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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성정이 한번 게으름에 빠지면 좀체 헤어 날수 없는게 인지상정인가 부다.
바쁜 회사일에 각종 연말 연초 모임이 아주까리대에 쥐참외 걸리듯 주르르 꿰이고 보니 물 만난 용이요, 우리에서 놓여난 범처럼 사면팔방으로 산신 제물에 메뚜기 뛰어들듯 설치다 보니 주야장천 그놈의 술로 부지하 세월을 농하니 아니 그래도 째보 담뱃대 처럼 불쑥한 광대뼈가 개뼉다구 옻칠한듯 더욱 도드라져 궁핍한상이 과히 볼만한 겄이 못된다.
새해엔 가정의 행복과 나라의 번영을 위해 개처럼 벌어 정승같이 쓰겠다는 대담한 포부는 머리맡에 나뒹구는 소주병과 끄적이다 만 로또 용지에 묻혀 케케묵은 전설로 매김질 한지 오래 되었고 설휘어 놓은 갈퀴같이 방구석에 찌그러져 마누라의 지청구에 세궁역진하여 감중련 하려니 진실로 등짝이 식은 땀이 흥건히 괴어 흐른다.
새해엔 무슨 큰요행수라도 있을까 하여 이지함 선생의 토정가장결을 펼쳐놓고 봉사 괘문보듯 토끼눈이 되도록 공들여 훓어 보건만 붉은 구름에 부귀영화가 밀물처럼 들어온다는 구절은 어디에도 없고 기운이 허하니 개좆부리(감기)나 조심하란 실망스런 방문이 전부이다.
애매한 두꺼비 떡돌에 치이더라고 화로위에 붙은 엿처럼 진종일 컴과 씨름하는 두예삐에게 공부는 도대체 언제하냐고 냅다 타박을 부어 보지만 이젠 신발 문수나 신고 지엄마만한 똥깨(체격)가 되다보니 무능한 주태백이 애비의 잔소리가 심에 찰리없다.
입을 삐죽이며 저녁 굶은 시어미 상판이 되어 지들 방으로 사라진다.
삼척 냉돌방에 뼈속까지 시리는 냉기와 그보다 더 무서운 마누라의 지청구, 두 딸년의 조소를 피해 갈데라곤 산 밖에 없어 하릴없이 보따리 챙겨 무작정 집을 나선다.
“무슨 도리가 생기겠지,,”
인조때 좌의정을 지냈던 상촌 신흠 선생이 끼니 걱정을 하는 부인에게 늘 중얼거렸던 말을 객도 뇌까리며 훌훌 집을 나선다.
‘그래 가다보면 무슨 도리가 생기겠지,,’
영남 고산의 향로산-죽전고개 구간은 객이 몇 년전부터 벼르던 길이였는데 다행히 달구벌의 이원호 선생님과 의령의 솔바우 선배님의 훈수를 입어 두분을 모시고 산행하는 영광을 안게 되었다.
새해 원단인지라 자연 덕담에 인사 수작이 길어져 고점교를 건너 산행 초입인 성불암에 닿았을땐 시간이 꽤나 지체 되었다.
성불암 옆구리를 더듬는 길은 동네 뒷산을 연상할 만큼 평범하나 의외로 제법 초입은 성깔이 있어 동안 무위도식한 다리를 뻐근하게 한다.
531봉을 오르면서 길은 완만하게 바뀌어 한숨 돌리나 싶었으나 모진 오르막 한자락을 내어 놓고서야 별 특징이 없는 향로봉을 허락한다.
향로봉에서 휴식겸 얼요기를 하고는 바투 조여진 내리막을 거슬러 우편의 다람쥐골을 곰배팔이 담배 목판 끼듯이 하고는 같이 오르락 내리락하니 바드리에서 올라온 임도가 능선에 떡하니 좌정을 하고는 통행세를 바치라고 해 별수없이 약주 두어잔으로 고수레를 하고서야 백마산으로 겨우 풀려난다.
백마산 직전 왼편의 기막힌 조망대에서 시간을 노닥거리고 주변 잡목이 깨끗이 정리된 백마산에서 또 신발끈 핑계로 쉬어간다.
모재비로 내려꽂은 달음재는 삼박골에서 올라오는 길이 차라리 더 뚜렷이 정리되 있어 백마산 원점회귀 산행길로 인기 있음을 짐작케 한다.
달음재에서 향로산으로 올라서는 길은 경사가 워낙 급해 땀 두어말은 착실한데 광해군과 대북의 폐모론에 반대해 북청으로 귀양가던 오성부원군 이항복의 ‘철령 높은봉에 쉬어가는 저 구름아 ,,’ 가 절로 흥얼거려 진다.
