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몸으로 길에 내몰린 심정으로 이 글을 씁니다. 부디 제가 발 딛고 있는 이 세상에 ‘상식’이라는 것이 아직 살아있기를 소망할 따름입니다.
경기도 안산 시민입니다. 세 아이의 아빠이기도 합니다.
큰 아이는 두 달 전에 군대 보냈고, 둘째 딸 아이는 고3 수험생입니다. 그리고 중학교 2학년 막내 아이가 있습니다. 그렇게 군대에 보내고, 학교에 보내고 계신 부모라면, 저희 부부가 어떤 심정으로 하루를 살아갈지 이해가 되실 겁니다.
세월호 참사가 있고부터 교복 입은 아이들만 보면 죄인 아닌 죄인의 심정이 되곤 하였습니다. 아마도, 제가 안산에 살고 있는 학부모인지라 더욱 그러했는지 모릅니다. 거기다 군대에선 연이어 안 좋은 사건사고만 터져 나오니 바늘 끝에 서있는 심정입니다.
그런데 정작 일이 터진 것은 중학교에 다니는 막내 아이입니다. 그 아이는 현재 안산 상록중학교 2학년에 재학 중입니다. 상록중학교로부터 통보를 받은 것은 10월 6일입니다. 통보 내용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 9월 30일 치른 중간고사 역사시험 도중, 부정행위가 적발되어 해당 과목을 0점 처리하기로 상록중학교 성적관리위원회에서 최종 결정하였다.
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입니까. 제 자식이 학교에서 부정행위를 하여 성적을 0점 처리 당했다니 말입니다. 가정교육을 잘못한 부모의 책임 또한 면키 어렵습니다. 생활기록부에도 ‘부정행위로 인한 0점 처리’로 남아 평생 아이를 따라 다닐 테니 부모의 죄가 얼마나 크겠습니까.
하지만, 아이에게 들은 이야기는 달랐습니다. 학교에 찾아가 확인한 상록중학교의 공식 입장 또한 아이의 말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상록중학교 성적관리위원회에서 부정행위로 간주한 이유는 이렇습니다.
- 첫째, 시험 전에 교내 방송을 통해 휴대전화를 담임에게 제출하라고 방송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하지 않았다.
- 둘째, 시험 도중에 교실 뒤편 사물함 위에 올려둔 아이들의 가방에서 배터리 전원이 끊길 때 울리는 경보음이 들렸는데, 우리 아이의 가방 안에 넣어 둔 휴대전화에서 울린 것이다. 결국, 아이들의 시험을 방해하였다.
이 두 가지가 상록중학교 선생님들(성적관리위원회)이 우리 아이를 부정행위로 처벌한 이유입니다. 주머니에 몰래 담고 있었다거나, 책상에 감추고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교실 뒤편 사물함 위, 그것도 가방 안에 넣어둔 휴대전화 경고음이 울린 것이 속칭 ‘컨닝’이라 불리는 부정행위로 처벌한 이유입니다.
물론, 휴대전화를 시험 전에 제출하지 않은 것은 아이의 잘못입니다. 하지만 담당 교사가 우리 아이에게 쓰라고 한 ‘사실확인서’에도 그 이유가 적혀 있었습니다. 아이가 쓴 ‘사실확인서’라는 것을 읽고 있자니 아비 된 자로서 심장이 토막토막 끊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제가 학교를 방문하였을 때, 학교에서도 그 이유에 대해서는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원칙이 그러니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다’는 것이 학교의 공식 답변이었습니다. 호소해도, 애원해도, 입장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마치 휴전선처럼 넘어서도, 넘을 수도 없는, 거대한 철조망과 대하고 있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발가벗은 심정으로 이 세상의 ‘상식’에게나마 호소하고 싶은 겁니다. 이미 학교 선생님들도 알고 있는 그 이유 또한 부끄럽지만 이 자리를 통해 밝히면서 말입니다.
아이가 휴대전화를 사전에 제출하지 않은 이유는 사실확인서에 적은 것처럼, ‘공기계니까 괜찮겠지’ 생각했다는 겁니다. 통화정지 된 먹통 휴대전화라 괜찮을 거라 생각했던 겁니다.
