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 호손
다니얼 호손은 1804년 7월 매사추세츠 주 세일렘의 청교도 집안에서 선장인 다니얼 호손과 엘리자베스 메닝을 양친으로 하여 태어났다. 그가 태어난 뉴 잉글랜드 지방의 청교도적인 전통은 그의 가정 배경과 함께 평생 그를 따라다녔다. 특히 고조부인 존이 세일렘의 마녀사냥 때 즉, 17세기 뉴잉글랜드에서 청교도들이 일부 주민들을 마녀로 몰아세워서 처형하거나 고문으로 죽인 사건때 엄혹한 재판관 노릇을 한 것은 일찍부터 '저주'의 어두운 그늘로서 그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었다.
호손은 인간의 도덕적, 사회적 생활 속에 감추어진 내부의 의식에 주된 관심을 돌려, 인간의 내면세계를 윤리적 관점에서 탁월한 상징수법으로 분석했다. 인간의 공통된 죄를 은폐하려는 사회의 위선과 편협을 증오했고, 인간적인 만족과 쾌락을 거부하는 금욕적인 생각에 반발했다. 그는 또한 인간 누구나 저지를 수 있는 공통적인 죄를 저지르게 된 인간이 위선적인 종교와 사회에 의하여 냉혹한 비판을 받게 되는 데에 분개하고 스스로 그들의 죄를 나누어지려했다.
1816년 호손은 가족과 더불어 메인 주의 산골 레이몬드로 가서 3년 동안을 지냈는데 이곳에서 그는 고독을 벗하며 생활했다. 1819년 세일렘으로 돌아와 1821년 17세때에 보든 대학교에 입학했다. 학업에서는 그리 뛰어나지 못했으나 그즈음 그는 벌써 영국의 위대한 문학에 비길 만한 미국문화 창조의 야망에 불타서 열심히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는 대학 재학 중에 동창인 롱펠로, 호라티오 브리지, 그리고 후에 대통령이 된 프랭클린 피어스와 사귀게 된다.
대학을 졸업한 후 12년간, 그는 세일렘의 어머니 집에서 칩거생활을 했다. 사람들과 교제를 피하고 홀로 자기 방에 틀어박혀 광범위한 독서와 습작으로 시간을 보냈다. 이때 그는 뉴잉글랜드 지방의 청교도적인 배경과 그 정신적 기질을 탐구하여 자신 속에 배어 있는 청교도 정신에 대한 비판정신을 키웠다.
그의 처녀 출판은 보든 대학 시절을 소재로 한 로맨틱한 <팬쇼>란 소설로 1828년 익명으로 자비출판했으나 뒤에 그 작품에 불만을 느낀 나머지 모두 회수하여 없애버리고 말았다. 한동안 그는 단편에만 손을 대어 1838년까지 적어도 44편의 단편 및 소품들을 발표했다. 1830년 문예지 <더 토큰>에 단편을 발표한 후, 다시 1837년 <더 토큰>의 것과 여러 잡지에 발표되었던 작품들 중 18편을 추려 <트와이스 톨드 테일스>라는 단편집을 친구 호라티오 브리지의 주선으로 출판했다. 이것이 대학 동창인 롱펠로가 천재라고 칭찬한 글을 비롯하여, 다소 호평을 받게 되어 바깥 세상에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수입은 극히 적었으며 그가 얻은 명성과 성공은 아직 대단한 것은 아니었다.
1842년 7월 9일 소피아와 결혼하여 콩코드에 있는 에머슨 소유의 구 목사관에서 가난에 쪼들린 생활을 시작하지만 두 사람에게 있어서는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생활이었다. 소피아는 격려와 비판을 아끼지 않는 내조형의 아내였는데, 그들의 결혼생활이 얼마나 행복했는지 말해주는 일화가 있다. 호손은 세관에서 근무하다가 해고되었는데, 부인은 "난 당신이 글쓰기에만 몰두하게 되어 기쁘게 생각해요."라며 남편의 창작활동을 격려했다. 그 말을 들은 호손이 "돈벌이를 할 수 없는데, 어떻게 생활을 유지할지 걱정이오."라고 말하자,소피아는 남편이 가져온 월급에서 일부를 저금한 돈을 보여주었다. 부인의 세심한 배려에 감동받은 호손은 첫 번째 작품을 발표했다. 그 작품이 바로 《주홍글씨》라는 것이다. 그러나 집필만으로는 생계유지가 힘들어 다시 일자리를 구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1852년 5월 웨이사이드로 이사하여 결혼 후 처음으로 아늑한 분위기를 누렸다. 같은 해 7월 부르크 농장에서의 경험을 소재로 한 이상사회와 자선사업에 대한 풍자와 삼각연애를 그린 <블라이드데일 로맨스>를 출판했으나 <주홍 글씨>, <일곱 박공의 집>보다는 평이 좋지 못했다.
