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스토텔레스는 빛의 본성이 백색이라고 했다. 그리고 어둠을 도입하면서 빨강, 파랑, 노랑의 색채 차이가 나타난다고 보았다. 즉 색은 빛과 어둠의 혼합 상태에서 결정된다는 뜻이다. 이 <빛의 변용설>에 도전한 이가 바로 뉴턴이며, 빛과 색의 과학적 개념을 최초로 발표한 논문이 그 유명한 <광학(1703)>이다.
그러나 빛을 광학 이론만으로 접근해서는 안 되고 색채가 불러일으키는 심리적 효과까지 생각해야 한다고 주장한 인물이 있다. 과학적으로도 근거 있는 이야기다. 빛은 사물의 본래의 색을 그대로 전달하지 않는다. 굴절에 따라 얼마든지 다른 색을 비춰줄 수 있다.
게다가 눈의 차원을 벗어나 뇌에서 시각 정보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다른 이미지를 형성한다. 즉 색상은 감각이며, 이 감각은 보는 주체와 환경에 따라 달라진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 괴테의 이론을 수용한 인물이 영국의 낭만주의 화가 윌리엄 터너다.
그는 '노란색에 미친 사람'이라는 악평을 들었다. 노란색은 괴테가 ‘빛의 최초의 색’이라고 설명한 바로 그 색이다. 1843년, 그는 괴테의 색채론을 실험한 정사각형의 두 작품 <그림자와 어둠: 대홍수의 저녁>과 <빛과 색채: 대홍수 이후의 아침, 창세기를 쓰는 모세>를 그렸다.
<그림자와 어둠>은 성서의 대홍수에 나오는 어두운 하늘과 소용돌이치는 물결을 담았다. 검은색과 짙은 청색의 덩어리가 빙빙 도는 가운데 그 속으로 노란 빛이 스며들어 가득 에워싼다. 인류가 통제할 수 없는 신과 자연의 힘을 상징한다. <빛과 색채>는 괴테가 '양성(陽性)의 색'이라 했던 황색, 적황색, 황적색이 지배적이다. (앨리슨 콜, <색채>) 존 러스킨이 작품의 의미를 묻자 터너는 수수께끼 같은 대답을 한다.
되는 대로 나온 대답이 아니다. 괴테의 기본색을 이름이며, 그의 색 분석에 대한 주의 깊은 연구에서 나왔다고 봐야 한다.
윌리엄 터너 <Sun setting over a lake>
고대 동굴 미술부터 르네상스와 바로크를 거쳐 낭만주의까지 왔지만, 영국 화가의 작품은 18C에 이르러서야 미술사 전면에 등장하게 된다. 지금에 이르러 영국 미술계의 영향력은 미국조차 뛰어넘을 만큼 엄청나지만, 18세기 이전까지 변방에 불과했다. 섬나라가 갖는 특성도 있었고 보수적인 왕권의 특징도 있었다. 간혹 몇 명의 위대한 초상화가들이 있었지만 영국의 독자적인 스타일이라기보다 플랑드르나 프랑스에 영향을 받은 화가들이 많았다.
그렇다고 영국의 문화 수준이 뒤쳐져 있었다는 건 결코 아니다. 제가 생각할 때, 영국 미술의 힘은 문학에 있다고 생각한다. 당장 17C에 셰익스피어만 해도 유럽의 문학계를 휩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근래에 <해리포터>가 시대를 이끌었던 것과 비슷하다. 문학은 가장 대표적인 인문학이며 철학이기에 철학을 시각화하는 미술에 있어서도 영국의 저력은 시간문제였다.
이처럼, 낭만주의는 나라별로 각기 다른 양상을 나타난다. 프랑스의 낭만주의는 시대를 고발하고 인간의 감정을 직접 고양하는 것으로 집중했다면 독일은 정형화된 틀에서 벗어나 숭엄한 자연이나 관념적인 방향에서 낭만을 찾았다. 그렇다면 영국은 어땠을까? 영국은 이미 정치적으로 의회민주주의가 자리 잡은 덕분에 “낭만” 그것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고 집중했다. 개념화되지 않은 자연스러움, 있는 그대로의 자연미를 나타냈을까? 그리고, 영국 낭만주의를 상징하는 최고의 화가가 바로 윌리엄 터너다.
영화 <미스터 터너>
<Slavers throwing overboard the dead and dying> / <Snow Storm>
<테메레르의 마지막 항해> 그림과 영화 속 장면
프랑스의 낭만주의 화가 외젠 들라크루아에게는 화학자 미셸 외젠 슈브뢸의 색채 이론, <색의 동시대비 법칙(1839)>이 큰 영향을 미쳤다. 물감을 섞으면, 빛이 혼합할 때와는 다른 색채 효과가 나타난다. 색이 탁해지는 이른바 감산혼합이다. 슈브뢸은 탁한 염료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고 선명한 색을 얻고자 고블랭 태피스트리 공장에서 염료의 색채와 명도를 연구한다. 염료에는 이상이 없었다. 따라서 선명했던 태피스트리의 원색이 함께 짰을 때 발생하는 시각적 효과에 주목했다.
들라크루아의 <헬리오도루스의 추방(1856~1861)>이다. 이 작품은 파리에서 두 번째로 큰 성당 생트 쉴피스 성당 내 두 점의 프레스코화 중 하나다. 명작 <천사와 싸우는 야곱> 맞은 편에 그려졌는데, 색채의 대비를 다양하게 이용했다. 건조하고 두꺼운 납화 왁스 용액을 이용하여 여러 층으로 색채를 만들고 질감이 있는 표면을 통해 바탕의 색조를 선명하게 나타낸다. 특히 나둥그러져 있는 헬리오도루스의 팔 부분의 마젠타(보라)와 녹색 옷감과의 보색 관계가 잘 드러난다. 그 시대의 어느 작가는 이렇게 썼다.
들라크루아도 슈브렐처럼 털실의 실타래로 실험했는데, 그 노력을 정확하게 파악한 평가다. 참고로 작품은 성경 ‘헬리오도로스와 금고 수호에 관한 이야기’를 주제로 했다. 예루살렘 보물을 약탈하려는 헬리오도로스를 천사들이 쫒아낸다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