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선비정신을 찾아서…<52>/ 日新 鄭義林 |
호남 최고 선비 노사 선생의 제자 율곡 제자들과 '理-氣' 논쟁 치열하게 전개 벼슬·명예 버리고 조선 후기 성리학 맥 이어 장성·담양·화순 청년들이 존경한 소박한 어르신 을사늑약에 "왜놈 물리치고 나라 도적 죽여야" 상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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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2011. 03.30. 15: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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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산서원 | | 이 고장 전남 화순은 향교가 능주와 동복 등 3곳이나 자리잡고 많은 선비와 충신, 열사를 배출한 곳이다. 그런 화순의 수많은 이름 중에 일신 정의림이 있다. 당대 호남 최고의 선비 노사 기정진 선생의 제자 중 한 사람이기도 하다. <일신재집(日新齋集)>(21권 12책)을 남겨 손바닥 들여다보듯 훤히 그의 행적과 사상을 들여다볼 수 있어 다행이다.
지금은 향교도 과거의 위엄은 사라지고 한 시골 촌락이 되어버린 화순군 능주면 대덕리에서 그는 1845년 11월 갑자일에 태어났다. 내내 고향에서 자습을 하다가 24살이 되어서야 노사 기정진 선생을 찾아가 본격적인 유학 공부를 시작했다. 이때 김석구·정재구 등과 친교를 맺고 지냈다. 나중에 친구 <김석구전>을 지을 정도로 김석구와는 돈독한 우정을 나누었으며, 58세에 아들과 함께 스승 기정진 선생의 문집 간행에 참여했다. 이때 경상도의 권봉회와 최동민이 기정진 선생의 저서 <외필>과 <납량사의>를 비판하자 "그들이 비록 비판하더라도 어찌 일월같이 빛나는 노사의 지혜를 손상하겠는가. 위로 선현을 팔고 후배를 현혹시키는 폐해가 많으니 변론하여 배척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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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인 노사 선생 필적 | |
고향에서 성리학에 빠져 노사사상을 연구하고 있을 즈음 나라 사정은 급박해져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정의림은 놀라고 떨려 울분을 토해냈다. 나라가 없어지다니…. 곧바로 소감을 작성하여 조정에 보냈다. <섬나라 오랑캐는 물리쳐야지 화친해서는 안되며, 나라의 도적은 죽여야 한다. 임금은 종묘사직을 위해 죽을 각오로 군왕 된 마음을 굳게 지켜야 한다. 백성은 나라를 끝까지 지켜야 하며 나라를 위해 죽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때 조정에서는 유림들의 상소를 받지 않는다며 모두 불살라버렸다.
상심한 정의림은 제자를 가르치며 죽음을 준비하고 있었다. 정의림의 나이 65세. 제자들이 스승의 유상을 남겨놓기 위해 막 조선에 들어온 사진기로 사진을 몰래 찍었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안 정의림은 그 사진 위에다 '이 모습도 싫고 이 삶도 가히 측은하다. 좀이나 고기 곁에 두는 것이 좋겠다'고 썼다. 그 이듬해 10월 정의림은 스스로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관을 쓰고 바르게 누워 숨을 거두었다.
남아 있는 문집은 일신재집 21권 12책이 있는데, 이 중 그의 사상을 살펴볼 수 있는 잡저로 '변전우소저 노사 선생 납량사의 기의'와 '변전소우저 노사 선생 외필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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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주향교 | | 노사의 납량사의와 외필은 율곡 이이의 성리학을 비판한 책으로 유명하다. 이에 경상도의 권봉희와 최동민이 스승 노사의 책을 비판하자 "스승 노사가 율곡의 설에 대해 말한 것은 전현을 비판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율곡의 실수를 보완하기 위한 것이다"고 반박하고, 그가 노사의 입장을 따라 동정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이(理)라고 했다. '움직임'과 '고요함'을 모두 이(理)로 본 정의림은 기(氣)만을 내세우는 비판자들에게 이기(理氣)의 조화를 강조했다.
화려한 벼슬은 하지 못했지만 조선 후기 성리철학의 맥통을 이어 발전시킨 선비 정의림. 조선 천지에 이름을 크게 내지는 않았지만 이웃한 장성·담양·화순지역 청년들의 정신적 지주로, 작고도 아름다운 삶을 살다간 어른이다.
1868년 노사 기정진 문하에 입문, 1902년 노사 기정진 문집 간행, 1905년 을사보호조약 반대 상소, 1910년 10월 10일 타계, 저서로 '일신재집' 21권 12책을 남김.
고운석 주필 gnp@goodnewspeople.com 고운석의 다른 기사 보기 $gisa_ttl="%3C%EC%8B%9C%EB%A6%AC%EC%A6%88%3E+%EC%84%A0%EB%B9%84%EC%A0%95%EC%8B%A0%EC%9D%84+%EC%B0%BE%EC%95%84%EC%84%9C%E2%80%A6%3C52%3E%2F+%E6%97%A5%E6%96%B0+%E9%84%AD%E7%BE%A9%E6%9E%9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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