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고속버스터미널 건물에 있는 자전거포에서 자전거를 빌린다. 경주 시내 지도를 들여다보니 천마총이 있는 대릉원, 그 맞은편의 첨성대, 계림, 석빙고 등이 가까운 공간에 모여 있다.
시청쪽으로 자전거를 달려 대릉원을 먼저 들른다.
늦여름의 강렬한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배롱나무 잎사귀들......
어머니의 젖무덤같은 작은 구릉 크기의 무덤들이 눈앞에 펼쳐진다.
경주는 신라왕들의 공동묘지라는 말이 실감이 난다.
어렸을 적엔 그토록 커 보이던 무덤들이 이제는 아늑한 곡선의 물결로 부드럽게 가슴에 와 닿는다.
내부가 공개되어 있는 천마총.
그 안을 들어선다.
죽은 자의 안식처, 천년의 세월을 뛰어 넘어 무덤이 열리던 날, 하늘에서는 마른 벼락 소리가 들렸다고 했던가.
고분의 내부는 어스름이 짙게 내리기 시작할 무렵의 저녁의 빛을 머금은 채 적막했다.
난 그 적막감 속에 서서 약간의 어지럼증-그것은 죽음의 공간에 함부로 들어선 살아있는 자의 두려움에서 비롯되었을까-을 느낀다.
어머니의 자궁 속이 그러할까. 부드러운 반원 형태의 고분 내부를 올려다 보며 눈으로 쓰다듬으며 알 수 없는 평온함이 가슴속 깊이 드리워짐을 느낀다.
나는 눈을 감는다. 그리고 나의 의식은 이제는 금붙이들의 흔적으로만 남아 있는 죽은 자의 옆에 가 눕는다. 내 의식은 조금씩 깊고 어두운 무의식속으로 침잠한다.
그리하여 살아 있으되 죽은 자가 되어 보려 한다.
산다는 것이, 사랑한다는 것이 힘겨워질 때, 상한 가슴 위에 두 손을 얹고 방안에 누워 모짜르트의 레퀴엠을 듣곤 하던 시절이 있었다. 때론 영혼의 울부짖음인양, 때론 그 영혼의 상처와 회한을 달래주는 듯한 노래 소리에 위안을 받고는 했던 것이다.
그 시절 난 철학과에 다니는 한 선배를 알게 되었는데, 그녀는 자주 소주 한 병 차고 망우리 공동 묘지의 밤이슬을 밟고 다니고는 했다. 나도 몇 번, 따스한 햇살이 자꾸만 눈꺼풀을 무겁게 만드는 봄날에 그 선배와 함께 무덤가에 앉아 있고는 했다.
"내가 고등학교 다니던 시절에 한 선생님이 그러셨지. 사람들은 침이 더럽다고들 하지만 연인들끼리는 입을 맞추며 그 더럽다는 침을 쪽쪽 빨아 먹고는 하지. 똥이 더럽다고 하지만 우리는 화장실에 가서 뒤를 닦으며 똥 닦고, 휴지 한 번 들여다 보고 똥 닦고 휴지 한 번 들여다 보고 하잖아"
선배와 나는 함께 웃다가 눈물 어린 눈으로 파란 잔디가 돋아나고 있는 무덤들을 바라 보며 앉아 있곤 했다.
어쩌면... 깨끗함과 더러움, 또는 삶과 죽음은 하나의 體를 가진 두 개의 用인 지도 모른다. 무덤같은 어머니의 자궁에서 태어나 자궁같은 혹은 젖무덤같은 무덤으로 돌아감... 그러나 난 그 하나가 무엇인 지 알지 못하고, 아직도 삶과 죽음은 내게 슬프고도 두려운 수수께끼이다.
그리고 나는 내 삶 속으로 죽음을 불러들이고 싶지 않은 것이다. 살아서 겪는 오욕칠정으로 인한 온갖 번뇌와 욕망들...을 나는 버리고 싶지 않은 것이다. 내 눈에 아름다운 것은 아름다운 것이고, 기쁘면 아이처럼 깔깔거리고, 아프면 아프다고 소
리를 지르고, 그리운 것은 그립다고, 눈물이 나면 눈물이 나는 대로 표현하며 살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죽음은 얼마나 가까이 있는 것인가?
