이걸 믿는다는 겁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그걸 믿지 않습니다. 저주가 복이라는 것은 내 노력에 따라서 결정되는 것이지 신이 내게 영향을 줘 가지고 내가 복받고 저주받고, 나는 그런 것은 안 믿는다 하는 거예요.
그 다음 문제 봅시다 하나님의 원칙과 법칙을 우리가 따른다는데 하나님의 원칙과 법칙이라는 게 도대체 뭐겠습니까? 그것은 똑똑한 사람들 모여 가지고 회의해서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서 파견된 사람,아버지께서 보내신 분이 있습니다. 오직 그분만 보내는데 그 분이 누구냐 하면은 하늘의 모든 비밀을 우리에게 소개시키기 위해서 오신 분인데 그분이 바로 예수라는 분입니다. 하늘의 비밀을 가지고 계시는 한 분, 예수님이 이 땅에 3년동안 사시면서 전했던 것이 과연 다 허사냐, 다 무위로 돌아갈 것이냐, 아니다 이 말입니다.
신명기 28장 이야기 해드렸죠. 네가 이 하나님께 순종하면은 들어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고 항상 네가 머리가 되지 꼬리가 안된다. 복, 만약 내 말이 순종 안하면 저주, 저주, 항상 저주받는다. 저주가 너를 따라 다니는 것이고 네가 저주 속에서 빠져 나오려고 해도 나올 수 없을 것이라는 그 저주, 이 저주와 복의 갈림길이라는 것이 뭐냐, 가운데에 예수라는 분이 계시는 겁니다. 예수님께서 땅이 3년동안 살면서 온갖 옳은 말씀 바른 소리 다했어요. 이웃을 사랑하라, 오른 뺨을 치거든 왼뺨을 돌려대라. 그야말로 네 재산을 바쳐서라도 나를 따라 오너라. 주님을 믿고 바르게 살고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이야기를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예수님을 죽인 것입니다.그것도 예수를 돌로 죽인 게 아니고 아예 십자가 못 박혀서 처참하게 처참하게 부끄럽게 죽였습니다. 치욕스럽게 가장 치사한 방법으로 이 세상에서 가장 처진 인생이라는 것을 보여 줄라고 가장 참혹한 방법으로 그분을 죽였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바른 소리하고 옳은 소리를 하는 그분을 하나님이 다시 살려줌으로 말미암아, 부활하셔 가지고 승천시켰습니다. 이제부터 남은 일은 한가지밖에 없잖아요. 복받을 사람은 복받게 하고 그 약속대로 저주받을 사람은 저주받게 하는 한가지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이 심판이 없다면 하나님은 일하시다가 도중에 중단한 것밖에 안됩니다. 예수님은 땅에 내려 와 가지고 바른 소리했는데 사람들이 죽였습니다. 그런데 죽은 예수님을 부활시키시고 다시 다시 하늘에 올리워셨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해 하시는 일을 마무리 없이 중도에 그치는 분이 아닙니다. 마무리를 어떻게 하냐 하면은 신명기 28장의 원칙대로 이제는 저주받을 사람을 저주받게 하고 복받을 사람은 예수 믿고 구원받을 사람은 복 받을 수 있게 합니다. 마지막으로 누구를 보냈느냐 하면은 성령을 보내신 거예요. 그걸 가지고 신학적인 용어로 종말이다, 말세라 이야기하는 겁니다. 우리는 말세라는 것을 잘못 생각해서, 말세라는 것은 마지막 때에 하늘이 해가 사라지고 세상이 꺼지는 것 이것만 말세라 말하는데 그것은 그게 다가 아닙니다.
