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진닷컴] (글=이동진) (이 기사는 5월24일자 ‘이동진의 영화풍경’에 게재된 ‘시의 이창동, 아름다움에 대하여’ 제하의 글에 이어지는 인터뷰 후반부입니다.)
-영화 ‘시’에는 정호승 안도현씨 등 실제 시인들의 시가 극중에 등장하기도 합니다. 이 시들은 어떤 기준으로 선택하셨나요.
“기본적으로 제가 좋아하는 시들이에요. 사람들은 흔히 시라고 하면 어렵다고 생각하는데, 정호승씨의 시는 그런 관점에서 볼 수 있죠. 불교적인 세계관을 갖고 있는데, 언뜻 들으면 멋이 있지만 사실은 좀 어려운 시에요. 반면에 이 영화에 나오는 안도현씨의 시는 너무나 쉽잖아요? 그렇게 전문 시인들의 시는 양 극단을 함께 넣고 싶었죠. 그리고 영화 속에서 조미혜로 나오는 아마추어 시인의 시는 그야말로 아마추어적인 느낌이 묻어나는 경우를 살린 거에요. 약간 손을 보긴 했지만 아마추어 시인의 시를 대부분 그대로 썼죠. 마지막에 등장하는 미자의 시는 제가 직접 썼고요.”
영화 '시'의 감독 이창동. ⓒ 이동진닷컴-사진가 김보배
-미자가 쓴 ‘아녜스의 노래’라는 제목의 시는 어떻게 작성하려고 하셨는지요.
“이건 어쨌든 주인공이 시 한 편을 완성하는 이야기잖아요? 그러다 보니 그게 어떤 시인지가 내러티브 상으로도 무척 중요해질 수밖에 없었죠. 이 영화는 ‘시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시작하면서 저 스스로도 시작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데, ‘아녜스의 노래’는 그 질문에 대한 작은 대답일 수도 있는 시여야 하잖아요. ‘시란 무엇인가’에 대한 직접적인 답을 관객들에게 드릴 수는 없겠지만, 제가 질문할 수는 있죠. 관객들은 그 질문에 대해 각자가 대답을 떠올려보는 방식으로 마음에 담아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부분적으로라도 작은 대답을 영화 속에서 할 수 있다면, 그건 다른 사람의 마음을 대신해서 노래하는 어떤 것이라고 봤어요.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하고 죽은 소녀의 노래를 대신하는 거죠. 그런 생각으로 그 시를 썼어요.”
-극중에서 처음 시를 쓰는 사람의 작품치고는 완성도가 상당히 높게 느껴지기도 하던데요?(웃음)
“극중 내적 논리로 따지면 60대 중반에 처음 쓰는 시가 잘 써질 리가 없다는 점에서 저도 고민을 좀 했어요. 그래도 극중에서 이러저러한 의미를 지닌 시인데 어느 정도는 할 말을 해야 된다는 영화적 요구가 있었죠. 결국 60대 할머니가 시를 써봤자 얼마나 잘 쓸 수 있겠느냐는 현실적 리얼리티보다는 시적인 허용을 택한 것입니다.”
-이 영화에선 김용택 황병승 시인이 자신의 실제 이름을 살짝 비튼 김용탁 황명승 시인으로 직접 출연하기도 합니다. 그 두 시인은 시사회에서 본 뒤에 이 영화에 대해 뭐라고 평하시던가요?
“민망하다고 하더라고요. 사실 그렇게 출연하면 자기가 연기한 것만 보이지, 작품 전체가 보이겠어요?(웃음)”
-왜 그 두 시인을 배우로 캐스팅하셨습니까.
“극중에서 미자가 시 작법에 대한 강의를 듣는 장면들이 나오니만큼, 그 강의를 맡은 강사는 시인 역할을 하는 배우보다는 배우로 연기를 하게 되는 실제 시인이 더 낫다고 판단했어요. ‘밀양’에서 야외 부흥회를 여는 목사를 실제 목사님으로 캐스팅했던 것과 비슷한 이유였죠. 영화 속에서 연기된 시 강의 장면을 보는 게 아니라, 관객에게 실제로 시 관련 강의를 듣는 느낌을 주고 싶었거든요. 그럴려면 실제 시인이라야 되는데, 지방 문화원에서 강의할 법한 무명시인 역할로는 김용택 시인이 가장 적합하다고 봤습니다. 물론 김용택 시인은 전국적으로 잘 알려진 분이지만 왠지 그런 느낌이 들잖아요.(웃음)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극중 그 시인이 실제 김용택 시인인 것은 아니니까,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살짝 이름을 바꿔서 김용탁으로 했죠.”
