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사정(沈師正, 1707~1769) 촉잔도권(蜀棧圖卷)
쿵푸팬더 2
요즘 영화판은 해적과 팬더가 잡고 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중 돌아온 쿵푸의 영웅 5인방, 특히 검정과 백색의 귀인 팬더의 인기는 하늘을 찌른다. 전편 스토리라인을 책임졌던 여인영 감독이 속편에서 메가폰을 잡으면서 액션과 CG의 완성도가 높아지고 섬세한 캐릭터의 재현으로 호평을 받고 있다. 연령에 관계없이 함께 볼 수 있는 즐겁고 유쾌한 영화다. 애니메이션의 가장 흔한 주제인 선악의 구도와 영웅 출연을 기본라인으로 할 때 이번 편은 셴이라는 백공작이 악의 축으로 새로이 등장하고 주인공 포를 중심으로 한 쿵푸5인방이 전편에 이어 영웅으로 나온다. 허공을 가르는 현란한 액션씬과 물에 젖은 동물캐릭터들의 자잘한 솜털묘사까지 소름끼치는 리얼리티와 박진감을 전해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중국 내부에서는 쿵푸팬더 상영금지 움직임도 있다던데 중국무술인 쿵푸와 중국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팬더를 오락물로 전락해 미국의 문화 식민도구로 사용하고 있다는 주장이라고 한다. 입장을 바꿔서 태권도와 백두산 호랑이 정도의 소재로 미국영화가 나왔다면 어찌할지, 동양문화에 대한 신비감과 서양의 오락성이 합쳐져 잘 만들어 내었다면 그리 기분이 나쁠까 싶다. 여러 상징성을 두고 깊이감 있게 들여다 본다면 수긍이 가는 부분도 있다. 워낙이 경제 대국으로 성장한 중국이 미국에게 그리 달가운 존재는 아닐테니. 문화라는 것은 시대의 반영이고, 양상이다. 어찌되었든 팬더가 희극적 캐릭터로 전세계 대중에게 정의의 영웅으로 각인 되었고 친근하게 다가왔다. 영화관람 정도는 문화적 포용력을 가지고 바라볼 필요가 있다.
쿵푸팬더 2에서 전편과 달리 주목할 것은 악의 사도인 백공작 ‘셴’의 존재다. 전작의 근육질 타이렁의 강인함과 달리 연약해 보이면서도 도도하고 고도의 지략이 돋보이는 간지 나는 최고급 비단옷을 입은 백색의 공작새 셴 선생. 공작은 기독교 내에서 오랫동안 기독교의 상징으로 존재했다. 카톨릭에서는 오리지날 심볼이었다. 특히 공작의 여러 '눈들'은 '많은 눈을 가진 교회(many-eyed church)로 인식했다. 공작천사는 그리이스에서는 디오니소스이고 이집트에서는 오시리스로 나타난다. 오시리스(Osiris)의 뜻은 '많은 눈(Many-eyed)”을 의미한다. 불교의 대웅전 문의 문양도 그런 의미가 있다. 유대교에서 공작은 엘리야 와 멜키세댁 왕으로 표현된다. 무슬림들도 '알 카디르'라는 이름으로 엘리야를 인정하는데 멜키세댁은 '의로운 왕'으로 꼭 같이 토시 멜렉처럼 '세상의 왕'의 의미를 가진다. 동양에서 용이나 봉황이 황제의 이미지를 가졌던 것과도 같은 맥락이다. 영화에서 셴은 자식이 부모를 죽일 수 있다는 신탁으로 궁에서 내쫓긴다. 오이디푸스가 아버지를 죽이고, 다나에의 아들 페르세우스가 외할아버지를 죽이는 등 고대신화에서 이와 비슷한 내용들이 많이 있다. 많은 눈을 가지고 앞을 내다보며 지혜를 가진 공작의 능력이 아픈 상처를 비뚤게 치유하는데 사용되어 진다. 현실에서도 누구나 부러워 할 만한 배경에 지식을 갖춘 이들이 괴물처럼 잘못을 행하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그렇게 잘못 키운 부모 잘못도 크다.