지도엔 오름길 중간에 사면을 가로 지르는 사잇길이 있었으나 등골이 휘어져라 오르는 통에 미처 확인을 못한겄이 내내 마음에 걸린다.
놀부의 심술보같이 우악스런 바위등걸 두어낱을 잡아 제치고 나니 정상석이 저만큼 보인다.
거칠겄 없는 조망에 찬탄을 금하지 못하며 한참을 즐기다 내친김에 중화까지 푸짐하게 들기로 합의를 보고 보따리를 개봉하매 팔진미의 산해진미가 십이첩 반상으로 즐비해 때아닌 산상 잔치가 벌여져 흥겹기만 하다.
효종,현종대의 명신 우암 송시열이라면 아무리 역사에 문외한일지라도 모르시는 분은 없으리라.
송준길과 함께 서인 노론의 영수로 문도들에게 대노라 불리워 졌으며 효종과 현종도 어쩌지 못했던 괴걸이였다.
비록 숙종때 장희빈의 아들 균(경종)의 원자 정호에 반대하다 기사환국의 치명타를 맞고 83세의 고령으로 정읍에서 사사 되기는 했으나 선생이 차지하는 역사의 비중은 무겁고도 무겁다.
선생은 도량이 넓고 거침이 없었다 하는데 오늘은 선생의 그런 일면을 엿볼수 있는 일화 한토막을 반추해 보자.
선생이 좌의정으로 있던 시절, 어느해던가 지방에 일이 있어 평복으로 종자 하나와 일을 보고 돌아오던 길이였다.
때는 오뉴월 염천이라 날은 찌는듯이 무더웠고 하늘엔 땡볕을 가려줄 구름 한점 없었다.
마상에 끄덕이는 좌의정 영감이라고 해서 더위가 피해 갈리는 없는지라 나귀 모는 종놈과 함께 잉걸불을 덮어쓴겄처럼 벌겋게 달아 올라 고갯마루를 오르는데 문득 서늘한 바람이 한줄기 스치는가 하더니 쨍쨍하던 하늘에 먹장 구름이 점차로 꾀이기 시작 한다.
은근히 걱정이 되던 대감이,
“얘 칠복아 비님이 오시려나 부다. 걸음을 조금 재게 놀려야 쓰겄다,”
“예, 마님,, 쇤네도 그리 생각하고 있사옵니다. ‘
우박 맞은 잿더미처럼 박박 얽은 종자는 짚신 감발을 단단히 죄고는 사추리에 가래톳이 서도록 길을 조이는데 그러나 미처 산아래 주막에 도달 하기도 전에 시퍼런 번갯불이 일렁이며 뇌성벽력이 천지를 뒤흔든다.
종자는 혹 귀하신 대감이 옥체에 고뿔이래두 하실까 보아 비파 소리를 퉁기며 나귀를 째찍질 하는 겄이였으나 대감은 거세게 쏟아지는 비속에서도 태연자약 시조를 읊조리며 희짜를 뽑는다.
“대붕을 손으로 잡아 번갯불에 구워 먹고
곤륜산 옆에 끼고 북해를 건너뛰니
태산이 발끝에 채이어 왜각데각 하더라.”
장대비에 두노주 혼돌림을 단단히 당하고 명색 형용뿐인 싸리울을 밀치고 주막에 들어서니 마침 가는날이 장날이더라고 봉노마다 비를 긋는 도부꾼들로 빼곡히 들어차 어디 오척 일신을 들여 앉힐곳이 없다.
솔수염이 듬성한 주인이 나와선,
“나으리, 빈 봉노가 없어 천상 저기 상방의 군관 나으리와 같이 쓰셔야 될듯
한데 하회가 어떠실런지요?”
그러고는 미안한듯 북두갈고리 같은 손으로 뒷머리를 긁적이는데 허연 비듬이 눈발 날리듯 허옇게 떨어진다.
“괜찮네, 나는 상관 없으니 주인은 과도히 염려를 마시게.”
대감이 웃으며 상방으로 들어서니 방안엔 몸집이 깍짓동 같고 두눈이 화등잔같은 무관 한사람이 선객으로 좌정하고 있다.
“실례하오이다.”
대감이 먼저 초인사를 건넸으나 무관은 대감을 시골 촌보리동지 쯤으로 여겼는지 가볍게 목례로 대신한다.
비는 그칠 기미가 없이 거세게 쏟아 붓는데 아무래도 자리가 버성기는지 산적 같은 무관이 먼저 운을 뗀다.
“보아하니 장기깨나 둠직한 첨지로 보이는데 어디 한번 놀아 볼까?”
직위를 자세하고 슬까스러는 태도가 완연하다.
“예, 한번 둬 보십시다요.”