-캐스팅 제의를 해서 답을 들은 뒤 시나리오를 쓰셨군요?
“아니에요. 다 쓴 뒤에 이야기를 했어요. 저는 걱정 안 했어요. 영화를 워낙 좋아하기도 하고요.”
-‘촌놈 김용택 극장에 가다’라는 영화 책도 내셨잖아요?
“영화 출연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제가 그 분을 좀 알거든요.(웃음)”
-그러면 제안을 받자마자 승락하셨나요?
“앓는 소리를 했지만, 곧바로 하기로 했죠.(웃음) 그러다가 나중엔 사모님에게 그렇게 제 욕을 했대요. 촬영에 들어가기 전에 혼자 연습을 해보니까 잘 안 되더래요. 제가 그렇게 사전에 연습하지 말라고 했는데도 말이에요.(웃음)”
-극중에서 술에 취해 ‘시 같은 것은 죽어도 싸!’라는 과격한 대사를 날리는 황병승 시인은요?
“그런 대사를 날릴 만큼 젊은 시인이어야 했죠. 황병승 시인의 시나 얼굴이 제겐 그런 느낌이었어요. 이 경우도 역시 그 사람 자체는 아니니까 황명승이란 이름으로 영화에 등장시켰죠. 살짝 고치니까 더 좋은 것 같아요.”
-좀더 시적으로 느껴지는데요?(웃음)
“이름은 명승인데, 시는 난해하죠.(웃음)”
-‘밀양’과 비교할 때, ‘시’는 고통에 대한 태도에 있어서 상당한 차이가 있어 보입니다. 땅에 떨어진 살구의 고통과 그렇기에 가능한 의미에 주목하는 미자의 시상 메모에서 드러나듯이요.
“고통을 긍정적으로 생각한다기보다는 일단 받아들이자는 태도에 가까울 거에요. 그게 부인할 수 없는 삶의 일부니까요. 살구에 대한 장면에선 분명히 그런 뜻이 있었어요. 그런 고통이 없다면 다음에 오는 것도 없다는 거죠. 일종의 순환 같은 것이니, 생명이나 자연의 섭리 같은 거라고 할까요. 결국은 할머니가 손자에 대해서 할 말이 있으면, 자신이 무엇을 해야 되는지도 생각해야 하는 거죠. 주고 받는 게 자연의 질서니까요. ‘시’는 노년에 대한 이야기니까, 기본적으로 앞선 세대는 떨어져서 거름이 되어야 하는 거에요. 썩지 않고서 영원히 안장되길 바랄 수는 없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는 ‘밀양’과 쌍을 이루는 듯한 영화로 제게 느껴졌습니다. 둘 다 고통이나 삶의 무의미함에 맞서는 이야기라고 할까요. 다만 ‘시’는 몇 가지 측면에서 ‘밀양’의 반대편에 놓인 영화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밀양’이 피해자 측의 이야기를 다룬다면, ‘시’는 가해자 측의 이야기를 다룬다고 할 수 있는 게 대표적이죠. 어찌 보면 ‘밀양’에서 아들을 잃은 신애를 ‘시’에서 딸을 잃은 여자로 바꾸어 넣어 대상화한 뒤, 전작에서와는 정반대 방향에서 그녀에 대한 가해자 측 가족의 내면을 탐구한 것 같다는 느낌도 듭니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시’와 ‘밀양’이 어느 정도 연결되어 있는 건 사실일 겁니다. 일단 두 영화는 시작부터가 관련이 있었으니까요. 그리고 말씀하신대로, 두 영화 모두 삶의 의미에 대한 질문과 닿아 있죠. 무의미함에 대한 저항을 담고 있기도 하고요. 사실 시라는 것 자체가 무의미함에 대한 저항인 듯해요.”
-두 영화는 인물의 행동도 대조적입니다. ‘밀양’의 신애가 적극적으로 저항하고 발산하는 쪽이라면 ‘시’의 미자는 소극적으로 회피하거나 내파되는 쪽이죠. ‘밀양’에서 신애가 체험하는 것이 격렬한 고통이라면, ‘시’에서 미자가 느끼는 것은 짙은 피로에 더 가깝다고 할까요.
