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 음악의 만프레드
예술 특히 문학예술과 음악예술을 비교하는 것은, 독서가로서는 언제나 즐거운 일이다.
먼저 바이런 극시 <만프레드>와 슈만 극음악 <만프레드>을 보면, 더 나아가 차이콥스키 <만프레드 교향곡>과 니체 <만프레드 명상곡> 피아노 듀엣을 비교하면 더 신나는 일이지만 다음으로 미루고자 한다.
바이런과 슈만의 만프레드만 비교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원서로는 「Lord Byron's Manfred」는 Forgotten Books와 Dramatic works of Lord Byron의 두 권을 참조하였다.
다음으로 윤명옥은 “... 그는 파우스트적인 시극 <맨프레드Manfred>에서도... ‘인간은 반은 먼지요, 반은 신이며, 가라앉을 수도 없고 비상할 수도 없다.’라는 구절이 [있다]...”(조지 바이런, 바이런 시선(윤명옥역), 서울:지식을 만드는 지식, 2015. p.153)라고 하였다.
계속해서 이재호는 <낭만주의 영시>(탐구신서 156.)(서울:탐구당, 1977년)에서, “런던에서 태어난 Lord Byron(1788-1824)은 반항정신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그는 무모함과 주색으로 악명 높은 귀족의 자식이었다. 그의 아버지(”Mad Jack“ Byron)는 짜증 잘내고 균형잡히지 못한 여자와 결혼한 보잘것없는 모험가였다. 그의 출생과, 지위, 교육이 모두 합해 Byron을 세상과 대적하게 만들었다... 핸섬... 태생 절름발이... 이 불행에 괴로워했고, 어머니를 미워했다. 어머니도 그가 절름발이인 것을 조롱하기까지 했다. Harrow 학교를 거쳐 케임브리지의 Trinity College를 다녔다...
이 차일드 해롤드[작품 <차일드 헤롤드의 편력> Childe Harolew Pilgrimage. 1812년]는 그가 즐기는 괴팍한 주색에 빠진 사람의 포즈를 취한 Byron 자신이다...1816년[에 이혼]...1824년... 류머티즘에 열에 걸려[죽음]... 그의 추방시대에 「맨프리드」(Manfred), 「카인」(Cain) 같은 무운시 비극을 대여섯 편 썼다. 그의 만년의 위안은「돈 주안」(Don Juan)인데, 일종의 운문으로 쓴 피카레스크 소설이라 할 수 있으며, 영시로 쓰인 최대의 풍자시의 하나다. Byron의 풍자는 영어로 쓰인 가장 치명적인 것에 들어가는데...「최후의 심판의 환상」(The Vision of Judgment)에서 가장 잘 볼 수 있다.
Byron은 로맨틱한 인물이지만, 그는 Pope의 작품[특히 머리타래의 강탈The rape of the lock]을 굉장히 찬미했고... Byron의 시는 비록 벅차기는 하나, 최상의 시적 상상력이 결핍되어 있다. 그의 낱말은 그것이 의미하는 것을 의미할 뿐 그 이상의 마술이 없다... 그의 풍자는 Pope의 세련된 완벽성과 단어의 구사를 결핍하고 있다. 그의 시는 Wordsworth의 암시의 힘이나 Coleridge의 신비로움을 갖고 있지 못하다. 단 그의 시가 훌륭할 경우 힘차고 아름다울 뿐이다...”(pp.18-20)라고 하였다.
한편 전회숙은 <인문학으로 클레식 듣기>(daum. 블로그)에서 바이런, 슈만, 차이콥스키, 니체의 <만프레드>를 조명하였다. 바이런(George Gordon Byron 1788-1824)은 19세기 영국의 낭만주의 문학(워즈워드, 코울리지, 셰리, 키이츠 포함)을 대표(<만프레드>는 1817년 발표. 200년 전임)한다. 프랑스 비평가 이폴리트 테인(<영국문학사> 저)과 괴테는 바이런을 19세기의 천재로서 가장 위대하다고 평하였다.
낭만주의 문학의 바이블. 영향받은 문학작가는 괴테, 발자크와 스탕달, 푸쉬킨과 도스토예프스키, <폭풍의 언덕>의 히드클리프, <모비딕>의 에이허브 선장, <에프게니 노네긴>의 오네긴. 화가로서 들라 크루아, 음악 작곡가 베토벤, 슈만, 차이코프스키, 베를리오즈, 라이네케. 철학자 버틀란드 러셀(우주적 자기), 니체(초인사상). 특히 바이런적 영웅상은 늘 고뇌하고 죄책감과 우울해하며 방황하는 [소위 부조리] 영웅이며, 시대가 공감을 느끼는 영웅상을 나타낸 것이 <만프레드>의 극시이다.