사도행전 2장 29절에, 또 네가 위로 하늘에서는 기사와 아래로 땅에서는 징조를 베풀리니 그 피와 불과 연기로다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로 되는 것.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로 되는 그때가 옵니다. 우리는 그것을 말세라고 하는데 그것만 말세라고 하지 않습니다. 성경에 보니까 대 파국, 완전히 끝장나는 것, 그것만 말세가 아니라 말세에 여러 가지 징조가 포함돼 있어야 말세인데, 그게 뭐냐 하면은 예수 믿는 복받을 사람이 나타나는 그것까지 포함해서 말세예요. 이 세상 꺼져 버리고 하나님만 살 겁니까? 아니에요 하나님과 더불어 함께 천국에서 영생복락 누릴 사람도 함께 나타나는 그런 시기가 말세입니다.
어떤 집에 어떤 도사가 방문합니다. "이 집은 끝났네, 이 집에 아이 죽고 며느리 죽고 홴품渼?" 이렇게 협박 공갈하면은, "도사님 이 집은 끝장 났네요", "그러면 이 집에 있는 사람 다 죽습니까? 그렇다면 이 집은 빈집 되겠네요?" "아닙니다. 마지막 때 이 집 사람들 다 죽지만 그 전에, 이 자리에 새로운 사람이 그 집 식모로 들어갑니다." 라는 이야기를 했다면 그 집안에 마지막 꼴이 어떤 꼴인가 하면은 다 죽는 것만이 다가 아니고 어떤 여자가 그 집의 가정부로 들어가는 그것까지 합해서 마지막 그 집의 종말이 되는 거예요. 종말이라고 하니까 마지막 다 죽고 불나는 거만 생각하는데 지구에 대화재가 일어나는 것 그것만 생각하는 게 아니고 종말이라고 하는 것은 장차 이 세상 꺼지고 새 예루살렘이 들어 왔을 때 거기에 함께 살 수 있는 사람이 모집되는 그런 사람까지 나타나는 거까지 합해서 그걸 가지고 종말이다 이렇게 얘기하는 거예요.
본문에 21절에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마지막 요엘서가 말세를 예언할 때에 하늘 해가 변한다, 어두워진다, 달이 변하여 피가 된다, 이것만 예언한 것이 아니고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까지 예언을 했어요. 다시 말해서 주의 이름을 불러서 구원받은 사람은 이 세상 다 날아가고 천국이 내려올 때에 그 자리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남겨둔다는 것입니다. 그것까지 합해서 말세예요. 성령이 오신 이유는 마지막 심판하러 왔다, 그 이유로 오신 거예요. 예수님을 기준 해서 지옥 갈 사람과 천국 갈 사람과 천국 갈 사람 갈라놓기 위해서 성령이 오셨다는 겁니다.
2장 3절에 보니까 불의 혀같이 갈라지죠, 왜 성령이 불의 혀같이 오셨느냐, 이걸 우리가 따져보면 사실 성령은 어떤 형체를 지니지 않습니다. 성령님께서 어떤 형체를 지니는 것은 앞으로 성령께서 하실 일을 보여주기 위해서 그때 그때마다 다른 모습으로 등장하는 것뿐이에요. 성령이 불이다, 아니다 성령님은 비둘기다, 그런 싸움할 필요 없다는 얘깁니다. 비둘기 같이 오실 때는 비둘기 같은 사명을 지니시고 오시고 불같이 오실 때는 불같은 사명을 지니시고 오시는 것입니다. 성령님 마음대로 앞으로 성령님께서 하실 일을 보여주기 위해서 어떤 때는 불같이 어떤 때는 비둘기 같이 오시는 거예요.
그렇다면 성령님께서는 비둘기 같이 언제 오셨느냐 마태복음 3장 11절에 보면 세례요한이 하는 말이
나는 너희에게 회개케 하여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분은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내게 세례 주실 것이요 성령과 불로 세례 준다는 말은 불이라는 마지막 타작과 불에 태우는 것을 말합니다. 마지막 심판하기 위해서 누가 온다? 성령이 오신다.