대감이 시원히 응낙하고 구석에 밀쳐둔 장기판을 당겨 한판 대국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러나 두어판을 번번히 대감에게 깨진 무관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허 , 잘 두는데 늙도록 장기만 뒀나,,”
“예, 감투를 쓴덕에 소일 삼아 둡지요.”
“하하, 그래 무슨 벼슬인고, 보아하니 보릿섬이래두 좋이 팔아 없앤 모양인데 ,,”
“무어 대수롭겠습니까.”
여기까지 했으면 좋으련만 무관은 심심파적의 지분거리는 맛에,
“그래 성명은 무었인고?”
하고 호기롭게 물으니,
“예, 송나라송 때시 매울렬자이옵니다.”
대감이 공손히 개어 올리니 무관이 어디서 많이 듣던 이름인지라 한참을 생각하다가 갑자기 표정이 개구리에 뭐 물린년 마냥 차갑게 식어간다,
‘어이쿠, 좌의정 대감 이셨구나. 큰일 났다 내목이 위태하니,,’
저녁 굶은 시어미 상판으로 동안이 뜨도록 천장을 바라보던 무관이 돌연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더니 대뜸 시임 좌의정 대감의 싸다구를 사정없이 갈긴다. 그러더니 주막이 울리도록 목청을 높여,
“네, 이놈 좌의정 대감은 덕행과 문장이 일세를 진동하는 분인데 한낱 촌것이 감히 대감을 사칭하다니, 도대체 네놈의 목은 몇 개나 되는게냐?”
그리곤 보첩여비로 방문을 나서면서,
“내 오늘은 급한일로 먼저 간다만 차후 또 대감을 모칭한다면 그땐 네놈의 목을 취하리라.”
하고는 말을 타고 빗속을 뚫고 사라진다.
엉겁결에 뺨 한대를 대접받은 대감은 노하기는 커녕 얼얼한 뺨을 어루만지며 찬탄을 한다.
“허어, 참으로 대단한 장부의 기지로다. 난세에 큰 인물이 났구나.”
한양으로 돌아온 대감은 그 무관을 크게 쓰려 다시 찾았으나 불해히도 그는 단명하여 세상을 떠난 뒤라 안타까움을 금하지 못했다 전한다.
송시열 선생 못지않게 또 야무지게 귀쌈 대접을 받으신 분이 계신데 바로 상갓집 개로 유명한 파락호 흥선 대원군이다.
대원군이 득세하기전 어느 기생집에서 술에 취해 꽥꽥거리며 주정을 하다 금군별장 이장렴과 시비가 붙었다.
대원군의 작태에 분노한 장렴이 모양있게 귀쌈을 올리면서,
“왕손이면 왕손답게 행하시오. 백성들 보기가 부끄럽지도 않소?”
대원군은 맞은 자리에 이가 솟아 며칠을 끙끙대며 잠을 이루지 못했다한다.
후일 개똥이 고종으로 등극하는 운현궁의 봄이오자 대원군은 누구보다 먼저 이장렴부터 데꺽 불러 올렸다. 이제 장렴이 죽을 차례인 것이다.
“네, 이놈 지금도 네가 날 때릴수 있느냐?”
대원군의 호통이 처마를 뒤흔들며 메아리쳤지만 금군별장 이장렴은 눈하나 까딱하지 않고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왕실의 체통을 훼손 시킨다면 지금이라도 주먹이 나갈 겄입니다.”
화가 꼭뒤까지 난 대원군이,
“당장 물러가라 이 무엄한놈!”
장렴이 길게 읍하고 물러나는데 대원군의 노호가 또 터졌다.
“금위대장 나가신다. 받들어 뫼셔라.”
둘다 감히 하늘 이랄수 있는 각하의 귀쌈을 후려쳤건만 한사람은 출세하고 한사람은 그렇지 못하였으니 아무래도 인명은 재천인가 보다.
향로산에서 중화후 재약봉 능선을 우쭐우쭐 곤댓짓을 해가며 북청 물장수처럼 쉬임없이 걸어가는데 능선은 완만하고 오룡 시살등의 조망도 좋아 포식한 배를 달래기엔 그만이다.
많은 사람들이 실수하는 917봉에 닿아 주저없이 왼편 능선을 따라 의심없이 내려선다.
조금만 내려서면 주능과 재장구 치겠거니 한길이 웬걸 담배 두어대 피울참을 내려서도 능선과는 점점 멀어져만 간다.
별수없이 오른편으로 붙어니 옛날 집터와 녹슬은 농기구가 보이는데 말로만 듣던 칡밭 마을인가 보다.
그리고는 아까 917봉에서 겨냥해둔 오두막 한 채를 겨냥해 무조건 위로 짖쳐 오르니 곧 학암폭에서 오르는 선명한 길과 만나고 오두막도 지척간에 이웃해 있다.
