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자 옆에 놓인 신문에 보스턴 야구팀 선수가 어려운 타구를 잡고 미소 짖는 사진이 실려 있다 하고 많은 병 중에서 왜 하필 모리 선생님이 운동선수의 이름을 딴 병을 앓고 있나, 라는 생각이 든다 " 루게릭 선수 , 기억 하시죠 ? " 내가 묻는다 " 그가 스타디움에 서서 작별 인사를 고하던 장면을 기억 하네 " " 그럼 그 유명한 구절도 기억 하시겠네요 " " 뭔데 ? " " 그러지 말고 기억해 보세요 루게릭, 양키스의 자랑인데요 ? 대형 스피커에서 나온 연설 말예요 " " 기억을 상기 시켜주게나 연설을 해보라구 "
모리 선생님이 말한다 열린 창으로 쓰레기차 소리가 들린다 더운 날씨 인데도 선생님은 다리에 담요를 덮고 긴팔 옷을 입고있다 피부는 창백하다 병이 자꾸만 그의 몸을 파고 든다 나는 목소리를 높여 게릭의 흉내를 낸다 스타디움 벽에 그의 목소리가
메아리 친다 ' 오오오늘 - - - 저저는 이 지구상에서 - - - 가장 복많은 사아람이 - - - 된 기부운 입니다아 - - -" 선생님은 눈을 감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 음, 그랬었군, 난 지금 그렇게 느껴 지지 않는데 " 다섯번째를 맞는 화요일 선생님은 서재에 앉아 계신다 풋볼 선수가 은퇴해서 첫 일요일을 집에서 텔레비젼을 보면서 ' 난 아직도 경기를 할수 있는데 ' 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선생님이 집에 있는것도 뭔가 잘못된것 같았다 나는 그런 선수들을 만나면서 경기 시즌이 되면 그들을 가만 놔두는것이
최선임을 배웠다 ' 선생님께 아무 말도 하지 말자 ' 선생님에게 시간이 차츰 차츰 없어진다는 사실을 상기 시킬 필요가 없었다
녹음하는 마이크도 앵커들이 쓰는 마이크로 바꾸었다 선생님은 오랫동안 뭔가를 들고 있을수 없음 만큼 약해저 갔다 마이크는
아래로 축 처지기 일쑤였고 나는 손을 뻗어 고처 달아야 했다 그때 내몸이 선생님에게 접촉하는듯 하면 줄거워 하는듯 했다
그에게는 어느때 보다도 물리적인 애정이 필요했다 선생은 입술을 가만히 깨물고 나서 침을 삼켰다 " 자, 오늘은 무슨 애기를 할까 ? " ' 가족에 대해서는 어떻습니까 ? " " 가족이라 - - - " 그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말했다 " 자네도 내 가족에 대해서
잘 알지 모두 나를 에워싸고 있어 " 라고 말하면서 서가에 놓인 사진으로 고개를 향했다 어린 모리가 할머니와 찍은 사진, 젊은 모리가 동생 데이비드와 찍은 사진, 모리와 아내 살럿, 모리와 두아들 롭과 존롭 사진이 보였다 " 우리가 이야기한 어떤 주제 보다도 ' 가족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드네 사실, 가족이 없다면 사람이 딛고설 바탕이, 완전한 버팀대가 없겠지 병이 난 이후 그 점이 더 분명 해졌네 가족의 뒷받침과 사랑과 애정과 염려가 없다면 많은걸 가졌다고 할수 없겠지 사랑이 가장 중요하네 위대한 시인 오든이 말했지 " 서로 사랑하지 않으면 먈망한다 " 고 " 서로 사랑하지 않으면 우린 날게 부러진 새와 새와 같아 , 내가 지금 이혼 했거나 혼자 살거나 자식이 없다고 가정해 보세 내가 지금 겪고 있는 병과 같은 병마가 한결 더 힘겨웠을 거야 잘 겪어 냈으리라고 장담하지 못하겠네 물론 친구들과 여러 사람이 찿아와 주겠지만 가족과 같이 떠나지 않을 사람을 가진것과는 다르지