성령과 불로 내게 세례 준다는 말은 "성령에 왔다고 하거든 끝났다고 생각해라 이제 예수님 말씀대로
그래도 되는구나" 긴장감을 가지라는 말입니다. 학생들이 숙제를 안해놨는데 선생님 발자국 소리가 복도 저 끝에서 이쪽 교실로 가까이 올 때 이제는 죽었구나 드디어 성령께서 회초리 들고 오셨다 그렇게 생각하시면 틀림없다 이 말입니다. 왜 성령과 불로써, 불가지고, 불의 모습으로 나타난다는 것을 이미 세례요한은 앞을 내다보고 있습니다. 그러면 비둘기 같이 오는 것은 어떤 경우냐 예수님이 세례 받을 때는 비둘기 같이 왔어요.
성령께서 왜 비둘기 같이 왔냐하면은 성령은 거룩한 분입니다. 거룩한 분이 비둘기 같이 오셨다는 것은 이것은 심판이 아니라 비둘기라는 것은 완성을 확인하기 위해 미리 보내는 새입니다.좋은 소식
가져오라는 기대를 담아서 말입니다.하나님 쪽에서 제공한 좋은 사랑의 선물 있다는것입니다.
창세기 8장에 보면 노아가 비둘기를 사람들 보?앞서 보내어 좋은 소식 가져오기를 기대합니다.바로 이와 같은 사명을 지니고 예수님에게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임하신 것입니다. 정결이란 그런 뜻이거든요. 이제는 하나님 앞에서도 안심해도 괜찮다는 것, 이제는 안정되어 괜찮다는 것, 하나님께서 우리를 화목케 하고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에게 화해의 악수를 내밀었다 친하게 지내자, 이제 우리는 원수 사이가 아니다 걱정하지 말고 내 손을 잡아라 그런 뜻에서 비둘기를 보낸 거죠. 비둘기는 평화를 상징하죠.
따라서 예수님 오실 때에 성령께서 비둘기 같이 오셨다는 것은 예수님을 보낸 이유가 우리와 부응하고 우리와 화목하기 위해서 우리와 친하게 지내기 위해서 이제는 우리와 원수 된 것을 다 없었던 걸로 돌리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이제 성령이 불같이 왔다는 것은 이제는 용서하지 않으리라. 그야말로 심판하시기 위해서 성령이 불같이 온 거예요. 이렇게 성령이 불같이 와서 방언을 하는데 방언 자체가 문제가 아닙니다.
왜냐하면은 사도행전 2장 12절에 보니까 다 놀라며 의혹 하여 서로 가로되 아 어떤 일이냐 하며 또 어떤 이들은 조롱하여 가로되 저희가 새 술이 취하였다 하더라 베드로가 열 한 사도와 같이 서서 소리를 높여 가로되 유대인들과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들아 이 일을 너희로 알게 할 것이니 내 말에 귀를 기울이라 이는 새 술에 취한 것이 아니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방언을 하는 그 자체가 아무 의미가 없다고 분명히 말씀 드렸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알아듣는 말을 했기 때문에 새 술을 취한 건 아닙니다.
우리는 이 본문을 생각할 때에 그들이 외국어를 할 적에 횡설수설했기 때문에 "미쳤구나", 혹은 그들이 외국말을 더듬더듬하다 보니까 "미쳤나"라고 이야기한 것처럼 느껴지지만 그런게 아닙니다. 이 사람들이 그 동안 외국어 학원에 다닌 것이 아니라 그 순간 성령께서 외국말을 줬기 때문에 확실한 외국 말이고 완전히 표준말 외국말이에요. 얼마나 서투냐, 술취했느냐,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방언으로 이야기했는데 그들이 이야기한 내용이 허무 맹랑한 저들이 전혀 듣지 못한 그야말로 상상도 못한 이야기, 다가오는 새로운 세계 이 땅을 불로써 사라지게 하고 두 번째 다음에 영원한 천국에서 있을 사람들이 예를 들은 그러한 내용을 말합니다.