“그게 일상적으로 보면 피로일 텐데, 달리 보면 삶의 한계일 수도 있을 거에요. 미자는 무의미에 대해 맞서게 되지만, 좀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그건 결국 죽음에 저항하는 것이겠죠. 그게 일상에서는 무력감으로 경험되는 겁니다. 미자는 알츠하이머병 때문에 기억이 날아가기 시작합니다. 나이가 든 사람들은 다 어느 정도 치매에 대한 공포가 있는데, 그건 결국 죽음에 대한 공포일 거에요. 아직 살아 있는 상황에서 죽음에 대한 공포를 느끼는 게 치매죠. 몸은 살아 있는데 의식이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쪽으로 가버리는 것이니까요. 시를 쓰려는 것 자체가 무엇인가 시작하고 새로운 눈으로 삶을 살려는 것인데, 이미 미자는 병 때문에 단어를 잃어버리게 되죠. 그래서 거기에 대해 저항하려는 거라고 할 수도 있어요.”
-미자는 죽음이 멀지 않은 노년의 나이이기에 그런 마음이 더욱 간절하겠죠.
“사람은 죽음을 앞두고서 자기 자신에 대해 물음을 던지게 되어 있잖아요. 자신의 인생이 도대체 몇 그램이나 나가는지 질문할 수도 있고요. 어찌 보면 그게 바로 시를 쓰는 행위일지도 몰라요. 아마 미자가 시를 쓰지 않았다면 손자의 문제도 그렇게까지 고통스럽게 대면하진 않았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시를 쓴다는 것과 손자와 관련된 문제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이성적으로가 아니라 본능으로 느끼고 있기에 더 괴로웠던 거에요. 그 질문을 피할 수 없으니까요.”
-시 강좌 수강생들 중 과제를 완수하는 것은 미자 뿐입니다. 그런데 꽃과 함께 시를 제출한 미자는 정작 강의실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이 영화는 이어서 집을 떠나는 미자의 모습도 보여주지 않지요. 미자는 결국 빈 자리와 침묵을 통해서 말하는 인물이었던 것 같습니다.
“마지막은 부재인 거죠, 미자의 부재. 어차피 미자는 떠날 사람이었던 겁니다. 미자가 괴로워했던 것도 그 이유 때문이지요. 자기가 부재하는 세상에 대한 근심이랄까요. 그 부재가 무엇에 기인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그 부재의 느낌을 전달하고 싶었기에, 미자의 부재 대신 그녀가 남긴 시 한편이 들리는 거죠.”
-이 작품의 끝부분에서 떠난 이는 미자인데 결국 버스에서 내린 후 보여지는 사람은 영화의 첫 장면에서 자살한 소녀였죠. 어느 순간부터 시를 읽는 보이스 오버 목소리도 미자에서 소녀로 넘어가고요. 소녀는 마지막 순간에 고개를 돌려서 카메라를 바라보기까지 합니다. 그렇게 두 인물이 겹치는 상징적 결말이 대단히 강렬하고 슬프면서도 위로가 되고 감동을 줍니다. 해석의 여지를 남겨두고 있는 이런 종반부에 대해 관객마다 다르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은데요.
“그 장면의 핵심은 미자가 소녀를 대신해서 시를 쓴다는 거죠. 이때 미자는 단지 소녀의 목소리만을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소녀와 운명을 일치시키는 걸 받아들였다는 겁니다. 내가 너이고 네가 나라는 것입니다. ‘시’의 마지막 부분에선 소녀의 모습이 보이는데, 그것은 이미 죽은 아이의 플래시백일 수도 있고, 현재의 모습일 수도 있죠. 저는 그 장면에서 현재성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미자를 포함한 우리가 그 아이를 다시 보고 싶은 겁니다. 주객이 나눠진 게 아니라 일치되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정서적으로나 이미지로도 그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게 미자가 썼던 시의 내용이기도 했고요.”
-시 강의 시간에 수강생들이 ‘내 인생의 아름다운 순간’이란 주제로 돌아가면서 발표하는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그 중에서도 미자가 눈물을 흘리면서 회상하는 서너살 때의 기억이 특히 감동적이었습니다. 일곱살 위의 언니가 예쁜 옷을 입혀준 뒤 손뼉을 치면서 이리 오라고 했을 때, 언니를 향해 걸어가면서 ‘내가 정말 예쁘구나. 언니가 나를 정말 예뻐하는구나’하고 생각했다는 내용이었죠. 그 장면에서 연기도 정말 좋았는데, 혹시 이 에피소드는 윤정희씨의 실제 추억인가요.