다음은 주인공 팬더에 대한 이야기
팬더는 전 세계에서 오직 중국에만 살고 있는 희귀동물이다. 세계야생동물기금(WWF)의 상징 마크에 그려져 있는 팬다는 현재 1590여 마리가 생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모피와 고기를 얻기 위해 무분별한 밀렵을 자행한 덕에 팬더는 멸종위기에 몰려 있다. 한때 수만 마리에 달했던 팬더는 19세기 말과 20세기 전반 서양과 중국 부자들 사이에 모피가 큰 인기를 끌면서 수백 마리까지 줄어들었다.1949년 사회주의 정권 건국 이래 팬더 문제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인 중국 정부는 쓰촨성에 연구센터를 두어 팬더 번식과 생존에 힘써 왔다. 쓰촨성은 중국에서 대나무가 가장 많은 곳으로, 전체 판다의 80% 이상이 쓰촨에 살고 있다. 팬더는 희소한 성 행위(1년에 한두 차례)와 까다로운 식성으로 번식과 생존율이 낮다. 어린 죽순이나 신선하고 여린 대나무 잎만 먹기에, 판다는 청정 자연에서만 살아갈 수 있다.
팬더가 가장 많이 살고 있는 쓰촨성 이야기가 나와 떠오르는 화가 하나가 있다.
2007년도 간송미술관에서 조선 남종화의 대가인 현재 심사정의 전시가 있었다. 현재가 죽기 한 해 전인 1768년 그린 ‘촉잔도권’(燭棧圖圈). 길이 818cm, 폭 58cm의 두루마리 산수화로 조선미술사상 가장 큰 그림이다. 중국 쓰촨(泗川·촉나라)성으로 들어가는 300리길 비경의 상상도를 그린 그림이다. 심사정이 조카의 청을 받아 62세때 1768년 영조 44년 8월에 그렸다. ‘촉나라로 가는 길목의 험난함이야말로 푸른 하늘에 오르기보다 더 어렵다’는 이백의 시를 떠올리며 인생의 굴곡진 여정을 화폭에 녹인 예순한살 노화가의 내공이 우러나오는 작품이다. 당대 미술의 12준법이 모두 다 들어있는 현재 평생의 역작이자 조선남종화의 최고봉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아열대 기후에서 탄생한 남종화는 선묘 표현으로 안되는 비와 안개 풍경 등을 그리기 위해 먹의 번짐으로 그리는 묵법을 발전시켜왔다. 이에 비해 북종화는 황하의 운동성을 표현하기 위해 필선과 선묘를 즐겨 사용해왔다. 전형필 선생이 1936년 당시 큰 기와집 다섯 채 값인 5000원을 주고 구입한 뒤 다시 6000원을 들여 손상된 부분을 복원 수리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할아버지의 과실로 평생 과거를 볼 수 없게 된 그는 어쩔 수 없이 화가의 길을 걸어가며 스승이자 큰 화가였던 겸재 정선의 그늘에서 그를 뛰어넘을 자기만의 것을 찾기 위해 몸부림을 쳤다. 중국 남종화를 조선의 그림으로 갈고 닦은 그의 뼈져린 노력과 슬픔이 보는 이의 마음을 움직인다.
주인공 포가 거주하며 수련하는 장소는 특유의 안개 낀 고성과 동양적 산수의 배경이 돋보인다. 심사정의 300리 쓰촨성 그림이 두루마리를 펼치 듯 시원하고 아름답다. 조용하고 여린 여감독의 리더십으로 전 세계인의 이목을 사로잡은 영화를 만들어 내었다. 우리 예술가들이 피나는 인고의 노력으로 만들어 낸 작품들로 많은 이들이 행복하다.
올해 간송미술관 봄전시는 사군자대전이었다. 역시나 훌륭한 전시였다. 여감독이 혹 간송에서 쿵푸팬더의 아이디어를 얻은 건 아닌지 모르겠다. 현재의 작품도 그렇고, 간송 뜰에는 오래전부터 백공작들이 여러마리가 있다. 봄 전시를 놓쳤다면 올 가을 전시를 기대해 보고, 셴선생의 후예들을 만나보는 것도 잊지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