천마총을 나서 대릉원의 고분들 사이를 거닐며 나는 속으로 '천년의 세월, 천년의 세월...'을 되뇌이며 꽃집 큰어머니를 떠올리며 눈물을 훔쳐야만 했다.
경주로 떠나오기 일주일 전, 암으로 누워 계신 큰어머니의 병문안을 갔었다. 내 기억력이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가장 어린 나이부터 큰어머니는 내 삶의 화면 한 쪽에 조용히 존재하셨다. 초등학교를 입학하고 방학이 되면 달려 갔던 진주 꽃집, 그 비닐 하우스의 문을 열면 후끈한 공기 속에 향기로운 꽃내음과 함께 웃으시던
큰어머니의 모습은 너무도 생생하다. 그네는 화원의 싱싱한 화초들처럼 5남매를 길러내신 분이셨다. 8월을 넘기지 못하리라는 얘기를 듣고서도, 병실을 나설 때 내가 본 큰어머니의 희미한 미소가 마지막 모습이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천년'의 세월이 내 가슴을 슬프게 흔들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긴 세월동안 사라지지 않고 남아 이 순간 천년 뒤에 살아 있는 나와 함께 존재하는 왕릉에 대한 질투였을까? 수많은 고분 속에서 내가 눈물을 뿌린 그 며칠 후에 나는 큰어머니의 부고를 접했다.
탈상을 하던 날, 어머니께 마지막 인사를 하라는 진용 스님의 말씀에 작은오빠는
"어머니는 저희들 가슴속에 영원히 살아 계실 것입니다"
라며 오열했다. 모두가 흐느껴 울었다. 그 흐느낌 속에서 눈물의 바다 속에서 진용스님은 놀랍게도 눈물 흘림없이, 흔들림 없이 서 계셨다.
슬픔도, '영원'에 대한 다짐도, 욕망도 철저히 산 자의 것이다.
나는 사라진다.
저 광활한 우주 속으로
-<終詩>, 박정만
서울에 돌아왔을 때, 큰어머니의 화장터에 따라 가셨던 어머니께 전화가 왔고 큰아들 진용 스님께서 큰어머니의 사리를 거두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고인은 저 광활한 우주 속으로 사라지면서 살아 남은 자들을 위해 선물을 남기신 모양이다.
보석과 같은 사리는 오래도록, 살아서 추억하는 자들을 위로하리라.
대릉원을 나와 자전거를 타고 첨성대를 일별하고 또 계림의 짙푸른 나무들을 흘낏 보고 석빙고며 반월성을 휘 한바퀴 돌다.
안압지 전시관에 쭈그리고 앉아 삼각형 벽돌이며, 하늘을 나는 부처를 상상한 조각을 그려 넣은 기와며, 넝쿨풀 무늬 모퉁이 기와 사진을 자세히 들여다 보고 천년 신라 예술의 화려함과 순숙함을 맛보다.
무작정 자전거를 타고 돌아 다니다 논 한 가운데 서 있는 미탄사지 삼층 석탑을 발견하다.
자전거를 가로수에 묶어 두고 논에 댄 물이 넘쳐 흘러 철벅거리는 논길을 용케 걸어 들어가 석탑 앞에 서다. 멀리로 울산과 포항으로 내달리는 트럭의 굉음도 잦아 들고, 넓은 경작지 한 가운데 석탑과 나, 둘만이 마주하고 서다.
석탑은 한때는 영화로웠던 시절을 멀리 흘려 보내고 소멸의 흔적으로 남아 온전히 존재했을 때보다 더 풍부한 이야기를 전하고 있었다.
자전거를 돌려, 왔던 길을 되짚어 자전거포에 자전거를 돌려 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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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연화사에 큰어머니의 첫번째 제를 모시러 내려 갔을 때, 영정 앞에서 큰집 식구들과 함께 금강경을 읽었다.
지루하기까지 한, 길고 긴 금강경을 따라 읽으며 마지막 한 대목에 와서 눈이 확 뜨임을 느꼈다.
一切有爲法 일체유위법
如夢幻泡影 여몽환포영
如露亦如電 여로역여전
應作如是觀 응작여시관
일체의 유위법(有爲法)은 (一切有爲法) 꿈, 환상, 물거품, 그림자와 같고 (如夢幻泡影) 이슬, 번개와 같다. (如露亦如電) 마땅히 이와 같이 관할지니라.(應作如是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