나를 계속 지켜봐 주는 사람 언제나 나를 지켜봐줄 사람을 갖는것과는 다르네 가족이 지니는 의미는 그냥 단순한 사랑이 아니라 지켜봐 주는 누군가가 거기 있다는 사실을 상대방 에게 알려주는 것이라네 어머니가 돌아거셨을때 네가 가장 아쉬워 했던게 바로 그거였어 소위 '정신적인 안정감' 이 가장 아쉽더군 가족이 거기서 나를 지켜봐 주고 있으리란 것을 아는것이 바로 정신적인 안정감 이지 가족 말고는 그 무엇도 그걸 줄순 없어 돈도, 명예도 일도 " 선생님은 말을 마친후 나의 얼굴을 살피는듯 했다 내가 고민 하는것 , 너무 늦기전에 하고 싶은 일들 중의 하나는 가족을 일구는 것이다 나는 선생님에게 우리 세대가 가족을 갖는 것에 대해 느끼는 딜레마를 털어 놓았다 자식이 우리를 얽어 맨다고 , 자식을 낳으면 하고 싶지 않은' 어버이 노릇'을 해야 한다고 생각 한다는 점을 말했다 나도 약간은 이런 감정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선생님을 보면서 내가 곧 죽을 처지 인데 가족도 자식도 없다면 그 허망함을 과연 참아낼수 있을지 생각해 뵜다 선생님은 두 아들을 자신처럼 사랑이 많고 남을 잘 돌봐주는 사람으로 키워냈다 그들은 부끄러워 하지 않고 애정을 표현했다 그들은 아버지가 원한다면 하던 일을 멈추고 아버지 생애의 마지막 몇달을 함께 지내려 할터였다 하지만 그것은 모리 선생님이 원하는 일이 아니었다 " 너희 생활을 중지하지 말아라 안 그러면 이 병이 나 한사람만 이 아니라 우리 세사람 모두를 집어 삼켜 버릴거야 " 선생님은 아들들에게 그렇게 말했다 죽어 가면서 조차 자식들의 세계를 존중했디 모리 선생은 큰 아들을 바라보며 " 사람들이 자식을 낳아야 하느냐 낳지 말아야 하느냐 물을때 마다 나는 어떻게 하라곤 말하지 않네 ' 자식을 갖는 것같은 경험은 다시 없지요 ' 라고만 간단히 말해 정말 그래, 그 경험을 대신 할만한 것은 없어 친구랑도 그런 경험은 할수 없지 애인 이랑도 할수 없어 타인에 대해 완벽한 책임감을 경험하고 싶다면 그리고 사랑하는 법과 가장 깊이 서로 엮이는 법을 배우고 싶다면 자식을 가져야 하네 " " 옛날로 돌아간다 해도 자식을 낳을 거예요 ? " 라고 내가 묻자 그는 놀란 표정으로 날 보면서 반문 했다 " 미치, 난 무엇을 준대도 그런 경험을 놓치고 싶지 않네 비록 - - - " 모리는 침을 삼키고 가족 사진을 무릎에 내려 놓았다 그리고 말했다 " 비록 치려야할 고통스런 대가가 있긴 하지만 " " 그들을 두고 떠나야 하니까요 ? " " 그래, 곧 그들을 두고 떠나야 하니까 " 그때 뺨위에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러면서 " 이제 자네가 이야기 해봐 " " 저요 " " 자네 가족 이야기 부모님은 나도 알지 ,오래전, 그러니까 졸업식날 뵈었지 또 누이도 있을걸 그렇지 ? " " 녜 "
" 누나지 아마 ? " " 누나예요 " " 그리고 남자 형제도 있지 ? "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 동생 이던가 ? " " 녜 " " 나랑 똑 같군, 나도 남동생이 있는데 " " 선생님 이랑 같아요 " " 그도 자네 졸업식에 왔었지 ? " 나는 잠시 16년전 나의 졸업식때 가족과
줄겁게 사진을 찍는등 추억이 떠올라 잠시 목이 메였다 선생님은 내가 갑자기 조용해진 이유를 아는듯 ' 왜 그래 ? 무슨 생각을 하지 ? " " 아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 라고 하면서 화제를 바꾸었다 나도 두살 아레인 남동생과 검은머리 누나가 있었다 외모가 달라 서로 " 대문앞에 버려진 너를 길렀으니 어느날 인가 너의 부모님이 너를 찿으러 나타날거야 " 라는 말로 동생들을 울렸던 기억이 난다 동생은 배우나 가수가 되겠다며 가끔 저녁 식사때 텔레비젼에서 본 쇼를 흉내내곤 했다 쇼의 온갖 역할을 다 하면서 그 밝은 웃음을 흘렸다 나는 모범생 이었고 녀석은 문제 학생 이었다 나는 어른 말에 순종 했고 녀석은 규칙을 어겼다 나는 마약과 술 근처에도 안갔지만 녀석은 입으로 삼킬수 있는 것은 모두 다 해봤다 고교 졸업후 유럽으로 갔다 유럽의 자연스런 