섬돌에 신발 한 켤레가 외로운 빈집엔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 뵈고 집 뒤편으로 완만히 이어지는 길은 주능의 무지개 네거리에서 마감한다.
비록 주능을 조금 실함 하기는 했지만 대신 칡밭을 실컷 구경 했으니 마음엔 되려 기껍고 즐겁다.
눈썰미 있는놈은 절에 가도 비린 자반을 얻어 먹는다고 혹 길을 실수하더라도 주변 지형을 잘 이용한다면 뜻밖의 수확도 가능하단 진리를 체득한다.
재약봉 오름길은 코에 단내가 배일만 하지만 걸음은 신명이 나지 않아 제법 뭉기적 거린 후에야 겨우 올라선다.
허긴 방귀소리 나는 엉덩이에 거문고 소리가 날까마는 미상불 힘이 들기는 하다.
재약봉에선 학암폭 가는 길이 아기자기하고 재약산 사자봉은 눈앞에 뚜렷해 엔간히 길을 줄였나 했으나 다시 비알을 쏟아져 내렸다 코끼리 봉으로 올라서는 길도 만만찮고 소롯길엔 잡목이 거치적거려 죽전고개 가는 길이 쉽지만은 않다.
힘이 빠져 후들거리는 두다리는 경도 어름에 개짐 안찬 밑구녕처럼 허전하기 이를데 없어 조그만 둔덕에도 황소 영각켜는 숨결이 들숨 날숨이다.
혼자 씩씩 거리다 에라 열흘 운년이 보름은 못 우랴 싶어 마지막 힘을 짜내니 어느덧 죽전고개가 눈앞에 나서고 두어각이 족하게 내려서니 어둠에 잠겨드는 죽전마을이 고즈녁하고 어느새 손바닥 만한 하늘엔 별들이 하나둘 빛을 뿜기 시작한다.
신년 첫 산행은 이렇게 끝이나고 향골로 되돌아 서는 발길은 까마득 하기만 하더라.
2007년 원단에 난테 진맹익.
첫댓글 어쩔거나 지금 마악~~~ 이수영님산행기에다 난테님 소식 궁금하다고 하고는 들어왔는데 양반되기는 글렀네요 오랫만에 뵙습니다. 바쁘시다는 수영님 산행기에 댓글로 소식은 들었지만 이제서야 산행기를 대하니 넘 반갑네요 한산이 부산하겠습니다. 덕분에 일등을 했구요. 잼나는 산행기 즐감하고 갑니다. 항상 안산 즐산하세요.
2007년 황금돼지해 첫산행을 지인들과 함께 하였군요.. 산행과정 보다는 재미있는 이야기에 낄낄대며 혼자 실성한놈처럼 읽다보니 어느산을 이름도 잘모르는 남도의 산이라 ㅎㅎ 올해 더욱 왕성한 산행하시기 바라며 로또도 덜컥 한장 잘 맞기를 빌겠습니다...잘 읽었습니다 ^^**
드뎌 운신을 하셨군요 난테님 덕분에 저도 산초스님 처럼 히죽 히죽 합니다 ^^*
옛고사는 어디서 읽은 것을 배겼다고 치더라도 우찌 이렇게 맛있게 리메이커를 하시는지 정말 볼 때마다 탄복합니다. 1월 1일 세분께서 가신 향로산 산행기인데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무척 늦게 게재가 된 듯합니다. 아마도 안 쓰시려다가 마음이 변한 듯.. 맞쥬 ^^ 그런데 내일은 또 세분이 함께 출산 하신다고요 이제 아주 호작이 되었구려.. 하긴 원호님께선 무골호인이고 솔바우님께선 화통화통한 성품이시니 얼마나 궁합이 맞겠소. 내일 멋진 산행하고 오시기 바랍니다. 다음주(28일)엔 저번에 가려던 거창 봉산을 가려고 하는데 의향은 어떠하신지
아이고 다음주는 청년회 전역이라 아니 될듯 합니다, 이선생님과 영남 알프스 종주를 하기로 작정을 하고 첫구간을 겨우 떼엇읍니다. 좋은날 한번 잡아 연락 올리겠읍니다. 글구 우암 선생 얘기가 솔직히 리메이크 인줄도 몰랐는데 ,,에고 넘사시러바라.
리메이커란 옛날 고사를 보시고 난테아우 특유의 재능으로 재 창조했다는 뜻인데 뭔가 오해하신 모양입니다. 없는 것을 가공적으로 만들어 낸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고사에서 베껴서 아우님 특유의 천재적 재능으로 재창조하셨다는 말인데..그리고 청년회 전역이라니 그건 또 뭡니까 이제 청년회를 졸업하신 다는 얘긴가 사정이 그러하니 어쩌겠소. 이번에는 아예 공지를 함 띄워볼랍니다. 함께 참여할 회원이 몇 명이나 될런지 모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