아이가 스스로 핸드폰을 정지한 것은 지난 8월 4일입니다. 방학을 앞두고 저와 아내 그리고 아이가 함께 상의한 결과였습니다. 아시다시피 요즈음의 스마트폰은 전화 기능 이외에도 많은 부가서비스 기능(게임, 채팅 등)이 있습니다.
그러한 것으로부터 스스로 벗어나 목표한 만큼 열심히 공부해보겠다는 것이 휴대전화를 정지한 이유입니다. 이후 아이는 휴대전화에 좋아하는 노래를 담아 MP3 용도로 사용했습니다. 문제가 생긴 시험 당일 역시 긴장을 풀기 위해 음악을 들었다고 합니다.
대학에 다니다 군대에 입대한 큰 아이와, 수능을 준비하는 고3 둘째 아이, 그리고 막내 아이까지... 세 아이를 사교육 시킬 만큼 저희 부부의 경제력이 여유롭지 못합니다. 부끄럽게도 세 아이 모두 학원 한 번 보내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씩씩하게 학교생활에 임하는 아이들이 저희 부부는 대견하기 그지 없습니다. 노력한 만큼 학업 성적도 나오고, 1학년과 2학년 한 학기 동안 반장에 선출되는 걸 보면 교우 관계 역시 원만하리라 생각합니다.
그렇게 휴대전화를 정지하고 도서관에서 방학기간을 보내선지 이번 중간고사 결과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가체점이긴 하지만 7과목 전체 문제 중에서 5문제를 틀렸으니 스스로 애쓴 결과가 나타났다 하겠습니다.
당연히, 부정행위로 간주하여 0점 처리된 역사 시험 또한 한 문제도 틀리지 않았습니다. 학교를 방문하여 그 사실에 대해 물었을 때, 담당 선생님 또한 알고 있다고 답했습니다.
제가 이 세상의 ‘상식’에 대고 묻고 싶은 것은 이런 것들입니다. 제가 학부모가 아니라 학교 선생의 입장이 되어 수도 없이 생각했지만 결론은 마찬가지였습니다. ‘이건 상식이 통하지 않는 결정이다.’ ‘특히 아이들의 인성을 가르치는 학교에서 ‘교육’이라는 명목으로 처벌하기엔 그 수위가 너무 아프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상식’이라는 기준으로 보았을 때, 이번 일을 처리하는 과정에서의 안산 상록중학교의 모습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첫째, 휴대전화를 제출하지 않은 것이 고의적인 행위가 아님을 학교 선생님들도 알고 있으면서, 굳이 부정행위로 규정하여 0점 처리를 하여야만 했을까? 처벌하기에 앞서 잘 타이르고 부모를 불러 이러한 사실을 고지하여 추후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의논해도 되지 않았을까?
둘째, 15살 사춘기 아이란 것을 생각하였을 때, 시험 첫날 아이를 교무실로 불러 ‘사실확인서’라는 것을 쓰게 하고, 이후 성적위원회를 열어 0점 처리를 할 수 있다는 말을 할 수 있을까? 그 말을 들은 아이가 이후 이틀 동안의 시험을 더 치르면서 느꼈을 심적 부담감과 두려움에 대해서는 고려하지 않았을까?
셋째, 핸드폰을 스스로 정지해 가면서까지 학업 성취에 대한 목표를 세우고 노력한 제자에게, ‘원칙’이라는 이유로(물론 납득하기 힘들지만) 0점 처리를 하여 좌절감을 안겨 주는 것이 ‘공교육의 원칙’인 것일까?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가슴 아프고 눈앞이 캄캄한 것은,
넷째, 우리 아이의 문제를 부정행위로 규정하여 0점 처리한 상록중학교 성적관리위원회 11분의 선생님들입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자신의 제자의 일입니다. 그런데 11분의 선생님들이 토론하고, 결정하여 최종 승인한 것이 한 제자의 성적을 0점 처리한 것입니다.
만장일치로 결정을 하였는지, 다수결로 결정하였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중요한 것은 제가 지금까지 이리도 길게 설명한 내용을 그 11분의 선생님들은 모두 알고 계셨을 거라는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15살 제자에게 내린 그 분들의 결정은 0점 처리였습니다. 날밤 새우고 공부하여 100점을 받은 과목을 말입니다.