“다른 데서 들은 이야기에요. 윤정희씨에겐 언니도 없거든요.(웃음). 어쨌든 제게 그 부분이 의미 있었던 것은 그게 미자가 처음으로 자신의 기억을 이야기하는 장면이었다는 거죠. 기억을 잃어가는 병을 앓고 있는 여자가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기억을 떠올리면서 처음으로 기억에 대해 말하는 게 아이러니하지만 상징적인 것 같았죠. 그리고 그게 또 묘하게도 불가지한 삶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가는 내용이라는 거죠. ‘나는 충분히 예쁘고 사랑받는 존재야’라는 것을 느꼈던 추억인데, 공교롭게도 그걸 기억하는 현재의 미자로선 죽음으로 서서히 다다가는 느낌도 있다는 겁니다. 그런 모순된 느낌이 좋았어요.”
-그런데 ‘내 인생의 아름다운 순간’에 대해서 돌아가며 길게 이야기하는 장면들은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원더풀 라이프’를 저절로 떠올리게 했습니다. 그게 그 영화의 핵심 모티브였으니까요. 게다가 자신의 과거 기억을 회상하는 인물을 롱 테이크의 고정 카메라로 비추는 방식도 두 영화가 같았죠. 혹시 그 장면들을 찍으시면서 ‘원더풀 라이프’를 떠올리셨는지요.
“그 영화를 보긴 했지만, 그 장면들을 찍으면서 그 작품을 의식한 적은 전혀 없어요. 이런 의도는 있었습니다. 그 장면에서 수강생들이 자신의 아름다웠던 기억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시가 삶의 아름다움을 찾는 것이라는 강의의 내용과 연결된다는 거죠. 아울러 그 장면에서 관객들에게 직접 이야기하는 다큐멘터리의 느낌을 원했던 결과이기도 했고요. 그 두 가지 이유 때문에 그렇게 한 것인데, ‘원더풀 라이프’는 생각도 못했네요.”
영화 '시'의 감독 이창동. ⓒ 이동진닷컴-사진가 김보배
-‘시’는 영화라는 매체 자체에 대한 영화로도 보입니다. 시가 죽어가는 세상에서 시를 쓴다는 것의 의미를 묻는 것은 곧바로 삶이나 영화에 대해서도 적용 가능한 질문이 되니까요. 강의를 듣는 한 달 동안 한 편의 시를 써내야 하는 미자의 처지는 그런 주인공으로 한 편의 영화를 제한된 시간 안에 완성해야 하는 감독의 상황과도 겹쳐지는 것 같고요.
“그렇죠. 그게 참 힘든 거에요. 게다가 도무지 완성했다는 느낌이 들지 않으니 정말 문제에요. 완성이란 없는 것 같아요.”
-그렇지만 어쩔 수 없이 강제로라도 완성이 되잖습니까.(웃음)
“영화를 공개하기 전까지는 제 머리 속이 누더기 같거든요. 영화가 허점투성이로 보여요. 아직 덜 닦아낸 피와 고름이 그대로 들어 있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요.(웃음) 그런데 영화가 일단 나오면 홍보를 위해 포장을 해야 하니까 그게 참 그렇죠. 그렇게 남을 속이면서 스스로도 속아가는 것 같아요. 다 완성된 영화인 것처럼 포즈도 취하고 말이에요.”
-‘시’에는 음악이 전혀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가뜩이나 고요한 영화가 그 때문에 더더욱 정적이 우물처럼 고인 것 같은 작품으로 다가왔다고 할까요. 심지어 무심한 강물 소리가 음악을 대체하는 듯 느껴지기까지 합니다. 이 영화에 처음부터 음악을 넣지 않기로 하셨던 건 아니죠?
“네, 음악 감독이 있었죠. 최종 믹싱을 하는 새벽까지도 음악 작업을 했어요. 집어넣기만 하면 되는 상황이었죠. 그런데 결국 그 믹싱 작업을 하면서 빼기로 했어요. 아무래도 이 영화엔 음악이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서였습니다. 영화음악이란 만들어놓은 아름다움을 주는 것인데, 그건 아름다움 자체에 대해서 질문하는 영화인 ‘시’와 맞지 않는 듯했으니까요. 음악이 없는 상태에서 관객들이 음악을 느끼게 하는 게 원래의 의도에 더 맞는 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작품을 위해선 충분히 그럴 수 있겠지만, 음악을 담당했던 스태프들은 정말 좌절했을 것 같습니다.(웃음) 인간적으로 무척 미안할 수 있는 상황인 듯한데요.