이 해에 친구 피어스가 대통령에 출마하자 자진해서 그를 위해 <피어스 전>을 썼다. 다행히 피어스가 대통령에 당선되어 그는 피어스에 의해 리버풀 영사로 임명되었다. 호손은 7월 6일, 가족과 함께 보스턴을 떠나 영국으로 건너갔다. 1857년 8월 영사직을 사임한 그는 유럽 각지를 여행한 후 1860년 6월 28일에 귀국하여 1864년까지 웨이사이드에 정착하면서 다시 집필을 시작, 영국의 풍경, 생활풍습 등을 스케치풍으로 그린 작품들을 발표하여 호평을 얻었다. 그러나 차차 창작력과 건강이 쇠퇴하여, 1864년 5월 보양차 친구 피어스와 함께 뉴햄프셔 힐로 여행중 플리머드에서 60세의 일기로 객사했다.
<책 소개>
다니엘 호손의 ‘큰 바위 얼굴’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바벨의 도서관 시리즈 7번째 책으로서 너새니얼 호손의 단편집이다. 책의 메인 제목은 많이 들어보았을 <큰바위 얼굴>이다. 아마 학창 시절 교과서에도 실렸던 작품이며, 이 작품 외에도 <대지의 번제>, <히긴보텀 씨의 참사>, <목사의 검은 베일>, <웨이크필드>가 수록된 단편집이다. 너새니얼 호손은 그 유명한 작품인 <주홍글씨>로 잘 알려져 있다. 개인적으로는 아직 책으로 접하지 못하였고, <데미 무어>가 주연한 영화로 접하였다. 어쨌든 너새니얼 호손은 <주홍글씨>로 작가로서 큰 명성을 거머쥐었고, 단편들도 참 많이 썼으며, 그중 보르헤스가 선정한 5작품이 이 책에 실려 있다. 보르헤스의 호손에 대한 생각은 책의 앞부분에 있는 다음과 같은 글로 느끼면 될것 같다.
- 우리는 그가 꿈꾸었던 이야기, 죽음으로 인해 실현되었거나 지워진 이야기를 상상해 볼 수 있다. 그의 평생은 꿈의 연속이었으니까 말이다. -
<대지의 번제>라는 작품에서 '번제'의 뜻은 아마도 성경에서 의미하는 하느님께 바치는 제물을 통째로 불에 태워서 바치는 제사를 의미하는 것으로 알면 될것 같다. 이 제목은 책의 내용을 보면 이해할 수 있으리라 보여진다. 모든 인간들이 모여서 불에다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쓸모없는 것들을 태우는 의식을 한다. 이는 진보적인 세력이 추진을 하였으며, 이 불길속에 사람들은 신분제를 상징하는 물건, 돈, 무기, 술 등을 불태우게 된다. 심지어 책과 종국에는 종교를 상징하는 물건들도 모조리 태워버린다. 이렇게 함으로써 사람들은 새로운 정화된 사회를 꿈꾸게 된다. 하지만, 그 다음날 다 타버린 흔적을 바라보며 이 모든 것이 결국 쓸데없는 일이라고 말하는 검은 얼굴의 사나이가 등장한다. 그는 이렇게 해도 결국 인간은 예전으로 되돌아갈 것이라고 말을 하며, 정말 정화를 원한다면 바로 인간의 마음을 불태워야 한다고 말을 하며 이야기는 끝이 난다. 줄거리는 이렇지만, 실제 책으로 읽어보면 이 모든 내용이 사건과 대화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지루하지 않다. 이 내용을 설교나 인간은 도덕적이어야 한다는 주장으로 썼다면 잘 공감이 되지 않았겠지만, 불에다가 인간이 가진 쓸모없는 것을 태운다는 소재로 이야기를 진행하니 이야기 곳곳에서 촌철살인의 표현들과 함께 결말에서는 오히려 인간들이 깨닫지 못하는 것을 악마가 비웃는 장면이 상당히 이채롭게 느껴졌다.