학교 수업이 끝난 시간에 맞추어 학교를 방문하였을 때, 제 머리 속에 처음 든 생각은 ‘권력’이었습니다. 상록중학교 제1교무실이라는 곳에서 십여 명의 선생님들에 둘러싸인 체 그 높은 ‘교육 권좌’의 힘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재판장에 출석한 죄인처럼 준비해 갔던 말과 질문도 미처 다 하지 못했습니다.
그 순간 저는 자녀를 상록중학교에 맡긴 학부모라기보다 알몸으로 구경 당하고 있는 인생 패배자처럼 느껴졌습니다. 그 누구도 내 입장에 서서 말을 해주는 선생님이 계시지 않았습니다. 흡사 학교의 결정에 딴지를 걸러 온 훼방꾼을 대하는 눈빛으로 바라볼 뿐이었습니다.
그 눈빛이 대한민국의 공교육을 실천하는 모든 선생님들의 눈빛이 아니기를 간절히 바랄 따름입니다. 참담한 굴욕감과 수치심으로 학교 문을 걸어 나오는 순간부터, 저는 부정행위로 0점 처리를 받은 못난 아빠가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0점 처리를 받아야 할 사람은 제 아이가 아니라 못난 아비입니다. 저는 학교에 방문할 때만 해도 전후사정을 다 아는 분들이니 이야기 하다 보면 잘 해결될 거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건 저의 착각이었습니다.
결국, “아빠가 학교에 가서 선생님들과 이야기하면 잘 해결될 거야.” 아이와 약속했던 것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저는 스스로 휴대전화를 정지하면서까지 노력한 아이의 땀의 결실을 지켜주지 못한 지지리 못난 아빠입니다.
저는 틈만 나면 아이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습니다.
“맞아. 네 말처럼 우리나라는 모든 게 성적 중심이야. 그래도 어쩌겠니. 그것이 현실이라면, 그리고 그 현실을 너희 친구들 또한 이겨내고 있다면, 아빠는 내 막내 아들 또한 잘 이겨냈으면 고맙겠다.”
더불어 이 말도 잊지 않고 해주곤 합니다.
“아들, 네가 진정 하고 싶은 일이 생겼을 때 노력하는 것은 이미 늦어.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서라 생각하지 말고, 진짜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필요한 준비라고 생각해라. 어딘가를 가고 싶어도 신발부터 신는 게 순서잖아.”
하지만 상록중학교를 방문하고 교문을 나선 이후부터는 자신이 없습니다. 도대체 이 납득이 안가는 상록중학교의 0점 처리를 어떻게 아이에게 설명해야 한단 말입니까. 아이에게 또 무슨 말을 하면서 스스로 노력하라고 하겠습니까.
아이는 아빠의 학교 방문으로 혹시나 학교생활이 불편해지는 것은 아닐지 걱정하는 눈치입니다. 전학을 말하는 지인들도 있지만 그 또한 아이가 받을 상처가 아닐 수 없습니다. 유일한 해결책은 상록중학교 성적관리위원 선생님들이 다시금 이 문제를 상의하여 징계를 철회하는 것뿐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긴 사연을 인터넷이라는 공간에 올리게 되었습니다. 법이니, 도덕이니, 윤리이니 하는 것을 떠나, 상식 있는 분이라면 어찌 생각하실 지 궁금하기도 하였습니다. 지금 제 이야기를 듣는 분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과연 먹통 휴대폰을 가방에 넣어 교실 뒤편 사물함 위에 올려놓은 것이 부정행위일까요? 사전에 휴대폰을 제출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도 잘 알면서 굳이 0점 처리라는 중징계를 하여야만 했을까요?
인터넷이라는 공간을 통해, 안산시 상록중학교 성적관리위원회 11분의 선생님들께 호소합니다. 이제 15살 먹은 중학교 2학년, 선생님들의 제자입니다. 그 아이가 스스로 노력하는 아이인지 아닌지는 잘 알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간절한 심정으로 호소합니다. 부디, 원칙이라는 이유로 선생님들 제자의 꿈을 싹둑 자르지 않았으면 고맙겠습니다. 선생님들 또한 형제자매가 있고 자녀를 키우는 분 또한 계시지 않습니까.
마지막으로 부탁드립니다.
안산시 상록중학교 성적관리위원 선생님들은 제 아이의 징계를 위한 임시위원회를 조속히 열어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과도하게 해석된 부정행위와 그로 인한 0점 처리를 철회하여, 더 이상 아이의 가슴에 남을 상처가 지속되지 않게 하여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