“너무나 미안했죠. 마지막 믹싱을 하는 녹음실에서 그런 선택을 내리기가 쉽진 않았어요. 저도 처음엔 음악이 필요하다고 보았죠. 음악이 감정적 여백을 만들어줄 거라고 생각했던 겁니다. 그래놓고 최종 순간에 빼자고 하니까 일순간 모두가 침묵에 잠기더군요.”
-눈 앞에 그 풍경이 생생히 그려집니다.(웃음) 그걸로 끝이었습니까?
“정말 미안하긴 했지만, 감독이 그렇게 하겠다는데 어쩌겠어요.”
-그날 음악 담당하셨던 분들이 술 많이 드셨을 것 같네요.
“그분들의 좌절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기에 음악이 나빠서가 아니라 오히려 음악이 너무 좋아서 안 넣은 것이라고 설득을 했지만, 그게 먹히겠어요? 그게 진심이었음에도 말이에요. 앞으로는 음악 감독들이 제 영화에 참여하지 않으려고 할 것 같아 걱정이에요. 음악과 관련해서 하도 악명이 높아서요. 이번 경우는 치명적이죠. ‘밀양’ 때는 아르헨티나에서 녹음을 했던 백 몇 곡 중에서 딱 두 곡만 영화에 넣었잖아요. 당시 음악을 담당했던 크리스티안 바소가 녹음실에서 쓰러져서 입원을 했는데, 본인은 급하게 탈이 났다고 했지만 제가 보기엔 스트레스 때문이었어요.”
-감독은 정말 인간적으론 좋지 않은 직업일 수도 있는 것 같습니다.(웃음)
“거, 참. 안 좋은 짓을 안 하면 되는 건데 말이에요.(웃음)”
-‘시’를 만들면서 가장 어렵게 느껴진 점은 어떤 것이었습니까.
“이게 좀 관념적인 대답이 될지도 모르겠지만, 시와 현실 사이의 간격을 어느 정도로 할 것인가의 문제가 제일 어려웠어요. 얼마만큼 들어가고 또 빠져야 하는지를 알기가 쉽지 않았던 거에요. 그건 단지 촬영에만 영향을 주는 게 아니라, 인물과 내러티브 등 영화 전반에 걸쳐서 상당히 영향을 미치는 문제죠. 마지막까지 음악을 넣을 것인지를 놓고 고민했던 것까지도 그 문제와 상관이 있었던 거에요.”
-그렇다면 ‘시’를 세상에 내놓으시면서 자부할만한 게 있다면 어떤 걸까요.
“그런 건 없어요.”
-그렇게 대답하실 줄 알았습니다.(웃음)
“곰곰 따져보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잘 모르겠어요. 내가 병들어 가는 것 같아요. 왜 좋은 게 안 보일까.”
-3년 전 ‘밀양’으로 감독님을 인터뷰했을 때 이렇게 말씀하신 바 있습니다. ‘예전에 영화 연출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딱 다섯 편만 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어요. 그때 생각으로 보면 이제 한 편 남은 거죠.’ 이제 다섯번째 작품인 ‘시’까지 만드셨습니다. 설마 더 이상 안 만드시는 것은 아니겠죠?
“우선 ‘시’가 어떻게 되는지부터 봐야겠죠.”
-우문현답이시네요.(웃음)
“망해서 더 이상 기회가 안 올지도 모르죠.”
-설사 그런 결과가 나오더라도 그만하시면 절대 안 됩니다.
“그래도 뭐 어떻게 한 두 편은 더 해볼 수 있지 않을까요? 제가 얼마나 개과천선을 하느냐의 문제가 되겠죠.(웃음)”
-먼 미래에 자신의 뜻과 상관없이 영화를 만들 수 없는 상황이 오면 어떨 것 같으신가요.
“가장 바람직한 것은 누가 못하게 해도 제가 그냥 찍는 거에요. 찍을 수 있거든요. 제작비를 대폭 줄여서요. 영화란 것이 별 게 아니니까요. 그런데 저를 스스로 돌아보면 제게 그런 열정이 있을까 싶어요. 그런 상황이 오면 아마 접겠죠. 저는 큰 미련이 없어요. 애착이 그다지 큰 것 같지 않아요. 촬영을 나가지 않는다고 좀이 쑤시고 그렇진 않거든요. 시골에 가서 햇빛 쬐면서 사는 것도 괜찮은 거 같아요. 뒷동산에도 올라가고, 좋을 듯해요. 제 고향은 안동이지만, 꼭 고향에 가지 않아도 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