<히긴보텀 씨의 참사>는 재미만을 위한 글로 보면 될것 같다. 어느 마을로 가던 젊은 상인이 히긴보텀씨라는 한 지역의 유지가 살해되었다는 사실을 한 사람으로부터 듣게 된다. 젊은 상인은 그 사실을 지나가던 마을에서 이야기를 하였지만, 아직 그 사건이 퍼지지 않아서인지 사람들은 알지 못하고 있는 눈치였다. 다음날 또 히긴보텀 씨가 있는 마을로 가는 길에서 한 흑인이 히긴보텀 씨가 살해되었다고 말을 하지만, 어제 만난 사람이 말한 사건이 발생한 시점보다 하루 늦은 시간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젊은이는 그 사실을 다시 마을 사람들에게 말을 하지만, 히긴보텀씨의 조카딸에 의하여 히긴보텀씨는 살아 있다는 사실을 듣게 된다. 그래서, 결국 젊은 상인은 망신을 당하게 되지만,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를 알아보기 위하여 직접 하긴보텀씨를 만나러 가게 된다. 정말 짧은 단편이지만, 결말은 언급하지 않겠다. 추리소설이라고 해도 될만큼 기발한 장치를 보여준 작품이기에 호손의 새로운 도전을 느끼게 해준 작품이 아닐까 생각된다.
<목사의 검은 베일>은 동네의 한 목사가 갑자기 얼굴을 가리는 검은 베일을 하고 나타나자, 마을 사람들은 그 모습에 상당히 놀라게 된다. 목사가 어떤 사연으로 인하여 사람들과 마주치지 않기 위하여 검은 베일을 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목사에 대하여 두려움을 갖게 된다. 목사는 검은 베일로 얼굴을 가리기 전과 같이 마을 사람들에게 친절하고,또한 목사로서 해야 할 일을 잘 수행하였기에 사람들은 그를 존경을 하지만, 그가 검은 베일을 쓴 끔찍한 사연이 있으리라 생각하고 그를 두려워하게 된다. 결국 목사는 약혼녀와도 헤어지게 되고, 그러한 상태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죽기 전에 목사는 사람들에게 말한다. 검은 베일이 목사를 두려워하게 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남들에게 자신의 진실된 마음을 보이지 않으려고 하는 그것이 실제 이 검은 베일이라는 것을. 즉, 목사의 눈에는 사람들이 모두 검은 베일을 하고 있다고 말을 하면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상징과 은유로서 우리 인간이 서로에게 진실되지 않고 무언가를 감추려고 하는 모습을 검은 베일의 착용으로 비유하면서 교훈을 주는 내용으로 이야기로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흥미로웠고, 거기에 숨겨진 의미도 상당히 각인이 되는 작품이라고 느껴졌다.
<웨이크필드>는 이 책에서 실려있는 단편중 가장 짧은 분량의 단편이지만, 역시나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은 아닌 것 같다. 결혼을 하고, 갑자기 여행을 간다고 집을 나선 웨이크필드는 무려 20년간 집 근처의 여관에서 머무르면서 집에 들어가지 않다가, 그가 실종된 것으로 생각될 즈음에 마치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집에 가서 다시 결혼생활을 이어간 남자의 사건을 상상하는 이야기이다. 결혼 생활에 대하여 이야기를 통하여 한번 생각하게 만들게 한 작품으로서 웨이크필드의 사건을 각자의 시선에서 해석하고, 상상함으로써 우리에게 창을 통하여 다시 한번 결혼 생활이라는 인생의 한 단면을 바라볼 수 있게 하는 작품으로 생각된다.
<큰바위얼굴>은 이미 많이 접해보았기 때문에 줄거리는 따로 언급하지 않아도 될듯 하다. 우리 인간이 추구해야 할 참된 모습의 주인공. 이름도 어니스트이다. 항상 겸손하고 누구에게나 친절하며 성실한 어니스트는 마을의 큰바위얼굴을 닮은 사람을 반드시 보게 될 것이라는 기대와 함께 우리가 존경해야할만한 대상으로 성장하고, 성숙하게 된다. 그러한 어니스트의 변화의 과정와 함께 큰바위얼굴의 후보자인 부자, 군인, 정치가, 시인의 모습을 등장시키면서 진정 우리가 인생에서 추구해야 하는 모습을 재미있는 이야기 형식으로 전해주고 있기 때문에 우리의 교과서에서도 등장을 한 작품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