찔레꽃 그리고 찔레순
요즘 들길이나 산길을 걷다보면 달콤한 꽃향을 맡을 수 있다. 찔레꽃 향이다. 꽃 모양은 수수하지만 향기는 작은 바람결에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진하다.
저런 꽃에서 무슨 향기가 날까 싶은데도 근처에만 가도 사랑에 빠진 듯한 기분이 들 정도라고 한다. 같은 과인 장미와 달리 찔레는 화려한 외모보다 향기를 선택한 모양이다.
5월은 장미의 계절이기 이전에 찔레의 계절이었다. 그런데 '찔레 '하면 향기보다는 찔레순이 먼저 떠오른다.
국민학교 시절, 봄철에 찔레순을 많이 꺾어 먹었다. 초봄에 올라오는 찔레순은 오동통하게 살이 많다. 아마 이렇게 설명해도 도회지서 살았던 친구들은 감이 오지 않을 거다.
그 옛날 촌에는 늦봄에서 초여름 이 시기엔 먹을거리가 부족했다. 쌀은 떨어지고 보리는 아직 거두어들이기 전이다. 보리고개 노래 가사 그대로다.
배가 고프니 자연에서 먹을 수 있는 건 모두 먹었던 것 같다. 진달래꽃, 아카시꽃, 골담초꽃, 삐비, 송구, 송순, 찔레순 등등. 좀더 덩치 큰 녀석들은 밀서리 보리서리도 했다.
산책을 하다 찔레나무를 발견하여 통통한 찔레순을 꺾어 껍질을 벗겨 주며 먹어보라 하니 이걸 무슨 맛으로 먹느냐고 한다.
나는 아직도 예전 그 맛을 느낀다. 어릴 적 그 맛이 기억 저편 깊숙히 남아있는 모양이다. 향긋하면서 약간 씁쓸하고 살짝 단맛이 있는 그 맛 말이다. 단 맛을 덜 느끼는 건 아마 요즘 음식의 달콤함에 젖어 있기 때문일 거다.
하기야 맛으로 먹나 추억으로 먹지. 부러워서 하는 말인지 놀린다고 하는 말인지는 모르지만 "촌에서 자라 추억이 많아 좋겠다."고 한다. 그 말에 빙그레 미소로 답하지만 슬픈 추억들이 마음을 아프게 한다. 지금 생각해 보면 꼭 슬픈 건만은 아니다. 시대 상황이 그랬지만 행복한 일들도 많았다.
백난아, 이연실, 장사익의 찔레꽃 노래는 가사뿐만 아니라 곡조도 그리 밝은 것은 아니다. 슬프다. 찔레꽃이 왜 슬픔을 담는 노랫말이 되었을까? 하필 보리고개 그 언저리에서 피기 때문일까? 그렇다면 찔레는 좀 억울할 것 같다.
찔레꽃 하면 바로 '찔레순'이 연상된다. 찔레순이 보이면 생생한 기억이 되살아 나 습관적으로 꺾어 먹는다. 아직도 심리적인 허기를 느끼고 있는 걸까?
귀촌한 어느 선배님께서 장미를 심었는데 장미를 접붙인 뿌리에서 찔레가 자라 장미보다 찔레꽃에 마음을 다 빼앗겼다고 한다. 그 마음이 충분히 이해된다.
지난 번 톡으로 장미 이야기를 했더니 같이 근무했던 주무관님께서 장미 키우는 게 생각 외로 힘들다고 한다. 지주 세워야 하고, 묵은 가지 잘라주어야 하고, 가시에 찔리고... 어쨌든 심어놓기만 해서는 안된다고 한다.
그냥 내버려두어도 잘 자라는 찔레를 심어볼까? 순 올라오면 추억도 소환해 보고, 꽃향에 취해 보기도 하고... 꽃도 순도 뿌리도 약이 된다더라. ㅎ 별 생각을 다 한다.
5월은 찔레의 계절이다. 예전엔 찔레나무가 흔했는데 점점 개체수가 줄어들고 있다. 일부러 심는 사람도 드물다.
찔레꽃 지기 전에 찔레향에 온몸 맡기러 가야겠다. 5월도 금방 간다. 늘 청안하시길 빈다.
2023.5.24. 삼천포에서
김상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