방언한 내용이나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도대체 현재 이 땅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하고 너무 차이가 나고 너무 엉뚱한 이야기를 하니까 돌았다고 한 것입니다.그럴 때 베드로가 하는 말이 술취한 게 아니다 요엘서를 봐라, 네가 자녀들은 예언을 할 것이요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따라서 여기서 말하는 예언이나 환상이나 꿈이라고 하는 것은 현재 눈에 보이는 이 세상에 대한 법칙이 아니라 장차 이 세상이 불로 타버리고 그 다음에 이 세상을 차지할 다가오는 천국에 이야기를 하니까 도저히 예상도 못하는 예언이요, 환상이요, 그야말로 상상도 못하는 꿈이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내용을 이야기했더라면 그들이 술취했다는 이야기를 안했을 것입니다.
전혀 이해 못할 이야기를 하니까 '돌았구나 취했구나' 하니까 베드로가 하는 말이 요엘 선지자가 이런 말씀을 했다, 너희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예언자가 따로 없다 는 말입니다. 베드로로부터 이 말을 듣고 믿는 사람들은, 그야말로 아무것도 못 배운 그런 자녀들이라 할지라도 예언자가 되어서 오묘한 내용의 말을 합니다.
성령을 받고 난 다음에 예수님의 세계, 예수님이 통치하는 그런 나라들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성경에 대해서 이야기를 합니다.그들 입장에서는 생전 처음 들으니까 그야말로 모르겠다,못 믿겠다는 것입니다. 예언이라는 것은 장차 일어날 일을 현재를 고발하기 위해서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들은 이야기를 앞당겨서 말하니까 그건 예언이 되는 거예요. 그 다음에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그들은 미래를 가집니다. 어떤 비전을 가집니다. 그들은 교회는 이 마지막 가는 이 황혼이 저물어 가는 이 마지막 어두운 세상에 빛으로써 구원에 갈 수 있는 방주입니다. 하늘나라의 마지막 카드입니다. 이번 기회 놓치면 영원히 구원 못 받는 것입니다. 교회가 있기에 세상 아직도 희망이 있고 마지막 때가 되면 주님 오셔서 이 교회를 데리고 가실 겁니다. 그러면 교회도 사라져요, 그러면 아무도 소리쳐서 주님을 불러봐도 그때는 이미 끝나는 거예요. 바로 마지막 때에 교회가 있었다 말이에요, 교회가 있는 걸 봐서 지금이 마지막 징조다, 말세다 이 말입니다. 교회가 이 세상에 있거든 말세라고 보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인간들이 만든 것이 아니고 성령께서 예수님의 말씀대로 축복 받을 사람과 저주받을 사람을 갈라내기 위해서 교회를 세웠고 또 교회를 세운 목적은 마지막 이 세상 다 화재가 나서 다 사라져도 그 자리에 찾아갈 사람들을 뽑아 놓기 위해서 교회를 만들어 놨다 이겁니다. 뽑힌 사람들이 오늘날 저와 여러분들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통용되지 않는 그럼 얘기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언을 하고 있으며 환상을 보고 있으며 꿈을 꾸고 있습니다. 도저히 이 세상 사람들은 이해를 못求?그런 이야기를 우리들은 서로 주고받고 있습니다. 주 예수를 오늘날 서로 믿고 있습니다. 이것이 마지막 징조요 마지막 때가 왔다는 확실한 증거가 오늘날 우리가 모였다는 이 자체가 마지막때 성령이 왔기 때문에 이러한 현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자신 있게 이야기했습니다. 이 세상 사람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이야기를 했듯이 오늘날 여기 앉아 있는 저와 여러분들이 이 세상 사람들이 알아듣지 못한다 한지라도 천국에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그런 교회 되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의 증인이요 성령 충만한 사람들의 특징입니다.
우리교회/이근호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