알프스 산속에서 쓴 작품으로서, 이복 여동생(or 누나) 오거스트 리이와의 금지된 사랑은 근친상간이었고, 도피처로서 알프스는 시적 상상력을 제공하였다. 주인공 만프레드의 죄악의 기억으로 시달리는데, 연인 아스타르테(Manfre and Astarte)를 버려서 자살하게 만든 죄책감이 나타나며, 근친상간을 암시하고 있어서 바이런 자신의 경험과 관련이 있다.
여신 네메시스(Nemesis. 그리스 종교에서 2가지 뜻을 지닌 신 개념. 아티카와 분노에 찬 비난의 의인화. 아르테미스와 비슷함. 헬레네의 어머니. daum.백과사전.)의 신통력으로 연인을 만자지마, 죄의 용서는 거부당하고 저주(죽음)만 받는다. 장렬한 최후를 통하여 비극적인 삶을 마친다. 삽화는 <존 마틴이 그린 만프레드와 알프스 여신>, <Manfred and Astarte>, <존 마틴이 그린<융플라우의 만프레드>>,
슈만이 <만프레드>를 1829년에 읽고, 20년후에 악보에 옮겼다. 리스트에게 보낸 편지. 낭만주의의 원동력은 극한의 모순과 내면의 갈등이며, 낭만주의의 특권 혹은 젊은 예술임. 장엄한 서곡 다음에 만프레드의 긴 독백으로 산의 영혼을 불어낸다[초혼]. 신비로운 대리자여!/ 빛과 어둠 속에서 그토록 찾아 헤매던/ 무한한 우주의 영혼이여!/ 온 땅을 감싸고/ 미묘한 존재의 본질에 거주하는 영혼이여!/ 내게 힘을 준 마력의 이름으로/ 당신을 부릅니다./ 일어나 모습을 보여주소서!/
슈만의 만프레드는 너무 아름다워서, 다중인격자의 진면목을 나타내는 데는 실패하였다. 슈만의 <만프레드>가 바이런의 원작을 직역한 것이라면, 차이콥스키의 교향곡 <만프레드>는 바이런적 영웅에 대한 러시아적 해석이다. 만프레드가 아스타르테의 모습을 나타내 달라고 애원한 뒤에, 제 1악장은 아스타르테의 유령이 나타난다. 그녀가 죽은 게 사실인가?/ 뺨이 불그레한데?/ 하지만 그것이 죽은 색이라는 것을 알지/ 죽어가는 가을낙엽과 같은/ 부자연스러운 붉은 빛 홍조/ 오! 아스타르테!/ 그녀에게 말을 걸 수 없어/ 하지만 그녀에 말하라고 명령해 주시오/ 나를 용서해주든지 아니면 벌을 주든지 하라고/
유령이 말없이 서 있다가, 저주한다. “만프레드. 내일 이승에서 당신의 고뇌는 끝날 거예요. 안녕.” 차이콥스키의 애수와 비장이 결합된 특유의 관현악법으로 그려내고 있다. 차이콥스키의 제 1악장은 바이런의 온갖 의미를 함축하고 있으며, 2악장과 3악장은 삽입장(episode)고 할 수 있다. 한편 프리드리히 니체는 피아노 연탄곡을 작곡한 아마추어 음악가 였다. 작곡가가 되려고 바그너를 찾아갔으나, 철학의 길로 매진하라는 충고만 들었다. <비극의 탄생>을 발표한 4달 후(1872년 4월)에 <만프레드 명상곡>(피아노 연탄곡0을 작곡함. 루이스 켈터브른이 “내가 알기로 이 곡처럼 니체의 영혼을 잘 표현한 것도 없다. 형식이 낯설고 서투르지만 그래도 이 안에 표현된 니체의 영혼과 사상은 위대하고, 감정은 심오하다.”라고 평하였다.
니체는 한스 본 뷜로우(지휘자겸 피아니스트)에게 헌정했는데,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에 감명받은 니체였고 동시에 뷜로우는 니체의 애독자였다. 그러나 혹평하기를 “당신은 이 곡을 ‘끔찍하다고’고 했는데, 사실 솔직하게 말하자면(기분 나빠하지는 말아요) 이 곡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끔찍합니다. 이것은 음악의 신을 겁탈하고 유린하는 범죄와 같은 것입니다.”라고 니체를 나무랐다.
마지막에 만프레드가 악마의 협상을 단호하게 거절함으로써, 자율적인 인간으로서 선택하는 것이 초인사상의 단초 역할을 낳게 하였다. 니체의 <이 사람을 보라>에서 초인 사상을 만든 것을 보아서, 만프레드가 사실 괴테의 파우스트보다 훨씬 위대한 존재로 보았다. 마지막 대사에서 만프레드는 “죽는다는 것이 그렇데 힘든 것은 아니구나!(It is not difficult to die)”. 번민으로부터 해방된 즉 숨을 거둔 후 합창으로 죽음을 찬양하고, 조용한 관현악으로 마무리 짓는다.(daum. 블로그. “인문학으로 클래식 듣기” 바이런 극시<만프레드>와 슈만 극음악 <만프레드> by 전회숙 참조).