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급 선수들의 대결은 언제나 흥미롭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사나이를 가리는 올림픽 100m 경기도 그 중 하나.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 칼 루이스(미국)와 벤 존슨(캐나다)의 대결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존슨에 비해 키가 크고 다리가 긴 루이스는 가속이 붙는 데 몇 초의 시간이 필요했다. 반면 다리가 짧고(?) 굵은 존슨의 스타트는 엄청났다. 결과는 벤 존슨의 승리. 그러나 약물 테스트에서 양성반응이 나와 금메달을 루이스에게 넘겨야 했다. 사실 루이스의 주종목은 200m 육상. 스타트는 늦지만 탄력을 받으면 무섭게 가속도가 붙는다. 이달에 시승한 아우디 A6 3.0 TDI는 칼 루이스와 비슷한 차였다.
디젤차에 대한 오해와 진실
수입 디젤 세단들이 들어오고, 국내 메이커들도 디젤 모델을 하나씩 끼워 넣는 덕분에 디젤 승용차에 대한 인식이 많이 좋아지긴 했지만 아직은 고급차와 디젤 엔진의 조합이 낯설다. 하지만 근래 디젤 엔진의 기술이 눈부시게 발달해 ‘시끄럽고 안 나가는 차=디젤’이라는 등식은 더 이상 성립하지 않는다.
모터스포츠를 통해 성능과 내구성을 입증한 아우디 TDI 엔진이 중형세단 A6에 올려졌다. 지난해 6월 판매를 시작한 A6 3.0 TDI 콰트로는 올해 10월까지 83대가 팔렸다. 전체 비중은 크지 않지만 프리미엄 디젤 세단으로는 적지 않은 대수다.
디젤은 휘발유 엔진보다 압축비가 높고 고압으로 뜨거워진 공기에 연료를 직접 뿌려 순간적으로 폭발력이 일어나기 때문에 진동과 소음이 크다. 그러나 흡음·방음제를 보강하고, 7개의 인젝터 노즐을 통해 미세하게 연료량을 조절하는 아우디의 최신 디젤 터보 직분사 엔진(TDI)은 업계에서 이미 우수성을 입증받았다.
올해 같은 그룹의 폭스바겐이 여러 디젤 모델을 동시에 출시, 돌풍을 일으키는 것을 TDI의 원조인 아우디가 구경만 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프리미엄급 차라는 이미지도 있어 아우디는 조심스럽게 A6 3.0 TDI로 디젤 세단의 국내 성공 가능성을 저울질해 보고 있다.
시승차는 3.0ℓ TDI 엔진의 A6 콰트로. 달달거리는 디젤 특유의 음색은 살아 있지만 멀리 있는 듯 나직하게 울린다. 창을 열어야 디젤의 존재감을 느낄 수 있을 정도다. 사람의 턱선을 연상시키는 커다란 라디에이터 그릴은 디젤 엔진의 으르렁거림과 어울려 생동감마저 전해 준다. 넓은 토크밴드가 디젤의 특성. A6 3.0 TDI 역시 1천400rpm∼3천250rpm에서 45.9kg·m의 최대토크를 고루 뽑아 낸다. 아이들링 상태의 회전수는 약 800rpm, 가속페달을 살짝만 밟아도 1천400rpm을 훌쩍 넘기니 터보랙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살짝 뜸을 들였다 가속을 이어가는 느낌이 마치 속도에 제곱셈(㎢)을 하는 것 같다. 같이 나온 A6 3.2 FSI와 가속력 테스트를 해본 결과 두 차는 확연히 다른 특성을 보였다. 기어를 스포츠 모드에 넣고 액셀 페달을 끝까지 밟았다. 시속 40km까지는 휘발유 엔진의 3.2 FSI가 월등히 앞서 나간다. 60km를 넘어서면서 두 차의 간격이 좁아지는가 싶더니 100km 이후에는 3.0 TDI가 저만치 앞서 달린다. 제원상의 0→시속 100km 가속은 둘 다 7.1초. 하지만 속도가 붙기 시작하면 3.0 TDI가 훨씬 빠르다.
직접분사로 출력과 연비 잡아
아우디는 A6의 8기통 모델 4.2 콰트로도 판매하고 있다. 그러나 A4와 A8 사이를 메우는 A6 4.2 콰트로는 비싼 값(1억1천400만 원)이 판매 부진으로 이어져 직분사 엔진의 3.2 FSI 콰트로를 대안으로 내세우는 상황이다. 4.2에 비해 크게 떨어지지 않는 성능의 3.2 FSI는 8천530만 원. 3.0 콰트로보다 130만 원 오른 정도여서 가격경쟁력도 갖추었다. 판매를 시작한 올 9월 20대, 10월에는 42대가 팔렸고, 11월 상반기에만 26대가 판매되어 A6의 주력으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보인다.
3.0 콰트로보다 배기량이 겨우 200cc 늘었으나 고압으로 연료를 실린더에 직접 분사해 연소효율을 높인 직분사 시스템을 무기로 3.0에 비해 최고출력 37마력, 최대토크는 4.1kg·m를 끌어올렸다. 특히 2천400~5천500rpm에서 최대토크의 90%가 나오는 토크특성으로 공격적인 드라이빙이 가능하다. 6단 AT를 스포츠 모드로 전환하면 시속 80km에서 2단 5천rpm으로 스텐바이, 가속상황에 대비한다. 과감하게 드로틀을 자극하면 순식간에 140km를 넘나든다. 웬만한 스포츠카를 능가하는 가속감이다.
연료입자를 잘게 쪼개 실린더로 직접 분사, 버려지는 연료가 적은 만큼 연비가 좋은 것도 휘발유 직분사 엔진(FSI)의 장점. 아우디의 FSI 기술은 르망 24시 3회 우승으로 인정받았다. 여기에 풀타임 4WD 콰트로가 만나 불필요한 보디 롤을 억제하고 안정된 그립력을 확보해 와인딩의 재미까지 더해진다.
두 대의 시승차는 엔진과 타코미터에 새겨진 숫자를 제외하고는 다른 부분이 없다. 둘 다225/50 R17 피렐리 타이어를 끼우고, 무게 밸런스를 고려해 배터리를 트렁크 바닥에 숨겼다. 같은 서스펜션을 쓰지만 코너링 안정성은 3.2 FSI가 앞선다. 비슷한 가격대에 다른 엔진. 기자에게 선택을 강요한다면 이렇게 되묻고 싶다. 김치와 깍두기 중 하나만 골라 먹으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Editor’s Comment
비슷한 성능의 디젤차와 휘발유차. 둘 다 달리는 재미가 쏠쏠하다면 얌전히 타고 다닐 사람이 몇이나 될까? 분명한 사실은 얌전히 달리든 쏘며 달리든 디젤차의 경제성이 앞선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