생활방식을 더 마음에 들어 했다 하지만 그애는 여전히 가족의 총아로 남아, 야성 넘치고 재미 있는 모습으로 집에 올때면 나는 몸이 굳고 보수적이 되는 느낌을 느낄때가 많았다 그렇게 달랐으므로 어른이 되면 인생도 완전히 한방향으로 치닫으리라 믿었다 나는 오직 한갈로만 똑바로 갔다 삼촌이 암으로 돌아가신 날부터 나도 비슷한 죽음을 겪으리라 믿었고 젊은 나이에 잘병이 닦처서 세상을 뜰거라고, 그래서 발바닥에 불이 나도록 열심히 일했고 암이 찿아올것에 대비 했다 나는 암의 기운을 느낄수 있었다 그것이 내게 닦처 오리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사형언도를 받은 죄수가 집행관을 기다리듯 암이 덮처 오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내 예감이 맞았다 암이 닦아왔다 하지만 그것은 나를 비켜 갔다 암은 내 동생에게 들이 닥첬다 삼촌이 앓던 췌장암 으로 희귀한 형태라고 했다 우리 가족중 제일 젊은 동생은 금발 머리에 다갈색 눈을 가진 그애는 화학 요법과 방사선 치료를 받게 되었다 머리칼이 빠지고 얼굴은 해골처럼 수척 해졌다 나는 ' 내가 겪어야될 병을 저애가 겪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동생은 내가 아니었다 또 삼촌 같지도 않았다 그애는 투사였다 어릴때 레슬링을 하면서 내가 비명을 지르며 손을 놓을 때까지 내 발을 깨물던 그애는 그시절 부터 내내 싸움꾼 이었다 그애는 그렇게 맞서 싸웠다 집이 있는 스페인에서 병마와 씨웠다 미국에서는 쓰지 않는 전문 치료제를 투약 받았다 5년만에 암을 약화 시켰다고 판명 되었다 희소식 이었지만 유감스러운건 우리가족 누구도 곁에 오지 못하게 하는 것이었다 동생을 위해 뭔가 하면 죄책감에서 벗어날것 같았고, 그래서 뭔가 해줄 가족의 권리를 빼앗는 그애에게 화가 났다 그래서
다시 일에 매달렸다 일은 내 마음대로 조종할수 있는 유일한 것이며 반응을 보이는 상대였음으로 , 스페인의 동생 아파트에전화를 걸어 응답기의 대답을 들을때 마다 나는 수화기를 쾅하고 내려 놓고는 다시 일에 매달렸다 어쩌면 내가 모리 선생님에게
끌리게 된 이유도 바로 이때문 이리라 선생님은 내동생이 받아 들이지 않는 자리에 내가 들어설수 있게 해 주었으므로 , 생각 해보면 선생님은 아마 이 모든것을 알고 있던듯 싶다
어린시절 겨울, 우리가 사는 교외 지역의 눈 뎦인 언덕에서 썰매를 탄다 동생은 뒤쪽에, 나는 잎에 타고 달린다 그애의 턱이
내 어깨에 닿고 무르팍에 그애의 발이 닿는다 우리를 실은 썰매가 얼어붙은 경사를 달려 내려간다 점점 속도가 빨라진다
"차닷 " 누군가 소리친다 우리 왼쪽 도로에서 차가 달려오고 있다 우리는 비명을 지르면서 썰매 앞머리를 돌리려 하지만 활주부가 꼼짝도 하지 않는다 운전자는 경적을 울리면서 급 부레이크를 밟고 , 우리는 애들답게 썰매에서 탈출한다 후드 달린 잠바를 입은 우리는 추운 눈밭을 통나무 처럼 떼굴 떼굴 구르면서 이제 곧 딱딱한 자동차 바퀴 고무에 쾅하고 부딪힐 거라고 각오한다 겁이나서 " 아아악 " 소리를 지르며 구른다 위,아래가 뒤집히고 세상이 바로 보였다 꺼꾸로 보였다 한다 그런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구르기를 멈추고 숨을 몰아쉬며 얼굴에 묻은 눈을 털어낸다 운전자는 우리에게 손가락질을 하면서
도로를 빠저 나간다 휴우, 우린 무사하다 조금전 우리가 탔던 썰매는 눈더미에 박혀있고 지커보던 친구들은 손벽을 치면서
" 멋져 하마터면 죽을뻔 했다 " 라고 소리친다 나는 동생을 처다보며 씨익 웃고나서 애들답게 어깨를 으쓱하며 동생과 하나가 된다 그다지 나쁜 일은 아니었어 우린 그런 생각을 하며 또 다시 죽음과 맞설 채비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